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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돌아서면 그만이다 (문학동네시인선 099)
안정옥
문학동네
2017년 12월 9일 발행
130×224mm | 112쪽 | 반양장본
978-89-546-4916-2
정상
8,000원

문학동네시인선 아흔아홉번째 시집 안정옥 시인의 『그러나 돌아서면 그만이다』를 펴낸다. 1990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한 뒤 지금까지 펴낸 시집이 이번 책을 포함하여 총 여덟이니 그래도 평균 3년에 한 권씩은 꼬박 시인으로서의 제 역할에 충실히 방점을 찍어왔다 할 수 있겠다. 물론 성실함만이 시인의 무기가 될 수 있겠는가. 시인에게는 놀라우리만치 녹슬 줄 모르는 비밀병기가 하나 있으니 이는 날뛰는 망아지 같은 감수성이 아닐까 한다.
1990세계의 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 붉은 구두를 신고 어디로 갈까요』 『나는 독을 가졌네』 『나는 걸어 다니는 그림자인가』 『아마도』 『헤로인』 『내 이름을 그대가 읽을 날이 있다.
시인의 말

달래다
청개구리라고,
튤립의 추억
무슨 기억에 이토록 시달리는가
있다와 없다 앞에 쓰여
갈 수 없는 곳과 엉겨붙다
베토벤의 연애
가마솥에서는
개꽃
고흐의 연애
한강 하구로부터 100km
괜찮아 난 괜찮아
공작
귀뚜라미
그늘을 보내오니
밑단을 말하면
복숭아
질겅질겅
날아감을 두려워하랴
생로병사(生老病死)
너무나 다중적인 그를
노란 꽃
내가 있다가 없다
눈물은 눈이 녹은 물이다
하얀 박쥐가
흠이 있다
뒤통수를 얻어맞을 때까지
망각곡선(忘却曲線)
머나먼 별자리
만파식적(萬波息笛)
머뭇거리지 마라
그의 탓으로 돌렸다
비밀
빗방울 전주곡
빨간 스웨터
삼나무 반지
속절없이와 거침없이 사이에서
서한
숲의 미래
연애의 위대함에
외모는 속임수다
아틀라스
웅덩이
윌쯔카나무
유령과 함께
A와 대타 B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까
치명적인가 묻는다
칡꽃 필 무렵에
직업
칡꽃
편폐하다
해바라기
헌정
다시 쓰는 늑대론
문득

해설|시라는 풍등을 들고 여기까지 왔네
|박상수(시인, 문학평론가)
문학동네시인선 아흔아홉번째 시집 안정옥 시인의 그러나 돌아서면 그만이다를 펴낸다. 1990세계의 문학으로 등단한 뒤 지금까지 펴낸 시집이 이번 책을 포함하여 총 여덟이니 그래도 평균 3년에 한 권씩은 꼬박 시인으로서의 제 역할에 충실히 방점을 찍어왔다 할 수 있겠다. 물론 성실함만이 시인의 무기가 될 수 있겠는가. 시인에게는 놀라우리만치 녹슬 줄 모르는 비밀병기가 하나 있으니 이는 날뛰는 망아지 같은 감수성이 아닐까 한다. 하고 많은 것 중에서 길들여지지 않은 어린 소와 같은 천방지축을 힘으로 말하자면 있다없다사이를 마구 치받고 있는 와중의 감각이랄까. 그래. 그렇지. 실은 우리 중 그 누구도 이 있다없다사이에 놓여 있지 않을 수가 없는 거라지. 그게 삶과 죽음 사이에 느닷없이 던져졌다 알 수 없이 사라지는 우리들 모두의 꿈만 같은 현실이자 현실인데 꿈이라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정옥 시인은 매 시집에서 특유의 씩씩함을 티내왔다. 어떻게 이렇게 비뚤어졌음에도 거참 신기하다 싶을 정도의 긍정적인 시선을 지켜왔는지 그 모순의 건강함에 혀를 내두를 정도로 말이다. 여기서 해설을 쓴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박상수의 말을 살짝 빌려와볼까.
 
   자기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을 고민하며 답을 구하려는 시인의 의지와 사유의 진지한 주고받음이 흙바닥에 발을 딛고 안개 속을 가로지르며 나지막하지만 치열하게 펼쳐진다고 할까. 흐릿한 안개 때문에 발이 보이지 않아 현실의 사람이 아닌 듯도 보이지만 그녀는 작은 1인용 풍등(風燈)을 쥐고 끝까지 그 불씨를 꺼뜨리지 않으면서 거친 땅 위를 걸어간다.
해설시라는 풍등을 들고 여기까지 왔네중에서
 
56편의 시가 특정한 부의 나눔 없이 줄줄이 이어 담긴 이번 시집은 어떤 면에서 보자면 하나의 줄자라 할 수도 있을 성싶다. 몸을 웅크리고 있을 때는 심드렁하니 그냥 그런가보다 하여도 막상 몸을 펴면 늘어났다 줄어들기에 여한이 없다. 이 능청스러움에 빗대 이번 시집을 말하자면 그야말로 그 자체로 고무대야 속 뜨끈뜨끈한 밀가루 반죽이라고도 해볼 수 있겠다. 손이 가고 눈이 가는 대로 뭐든 만들었다 뭉갰다가 하여간에 어린이로 맘껏 놀아보는 과정 속에 시인은 자유로움이라는 그물 옷을 온몸에 뒤집어쓰게 되는데, 그래서인지 산문적 호흡과 무심한 듯한 행갈이가 당연한 듯도 느껴진다. 그러니까 이 시인은 도통 계산이란 걸 할 필요도 없이 몸이 가는대로 마음이 흔들리는 대로 따랐겠구나, 그걸 이해하게 된다. 시인의 오락가락 춤을 추는 듯한 시로, 마치 취권과 같은 아름다운 흔들림의 시로 우리를 웃으며 홀려놓기에 이른 것이다. 씩씩하고 용맹스럽게 까짓것 하면서 걷고 뛰고 웅크리고 드러눕고 지르고 마시고 뱉고 삼키고 하는 다양한 감정들로 저를 표출하는 이토록 건강한 동물성이라니. 이 뜨겁고도 차가운 변화무쌍한 감정의 소용돌이라니.
편마다 시가 재미있게 읽히는 건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한 일. 시에서의 솔직함에는 분명 여러 종류가 있을 터인데 안정옥 시인의 경우는 말만도 아니고 몸만도 아닌 이 둘 모두의 끌탕. 앞과 뒤, 겉과 속이 이토록 뻥 뚫려 한통속일 수도 있을까. 의뭉을 모르고 거짓은 더더욱 모르는 시인. 눈앞에 지름길을 두고 우회하는 시인이 있다면 그 선두에 안정옥이라는 이름이 있을 것이다. 왜냐? 이번 생에서 모든 걸 풀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고 보는 시인이니까. 다음 생도 남아 있다고 말하는 시인이니까. 그럼에도 돌아서면 남이라고 말할 줄 아는 시인이니까. 안정옥은 칼 없이도 무사다. 거추장스러운 건 딱 질색인 그런 펜의 무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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