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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 (사랑과 상실에 관한 포토 에피그램)
헤르츠티어
싱긋
2018년 6월 11일 발행
320쪽 | 130*200 | 무선
978-89-546-5174-5
정상
15,500원

"다친 것들끼리 무심히 눈을 마주치는 순간의
꼭짓점들에 대해 나는 말하고 싶었다."

나아가기 위해 머물러야 하는 불가피한 슬픔
다가가는 문장, 물러서는 사진으로 재현한 사랑과 상실의 감각
네이버 그라폴리오 인기작가 헤르츠티어 첫 사진에세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놓치고 흘려보낸 내 마음이, 글쎄 여기 그만
우리들 사랑으로 있더라!" _김민정 시인


슬픔을 품는 따뜻한 얼음의 메시지
힘내라는 한마디보다 더 깊은 위로가 되는 공감의 시선

헤르츠티어라는 사진가가 있습니다. 그는 사진으로 글을 쓰고, 글로 사진을 찍는 사람입니다. 마음을 뜻하는 독일어 "herz"와 짐승을 의미하는 "tier"의 합성조어로,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헤르타 뮐러의 동명 소설(『마음짐승』) 속 한 문장에서 그 이름을 빌려왔습니다. 낮에는 문학편집자로, 퇴근 후에는 길에서 사진 줍는 사람으로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그는 길 위의 성실한 관찰자로서 우리 삶의 비의와 사랑, 슬픔이 맺혀 있는 인상 깊은 순간들을 사진에 담아왔고, 그라폴리오 스토리전 Vol.1에 참여해 석 달간 첫 사진전을 갖기도 했습니다. 바라보는 순간 대상에 깊이 공감하고 멀찌감치 떨어졌다가 한순간 아예 그것이 되어버리기도 하는 그의 포용적인 시선은, 익숙한 것을 낯설게 하고 모호한 것을 선명하게 묘파해내는 데 탁월한 감각을 보여줍니다. 무심히 흘려보낸 우리 일상의 순간들이 그의 사진 속으로 들어가면 전혀 다른 이야기를 품게 됩니다.

*

사진에세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머무를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슬픔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부제에서 엿볼 수 있듯 한 세계를 이루는 사랑과 그 세계가 일순 사라져버렸을 때의 상실의 감각이 주를 이룹니다. 누구나 느끼는 감정이면서 또 쉽게 공유할 수 없는 아픔인 상실감과 슬픔에 대해 말하는 것이, 어둠 속을 더듬어 빛을 찾아가는 사진의 원리나 과정과 비슷하다고 작가 헤르츠티어는 말합니다.

"그럼에도 말하고 싶었다. 바라보고 싶었다. 다친 것들끼리 무심히 눈을 마주치는 순간의 꼭짓점들에 대해 나는 말하고 싶었다. 당신이 속한 어둠이란 단지 무채색이 아니라, 갈등하는 수많은 총체로서, 그 한가운데를 통과하는 일이 이제는 새로운 빛을 더듬는 과정이길 바랐다. 한 장의 사진이 그렇게 완성되듯." _"뒤표지"에서

*

어릴 적 죽은 개를 밭에 묻어주고 그 개가 고추나 토마토가 되어 다시 돌아오길 바랐다("프롤로그")는 헤르츠티어의 순박한 감성은 살아오는 동안 경험해야 했던 사랑과 이별, 상실의 반복과 누적 속에서 조금씩 다른 색깔을 띠게 됩니다. 여덟 살 때 시작된 자살자유가족으로서의 삶, 그리고 그 죽음에 대해 말할 수 없었던 부끄러움과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 빈자리를 끌어안은 채 성장해야 했던 그는, 옆에 있었던 소중한 존재들이 하나둘 자신을 떠나가는 과정을 묵묵히 지켜보며 차라리 슬픔을 외면하는 방법을 택합니다. 그러나 마음만 경직될 뿐 슬픔은 좀체 흘러가지 않습니다. 롤랑 바르트는 『애도 일기』라는 책에서 사랑하는 마망(어머니)을 잃은 자신의 슬픔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은 이유가 그것이 문학이 돼버릴까봐, 라고 말한 적이 있지요. 자신의 슬픔을 들여다보기란 거장에게도 무척 어려운 일이었을 겁니다.

상실과 고통의 감각에 예민해진 헤르츠티어는 어른이 되면 잘 떠나보내고 잘 기억할 수 있을 줄 알았던 일들이 만만치 않음을 깨닫고 이따금 속수무책이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어느 날은 그 슬픔을 흘려보낼 강물을 스스로 만들고 싶어 양파 껍질로 눈을 문질러보기도 하고("투명한 울음"), 좀더 튼튼한 자아를 가진 다른 사람이 속에 들어와 며칠만 살아주었으면("너의 이름은") 하고 바라보기도 합니다. 또한 잘 잊히지 않는 기억 속 뼈아픈 순간을 떠올리다 그때로 돌아간 듯 잴 수 없는 박자로 가슴이 뛰는가 하면("그 밤을 나는 잊지 못하지"), 더이상 둘 사이에 존재할 수 없게 된 "사랑"이라는 언어의 죽음을 기리며 상실감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을 단편소설로 풀어내기도 하고("사랑 장례식"), 세상의 아이들 절반이 죽어도 슬픔을 허락지 않는 세상이 바로 여기("꿈속 거기")라고 씁쓸하게 털어놓습니다.

*

"나는 우리 사회가 더 많이 사랑하고 상실의 슬픔을 인정하고 장려하는 분위기가 되길 바란다. 사랑뿐 아니라 그 슬픔 역시 누구에게도 해롭지 않다고 믿기 때문이다." _"프롤로그"에서

*

이 책은 총 8부로 구성돼 있고, 슬픔의 다섯 가지 극복 단계(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를 본문 구성으로 취합니다. 기본적인 의도를 반영한 것일 뿐 도식적으로 분류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순서대로 읽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기만의 순서를 만들어보는 것도 이 책을 음미하는 한 재미가 될 것입니다. 본디 마음의 흐름에는 각자가 편차가 있고 정답이 없으니까요.
차례 번호로 붙은 F1.4, F2.0, F3.5……에서 F는 렌즈의 조리개값을 의미합니다. 가령 우리가 흔히 "아웃포커스"라고 부르는 F1.4의 눈은 초점이 닿은 대상에만 집중하며 그 너머는 보지 못합니다. 조리개값이 커질수록 "나"(카메라)의 초점 범위는 넓어지며 주변을 살피고 관계의 맥락 속에서 자신의 현재를 확인하게 됩니다.
카메라 속으로 들어간 작가는, 사이를 응시하고 깊이를 재고 한 발 뒤로 물러나는 한쪽 눈으로("한쪽 눈으로 걷기") 다치고 버려지고 아파하는 것들에 시선을 둡니다. 어둠의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며 얼마 안 되는 빛을 찾아 조금씩 더듬어나갑니다. 그는 자신이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사랑과 상실의 감각에 집중하며 세심한 언어로 그것을 재현해내는데, 조색(調色)의 과정처럼 실제와 상상이 뒤섞입니다. 가슴속 깊은 데를 건드리는 그의 벼려진 언어는 그 자체로 이미지가 되어 풀어집니다.
제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그것은 대체로 애도 감수성에 향해 있으며 아울러 우리 삶의 쓸쓸함과 온기에 대해서도 긍휼한 시선을 잊지 않습니다. 가령 그는 자신을 꿰뚫은 슬픔의 얼굴을 응시하기 위해 애써 강한 척하거나 속 깊은 척하지 않습니다. 슬픔은 다친 자의 권리라고 당당하게 부르짖는가 하면 어느 날 밤 기습하는 쓸쓸함에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기도 합니다.
삼십 년이 지나도 여전히 완결되지 않은 긴 애도의 삶 속에서 그가 사진을 만나 몰입하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르겠습니다. "모든 사진은 죽음을 기억한다"는 수전 손택의 말을 굳이 인용할 필요는 없지만, 참견처럼 여기에 놓아두고 싶네요.

*

이따금 오래전에 찍은 사진 파일들을 열어 보다 그 낯섦에 잠시 고개를 갸웃할 때가 있습니다. 분명 내가 찍은 사진인데, 왜 찍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거나 이제는 별 감정 없이 볼 수 있게 된 게 낯설기도 합니다. 장면을 포착해 셔터를 누른 나, 사진 속 대상과 교감하며 셔터를 눌렀던 나는 지금의 나와 전혀 다른 존재인 것만 같습니다. 작가이자 미술평론가 존 버거는 모든 사진에는 내레이터가 있다고 말합니다. 무심히 찍은 한 장의 사진에조차 촬영자의 시선이 있고, 그 순간의 교감이 담겨 있다는 것인데요. 나와 함께 있었던 연약하고 무상한 존재들의 숨을 기억하는 방식, 그것이 사진 예술의 한 특성이기도 할 것입니다. 헤르츠티어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은 곁에 있을 땐 있음을 보고, 없을 땐 그 없음을 보려고 애쓴 사진에세이입니다. 그리고 이 책은 당신의 무채색 슬픔에 기꺼이 함께 물들고 싶어합니다.

안면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열다섯 살 때 길에서 일회용카메라를 주우며 처음으로 셔터란 걸 눌렀다. 책이 좋아서 책을 좇았고 글과 이미지 사이에 존재하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 이따금 바람을 음표 삼아 작곡을 하고 영상을 찍는다. 겨울을 좋아하고 첫눈이 내리면 여전히 가슴이 쿵쿵 뛰는 사람. 2017년 네이버꽃 그라폴리오 스토리전 Vol.1을 통해 첫 사진전을 가졌다. 무심한 일상에 반격하고 싶어 사진을 줍고, 낯모르는 당신의 곁을 자주 기웃거린다.

www.grafolio.com/herztier

프롤로그

F1.4 절벽에 매달린 나의 밤으로
바라보니 함께 눕고 싶었다 | 수도꼭지 | 블랙박스 | 별들은 벌써 잠이 들었다 | 해시태그(#) | 프리허그 | 아무도 오지 않는다 | 나무 뒤에 숨어서 | 밥은 먹고 다니니 | 애도 일기 | 얼음: 예쁘고 차가운 꿈 | 눈을 뗄 수 없었지 | 이것은 시간의 주검이다 | 나를 부끄럽게 할 셈인가요

F2.0 추억은 무례하다
꿈의 기록 | 향 | 몸보다 마음이 먼저 예감했던 | 그마저 잘 안 되었다 | 비행의 이유 | 나의 유년 | 안면도安眠島 | 귀신도 도깨비도 없었다 | 개들의 묘지 | 고수의 칼맛 | 추억은 무례하다 | 눈을 살해하다 | 꿈속 거기

F3.5 다가가 이름을 부르자 그 별은 금세 졌지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 너는 네가 오고 싶을 때 온다 | 저 위에 별 하나 박겠다 했지 | 숫눈에 새긴 기억 | 모두 길이었다 | 물 위의 만종 | 일방통행로 | 투명한 울음 | 너도 세입자 나도 세입자 | 가면 생각 | 스완네 집 쪽으로 | 생채기

F4.5 어젯밤 그 자리엔 아무도 없었지만
한 걸음이 물음이었고 | 그 밤을 나는 잊지 못하지 | 그늘의 저편 | 악몽 | 명치끝이 아프다 | 힘이 솟는다 | 감금된 생 | 친구 | 가위 | 너의 이름은 | 너는 공중을 잃었다 | 당신의 무늬

F5.6 네가 거기 있어서, 나도 거기 있었다
누가 버린 꽃 | 봄밤 소묘 | 아이는 개의 등을 만지며 | 곁 | 사진은 기억한다 | 바람의 일생 | 아저씨, 왜 우세요? | 부부유친 | 이 상상이 저물지 않는 한 | 우리를 다녀간 감에 대하여 | 석류 | 엄마, 나를 놓지 말아요 | 그 숲에 버리고 온 숨이 있다

F6.0 슬픔의 중력
좋은 포옹의 한 예 | 길고양이의 말 | 아직도 밤이 무서워요? | 개인적 설화 | 종이배 접기 | 삼십 년이 집에 돌아왔다 | 대출상담 | 사랑혐오에 반대함 | 조금 무서운 꿈을 꾸었을 뿐 | 태풍은 좋겠다 | 파업이 밥이다 | 집은 가장 먼 곳이었어 | 영목항 갈매기 | 세상에 믿을 건 자기뿐이라는 그를 | 당신의 잠 | 슬픔의 중력 | 생애 첫 눈을 맞은 개에게

F7.1 밝은 방
밝은 방 | 닭과 나 | 고래의 눈 | 분홍이 | 어찌 저를 버리시나이까 | 별주부 유언 | The horse on the wall | 위안의 감각 | 착한 풍경 | 저녁의 이음표 | 하늘빛 허공에 눕다 | 누가 떨어뜨린 잉크 자국처럼 | 구렁이 | 중력 | 꽃길로 나아가소서
 “다친 것들끼리 무심히 눈을 마주치는 순간의 
꼭짓점들에 대해 나는 말하고 싶었다.”
 
나아가기 위해 머물러야 하는 불가피한 슬픔
다가가는 문장, 물러서는 사진으로 재현한 사랑과 상실의 감각
네이버 그라폴리오 인기작가 헤르츠티어 첫 사진에세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놓치고 흘려보낸 내 마음이, 글쎄 여기 그만 
우리들 사랑으로 있더라!” _김민정 시인
 
 
슬픔을 품는 따뜻한 얼음의 메시지
힘내라는 한마디보다 더 깊은 위로가 되는 공감의 시선
 
헤르츠티어라는 사진가가 있습니다. 그는 사진으로 글을 쓰고, 글로 사진을 찍는 사람입니다. 마음을 뜻하는 독일어 ‘herz’와 짐승을 의미하는 ‘tier’의 합성조어로,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헤르타 뮐러의 동명 소설(『마음짐승』) 속 한 문장에서 그 이름을 빌려왔습니다. 낮에는 문학편집자로, 퇴근 후에는 길에서 사진 줍는 사람으로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그는 길 위의 성실한 관찰자로서 우리 삶의 비의와 사랑, 슬픔이 맺혀 있는 인상 깊은 순간들을 사진에 담아왔고, 그라폴리오 스토리전 Vol.1에 참여해 석 달간 첫 사진전을 갖기도 했습니다. 바라보는 순간 대상에 깊이 공감하고 멀찌감치 떨어졌다가 한순간 아예 그것이 되어버리기도 하는 그의 포용적인 시선은, 익숙한 것을 낯설게 하고 모호한 것을 선명하게 묘파해내는 데 탁월한 감각을 보여줍니다. 무심히 흘려보낸 우리 일상의 순간들이 그의 사진 속으로 들어가면 전혀 다른 이야기를 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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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세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머무를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슬픔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부제에서 엿볼 수 있듯 한 세계를 이루는 사랑과 그 세계가 일순 사라져버렸을 때의 상실의 감각이 주를 이룹니다. 누구나 느끼는 감정이면서 또 쉽게 공유할 수 없는 아픔인 상실감과 슬픔에 대해 말하는 것이, 어둠 속을 더듬어 빛을 찾아가는 사진의 원리나 과정과 비슷하다고 작가 헤르츠티어는 말합니다.
 
“그럼에도 말하고 싶었다. 바라보고 싶었다. 다친 것들끼리 무심히 눈을 마주치는 순간의 꼭짓점들에 대해 나는 말하고 싶었다. 당신이 속한 어둠이란 단지 무채색이 아니라, 갈등하는 수많은 총체로서, 그 한가운데를 통과하는 일이 이제는 새로운 빛을 더듬는 과정이길 바랐다. 한 장의 사진이 그렇게 완성되듯.” _‘뒤표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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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죽은 개를 밭에 묻어주고 그 개가 고추나 토마토가 되어 다시 돌아오길 바랐다(‘프롤로그’)는 헤르츠티어의 순박한 감성은 살아오는 동안 경험해야 했던 사랑과 이별, 상실의 반복과 누적 속에서 조금씩 다른 색깔을 띠게 됩니다. 여덟 살 때 시작된 자살자유가족으로서의 삶, 그리고 그 죽음에 대해 말할 수 없었던 부끄러움과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 빈자리를 끌어안은 채 성장해야 했던 그는, 옆에 있었던 소중한 존재들이 하나둘 자신을 떠나가는 과정을 묵묵히 지켜보며 차라리 슬픔을 외면하는 방법을 택합니다. 그러나 마음만 경직될 뿐 슬픔은 좀체 흘러가지 않습니다. 롤랑 바르트는 『애도 일기』라는 책에서 사랑하는 마망(어머니)을 잃은 자신의 슬픔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은 이유가 그것이 문학이 돼버릴까봐, 라고 말한 적이 있지요. 자신의 슬픔을 들여다보기란 거장에게도 무척 어려운 일이었을 겁니다.
 
상실과 고통의 감각에 예민해진 헤르츠티어는 어른이 되면 잘 떠나보내고 잘 기억할 수 있을 줄 알았던 일들이 만만치 않음을 깨닫고 이따금 속수무책이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어느 날은 그 슬픔을 흘려보낼 강물을 스스로 만들고 싶어 양파 껍질로 눈을 문질러보기도 하고(‘투명한 울음’), 좀더 튼튼한 자아를 가진 다른 사람이 속에 들어와 며칠만 살아주었으면(‘너의 이름은’) 하고 바라보기도 합니다. 또한 잘 잊히지 않는 기억 속 뼈아픈 순간을 떠올리다 그때로 돌아간 듯 잴 수 없는 박자로 가슴이 뛰는가 하면(‘그 밤을 나는 잊지 못하지’), 더이상 둘 사이에 존재할 수 없게 된 ‘사랑’이라는 언어의 죽음을 기리며 상실감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을 단편소설로 풀어내기도 하고(‘사랑 장례식’), 세상의 아이들 절반이 죽어도 슬픔을 허락지 않는 세상이 바로 여기(‘꿈속 거기’)라고 씁쓸하게 털어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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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 사회가 더 많이 사랑하고 상실의 슬픔을 인정하고 장려하는 분위기가 되길 바란다. 사랑뿐 아니라 그 슬픔 역시 누구에게도 해롭지 않다고 믿기 때문이다.” _‘프롤로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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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총 8부로 구성돼 있고, 슬픔의 다섯 가지 극복 단계(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를 본문 구성으로 취합니다. 기본적인 의도를 반영한 것일 뿐 도식적으로 분류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순서대로 읽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기만의 순서를 만들어보는 것도 이 책을 음미하는 한 재미가 될 것입니다. 본디 마음의 흐름에는 각자가 편차가 있고 정답이 없으니까요.
차례 번호로 붙은 F1.4, F2.0, F3.5……에서 F는 렌즈의 조리개값을 의미합니다. 가령 우리가 흔히 ‘아웃포커스’라고 부르는 F1.4의 눈은 초점이 닿은 대상에만 집중하며 그 너머는 보지 못합니다. 조리개값이 커질수록 ‘나’(카메라)의 초점 범위는 넓어지며 주변을 살피고 관계의 맥락 속에서 자신의 현재를 확인하게 됩니다. 
카메라 속으로 들어간 작가는, 사이를 응시하고 깊이를 재고 한 발 뒤로 물러나는 한쪽 눈으로(‘한쪽 눈으로 걷기’) 다치고 버려지고 아파하는 것들에 시선을 둡니다. 어둠의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며 얼마 안 되는 빛을 찾아 조금씩 더듬어나갑니다. 그는 자신이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사랑과 상실의 감각에 집중하며 세심한 언어로 그것을 재현해내는데, 조색(調色)의 과정처럼 실제와 상상이 뒤섞입니다. 가슴속 깊은 데를 건드리는 그의 벼려진 언어는 그 자체로 이미지가 되어 풀어집니다.
제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그것은 대체로 애도 감수성에 향해 있으며 아울러 우리 삶의 쓸쓸함과 온기에 대해서도 긍휼한 시선을 잊지 않습니다. 가령 그는 자신을 꿰뚫은 슬픔의 얼굴을 응시하기 위해 애써 강한 척하거나 속 깊은 척하지 않습니다. 슬픔은 다친 자의 권리라고 당당하게 부르짖는가 하면 어느 날 밤 기습하는 쓸쓸함에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기도 합니다.
삼십 년이 지나도 여전히 완결되지 않은 긴 애도의 삶 속에서 그가 사진을 만나 몰입하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르겠습니다. ‘모든 사진은 죽음을 기억한다’는 수전 손택의 말을 굳이 인용할 필요는 없지만, 참견처럼 여기에 놓아두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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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오래전에 찍은 사진 파일들을 열어 보다 그 낯섦에 잠시 고개를 갸웃할 때가 있습니다. 분명 내가 찍은 사진인데, 왜 찍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거나 이제는 별 감정 없이 볼 수 있게 된 게 낯설기도 합니다. 장면을 포착해 셔터를 누른 나, 사진 속 대상과 교감하며 셔터를 눌렀던 나는 지금의 나와 전혀 다른 존재인 것만 같습니다. 작가이자 미술평론가 존 버거는 모든 사진에는 내레이터가 있다고 말합니다. 무심히 찍은 한 장의 사진에조차 촬영자의 시선이 있고, 그 순간의 교감이 담겨 있다는 것인데요. 나와 함께 있었던 연약하고 무상한 존재들의 숨을 기억하는 방식, 그것이 사진 예술의 한 특성이기도 할 것입니다. 헤르츠티어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은 곁에 있을 땐 있음을 보고, 없을 땐 그 없음을 보려고 애쓴 사진에세이입니다. 그리고 이 책은 당신의 무채색 슬픔에 기꺼이 함께 물들고 싶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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