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방주가)_김려(金?, 1766~1821)의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사정士精, 호는 담정?庭이다. 성균관을 거쳐 진사시에 합격한 수재였지만 문체만큼은 당시 정조 임금이 싫어한 ‘소품체’를 썼다. 1797년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서학을 믿는다는 죄목으로(실제로는 소품체가 밉보여) 함경도 부령으로 유배되었고, 4년 뒤에는 신유사옥에 걸려들어 진해로 유배지를 옮긴다. 이후 1806년이 되어서야 유배에서 풀려났다. 《감담일기坎?日記》《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등, 책과 많은 시문을 남겼으며 자신을 포함한 문인 열여섯 명의 글을 모아 《담정총서?庭叢書》를 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