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오철만은 시골에서 팔 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나 성장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누나 형들의 영향으로 또래들보다 모든 것을 일찍 접했다.
소년기를 마치고 개울물을 벗어나 갑자기 바다를 대면한 물고기처럼 대학이라는, 서울이라는 커다란 세계에 진입했지만 무척이나 허우적거렸다. 무엇을 하고 싶고 무엇을 해야 할 지 또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몰라 숱하게 힘든 세월을 소비했다.
명문대학을 졸업한 후, 남들 다 가는 길을 주저하고 있을 때 인도에 머물고 있던 셋째 누나의 인도로 여행을 가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고 망설임 없이 일주일 만에 짐을 꾸렸다. 그리고 인도에 도착한 지 며칠 만에 홀로 새벽에 오른 설산에서 치명적인 사고를 당해 깊은 심연으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그 후로 사진기를 가슴에 끌어안고 사는 인생을 산다. 사진을 하고 있지만 스스로를 살게 하는 것은 기록의 힘이 아니라 기억의 힘이라고 생각하는 쪽이다. 사진은 스쳐 지나간 오랜 시간의 합이라 믿으며 사진의 힘은 그 시간의 무게에 있다고 믿는다. 이 책은 그 믿음을 현상하고 인화한 결과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