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후기 충렬왕 때 사람으로 본관은 추계秋溪이다. 자는 관중慣中이고 호는 노당露堂이며, 시호는 문헌文憲이다. 15세의 나이에 문과에 급제하고 나서 관직에 발을 들여 안동서기安東書記와 직사관直史官 등을 거쳐 왕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는 자리인 좌사간左司諫이 되었다. 강직하고 원칙주의자였던 그는 환관 황석량黃石良 등에 의해 참소당해 칼을 쓴 채 호송되는 일을 겪기도 했으나, 늘 당당하게 소신껏 간관諫官의 일을 수행했다. 나중에는 민부상서民部尙書와 예문관제학藝文館提學까지 올라가게 된다. 평소 청렴하고 검소한 삶을 살았던 그는 당대의 선비였으며, 시랑국학교수侍郞國學敎授로 있을 때 『명심보감』을 엮어 가르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