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 여해汝諧다. 1545년에 태어나 22세에 무예를 배우기 시작했고, 32세에 무과시험에 합격했다. 능력이 출중해 세운 공이 많으나 청렴하고 강직한 성품 때문에 시기와 모함을 받아 파직당하고 복직하기를 반복했다. 47세에 전라 좌수사로 임명된 후 군비를 확충하고 거북선을 개발하는 등 왜적의 침략에 대비했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옥포해전, 적진포해전 등에서 잇따라 승리를 거두며 이듬해 삼도 수군통제사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왕명에 의해 1597년 한양으로 압송되어 옥살이를 하다 백의종군한다. 이후 이순신의 뒤를 이어 삼도 수군통제사가 된 원균의 부대가 왜군에 대패하자, 복직하여 수군을 정비하고 명량해전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1598년 노량해전에서 도주하는 적선을 추적하던 중 총탄에 맞아 54세의 나이로 전사했다.
1643년 인조에 의해 ‘충무忠武’의 시호를 받았고, 1795년 정조의 명령으로 유고 전집 『이충무공전서』가 발간되었다. 성웅聖雄이라 불리는 그의 삶은 지금까지도 수없이 복기되며, 우리 시대에도 적용될 수 있는 교훈을 남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