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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어린이 제10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심사평 09-01-05 16:58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10회를 맞이하며

 

 


아이들을 보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1900년대의 신소설에서 1910년대의 이광수 무정에 이르기까지 나타나는 공통된 이야기 구조가 있다. 청소년인 주인공이 이런저런 고난을 겪다가 외국인 선교사를 만나 신교육을 받고, 그를 통해 얻은 신지식으로 사회를 개혁하고 나라를 살리기 위한 계몽에 나선다는 것이다. 여기서 청소년은 새로운 지식의 수용주체로, 그 신지식의 힘으로 개인과 사회를 성공으로 이끌 희망의 담지자로 강조되고 있다.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도 마찬가지로 소년을 바다로 상징되는 새로운 근대문명, 신지식의 수용주체로 추켜세우고 있다.

아마도 우리 사회의 특이한 아동관과 성공이데올로기의 뿌리는 여기에 있을 것이다. 우리사회 아동관의 가장 큰 특징은 아이들을 거의 전적으로 지적 발달의 관점에서만 바라본다는 점이다. 서구 신지식의 수용주체로서 청소년의 개념이 정립이 되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우리 사회 아동관의 또 하나의 특징은 청소년기와 아동기를 엄격하게 구분한다는 점이다. 신지식의 수용주체로서 청소년 개념이 먼저 정립되고 신지식의 수용주체로서 중요도가 떨어지는 아동기의 개념이 뒤에 정립된 결과이다. 우리 사회 아동관의 세 번째 특징은 성공이데올로기와 결합되어 있다는 것이다. 서구 신지식의 수용주체인 청소년, 아동은 개인과 사회의 성공을 좌우하는 열쇠라고 보았으니까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다. 이와 같은 우리 사회의 아동관과 성공이데올로기는 우리 사회의 급속한 근대화의 주요한 동력으로 작용해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한 아동관과 성공이데올로기는 신소설기로부터 백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우리 아이들을 끔찍한 질곡에 몰아넣고 우리 사회의 진전을 가로막는 족쇄로 작용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편향적 아동관이 아이들을 얼마나 끔찍한 질곡으로 몰아넣고 있는가는 오늘날의 교육현실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서구 편향적 성공이데올로기가 얼마나 우리 사회의 발목을 잡고 있는가는 오늘날의 정치사회현실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이미 서구의 지식을 맹목적으로 수용해서 진전할 수 있는 단계를 지나 있다. 내적 성숙과 삶의 질 향상을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더 이상 진전할 수 없는 단계에 와 있는 것이다. 또한 지식기반사회로의 이행, 중국과 러시아의 부상 등의 변화는 우리에게 창조적 사고와 창조적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

오늘날의 교육현실, 정치사회현실을 보면서 자기반성 없이 그 잘못을 몇몇 정치인들에게만 돌리는 것은 유치한 일이다. 우리 사회 구성원의 대부분이 편향된 아동관과 성공이데올로기의 재생산에 기여해왔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현실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우리 아동·청소년문학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 아동·청소년문학의 대부분이 편향된 아동관과 성공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는 데 기여해왔다는 말을 자신 있게 반박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이제 아이들을 바라보는 관점의 일대 전환이 필요하다.

 

그동안 문학동네 어린이책은 지식편향과 성공이데올로기에 갇힌 아동관의 전환을 지향해왔다. 이것은 문학이 그 사회의 경계 안에 갇히지 않고 경계 밖을 바라보는 일을 그 본질로 한다는 점에서 우리 아동·청소년문학을 ‘문학’이란 이름에 걸맞게 가꾸어나가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은 세련미와 안정감보다는 좀 거칠어도 이제까지의 틀을 깨트리는 선이 굵은 작가를 발굴하려 애써왔다.

우리는 이제 그 연장선에서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을 ‘문학동네 어린이·청소년문학상’으로 확장하고자 한다. 대부분의 경우 ‘어린이문학상’과 ‘청소년문학상’을 분리 운영하고 있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상업적으로 유리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분리 운영이 지식편향 아동관을 제도화하여 고착시키는 측면도 있다고 본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청소년기와 아동기의 엄격한 분리가 지식편향 아동관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 분리를 깨트리고 아동기와 청소년기를 연속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린이문학상, 청소년문학상 제도가 고착된 사회적 통념이나 제도교육의 틀을 따라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거꾸로 아동기와 청소년기를 연속적으로 바라보는 제도의 운용을 통해 경직된 사회적 통념을 미세하게라도 흔들 필요가 있다고 본다.

 

 

김진경(문학동네 어린이책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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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예심평

 

10회째를 맞은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은 상의 연륜이 깊어갈수록 응모 작품의 수준과 깊이가 나날이 풍요로워지고 있다. 과거에는 ‘동화’란 단지 아이들에게 교훈을 주는 읽을거리, 소설보다 한 단계 낮은 수준의 서사물 또는 동물이나 사물이 말을 하면 되는 이야기쯤으로 생각하던 사람들이 많았지만 이런 잘못된 통념은 많이 깨어진 듯하다. 굉장히 다양한 장르와 독특한 형식의 실험 및 주제에 대한 접근을 만날 수 있어 반가웠다.

특히 최근 젊은 작가층에게서 볼 수 있는 동화에 대한 생각이 공모제에서도 반영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과거의 동화작가들이 동화를 ‘어린이에게 주는 문학’ 또는 ‘어린이를 위한 문학’이라고 생각했다면, 최근 신인작가들은 자기표현의 한 양식으로 동화 장르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동화관의 변화에 따라 동화의 소설화, 장편화 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으나 그 반작용으로 이른바 ‘저학년 동화’에 있어서는 눈에 띌 만한 작품을 쉬 찾기 어려워지고 있다. 이는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예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예심을 통과한 작품이 모두 고학년 이상을 대상으로 한 장편이었다.

다음번에는 불필요한 말들을 제거한, 말의 경제성을 최대한 생각하면서 반전의 미학과 새로운 깨달음을 던져주는 단편의 출현, 그리고 재기발랄하면서도 기존의 통념을 무너뜨리는 ‘저학년 동화’의 출현을 기대한다. 좀 거칠더라도 새로운 상상력을 받아 안으려는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은 흔히들 말하는 ‘공모제용 작품’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기꺼이 껴안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밝혀둔다.

예심 중 느낀 아쉬운 점도 많았는데, 그 가운데 몇 가지만 지적하고 싶다. 귀한 원고를 보내주신 분들에게 너무 쉽게 비판적 언사를 쓰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쓴 약이 몸에 약이 된다 생각하고 담담하게 읽어주시기 바란다.

첫째, 너무 손쉽게 동화에 접근하려는 게 아닌가 싶다. 자신만의 관점이나 발상 없이, 기존의 동화들이 수없이 되풀이해온 주제와 인물과 플롯을 그저 약간의 설정만 바꾸어서 답습하고 있다는 것이다. 리얼리즘 계열 작품의 대다수는 조손 가정의 불쌍한 아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었는데, 동정적 시선이나 뻔한 희망 제시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한 작품이 많았고, 판타지 계열 작품의 대다수는 단순한 선악구도에다, 요정이니 괴물이니 천사니 어디서 많이 들어본 존재들을 끌어다가 뻔한 이야기구조에 집어넣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했다.  

둘째, 서사의 구체성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작품들이 이 사건이 언제, 어디서, 누가 겪는 일인지조차 불분명하다는 말이다. 심지어 리얼리즘 동화의 경우조차 아이가 몇 살인지, 시대는 어떤지, 어떤 지역인 건지를 알 수 없는 작품이 태반이었다. 판타지 동화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그리는 판타지 세계가 어떤 곳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더불어 그 판타지 세계가 무얼 상징하는 것인지, 아이들이 거치는 통과의례적인 모험이 뭘 뜻하는 건지도 알 수 없었다. 그냥 현실에는 없는 존재를 다 데려다가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는 사건을 일으키는 게 판타지라고 생각하는 게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셋째, 개연성과 리얼리티의 부족이다. 최소한의 이야기가 되려면 앞뒤 이야기가 맞아떨어져야 되는데, 그렇지 않은 작품들이 너무 많았다. 또한 아이들의 심리를 너무 쉽게 재단해 버리거나 작가들의 유년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아이들의 일상을 그려내고 있었는데, 지금 세상은 너무나 많이 바뀌어 있다. 글을 쓰고 퇴고과정에서 한 문장 한 문장 주술관계가 어긋나는 것은 없는지 살펴보듯, 텍스트의 차원에서도 이런 주술관계가 제대로 조응하고 있는지 여러 번 살펴보기를 바란다. 리얼리티 확보를 위해서는 그냥 책상에 앉아 글을 쓰지 말고 실제 아이들의 삶을 직접 취재하거나 아이들을 깊이 있게 관찰하거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으면 한다.

이제 예심을 통과한 작품에 대한 짧은 평을 끝으로 예심평을 마치려 한다. 모두들 건필하시기를.

 

「먼 길」은 한센병을 앓았던 사람들이 사는 정착촌에 관한 이야기다. 우선 작가가 소재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다는 사실이 미더웠다. 한센병이 불치병이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환자들에 대해 불임시술을 한다든가, 강제수용을 한다든가, 집단적 린치를 가한다든가 하는 사실들이 요소요소에 적절하게 드러나 있다. 또한 그러한 사실들은 단순한 정보 차원에서 머무르지 않고 인물들의 구체적인 심리와 행동으로 실감나게 그려지고 있다. 이렇게 살아 있는 인물들과 구체성을 확보한 서사는 탄탄하고 흥미롭게 전개되며 설득력 있는 결말로 나아가고 있다. 아쉬운 점은, 정작 주인공인 슬비와 그 가족의 이야기가 제대로 그려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슬비는 관찰자와 같은 태도에 머무르게 되고 작품은 오밀조밀하게 엮여나가되 핵심이 되어주는 굵은 선이 빠져버린 듯하다. 더불어, 엄마가 감정이 격해진 나머지 슬비의 뺨을 때리는 장면은 문제의 소지가 있다. 마치 엄마의 폭력이 불가피한 것처럼, 심지어 꼭 필요한 가르침이라는 인상을 주고 있는데 이는 몹시 위험한 태도라 할 것이다. 또한 슬비의 선생님이 의정이를 혼냈다가 학교에서 강제로 전출당하는 사건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학부모가 객관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항의글을 교육청 홈페이지에 올렸다고 해서 교사가 전출당한다는 것은 현실성이 매우 떨어진다. 이런 사건들이 작품 전체의 신빙성을 떨어뜨리는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거짓말 학교」는 정부에서 비밀리에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가르치는 특수학교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다. 물론 그런 학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지만, 작가는 능숙한 솜씨로 거짓말 학교에 현실성을 부여한다. 거짓말 뉴스나 거짓말에 대한 역사적인 사례 그리고 교장의 연설 등, 거짓말이 승리하는 현대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가 거짓말 학교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가 되는 것이다. 또한 외딴 섬에 위치한 학교의 건물이나 구조, 교과목과 그 수업 내용, 거짓말 학교 학생들에 대한 특혜 역시 거짓말 학교를 정말로 믿게 만든다. 이렇게 실감을 확보하는 가운데 학교의 비밀스러운 음모를 파헤치는 네 아이들의 모험이 속도감 있는 구성과 깔끔한 문장으로 흥미롭게 전개된다.

아쉬운 점은 아이들이 음모를 파헤치는 과정이 단순하다는 것이다. 더구나 교장의 돌연한 자백으로 진실이 드러나는 것은 짜임새 있는 전체 서사의 결정적인 흠집이라 할 것이다. 또 한 가지, 현대 사회를 통렬하게 풍자하는 작품 전반의 주제가 결말에 이르러서는 아이들 개개인의 씁쓸한 자성으로 맺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구성과 주제 면에서의 이 두 가지 흠결로 인해, 힘 있는 목소리로 시작했던 이야기가 다소 김빠진 결말이 되고 말았다.

「첫서리가 내린 날」은 고대 부족공동체시대의 토템신앙을 배경으로 한 모험이야기이다. 안정감 있는 문장과 설득력 있는 이야기 전개가 돋보인다. 특히 시대적 배경이 고대임에도 서사를 재현하는 작가의 감각이 예민하여 곁에서 일어나는 일 같은 생동감이 느껴진다. 인간과 자연 사이의 약속에 대한 통찰의 깊이도 느껴진다. 미루의 성장 이야기로 읽으면 흥미진진하지만 정작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산의 생명’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이 독자들에게 얼마나 이해될까 하는 부분에서 우려가 있다. 자칫하면 흥겨운 서사가 포괄적인 주제에 눌릴 위험이 있으니 말이다.

「시룻번과 하늘시루」는 시루에 아이를 넣어버린 지게꾼과 그 시루 속에서 살아남아 듬직하게 자라난 시룻번이라는 아이의 이야기이다. 우리 옛이야기 느낌을 진부하지 않게 살리고 있으며, 정교하게 조직하여 독자의 시선을 놓치지 않는다. 하지만 ‘진정한 시루’라든가 ‘하늘시루의 마음’과 같은 설정에서 운명론이나 결정론으로 흐르는 경향이 감지되어 아쉽다. 독자들이 초월적 구조에 의존한 흔한 영웅담으로 읽지 않도록 더 팽팽한 의문과 갈등과 긴장을 주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솟대」는 제주 사투리를 구수하게 구사하면서 4.3항쟁의 숨은 역사를 재조명한 작품이다. 감칠맛 나는 사투리 묘사 부분은 인상적이다. 하지만 4.3항쟁과 무속을 연결하는 과정에서 작위성이 엿보여 아쉽다. 억울함을 푸는 무속인이 제주에도 필요하다는 식의 결말 부분은 웅장한 얼개를 서둘러 맺는 것 같아 독자로서 서운하다. 영후의 로맨스와 병행되는 노년의 로맨스 부분도 어색한 대목이 있다. 아이들이 즐겁게 몰입할 수 있는 에피소드가 부족한 것도 단점이다.

「비밀노트」는 아빠의 비밀노트를 훔쳐보면서 아빠의 첫사랑에 대해 알게 되는 이야기이다. 나비 채집이라는 흔하다면 흔한 소재를 정밀하게 다룬 노력이 돋보인다. 교통사고로 아빠를 잃은 미주가 말을 잃고 주인공 태준이와 우정을 쌓아가면서 말을 되찾는 과정에서 너무 많은 우연이 필연처럼 그려진다. 작품의 길이나 구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우연을 등장시킬 수밖에 없다 해도 독자 입장에서 모든 것이 술술 연결된다고 느끼게 된다면 문제가 있다. 하지만 이야기 자체는 계속 손을 가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콩알만 한 비밀」은 미하엘 엔데의 『모모』의 한 구절로 시작되는 도입 부분이 아주 매력적인 작품이다. 외계에서 온 생명의 원천인 ‘코랑’을 둘러싸고 추리적 기법을 사용한 이 작품은 그저 평범한 마을 사람처럼 보이는 이들을 코랑을 지키는 비밀요원들로 설정한 거라든가, 코랑과 주인공이 나누는 대화가 매우 시적이고 매력적이지만 결말 부분에 가서 개연성이 현저히 떨어지고 뒷심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게 했다. 특히 코랑을 빼앗으려는 무리들로부터 주인공과 코랑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 탈출하는 장면은 이 작품에서 가장 서스펜스와 스릴이 넘쳐야 하는 장면인데 너무 쉽게 처리함으로써 서사적 긴장을 잃은 점이 가장 아쉬웠다.

「범의 귀-열네 살, 하리의 비밀」은 엄마와 아이가 동시에 갖고 있는 도벽증과 막 중학생이 된 여자 아이의 심리와 학교생활, 그리고 인물 사이에 나누는 대화와 생각이 매우 생생하게 살아 있는 점이 돋보인다. 그간 ‘착한 동화 콤플렉스’에 빠져 아이들의 거칠지만 생생한 언어보다 ‘교육적으로 순화된’ 언어를 써왔던 우리 동화의 암묵적 금기를 허물고 아이들의 육성을 담으려고 한 점은 높이 사고 싶다. 하지만 장을 구분해서 써야 서사의 흐름이 자연스러울 수 있다는 점, 아무리 아이들의 생생한 육성을 담으려고 하더라도 ‘표현의 순화’가 아닌 거친 ‘문장의 다듬기’는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해주었으면 한다. 이 작품 역시 결말 부분이 가장 아쉬웠다. ‘큰 어머니의 죽음’ 뒤 갑작스런 아빠와 하리의 심경 변화는 작위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예심 심사위원 | 김지은(동화작가, 어린이문학 평론가) 유영진(어린이문학 평론가) 이현(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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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본심평

 

우리나라 어린이문학 작품을 읽다 보면 작품을 만드는 것과 창작의 경계가 모호하게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작품을 만드는 것의 극단적인 형태를 찾는다면 무협지 공장 서사들의 글쓰기를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무협지 공장의 서사들에게는 무협지 이야기 골격 유형이 이십여 가지 주어진다. 서사들은 그중 한 유형을 선택해서 시대 배경, 지리적 배경, 인물 등의 세부사항을 바꾸어 하나의 무협지 작품을 써낸다. 그러니까 그 무협지 공장에서 수천의 무협지 작품이 생산된다 하더라도 그 작품들은 엄밀히 말하면 이십여 가지의 상품 중 어느 하나에 속할 수밖에 없다.

구조주의자들은 개인의 자율성이니 독창성이니 하는 것을 환상에 가까운 것으로 본다. 한 개인은 그가 속한 문화구조의 산물이며 한 개인의 사고 역시 문화구조의 산물로서 거의 모두 빌려온 생각을 조립한 것일 뿐이다. 이러한 생각을 극단으로 밀고 나가면 작가는 문화구조라는 무협지 공장의 글 쓰는 기술자에 불과하게 되고 창작은 부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위와 같은 구조주의적 관점은 특히 문학에 대해서는 90프로 이상의 진실을 담고 있다. 문학의 매체인 언어 자체가 이미 수많은 세월 동안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에 의해 형성되어온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문학작품을 쓰는 사람은 그 사회의 이러저러한 문학적 관습 위에 서 작품을 쓰기 때문이기도 하다. 엄밀히 말하자면 문학작품을 쓰는 행위의 90프로 이상이 무수한 남의 생각을 빌려서 재조립하는 행위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구조주의적 관점이 문학창작을 100프로 다 설명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작품을 만드는 것과 창작을 구분 짓는 것은 작가로부터 흘러나온 1프로 미만의 어떤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작품을 온전한 무에서 유를 창조해낸 것처럼 내세우는 낭만적 태도가 작가의 유치한 치기라면, 문학작품의 100프로가 온전히 남의 생각을 재조립한 것이라고 폄하하는 것은 인간의 창의성을 완전히 부정하는 자기학대라 할 수 있다.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은 예비작가들이 보여주는 이 1프로 미만의 것을 존중하고 평가해왔다. 문학의 상업화가 급속도로 진전되고, 문예창작과 등의 제도가 확대되면서 ‘문화구조라는 무협지 공장의 세련된 기술자’들은 많아졌지만 작가를 창작자이게 하는 1프로 미만의 어떤 것을 보여주는 사람은 여전히 귀한 것 같다.

 

본심에 올라온 작품은 모두 여덟 편이었다. 그중 「비밀노트」는 문학이 뭔가 멋진 이야기라는 막연한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아 일찍 제외시켰다. 「콩알만 한 비밀」은 도입부에서는 SF로서 그럴듯한 틀을 보여주는 것 같았는데 갈등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단계부터는 쓰다 만 것처럼 흐지부지되어 제외했다. 「솟대」는 제주 4.3항쟁을 다루고 있다. 제주도 무당인 할머니를 모시러 간 손자가 4.3항쟁 시기 썼던 할머니의 일기를 훔쳐보는 액자소설 형태이다. 그런데 관찰자인 초등학생 손자가 살아 있는 인물이 아니라 작가가 이야기를 진행시키기 위해 만든 꼭두각시 같았다. 또 할머니가 소설처럼 자세하게 4.3항쟁 당시의 일기를 써놓았다는 것도 그럴듯하지가 않아 제외했다. 「범의 귀」는 도벽을 가진 여자 아이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주인공 아이에게 도둑질을 강요하는 도벽을 가진 친구, 어린 아들을 잃은 심리적 충격으로 도벽에 빠진 어머니를 병렬시키면서 이야기를 끌어가는 솜씨가 돋보였다. 문장도 안정되어 있다. 그러나 잘 유지되어왔던 긴장감이 결말 부분에서 무너지면서 허탈해졌다. 아무래도 작가가 동화는 착한 결말에 이르러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따라간 것 같다. 갑자기 등장한 큰어머니의 죽음으로 엄마와 아버지, 주인공 아이에게 심경변화가 일어나고 화해에 이른다는 게 전혀 설득력이 없었다. 「먼 길」은 한센병을 앓았던 부모를 둔 여자 아이의 이야기이다. 문장, 이야기 구성, 인물설정 등 두루 무난한 작품이다. 그러나 한센병에 대한 편견과 차별에 대한 구체적 이야기를 통해 구분 짓고 차별하려는 인간의 속성, 인간사회의 보편적 문제를 환기하는 데까지 밀고나가는 치열함이 보이지 않았다. 결국 이야기가 소재에 갇혀 작가의 역량에 대한 확신을 어렵게 했다. 「시룻번과 하늘시루」는 옛이야기 모티프를 바탕으로 능란한 솜씨를 발휘한 동화이다. 함께 나누는 공동체 정신을 상징하는 하늘시루를 개인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훔침으로써 여러 마을에 재앙이 일어난다. 이 재앙을 시룻번이 하늘이 부여한 운명에 따라 해결하고 하늘시루를 제자리에 돌려놓는 이야기이다. 이 작품의 문제는 옛이야기의 인물과 옛이야기 모티프를 바탕으로 한 창작동화의 인물을 구분하지 못했다는 점에 있다. 옛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정해진 운명을 따라간다는 점에서 수동적이고, 내적 성장의 과정이 없다는 점에서 평면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옛이야기 모티프를 활용한 창작동화는 그것이 창작동화인 한 근대적 인간의 모습이 투영되기 마련이다. 작가의 문제의식이 주인공에게 부여되기도 하고, 주인공이 자기운명을 개척하며 내적 성장 과정을 보여주기도 한다. 우리 어린이문학은 이미 그런 작품들을 여러 편 가지고 있다. 시룻번은 하늘이 부여한 운명을 그대로 따라가는 수동적 인물이며, 내적 성장 과정을 보여주지 않는 평면적 인물이다. 옛이야기의 주인공들과 구분이 되지 않는다. 지금 시점에서 우리 어린이문학에 이런 작품이 꼭 보태져야 하는 이유를 발견하기 어렵다.

결국 논의는 「첫서리가 내린 날」과 「거짓말 학교」로 모아졌다.

「첫서리가 내린 날」은 곰 보내기 제의, 단군신화 모티프 등을 재구성하여 문명화된 인간과 자연의 갈등, 화해를 다룬 작품이다. 인간과 자연의 갈등, 화해라는 현재적이면서도 근원적 주제에 도전하는 작가의 치열함도 돋보였고, 그 주제의식을 인류문명이 본격적으로 출발하는 청동기시대를 배경으로 그 시대 신화의 재구성을 통해 형상화해가려는 시도도 좋아보였다. 구성력이나 문장력, 인물을 형상화하는 능력도 무난했다. 작품을 통해 엿보이는 작가의 역량에 비추어보면 대상을 줄 만하다는 데 이견이 없었다. 그러나 신화의 해석에 문제가 있어 큰 폭의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점이 걸림돌이 되었다. 논란 끝에 우수상으로 결정하였다.

「거짓말 학교」는 가까운 미래를 시간적 배경으로 하는 SF소설 형태를 띠고 있다. 하지만 본격적 SF소설이라기보다는 근미래 SF의 틀을 현실에 대한 강력한 알레고리로 작동시키고 있는 좀 독특한 작품이다. 거짓말 학교는 창조적이고 유익한 거짓말이 뛰어난 글로벌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비밀리에 운영하는 특성화 학교이다. 이 학교에 이런저런 사연을 안고 모여든 영재 아이들이 양심과 인간성을 말살하는 경쟁 시스템 속에서 길항하며 우정을 쌓아나간다. 한편 교장은 완벽한 거짓말을 할 수 있게 하는 기계를 개발하기 위해 비밀리에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계속한다. 이 실험이 부작용을 일으키고 그것을 파헤치려는 아이들의 활약이 줄거리를 끌어나가고 있다. 디테일에서 취약한 점들이 지적되기도 하였으나 어린이·청소년문학에서 보기 힘든 뚜렷한 작가의 철학, 선이 굵은 구성, 전복적 상상력을 높이 사서 대상으로 결정하였다. 더욱 노력해주기 바란다.

 

 
본심 심사위원 | 김진경(시인, 동화작가) 송언(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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