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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 제1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심사평 11-01-11 11:24

제1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심사평

 

 

*심사 총평

 

아버지가 사라진 시대, 유동하는 청소년의 정체성

 

심사위원 : 김진경(시인, 동화작가)

 

 

청소년들에게 미래는 있는가?

 

60-70년 단위의 경제순환을 설명하는 ‘콘트라티예프 주기설’에 따르면 지금은 1930년대 세계대공황 이후 다시 찾아온 세계대공황 주기에 해당한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경제는 콘트라티예프 주기상 경제호황의 정점이었던 80년대를 기점으로 하강국면으로 접어드는 게 정상이었다. 그러나 자본은 이를 피하려 ‘저임금 국가로의 자유로운 자본 이동’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국가별 금융체계를 실시간대로 통합하는 세계 금융체제’를 구축했다. 이것이 바로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이다.

저임금 국가로 공장들이 빠져나가면 일자리는 급격히 줄고 기존의 일자리도 비정규직이 주류를 이루게 된다. 게다가 각종 사회보장이 약화되고 정규직마저 조기퇴직이 대세가 되어 생산과 더불어 경제의 주요 축인 소비가 줄어드는 문제가 발생한다. 소비 부족 문제를 자본은 어떻게 해결했을까? 자본은 미래 소비를 당겨쓰게 하는 방식으로 대처했다. 주택모기지론 같은 것이 그것이다. 20-30년 상환 조건의 빚으로 주택을 구입하게 하고 그로 인해 발생한 부동산 붐이 계속해서 주택을 담보로 빚을 내 소비를 하게 하는 구조이다. 하지만 전체 인구가 감소하는 속에서는 미래소비를 당겨쓰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자, 그러면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위에서 살펴본 사회 경제적 상황은 지금의 청소년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전 세대들이 자기 몫까지 다 당겨서 써버렸기 때문에 지금의 청소년들에겐 미래가 없는 게 아닐까?

열심히 노력해도 안정적 직장을 가질 수 있다는 보장은 이제 어디에도 없는 시대이다. 과거에는 경쟁에서 한번 탈락해도 다시 일자리를 얻을 수 있어 실업자를 산업 예비군이라 했지만 지금은 한번 탈락하면 재진입이 불가능해 잉여인간으로 전락한다. 3000조에 가까운 한국의 총부채는 지금의 청소년들이 짊어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이미 저출산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한국의 청소년 세대는 노인 부양의 엄청난 사회적 부담을 질 수밖에 없다. 또한 엄청난 규모로 지어지는 아파트는 가격이 계속 오르지 않는다면 재건축이 불가능해 30-40년 후 결국 처치 곤란한 쓰레기가 될 뿐이다. 이 쓰레기들을 처리해야 할 주체도 바로 지금의 청소년 세대이다.

이런 상황에서 청소년들에게 전 세대가 동일화해 갈 모델로서의 상징적 아버지를 만들어 줄 수 있을까?

 

 

청소년의 유동하는 정체성과 학교교육의 위기

 

지금 시대의 아버지들 대다수는 실업자이거나 비정규직을 전전하고, 번듯한 직장이 있었다 해도 조기퇴직해 빈둥거리는 무력한 모습인 경우가 많다. 국가는 어떠한가? 시장경쟁에서 탈락한 구성원들을 끌어안아 시장으로 재진입시키는 역할을 했던 국가는 신자유주의 이후 오히려 사회에 불필요한 자를 배제하는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다. 복지국가 지향의 ‘빅 브라더’ 또는 ‘빅 파더’는 신자유주의와 함께 사라졌다.

이제까지 말한 상황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보면 오늘날의 청소년들은 이미 동일화의 모델로서 상징적 아버지가 사라진 시대를 살기 시작했다. 청소년들은 동일화 모델을 잃어버린 채 안정적인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하고 자신의 여러 정체성 사이를 그때그때 오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소비사회라는 환경도 청소년의 정체성이 유동하는 이유다. 소비사회는 빚으로 사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의 다른 측면이다. 주택 담보 대출, 신용카드, 분할상환과 같은 외상, 즉 빚이 뒷받침해주지 않으면 실시간으로 욕구를 채우는 소비사회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소비사회가 청소년의 유동적인 정체성의 원인일까? 생물학적인 필요인 욕구는 인간과 동물에게 공히 있지만, 욕망은 오직 인간에게만 있다. 우유를 배불리 먹었어도 끊임없이 칭얼대는 아이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어머니의 관심과 사랑이다. 아이는 어머니가 나를 사랑하기를, 나를 욕망하기를 바란다. 어머니라는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이다. 따라서 욕망이란 타자에 대한, 타자의 욕망에 대한 욕망이다. 인간은 궁극적으로 어머니든 애인이든 세계든 타자와의 일체감을 원한다. 하지만 그것은 영원히 채워질 수 없기에 인간은 그것을 채워줄 것처럼 여겨지는 대체물들을 끊임없이 찾아다닌다. 욕망은 인간의 삶을 추동하는 원동력이다. 또한 ’욕망을 갖는다.’는 말은 ‘정체성을 갖는다.’는 말과 매우 비슷한 뜻이다. 아버지를 모델로 해서 정체성을 세워가는 한 아들을 생각해 보자. 아버지가 욕망하는 것을 욕망하고 아버지가 나를 인정해 주기를, 아버지가 나를 욕망하기를 욕망한다는 점에서 아버지와 같아지고 싶다는 것은 아버지라는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24시간 편의점처럼 잘 정리되어 있는 소비사회는 비유적으로 말하면 엄마의 자궁 속과 유사하다. 어떠한 욕구라도 실시간으로 채워주기 때문에 결여를 느낄 틈이 없다. 그러나 인간은 출생과 동시에 결여를 경험하며, 반복되는 결여의 경험에서 비롯된 욕망은 인간을 인간이게 한다. 결여가 없으면 타자와의 관계도 형성되기 어렵고 당연히 타자를 욕망하는,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일도 잘 발생하지 않는다. 그래서 소비사회는 인간이 동물화하는 사회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정체성 형성이 쉽지 않다. 여기에 엄마의 과보호까지 겹쳐지면 그야말로 자궁 속과 비슷한 환경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아이의 정체성은 극단적으로 유동화한다. 이러한 극단적인 정체성의 유동화는 엄마의 품 안에 있을 때는 잘 발견되지 않고, 유치원이나 학교에 들어가면 발견되기에 이른다.

아이의 입장에서 보면 유치원이나 학교에 간다는 것은 갑자기 이상하게 변해버린 편의점에 들어간 것과 같다. 이 이상한 편의점은 자신의 욕구를 즉각 해결해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진열이 너무 엉망이어서 필요한 것을 찾을 수조차 없다. 게다가 끊임없이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를 요구해온다. 아이는 자신에게 우호적이지만은 않은 타자들로 이루어진 이상한 편의점에서 어떻게 하면 이걸 고칠 수 있지 하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이것저것을 마구 비틀어 보기도 하고 흔들어 보기도 한다.

유치원이나 학교는 사회의 변화가 정체성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에 대한 이해가 없기 때문에 이런 아이들을 놓고 당혹스러워 할 수밖에 없다. 부모는 부모대로 자신의 아이가 그렇다는 걸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다. 이런 경우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가장 쉬운 해답은 생리적 결함으로 인한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라는 의사의 진단이다. 이 쉬운 가짜 해답에 의해 지금의 아이들에게 보편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정체성의 유동화 문제는 가려져 버린다.

 

청소년의 유동적 정체성은 어른들에겐 불만 수준이겠지만 청소년 자신에겐 심각한 불안이자 고통이고 위기이다. 청소년들은 이러한 심각한 불안으로부터 벗어나고자 어느 순간 사소한 것으로 정체성을 고착시키며 거기에서 벗어나는 동료를 공격하고 괴롭히는데 이것이 왕따이다. 이러한 폭력적 행위가 정체성의 위기를 해결해 줄 리 없다. 또한 청소년들은 밖에서 찾을 수 없는 동일화의 모델을 자기 자신에게서 찾는 나르시시즘적 시도를 하는데 살을 빼기 위한 거식증, 피어싱, 문신, 성형에의 집착 같은 것들이다. 이런 몸에 대한 집착 역시 정체성의 위기와 그로 인한 불안을 해소시켜 줄 수 없다. 위기와 불안을 넘어서고자 하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작은 몸부림들일 뿐이다.

 

앞으로 우리는 세계적으로 위기에 몰린 국민국가들이 세계 권력화한 금융자본과 충돌하며 저항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될 것이다. 90년대 말 한국에 위기가 왔을 때는 한국사회의 강력한 내적 통합력이 그 위기를 극복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 그러나 부채와 부동산 거품 문제가 어느 나라 못지않게 심각한 우리나라에 다시 한 번 위기가 온다면 한국사회가 그와 같은 강력한 내적 통합력을 다시 보여줄 수 있을까? 나는 부정적이라고 본다. 한국의 학교교육이 우리 사회의 내적 통합력의 기초인 시민적 국민적 정체성을 부여하는 데 실패하고 있는 모습이 눈앞에 보이기 때문이다.

 

 

문제적일 수 있는데 문제적이지 않다

 

지금의 청소년은 어려운 전환의 시기에 성장하여 무거운 짐을 지고 새로운 흐름을 살아가야 할 문제적 세대이다. 그리고 지금도 그 모든 모순이 응축된 문제적 상황에 놓여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시기는 청소년문학이 전체 문학 속에서 대단히 문제적일 수 있는 시기이다. 그런데 현재까지의 청소년소설들은 별로 문제적이지 않다. ‘문제적일 수 있는데 문제적이지 않다’는 것이 현재까지의 청소년문학에 대한 나의 인상이다. 그러한 나의 인상을 깨트릴 수 있는 문제작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응모작들을 읽었다. 응모작도 100편이 넘게 들어와 많기도 했지만 질적 수준이 높은 작품들도 많아 심사에 만만치 않은 공력이 들었다.

 

본심에 올라온 아홉 편의 작품들 중 「영웅놀이」 「리틀 발렌타인」 「가위」 「영과 야멘」은 쉽게 걸러냈다. 「영웅놀이」 「리틀 발렌타인」은 청소년 주인공들의 삶에 깊이 접근하지 못하고 어른의 시각이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이러한 한계가 작품의 결함과 한계로도 드러났다. 「가위」는 현실과 과거 환상계를 오가는 구성의 작품인데 환상계로 진입하고 나오는 과정이 너무 작위적이어서 큰 결함으로 느껴졌다. 「영과 야멘」은 주제의식이 만만치 않은 SF인데 문학적으로 너무 거칠고 인터넷 소설의 냄새가 강해 주제의식에 대한 신뢰를 갖지 못하게 했다.

 

심사위원들 사이에 잠시 이야기가 오갔던 작품 중 「괴물, 한쪽 눈을 뜨다」는 문장력이나 강한 긴장감을 일으키는 구성력, 주제를 끝까지 장악해 밀고 나가는 힘 등 만만치 않은 장점을 가진 작품이었다. 하지만 왕따를 시키는 주동적 아이들을 조폭과 관련된 아이들로 쉽게 처리한 부분 등이 너무 안이해 보였고, 어른의 시각으로 개입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 결함으로 느껴졌다.

「날짜변경선」은 문장이나 구성 등에서 문학적 훈련을 많이 한 잘 쓰는 작가라는 인상을 주었는데 중심 주제를 놓치고 부차적 주제에 매달리다 끝났다는 느낌이 들어 아쉬웠다. 주인공의 설정이나 이야기의 구조로 볼 때 즐거워서가 아니라 왕따 등으로 입은 내적 상처로부터 오는 절박한 요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글을 쓰는 윤희와 글쓰기를 좋아하고 즐거워하지만 글을 쓰도록 추동하는 내적 절박함이 없어 윤희에 대해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우진 사이의 이야기가 중심에 놓여야 했을 것 같다. 그것을 통해 글 쓰는 행위, 글 쓰는 자에 대한 물음을 치열하게 밀고 나갔다면 좋은 작품이 되었을 것 같다.

「로보와 허공의 도둑들」은 발랄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판타지 소설이다. 재능 있고 미인인 언니를 둔 로보가 집과 학교에서 받는 상처를 극복해가는 성장담을 판타지 형식으로 산뜻하게 처리하고 있어 깔끔하다. 하지만 수상작으로 하기엔 무게가 좀 부족해보였다.

 

논의는 「18살에게 물어서는 안 되는 10가지」와 「불량 가족 레시피」로 모아졌다.

「18살에게 물어서는 안 되는 10가지」는 18세 여고생의 일상을 잔잔하고 섬세하게 그린 작품이다. 문장도 좋고 문학적 표현도 빛나는 부분이 적지 않다. 중산층 평범한 여고생의 경험과 시각도 잘 살아 있다.

하지만 얼음이 살짝 얼어 있는 심연 위를 스케이트를 타고 날렵하게 지나간 듯한 느낌이다. 얼음의 표면은 날렵하고 섬세하게 잘 그렸는데 막상 심연을 들여다보지는 못한 느낌이다. 성인문학으로 말하자면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천변풍경」 같은 류인데 그런 류가 앞에서 말한 문제적 세대로서의 청소년이 놓여 있는 문제적 상황과 관련하여 의미 있는 흐름을 만들어낼 힘이 있는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었다.

 

결국 잠시 논란을 벌인 끝에 「불량 가족 레시피」가 수상작으로 결정되었다.

「불량 가족 레시피」는 경제적으로 몰락하며 가족이 해체되어 가고 있는 하층 가정의 여고생이 그로 인해 겪는 정체성의 위기를 그리고 있는 작품인데 중심을 이루고 있는 가족서사가 리얼하고 힘이 있다. 또 코스튬플레이가 이야기의 보조 축을 형성하고 있는데 만화나 영화 등에 등장하는 여러 인격을 의상을 통해 연출하는 코스튬플레이가 청소년 등장인물들의 유동하는 정체성을 암시하는 것 같아 재미있다. 알게 모르게 계급 계층적 경계가 그어지는 청소년들의 교우관계도 날카롭게 포착하는 등 청소년들의 삶에 깊이 접근하고 있다. 인물 설정도 개성적이고 적절하여 작품의 재미를 더한다.

이 작품은 위와 같은 작품 자체로서 갖는 강점 이외에도 청소년과 학교교육을 바라보는 낡은 매트릭스를 가볍게 넘어서고 있다는 미덕을 가지고 있다. 청소년과 학교교육을 바라보는 인식의 매트릭스 중 가장 흔한 것은 과열 입시경쟁 문제가 청소년, 학교교육 문제의 거의 전부인 것처럼 보는 것이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문제는 과열 입시경쟁을 사소한 것으로 만들 정도로 깊이 곪아 있다.

또 하나의 매트릭스는 사회의 경계가 여전히 사회의 밖을 향해 그어져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그 밖을 향해 그어진 경계 부근에 있는 일탈 청소년, 도시 빈민지역 청소년, 실업계 청소년, 장애인, 다문화 가정 청소년 이야기를 하면 무언가 의미 있는 것이 된다고 착각하고 그 동정심에 기반한 가짜 결말로 값싼 희망을 만들어내려 하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아버지가 사라진 시대’의 특성은 경계가 사회의 밖을 향해 그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사회의 내부로 들어와 무한증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영화 에일리언처럼 에일리언은 우주선 밖에서 쳐들어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주선 안으로, 이미 내 안으로 들어와 있어서 어느 순간 내 가슴을 빠개고 내 앞에 나타날지 모르는 것이다. 주변성이 주변에 있는 게 아니라 사회의 중심으로, 나의 내면으로 들어와 나를 분열시키고 견딜 수 없이 불안하게 하고 있다. 문제는 중산층 가정의 청소년을 다루느냐 다문화 가정 청소년을 다루느냐가 아니라 누구를 다루든 경계가 사회의 중심부로 사회구성원의 내면으로까지 들어와 있는 걸 보는 것이고 그게 어떤 괴물을 사회와 우리의 내면에 깨어나게 하고 있으며, 왜 그렇게 되었는가를 포착하는 것이다.

매트릭스에 갇혀 있는 시각은 진실을 보지 못하게 가림으로써 매트릭스를 강화한다. 오늘날의 청소년에게 보편적으로 나타나고, 원인이 다른 데 있는 정체성의 유동화를 생리적 결함에서 비롯되는 ADHD로 진단하여 결과적으로 진실을 보지 못하게 가리는 의사처럼. 나는 가장 먼저 오늘날의 청소년소설 작가들이 인식의 매트릭스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본다.

 

「불량 가족 레시피」도 결함이 없는 작품은 아니었다. 문장이 군데군데 거칠어서 좀 더 치열한 문학적 단련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고, 작품의 결말 부분에서 주인공이 갑자기 너무 착해지는 거라든지 코스튬플레이에 나타난 딸의 자살을 목격한 아주머니가 너무 쉽게 그 충격에서 벗어난 설정이 어색하고 안이해 보여 이 작가가 자기 작품이 도달한 지점과 관련하여 자각적이지 못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점에서도 더 치열한 노력을 바란다.

하지만 이 작품이 도달한 지점은 전반적으로 매트릭스를 벗어나고 있지 못한 청소년문학에 충격을 줄 만한 것이고, 청소년문학에 새로운 흐름을 촉발하는 힘이 이 작품에 있다고 보았다. 그 장점이 몇몇 결함을 덮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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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심사위원 : 안도현(시인)

 

 

청소년소설이 비로소 하나의 안정된 양식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듯하다. 역사나 고전, 금기시 된 소재를 끌어들이는 등 소재가 다양해지고 있는가 하면 우화와 판타지를 적극 활용하는 서술 방식도 여럿 보인다. 오랜 문학적 수련을 짐작하게 하는 짱짱한 작품도 적지 않다. 기존에 활동 중인 작가들이 의욕적으로 이 대열에 합류했다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파천황의 세계를 펼쳐 보이는 작품이 확 눈에 들어오는 건 아니다. 그러니까 청소년소설에 대한 투자자는 상당히 늘었지만 대주주는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태라고 할 수 있겠다. 본심에 오른 9편을 읽으면서 그야말로 청소년소설의 고전이 될 만한 ‘큰 물건’을 만나고 싶었다.

「가위」는 현재와 과거의 이야기를 교차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그 넘나듦이 자연스럽지 못해 껄끄럽고 어색하다. 이것은 개성 있는 인물을 만들지 못한 것과 함께 이 작품의 치명적인 약점.

「영과 야멘」은 재미있게 읽으라고 쓴 글인데 독자의 입장에서 재미가 없다. 여러 설정들이 억지스럽고 관계의 통일성이 허약하기 때문이다. 선택과 집중이 아쉽다.

「리틀 발렌타인」은 문장이 단정하고 깔끔한 인상이다. 다만 곳곳에서 인생을 어설프게 정의하려는 태도는 너무나 소설적이다. 어른이 열여덟 살 화자의 입을 빌려 멋스럽게 말하는 작위성을 넘어서야 할 것이다.

어른의 그림자가 비친다는 점에서는 「영웅놀이」도 마찬가지다. 이 소설은 나약한 인간에 대한 애정을 잔잔하게 그려가고 있지만, 때로 삶에서 가질 법한 문제의식을 아포리즘으로 해결하려는 자세는 불만스럽다. 그래서 공허한 결말에 이르게 된 것은 아닌지?

「날짜변경선」과 「18살에게 물어서는 안 되는 10가지」는 매끄럽게 잘 쓴 소설이다. 그러나 이게 이 작품의 한계이기도 하다. 여고생의 소소한 일상적 에피소드와 문학 소년의 고민이 이야기의 주 내용인데 중심사건이 흐릿하고 인물들이 자기 숨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작가가 주인공보다 지나치게 앞서 있다.

「괴물, 한쪽 눈을 뜨다」는 왕따를 소재로 한 전형적인 청소년소설이다. 결말 부분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목소리가 미약해 흐지부지 마무리를 한 듯하다. 좀 더 후련하고 통쾌한, 다른 출구는 없었을까?

나는 「로보와 허공의 도둑들」과 「불량 가족 레시피」 두 작품을 놓고 오래 저울질을 했다. 「로보와 허공의 도둑들」은 ‘허공’ ‘미시적 세계’ ‘투시’ 등 흥미 있는 설정을 통해 판타지 요소를 적절하게 구사한 점이 돋보였다. 어휘력과 사건 전개 능력이 대단한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직유를 남발하는 문장은 허세로 보였다.

「불량 가족 레시피」를 읽으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작가의 입심과 속도전 앞에 압도당했다. 이렇게 술술 읽히는 작품을 만나기란 흔치 않은 일이다. 흥미진진, 이라는 상투어를 써서라도 작가의 어깨를 두드려주고 싶다. 인물들의 갈등 관계가 매우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고 그것을 해소하는 기지도 신선하다. 마무리가 약간 미진하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즐겁게 읽힌다는 점만으로도 슬쩍 눈을 감아줄 만하다. 부디 큰 작가로 우뚝 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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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심사위원 : 유영진(어린이문학평론가)

 

 

이번 심사를 통해 우리 청소년문학이 다양하게 변모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본심에 오른 작품 중 여러 편이 수상 여부와 상관없이 바로 출간해도 괜찮을 만큼 수준이 높았다. 문학동네 청소년문학상의 제정은 청소년소설의 미학적 기율을 확정하는 데 있어 의미 있는 일이다. 비평가나 연구자가 청소년문학은 이러이러한 장르라고 선언한들 뛰어난 작품 하나가 갖는 파괴력에는 비할 바가 못 된다.

예심을 통과한 9편의 작품 중에서 눈에 띈 것은 「18살에게 물어서는 안 되는 10가지」 「괴물, 한쪽 눈을 뜨다」 「로보와 허공의 도둑들」 「날짜변경선」 「불량 가족 레시피」였다.

「18살에게 물어서는 안 되는 10가지」는 열 가지 에피소드로 구성된 작품이다. 안정된 문장과 10대의 일상과 마음을 꿰뚫고 있는 다양한 에피소드로 인해 이 작품은 대상작과 더불어 심사위원들의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왕따 현상’의 임상학적 보고서라 할 만한 7장은 서술의 긴장이 가장 높았다. 하지만 이 작품은 서사 전체를 일관되게 잡아당기는 구심점을 찾기 어려웠다. 여러 사건을 통해 10대의 삶과 고민, 그리고 그들의 사유방식을 보여준 것까지는 좋으나 이런 에피소드가 백화점식으로 나열된 점이 아쉬웠으며, 후반부에 비해 전반부의 긴장감이 떨어지는 점이 또 다른 아쉬움이었다.

「괴물, 한쪽 눈을 뜨다」는 자폐 혹은 지적 장애로 의심되는 장애를 가진 왕따 아이와 정글 같은 교실 안에서 자신의 생존을 도모해야 하는 평범한 반장 아이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장애를 가진 아이는 교실을 ‘동물의 왕국’으로 인식한다. 이 인식의 틀은 교실 풍경을 서술하는 데 있어 매우 유용하다. 이 세계에서 사춘기를 통과하는 아이들은 저마다 자기 안의 괴물을 길들여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자폐아는 자폐아대로 괴물이 될 수 있고, 타자를 괴롭히지 않으면서 동시에 타자의 아픔에 눈 감으며 자기 생존을 도모해야 할 반장에게도 괴물은 존재한다. 또한 이를 통제하고 조정하는 교사에게도 괴물은 존재한다. 이 이중의 감옥, 이중의 과제 속에서 아이들은 성장의 과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이 섬세한 설정 속에서 어설프게 마무리 된 결말은 못내 아쉬움을 준다. 작가가 발견한 세계에 대해 완벽한 처방을 내릴 수는 없겠지만 과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는 독자의 기대에 어느 정도는 부응해야 할 최소한의 의무는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교사의 목소리가 툭 튀어나온 점이 매우 거슬렸다. 이 작품은 두 아이의 교차 서술 형태로 진행된다. 그러다 중간쯤 교사가 화자가 되어 서술되는 장이 있는데 이 장이 왜 배치되었는지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는 자칫 어른의 변명으로만 읽힐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 주었으면 한다.

「로보와 허공의 도둑들」은 한마디로 장르를 짚어내기 힘든, 그렇기에 더욱 매력적인 작품이다. 가족에게서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해 지독한 외로움 속에 살아가던 중학생 아이가 환상계에 설 된 도둑 학교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며 심리적 성취를 쌓아가는 이 서사를 통해 한국청소년문학에서 판타지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주관과 객관이 명확히 분리되지 않는 동화 장르에서는 판타지의 진전이 있었으나 리얼리즘의 세계에 바싹 다가서있는 청소년소설에서 판타지 실험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물론 이 작품을 본격 판타지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작품에 일관되게 흐르는 마술적 상상력은 독자를 책의 세계로 잡아당기기에 충분하리라 생각되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은 정교한 묘사 문장이었다. 이 작품에서는 다양한 직유가 쓰인다. 그중 상투적 비유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작가만의 조탁으로 태어난 다양한 직유는 그러나 남발되어 가독성을 떨어뜨린다. 때로 엿보이는 서술의 과잉 역시 독자와의 소통을 가로막을 수 있으리라는 의구심을 들게 했다.

청소년소설의 독자는 본격 문학을 향유하는 한정된 독자가 아니다. 꼼꼼히 세공된 언어의 부조(浮彫)를 헤아릴 만큼의 감식안이나 집중력도 부족하고 언제든 즉물적인 인터넷과 케이블 TV로 날아갈 수 있는 ‘대중’이 바로 청소년문학의 독자인 것이다. 이런 독자들의 멱살을 어떻게 잡아끌어 본격 문학의 힘을 보여줄 것인가라는 과제는 비단 「로보와 허공의 도둑들」이 해결해야할 과제만은 아닐 것이다.

「날짜변경선」은 한 마디로 잘 쓴 작품이다. 이 작품은 인터넷 카페를 통해 정보를 공유하며 여러 백일장에 참석하고, 꿈과 진학에 대해 고민하는 고등학생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간접 경험이나 상상만으로 이런 작품을 써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작가가 이런 문학청소년 시기를 보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꼼꼼한 심리 묘사와 물 흐르듯 흘러가는 이야기, 조밀하게 연결되어진 인물의 사연 등을 보았을 때 작품을 세공하는 능력만큼은 어느 작품보다 뛰어나다고 생각되었다.

아쉬운 점도 많았다. 문학은 특수성을 통해 보편성을 획득하고, 다시 이 보편성은 또 다른 특수성으로 하강해야 한다. 꿈을 이루기 위해 분투하고, 그 꿈이 과연 진짜 나의 꿈인지 혹은 타자의 욕망을 대리 욕망하고 있는 건 아닌지를 성찰하는 모습까지는 나아가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청소년들의 보편적 이야기로 승화되었을 때 이 작품의 울림은 더 컸으리라.

「불량 가족 레시피」는 청소년 문학판 ‘가족의 탄생’이라 할 만큼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각자 배가 다른 엄마를 가진 오빠, 언니, 그리고 기러기 가족을 부양하다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뇌경색 삼촌, 세 며느리에게서 난 아기 셋을 기르느라 세월을 다 보내 소원이 그저 남이 차려준 밥을 먹고 싶어 양로원이 들어가는 것이 전부인 할머니. 딸들에게 학교를 가지 말고 자신의 채권추심업무를 도우라고 말하는, 개념이라고는 안드로메다에 팔아먹은 아버지. 이렇게 불량한 가족이 서로 으르렁대며 모여 살다 한명 한명 가출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 가출은 가족의 해체가 아니다. 이 작품에서 가출은 새로운 가족의 재구성으로 이어진다. (겉으로 보이는) 가족의 해체가 거꾸로 새로운 가족의 탄생이라니!

가족 해체 문제는 기존 아동청소년문학의 가장 중요한 화두였다. 물고 뜯으며 모여 사느니 차라리 헤어져 사는 것이 낫다는 ‘해체’의 논리를 뛰어넘어 가족 해체 과정을 통해 새롭게 가족이 탄생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은 한 작가의 성취가 아니라 우리 아동청소년문학의 성취라고 할만하다.

다만 도입부에서 사설조로 늘어지는 설명 문장, 가끔씩 흔들리는 인물의 개연성 문제가 거슬렸으나 뛰어난 유머 감각, 독자를 사로잡는 입심과 현상을 거꾸로 보는 작가의 상상력 등으로 인해 대상으로 선정하는 데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작가의 탄생’을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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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심사위원 : 신형철(문학평론가)

 

 

청소년이 직접 자신들의 이야기를 쓴 청소년문학이 있고 성인 작가가 청소년 독자를 대상으로 쓴 청소년문학이 있는 것으로 안다. 전자를 A, 후자를 B라고 하자. A를 대상으로 한 심사에는 몇 번 참여한 적이 있지만 B를 대상으로 한 심사에 참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좋은 작품은 제각각의 이유로 좋지만 나쁜 작품들은 엇비슷한 이유로 나쁘다는 논리는 A와 B 모두에서 얼추 작동하고 있었다.

A는 흔히 일상성의 함정에 빠진다는 것이 기왕의 심사에서 얻은 소감인데, 이번 심사를 통해서 B의 가장 큰 적은 계몽성의 함정이라는 것을 알았다. 수십 편의 B들을 읽으면서 부디 고리타분한 교훈 따위는 없는 소설들이 발견되기를 고대했다. 나에게 고리타분하다면 청소년 독자들에게도 그럴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런 작품은 많지 않았다. 본심에 오른 여덟 작품 중에서 나는 세 편을 추려냈다.

이은경 씨의 「괴물, 한쪽 눈을 뜨다」는 ‘집단 따돌림’ 문제를 파고든 작품이다. 새로울 것 없는 소재를 택했지만 그 소재에 접근하는 이 소설의 방식은 새로웠다. 소설에서는 무엇을 이야기하느냐 못지않게 어떻게 이야기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은 상식이다. 이 소설은 화자를 여러 명으로 설정해서 번갈아 이야기를 끌고 나가게 했다. 덕분에 저 빤한 문제에 입체적으로 접근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감상적인 휴머니즘이 빠져 나간 자리에 치열한 문제의식이 들어와 있었다. 현장에서 이 문제를 오래 고민해 온 분의 작품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손현주 씨의 「불량 가족 레시피」는 제목이 주는 느낌 그대로였다. 본심에 오른 작품들 중에서 가장 활달했다. 캐릭터가 생생하게 구축돼 있었고 서사의 세부가 풍성했다. 한마디로 재미있는 소설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 소설의 화자인 ‘피오나 공주’가 나는 좀 아슬아슬했다. 때로는 너무 강했고 때로는 너무 순진했다. 거기에서 나는 노련한 어른의 시선과 손길이 느껴졌다. 당선작 감으로 손색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그게 계속 걸렸다. 그에 비하면 이 소설의 거친 문장은 그다지 큰 결함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박지혜 씨의 「18살에게 물어서는 안 되는 10가지」의 상큼한 도입부를 읽자마자 나는 내가 이 작품을 지지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예감했다. 그리고 도입부의 인상은 결말부에 이르기까지 큰 기복 없이 유지됐다. 나는 이 작품에서 가장 현실적인 청소년 화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또 가장 구조적인 구성의 사례를 만날 수 있었으며, 또 가장 세련된 문장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다른 두 작품에 비해 서사가 단조로웠다. 이것은 장편소설에서는 그냥 넘어가기 어려운 중대한 결함이다. 나는 이 작품이 뿌듯했다가 아쉬웠다가 그랬지만, 그래도 결국은 뿌듯했다.

청소년문학도 노인문학도 1차적으로는 문학이다. 무엇보다도 문학적으로 가장 완성도가 높은 작품에 상이 주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박지혜 씨의 작품을 당선작으로 추천하되, 셋 중 어느 작품이 당선되어도 동의하겠다는 마음으로 회의에 참석했다. 오랫동안 청소년문학에 관심과 열정을 쏟아온 다른 심사위원들은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이유를 설득력 있게 대면서 손현주 씨의 작품에 표를 던졌다. ‘보편적으로 좋은 소설’과 ‘지금-여기에 필요한 소설’은 다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문학상공모는 후자를 더 배려할 만하다는 선배 심사위원들의 논리를 나는 수긍했고 기꺼이 대세를 따랐다.

당선작은 손현주 씨의 「불량 가족 레시피」다. 본심에 오른 작품들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소설이 당선작이 된 셈인데, ‘재미있다’는 것이 당선의 결정적인 이유는 당연하게도 아니다. 오늘날 청소년문학이 가장 눈여겨 다뤄야 할 문제가 ‘교실붕괴’보다는 차라리 ‘가족해체’에 있다는 것, 전자는 오히려 후자의 결과일 수 있다는 한 심사위원의 통찰이 사실이라면, 바로 이 소설이 그런 필요에 부응하는 동시대적인 소설이었기 때문에 당선된 것이다. 더욱 주도면밀한 미학적 배려가 더해진다면 무적의 이야기꾼이 되실 것이다. 축하와 당부의 말씀을 이렇게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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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심사위원 : 김미월(소설가)

 

 

심사평-김미월

 

본심에 오른 아홉 편의 소설들은 모두 제각각의 개성과 문학작품으로서의 미덕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심사에 앞서 순수한 독자로서 작품을 읽는 동안 아홉 번 탄복하고 아홉 번 행복했음을 미리 밝혀둔다.

「영과 야멘」은 SF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미래사회의 무결점 신(新) 인간이 경멸해 마지않던 보통 인간의 ‘인간적’인 면에 경도되어가는 과정을 박진감 넘치게 그려냈다. 단, 저차원이 고차원을 동경하는 현상이 단선적이라면 고차원이 저차원을 동경한다는 설정은 도식적이다. 그 이상을 보여줄 수 있는 철학이 필요하다.

「날짜변경선」은 문학소년 문학소녀 들이 온갖 백일장을 섭렵하고 다니면서 서로 관계 맺는 법을 배워간다는 내용의 소설이다. 작가가 욕심을 부리지 않고 애초에 하고자 한 이야기를 끝까지 일관성 있게 밀고 나간 점이 미더웠지만 분량에 비해 내용이 소품에 가깝다는 점을 극복하기에는 힘이 달렸다.

「로보와 허공의 도둑들」은 환상과 실재를 오가는 솜씨가 능란하고 작가가 처음부터 끝까지 서사를 장악하고 있어 구조적으로도 빈틈이 없다. 눈높이가 고등학생보다는 중학생에 맞춰진 듯하나, 로보와 보보의 캐릭터를 전형적인 선악 구도로 대비시켜 글의 품격이 낮아졌다는 점만 보완하면 청소년 소설로 모자람이 없겠다.

「영웅놀이」는 이른바 ‘착한 소설’이다. 저마다 상처를 지닌 인물들이 제 안의 영웅을 발견하면서 상처를 극복하고 아마추어 축구팀을 결성한다는 식의 이야기는 새로울 것이 없는데도 감동을 준다. 그 인물들을 변화시키고 마침내 하나로 모으는 역할을 하는 괴짜 노인의 캐릭터가 다소 작위적이라는 점이 아쉽다.

「리틀 발렌타인」은 고유한 캐릭터를 가진 인물을 창조해냈다는 점에서 눈에 띈다. 인물이 줄거리보다 힘이 세서 이야기를 끌고 가는 형국이랄까. 그것은 이 소설의 장점이면서 곧 단점이기도 했는데, 주인공 소녀가 이야기 밖에서 겉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문장이 거칠다는 점도 지적하고 싶다.

「가위」는 시공을 넘나드는 장면을 위해 적소에 소도구들을 배치하고 적시에 운용한 작가의 감각이 잘 발휘된 작품이다. 곳곳에 삽입된 우리 옛 노랫가락을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러나 글이 뒤로 갈수록 산만해진다. 대단원의 감동을 연출하기 위해 인물 간의 갈등을 서둘러 해결한 점도 억지스럽다.

 

내가 특히 주목했던 작품은 「18살에게 물어서는 안 되는 10가지」와 「괴물, 한쪽 눈을 뜨다」와 「불량 가족 레시피」다.

「18살에게 물어서는 안 되는 10가지」는 한마디로 아름다운 소설이다. 문장이 유려하고 섬세하며 그 사이사이에 삶에 대한 진심 어린 성찰과 긍정이 깃들어 있다. 그럼에도 독자에게 감동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 작품의 특장이다. 18살 청소년들의 일상을 보다 사실적으로 그려내기 위해 다양한 에피소드를 동원하고 심리 묘사에 공을 들였다는 점에도 신뢰가 간다. 다만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굵직한 서사가 없다는 것이 약점으로 꼽혔다.

「괴물, 한쪽 눈을 뜨다」는 섬뜩하고 강렬하다. 왕따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면서 피해자뿐 아니라 그 주변 인물의 입장도 보여주어 독자가 사건을 다양한 층위와 각도에서 접하게 해주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인물의 캐릭터가 살아 있고 사건들도 유기적으로 얽혀 제자리에서 제 역할을 다한다. 그러나 용두사미라 할까. 서두의 힘과 패기가 끝까지 유지되지 못했다. 엉성한 결말은 이 소설이 극복해야 할 가장 큰 과제다.

「불량 가족 레시피」는 문제적 가정의 이야기를 유쾌하면서 서글프고 신랄하면서 따뜻하게 풀어낸 문제적 소설이다. 바람 잘 날 없는 콩가루 집안의 소녀가 자서전 쓰기 숙제를 하면서 코스튬플레이에 몰두하던 중 여러 사람을 만나고 여러 사건을 겪은 후 자신과 가족을 돌아보게 된다는 것이 내용의 골자다. 이야기 자체도 흥미롭지만, 이 소설을 더욱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것은 작가의 옹골찬 입담이다. 작가는 요즘 청소년 특유의 짧고 거친 언어와 세상 풍파를 혼자 다 겪은 할머니 특유의 걸쭉한 사설 사이를 종횡무진 오가며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인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차악의 희망을 버리지 않는 이 어디 하나 잘난 곳 없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비장하지만 유머러스하고 처절하지만 사랑스럽다.

청소년 독자가 이 소설을 읽고 나면 자신도 자서전을 써보고 싶어지지 않을까. 애원하지도 않고 종용하거나 명령하지도 않으면서 청소년이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게 만들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청소년 소설이 지향해야 할 최선의 지점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이 작가의 다른 작품들이 궁금해졌고 결국 이 작품에 손을 들었다.

당선을 축하드린다. 아깝게 낙선한 나머지 여덟 작품에도 진심으로 감사와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이렇게 근사한 청소년 소설들이 끊임없이 쓰이고 있고 또 앞으로도 쓰일 것이라니, 청소년뿐 아니라 모든 독자가 더불어 기뻐할 일이다.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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