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여자들의 전쟁에 대해 이야기한다. 남자들이 우리에게 하지 않은 전쟁 이야기, 전쟁의 민낯. 그런 전쟁을 우리는 알지 못했다. 남자들은 전쟁에서 거둔 승리와 공훈과 전적을 이야기하고 전선에서의 전투와 사령관이니 병사들 이야기를 하지만, 여자들은 전혀 다른 것을 이야기한다. 여자들은 전장에서도 사람을 보고, 일상을 느끼고, 평범한 것에 주목한다. 처음 사람을 죽였을 때의 공포와 절망감이라든지, 전투가 끝나고 시체가 사방에 널브러진 들판을 걸어갈 때의 끔찍함과 처절함을 말한다. 전장에서 첫 생리혈이 터져나온 경험, 전선에서 싹튼 사랑 이야기도 있다. 그녀들의 눈에 비친 전사자들은 모두 젊거나 어린 병사들이다. 적군인 독일 병사도 아군인 러시아 병사도 모두 가엾기만 하다.
전쟁이 끝나고도 여자들에겐 또다른 전쟁이 기다리고 있다. 여자들은 전쟁을 기록한 책이나 부상자들에 대한 서류를 숨겨야 했다. 왜냐하면 다시 예쁘게 미소짓고, 높은 구두를 신고, 결혼 준비를 해야 하는 여자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자신들의 전우였던 여자들을 잊어버렸고 또 배신했다. 여자 전우들과 함께 거둔 승리를 빼앗고 독차지했다. 그렇게, 여자들의 전쟁은 잊혀버렸다.
아이를 낳고 가족을 돌보는 가정이 여자들이 있어야 할 자리이지만,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했던 전쟁 제2차세계대전은 여자들을, 심지어 어린 소녀들까지 전장으로 내몰았다. 조국과 가족의 이름으로 여자들은 총칼을 들고 전선에서 남자들과 똑같이 싸워야 했다.
작가는 이처럼 전쟁에 직접 참전했거나 목격한 여자들 200여 명의 이야기를 정리해 이 한 권의 책에 담아냈다. 그들의 처절하고 가슴 아픈, 다양한 사연들을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로 가감 없이 들려준다. 그녀들 각각의 이야기는 200권의 소설과도 맞먹는 강렬한 충격을 준다. 평범한 소녀이고 아가씨였던 각 사연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침착하게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결국엔 그때의 고통에 눈물을 흘리고 비명을 지른다.
<추천의 글>
이 책은 독특한 전쟁‧평화서이다. 그간 전쟁과 평화는 성별화되어 남성성과 여성성을 상징해왔다. 하지만 여성은 인류 초기부터 전쟁의 참전자, 협력자, 희생자였다. 제2차세계대전 때 백만 명의 여성들이 참전했고 또 그만큼의 여성들이 빨치산으로, 지하공작원으로 저항했다. 이 책은 여성의 참전 경험이 남성의 경험과 얼마나 다른가를 보여준다.
저자는 이 책에서 글쓰기의 창조적 혼종을 구현했다. 그녀는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가 아니라 “태초에 목소리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참전 군인이자 성찰적 목격자로서 이제까지 들리지 않았던 여성의 목소리를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여성은 전쟁에 참여하지만 전쟁은 결코 여성의 얼굴을 하지 못한다.
생리를 하는 군인, 남성보다 얇은 옷을 지급받는 병사, 여자 화장실이 없어 바다에 뛰어든 분대장, 여성을 가미카제로 사용한 군대…… 통념과 달리 여성은 남성의 보호를 받는 존재가 아니라 인류의 수호자다. 만일 ‘노벨 평화문학상’이 있다면 이 책은 최초의 수상작이 될 것이다.
_정희진(『페미니즘의 도전』 저자)
이 책은 전장에서 직접 총을 쏘고 죽음의 문턱을 넘나든 여성들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이 책에 담긴 압도적인 목소리와 함께 ‘전후세대’라는 말은 의미를 잃는다. 우리는 아직 전장의 포연과 비참 속에 있다. 전쟁이 없는 세상이 어떻게 가능한지 여전히 알지 못하지만, 우리는 알렉시예비치와 함께 이렇게도 말해야 한다. “전쟁은 인간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_이현우(『로쟈의 인문학 서재』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