앳된 얼굴, 노바이올렛 불라와요라는 독특한 이름을 가진 젊은 작가가 2013년 미국 문학계에 의미 있는 파장을 일으켰다. 짐바브웨 출신의 미국 이민자 노바이올렛 불라와요가 2011년 케인 상 수상작인 자신의 단편 「부다페스트 가는 길」을 첫 장(章)으로 하는 장편소설 『우리에겐 새 이름이 필요해』를 발표해 큰 사랑을 받은 것이다. 이 작품으로 노바이올렛 불라와요는 아프리카 여성 최초로 맨 부커 상 최종 후보에 올랐고, 펜/헤밍웨이 신인 소설상,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신인 소설상 등 다수의 상을 휩쓸었다. 불라와요의 초기 작품을 소개하기도 한, 보스턴 리뷰의 편집자이자 퓰리처상 수상 작가인 주노 디아스는 ´5 Under 35´ (전미도서상 수상자 및 최종심 후보자들이 뽑는 젊은 작가 5인)에 노바이올렛 불라와요를 선정하며 남다른 애정을 과시하기도 했다.
솔직하고 대담하며 때로는 불편하기까지 한 소설 『우리에겐 새 이름이 필요해』는 열 살 소녀 ‘달링’의 시점에서 서술된 작품이다. 짐바브웨의 독재 정권하에서 보낸 유년기, 그리고 미국에서 불법 체류자로서 보낸 청소년기 양쪽 모두 가감 없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달링과 친구들 그리고 짐바브웨 사람들의 이야기, 기회의 땅을 찾아 나라를 떠난 이민자들이 마주하는 삶의 면면이 재치 있고 해학적인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담담하게 이어진다.
우리는 달린다, 구아바를 훔쳐 먹으려고!
죽은 사람 신발을 팔아 빵을 사 먹으려고!
아이들이 맨발로 붉은 흙길을 달린다. 구아바를 훔치러! 이름만 ‘패러다이스’인 가난한 동네를 벗어나, 달링과 친구들은 ‘부다페스트’로 향한다. 그곳 저택의 구아바라도 훔쳐 먹고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서. 아이들의 달리기가 부쩍 느려지는 건 무리 중 한 친구 ‘치포’의 배에 든 아기 때문이다. 누가 어떻게 치포의 뱃속에 아기를 넣었는지, 방해만 되는 그 아기가 언제 나오는지, 열 살 소녀 달링과 친구들은 그게 궁금할 뿐이다. 아이들은 구아바를 먹고 돌아오는 길에 수풀에 똥을 누다 나무에 목을 맨 여자의 시신을 발견하고 기겁한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다 이내 여자의 구두를 팔면 빵을 사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고, 아이들은 시신을 향해 다시 달린다. 웃고 또 웃으면서.
다른 나라 아이들에겐 당연히 허락되는 많은 것들이 이 아이들에게는 없다. 제대로 된 이름마저 사치다. 부모들은 뜻도 모르는 영어로 달링(Darling), 배스터드(Bastard), 갓노즈(Godknows) 같은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들은 신발이 없어 바세린을 바른 맨발로 흙길을 걷는다. 바지가 헤져 엉덩이가 보여도 새 바지를 구할 수 없다. 학교도 좋은 집도 다 옛일이다. 선생들이 다 나라를 떠나 학교는 문을 닫았고, 경찰들이 불도저로 집을 밀어버려서 이제는 허접한 양철집에서 산다. NGO 사람들이 사진 찍는 게 싫지만, 촬영에 응하면 선물을 주니까 참는다. 이 딱한 아이들은 장난감도 없어서 온종일 길에서, 자기들이 만든 놀이를 하며 시간을 때운다.
달링과 아이들이 하는 놀이 중에 나라놀이라는 게 있다. 바닥에 원을 그리고 똑같은 크기로 나눈 다음 여러 나라의 이름을 적고, 돌아가면서 술래가 되어 좋은 나라를 뺏는 놀이다. 나라놀이에서 아이들이 선호하는 나라는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같은 나라들이다. 콩고, 소말리아, 이라크, 수단 같은 "걸레 같은 나라들"은 아무도 원하지 않는다. 그들이 살고 있는 짐바브웨도. “지긋지긋하게 배고픈 나라, 모든 게 엉망인 나라”를 원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열 살 소녀 달링의 소원은 짐바브웨를 떠나 미국에 가는 것!
그러면 더는 맨발로 구아바를 훔치러 다니지 않아도 될 테니까……
양철집에 살지 않아도 되고 학교도 다닐 수 있을 테니까……
정말 그곳에선 배불리 먹고 레이디 가가를 만나며 살 수 있을까?
새로운 희망을 품을 때마다 그 기대는 늘 허물어져왔다.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하면 살기 좋은 나라가 될 것 같았지만 곧 독재 정권이 들어섰다. 변화를 꿈꾸며 투표를 했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빈부 격차가 심해지고 짐바브웨 화폐는 휴지 조각이 됐다. 일을 찾아 두바이와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떠났던 사람들은 병을 얻어 돌아왔고, 이제 제때 끼니를 챙기며 제대로 된 집에서 자는 것조차 요원한 꿈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사람들은 일자리가 있고 배를 굶지 않을 수 있는 곳으로 떠난다. 달링은 미국에 있는 이모가 자기를 데려가면 짐바브웨를 떠날 수 있다는 데 희망을 걸고 있다. 그곳에선 더는 먹을 것을 훔칠 필요가 없을 테니까. 꿈의 차 람보르기니를 몰며 친구들에게도 좋은 선물을 보낼 수 있을 테니까. 미국은 달링에겐 꿈의 나라다. 먹을 것이 넘쳐나고 풍요로운, 행복이 보장된 레이디 가가의 나라! 누구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나라!
포스털리나 이모랑 살러 가면, 나도 딱 저런 차를 몰 거야. 꼭 날 위해 만든 것처럼 크기도 아담하잖아. 내가 말한다. 나는 그냥 안다. 뼛속으로부터 느낄 수 있다. 미국에서 저 차가 날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외친다. 내 람보르기니, 람보르기니, 람보르기니 레벤톤! 내 목소리가 텅 빈 거리에 울려퍼지고 나는 웃으며 삼단뛰기를 한다. _본문 145쪽
"우리 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 말을 쓸 수가 없었고,
그래서 말들은 멍들어서 나왔다."
달링은 그토록 고대하던 미국으로 간다. 그곳에서 배불리 먹고, 학교를 다니며 친구를 사귀고, 쇼핑몰에서 옷을 잔뜩 입어보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면에서 생소하고 불편한 문화와 낯선 언어에 적응하느라 혼란스럽고 고향이 그립기도 하다. 그리고 결국 달링이 대면해야 하는 건 불법 체류자라는 자신의 현실이다. 잠깐 짐바브웨에 돌아가 친구들을 만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방문 비자 기한이 만료되어, 일단 미국을 떠나면 다시 올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달링의 이모부 코조는 삼십 년 넘게 미국에서 일하며 아이를 낳고 키웠는데도 여전히 영주권이 없다. 그러는 동안 한 번도 제 나라에 돌아가지 못했다. 포스털리나 이모는 짐바브웨의 식구들에게 돈을 부치기 위해 밤낮없이 일한다. 하지만 식구들은 그런 상황을 모른다. 그저 전화로 이것저것 부탁하고 돈 보내달라고 하기 바쁘다.
이모가 이렇게 일을 열심히 하는 이유는 엄마와 본스 어머니에게 사준 부다페스트의 집값을 내기 위해서다. 나도 사진으로 보았다. 우리가 구아바를 훔치러 갔던 집들처럼 수영장이 있는 멋진 집이다. 미국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집보다도 멋지다. 이상한 일이다. 내가 짐바브웨에 있을 땐 미국이 훨씬 더 잘사는 나라라고 들었는데. 본문 243쪽
이제 달링도 이모가 그랬듯 한꺼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하며 돈을 벌고, 달러 없이는 살기 힘든 고국의 엄마와 가족에게 돈을 보내야 한다. 그리고 이모가 그랬듯, 미국이 꿈의 나라가 아니라는 사실을 엄마나 친구들에게 전하지 않는다. 아니, 전하지 못한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지만 미국은 그들의 나라가 아니다. 아무리 오래 살았어도 그들은 이방인이다. 미국인들은 여전히 그들의 외모를 신기해하고 그들이 떠나온 나라를 동정한다. "너도 아프리카에서 왔니?" "너희 나라 말 한번 해볼래?"라는 말을 듣는 일은 예사다. 경찰차 소리가 나면 겁부터 난다. 그들은 미국인들이 하려고 하지 않는 일, “인간 존엄성의 뼈를 갉아먹고 살을 삼키고 골수를 빼먹는 일”을 하며 돈을 번다. 미국은 꿈의 나라가 아니다. 견뎌야만 하는 나라다.
동시에 그들은 더이상 완전한 짐바브웨 사람도 아니다. 맨발로 흙길을 달리던 일은 추억일 뿐이고, 이제 달링은 친구들과 전혀 다른 길을 달리고 있다. 중간 지대의 그 어딘가에서 발 디딜 곳을 찾느라 애쓰고 있지만 고향 친구의 원망 섞인 말 앞에 큰 목소리로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말은 거의 없다.
그 고통을 네가 겪는 건 아니잖아. BBC를 보면서 상황을 이해한다고 생각해? 아니, 친구야. 넌 몰라. 고통의 질감을 아는 건 상처뿐이야. 여기 남아서 그 고통을 실제로 느끼는 사람은 우리야. 그 고통에 대해서 말할 권리가 있는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우리들뿐이야. _본문 362쪽
"정교하고 힘있는 이 데뷔소설에는
아름다움과 두려움과 웃음과 고통이 똑같이 들어 있다." _에드위지 당디카(소설가)
일견 에피소드의 나열처럼 보일 수 있는 이야기들을 조화롭게 묶어내는 건 중간중간 끼어드는 장들 속 ‘우리’라는 화자의 등장이다. ‘우리’는 달링이라는 소녀의 시각을 뛰어넘어 유려하고 격렬한 문체로 현대 아프리카와 미국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토해낸다. 신화적 구전 서사와 같은 느낌을 주는 이 장들은 주인공을 관찰자로 내세워 전달한 일화들을 하나의 뚜렷한 선으로 꿰어낸다. 이로써, 자연스럽게 호흡하던 세계에서 떨어져나와 새로운 세계에 이식된 존재, 개인이자 집단인 그와 그들의 존재가 더욱 생생하게 살아 숨쉰다.
근래 ´헬조선´이라는 말이 우리 귀에 심심치 않게 들려왔듯, 현실에 절망해 새 나라를 찾아 가려는 사람들을 만나는 건 멀리 짐바브웨까지 가지 않아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실로 많은 이들에게 새 나라가 필요해 보인다. 어쩌면 우리에게도 새 이름이 필요한 것만 같다. 그런 우리에게, 어느 쪽에 대해서도 자신이 겪고 관찰한 것 이상을 덧붙이지 않고, 그 불확실함을 솔직하게 드러내며 끝맺는 달링의 이야기는 지금 서 있는 이 현실에 지지 않고 살아가자는 어떤 격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아름다운 이야기라서, 아름다운데 아파서 슬픈 그 이야기들이 비단 소설가의 상상에 기댄 허구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서, 『우리에겐 새 이름이 필요해』를 읽는 우리는 조용히 웃고 조용히 한숨 쉬고 조용히 눈물을 훔친다. 단정하고 재치 있는 필치로 풀어낸 달링의 이야기에 코끝이 찡해지는 건, 동심과 낙관 뒤에 자리한 애틋하고 고단한 삶의 속살이 도저히 숨겨지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 이 책에 쏟아진 찬사
이 작가가 해낼 줄 알았다. 그녀의 솔직함, 개성 있는 목소리, 자기 재능을 다루는 능수능란한 기술은 첫 페이지에서부터 여실히 드러난다. 1장의 인상적인 결말까지만 읽어도 금세 그녀가 얼마나 엄청난 재능을 지녔는지 실감하게 될 것이다. 주노 디아스(소설가)
가혹하면서도 서정적이고, 냉정한 동시에 시적이고, 날카로운 한편 깊이 생각하게 하는 작품. 뉴욕 타임스
주노 디아스의 팬이라면 불라와요의 첫 장편소설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오프라 닷컴
정교하고 힘있는 이 데뷔 소설에는 아름다움과 두려움과 웃음과 고통이 똑같이 들어 있다. 주인공들의 삶과 이름이 당신의 마음과 심장에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책을 다 읽은 후 한참 뒤까지. 노바이올렛 불라와요는 정말로 주목해야 할 작가다. 에드위지 당디카(소설가)
노바이올렛 불라와요는 가슴 저미는 솔직함과 강렬한 이미지로 희망의 선물 같은 데뷔작을 선보였다. 뉴욕 데일리 뉴스
새롭고 재치 있다. 훌륭한 소설. 피플 매거진
따뜻하고 명료하고 단순한 문장으로, 발 디디고 설 자리를 찾느라 분투하는 주인공 달링의 목소리에 안정감을 준다. 탄탄하고 흥미로운 성공적인 데뷔작. 엔터테인먼트 위클리
불라와요는 힘있는 소설을 완성했다. 눈에 보일 듯 생생하게 써내려가는 재능이 그녀를 밝은 미래로 이끌 것이다. 나라와 상관 없이 그녀의 꿈은 이루어질 것이다. USA 투데이
눈여겨봐야 할 작가의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 인상적인 데뷔작! 엘르
어떤 작가가 트라우마에 빠진 나라에 대해 이렇게 절망적이지 않은 목소리로 말할 수 있을까? 노바이올렛 불라와요는 유쾌하고 즐거운 주인공들을 만들어내 그것을 해냈다. 독자들은 한 나라의 곤경을 마주하는 동시에 인물들의 익살스러운 모습에 매료될 것이다. 인디펜던트
■ 본문에서
아기는 배 밖에서 자라는 거거든? 뱃속이 아니고. 자라려고 태어나는 거야. 그래서 어른이 되는 거고. _본문 11쪽
이왕 훔칠 바에야 작고 숨기기 쉬운 물건이나 빨리 먹어치울 수 있는 음식을 훔치는 게 낫다. 이를테면 구아바처럼. 그러지 않으면 훔친 물건을 갖고 있는 걸 볼 때마다 사람들은 저 뻔뻔한 도둑이 우리 물건을 훔쳐갔다는 걸 기억할 테니까. 그러고 보면 백인들이 무슨 생각으로 땅 한 뙈기도 아니고 나라 하나를 통째로 훔치려 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렇게 큰 걸 훔쳤는데 누가 그 사실을 잊을 수 있을까. _본문 34쪽
기도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본 적이 있는데, 그러니까 진짜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있는데, 내가 내린 결론은 어쩌면 사람들이 기도하는 방식이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거다. 하느님한테 정중하게 부탁할 게 아니라 강력하게 요구하고, 따지고, 들어주지 않으면 예배하지 않겠다고 협박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러면 하느님도 생각을 바꾸고 하느님답게 이 세상을 바로잡아주지 않을까. 무엇이든 구하면 얻을 거라고 성경에도 나와 있으니까 말이다. 도대체 그 말을 한 장본인이 누구냔 말이다. _본문 129쪽
무리지어 떠나는 아이들을 보라. 이 나라의 아이들이 무리지어 떠나는 모습을 보라. 가진 것 없는 아이들이 국경을 넘는다. 힘있는 아이들이 국경을 넘는다. 야망이 있는 아이들이 꿈을 넘는다. 희망을 가진 아이들이 꿈을 넘는다. 실의에 빠진 아이들이 국경을 넘는다. 고통에 신음하는 아이들이 국경을 넘는다. 아이들이 세계 곳곳으로, 가까운 나라와 먼 나라로, 듣도 보도 못한 나라로, 발음조차 못하는 이름의 나라로, 옮겨가고 달려가고 이민 가고 건너가고 탈주하고 걸어가고 포기하고 날아가고 내뺀다. 아이들이 무리지어 떠난다.
모든 것이 무너져내릴 때 이 나라의 아이들은 불타는 하늘에서 탈출하는 새들처럼 부리나케 흩어진다. 그렇게 만신창이가 된 조국을 등진다. 어쩌면 낯선 나라가 그들의 굶주림을 달래줄지도 모른다고, 어쩌면 낯선 나라가 그들의 눈물을 닦아줄지도 모른다고, 어쩌면 먼 나라가 절망의 상처에 붕대를 감아줄지도 모른다고, 낯선 땅의 어둠 속에서 상처투성이 기도를 읊조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_본문 188∼189쪽
미국에 와서 우리는 평생 보았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음식을 보았고, 그래서 행복했고, 얼룩지고 부서진 하느님의 조각들을 되찾으려 영혼의 쓰레기통을 뒤졌다. 고국에 있을 때 일찌감치 내다버렸던 하느님이었다. 너무 배가 고파 어지러웠던 절망의 순간 우리는 하느님을 버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떻게 우리를 외면할 수가 있지? 어떻게? 그리고 생각했다. 왜 우리 기도를 안 듣는 거야? 도대체 왜? 그리고 또 생각했다. 우리가 그렇게 바라고, 바라고 또 바랐는데 어떻게 쌀 한 톨조차 주지 않아? 그리고 우리는 분노에 눈이 멀어 하느님을 내버렸다. 하느님이 없는 편이 나아. 이렇게 살 바에야, 이렇게 기도해야 할 바에야 하느님 없이 사는 편이 나아. 하느님이 없는 게 나아. _본문 303∼304쪽
우리 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 말을 쓸 수가 없었고, 그래서 말은 멍들어서 나왔다. 우리가 말을 할 때, 혀가 입안에서 제멋대로 놀았고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렸다. 우리 말이 아니었기 때문에 우리가 의도하지 않은 말을 하게 되었다. 우리가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접힌 채로 안에 갇혔다. _본문 305쪽
아이들이 커가면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받아들였다. 우리는 그렇게 자라지 않았기 때문에 당혹스러웠던 일들도 많았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이렇게 말했다. 모든 여행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이야. 이게 오래전에 우리가 했던 긴 여행에 대한 대가야. _본문 317∼318쪽
네 나라도 아닌 데서 너 지금 뭐하고 있는 거야? 왜 미국으로 도망갔어, 달링 논쿨루레코 느칼라? 여기가 네 조국이면 떠나지 말고 여기 남아서 사랑했어야지. 무슨 일이 있어도 바로잡으면서 살았어야지. 집에 불이 나면 집을 버려? 아니면 물을 길어다가 불을 꺼? 불난 집을 떠나놓고 불이 저절로 물이 되어서 꺼지길 바라는 거야? 달링, 넌 조국을 떠났어. _본문 36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