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희의 시대가 올까.
적어도 지금 내가 가장 읽고 싶은 것은 그의 다음 소설이다.”
_신형철(문학평론가)
2015년 젊은작가상 수상작 「조중균의 세계」,
2016년 젊은작가상 대상 수상작 「너무 한낮의 연애」 수록
‘아주 없음’이 아니라 ‘있지 않음’의 상태로 잠겨 있는 기억들
그로부터 흘러나온 미세한 파장이 건드리는 ‘보통의 시절’
「너무 한낮의 연애」로 2016년 제7회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하며 한국문학 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소설가 김금희의 두번째 소설집 『너무 한낮의 연애』가 출간되었다. 첫 소설집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창비, 2014)로 제33회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하며 작가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준 김금희는, 이제 명실상부 ‘지금 가장 주목받는 젊은 작가’가 되었다. 이번에 선보이는 소설집에는 2014년부터 2015년까지 발표된 9편의 작품이 수록된바, 이 점에서 문학에 대한 작가의 열정과 소설쓰기의 왕성함에 더불어, 한국문단이 김금희에게 걸고 있는 기대감도 한껏 느낄 수 있다. 『너무 한낮의 연애』는 그 기대를 향한, 김금희의 수줍지만 당당한 응답이다.
문학평론가 정홍수는 「너무 한낮의 연애」에 대한 젊은작가상 심사평에서, 당시 이슈가 되었던 ‘중력파’의 검출 이야기로 서두를 시작한다. 그를 놀라게 한 것은 그 중력파가 십삼억 광년 전에 생성되어 지금의 우리 눈에 띄었다는 사실이라고. 나아가 정홍수는 “우리 나날의 일상 역시 관계의 충돌이나 비껴감(그리고 기타 등등) 속에서 미세하게 시공간을 진동하고 왜곡하는 모종의 파波를 생성하리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 가능한 일”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파장의 “미세한 누적이 임계치를 넘길 때 우리의 몸을 기울이고, 삶의 좌표를 슬그머니 옮겨놓는다”고. 십육 년 전 종로의 맥도날드에서 ‘양희’와 마주앉아 있었던 ‘필용’의 추억이 의식 밑에 잠겨 있다가, 무언가를 계기로 도달되어 그를 눈물 흘리게 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김금희는 이번 소설집에서 ‘잠겨 있는 과거의 기억들’을 건져올리는 데 몰두한다. 사소하다고 생각해서, 내심 잊고 싶어서, 혹은 다른 어떤 이유로 미세해진 그 파장들을, 김금희는 기어이 현재로 끌어와 우리를 공명시킨다. 소설집의 내밀한 곳에 자리한 2014년 발표작들은 과거를 향해 있는 김금희의 시선을 정제된 언어로 영사映射하고 있는 듯하다. 비극적인 일상에 소녀다운 상상력을 겹쳐 바라보는 고등학생의 여름휴가를 그린 「반월」은 그 자체로 유년 시절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우리가 어느 별에서」는 어린 시절 타인에게 ‘사랑받았다’고 믿어왔던 기억들이 나이를 먹으며 다르게 이해되기도 하는 순간을 절묘하게 포착한다. 「고기」와 「개를 기다리는 일」 역시 과거의 트라우마가 해소되지 않은 채 ‘있지 않음’의 상태로 떠돌다가 우리를 문득 찌르는 경험에 서스펜스를 가미하여 읽는 이를 몰입시킨다.
소설집의 바깥을 둘러싸고 있는 이후의 발표작 「너무 한낮의 연애」 「조중균의 세계」 「세실리아」 「보통의 시절」 「고양이는 어떻게 단련되는가」 등에 이르면, 김금희의 서술이 한층 생기로워졌으며 반짝이는 위트가 적재적소에서 발동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소설의 중심인물들 또한 어느 정도 나이를 먹어 능청스러워졌다. 이를 소설가 정영수는 김금희를 인터뷰한 지면에서 “해방의 글쓰기”라고 명명했던가. 특히 김금희의 특장으로 자리잡은 의성어들, “헤어억” “어구구구어구구구” “사포삿포삿포포삿포” 등은 소설 속의 소리를 귀에 직접 꽂듯 전달하며 읽는 맛을 살린다. 그러나 김금희 소설이 예상치 못한 곳에서 드러내는 송곳니의 날카로움은 여전하다. 우리는 그의 소설을 읽으며 애써 감추고 모른 체했던 ‘진실’에 물려 기어코 한 번은 얼얼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그들이 거쳐온 긴 시간의 탐사” 끝에 우리에게는 “웃기에는 서늘하고 울기에는 좀 따뜻한, 이런 감정”(문학평론가 강지희, 해설 「잔존의 파토스」)이 남는다. 김금희는 한 인터뷰에서 “못남을 잔혹하게 보여주는 게 아니라, 못났지만 한 걸음이라도 나가게 할 수 있”도록 구원하는 소설을 쓰고 싶다고 했다. 살다보니 닳고 닳아 미워진 인간 군상을 묘사하면서도, 김금희는 결국 그 인물들이 갖추고 있는 일말의 사랑스러움을 놓치지 않는다. 그 따뜻하고 세밀한 응시를 통해 세상을 보고 소설을 쓰기에, 우리는 김금희의 작품을 읽으며 조금은 단단한 마음이 된다. 저 먼 과거로부터 도달한 파장들에 찔려 잠시 제자리에 멈춰 서야 할지라도, 그녀의 소설은 앞으로 나아가려는 더딘 발걸음으로 계속 쓰여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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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한낮의 연애_ 영업팀장을 그만두고 시설관리직을 맡으라는 인사이동 통보를 받은 날, ‘필용’은 문득 십육 년 전 종로의 맥도날드를 떠올린다. ‘모양이 빠지는’ 직함으로 회사 사람들을 마주하기가 부끄러웠던 필용은 혼자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그곳으로 향한다. 점심시간이 지나버린 한낮의 맥도날드. 거기에 앉아 있는 이들은 사회가 만들어놓은 트랙에서 튕겨져나온 걸까, 제 발로 그 트랙을 벗어난 걸까. 문득 창밖을 본 필용은 “나무는 ‘ㅋㅋㅋ’ 하고 웃지 않는다”라는 연극 현수막을 발견하고, 대학 시절 짧게 연애했던 ‘양희’의 존재를 기억해낸다. 앞만 보고 트랙 위를 달리는 대신 ‘바로 오늘’의 감정을 소중히 하며, 못난 필용의 모습을 비웃지 않고 마치 나무처럼 가만히 지켜봐주었던 그녀. 중년에 접어든 필용은 또 한번 무조건적인 위로를 갈구하며 스물일곱 살의 마음으로 소극장을 방문하기 시작한다.
조중균의 세계_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적당히 처세를 익히고, 사소한 감상들은 버릴 줄 알게 된 ‘나’. 한 출판사 편집부에 입사해서 파악해보니 ‘나’는 입사 동기인 ‘해란씨’와 석연찮은 경쟁을 벌여야 한다. 스스로의 경력에 자신은 있지만, 어린 해란씨는 왠지 요즘 세대가 잃어버린 어떤 빛을 발하고 있는 것 같다. 부장의 표현에 따르면 ‘나’가 정식으로 팔기 위해 손질된 고기라면 해란씨는 “주먹구구식으로다가 막 썰다보니” 어엿한 상품이 된 주먹고기랄까. 자신만의 신념을 지키는 태도 때문에 회사에서 고지식하고 답답한 인물로 통하는 ‘조중균씨’도 그런 해란씨하고는 곧잘 교감하는 것 같다. 그리고 셋만의 조촐한 회식 자리에서 ‘나’와 해란씨는 조중균씨의 ‘지나간 세계’가 품고 있던 어떤 낭만에 대해 듣는다. 그 낭만이 어떤 것인지 이해하는 해란씨를 비유하던 말, 주먹고기의 ‘주먹’은 부장의 말과 달리 힘껏 움켜쥔 단단한 손을 뜻하는 게 아닐까.
세실리아_ 마흔이 다 된 대학 동기들의 허랑방탕한 송년 술자리 장면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대학 시절 사회과학 서적이나 르포 영화를 집어들곤 했던 경험이 무색하게, ‘나’와 친구들의 대화는 세속에 찌들 대로 찌들어 있다. 그러다 누군가가 ‘세실리아’라는 이름을 화제에 올린다. 세실리아는 애정결핍 환자처럼 친구들에게 엉겨붙길 잘하던, 같은 동아리 친구의 애인을 빼앗아 따돌림을 당한 미대생이었다. 그녀를 안줏거리 삼아 시시덕대는 남자들이 불쾌해진 ‘나’는 직접 세실리아를 찾아가보기로 한다. 하지만 ‘나’를 무척 반기는 세실리아와 달리, ‘나’에겐 그녀와의 저녁식사가 어색하기만 하다. 어긋나고 뚝뚝 끊기는 대화의 끝에 ‘나’는 드디어 세실리아의 본모습을 마주한 것 같아 애틋하기도 한데, 문득 세실리아는 그녀에게 덧씌워져 있던 오해의 전말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다.
반월_ ‘나’의 가족은 그해 여름, 섬에 있는 이모 집에서 ‘버케이션’을 보내기로 했다. 사실은 빚쟁이를 피해 은신하는 것이지만, ‘나’는 공상을 통해 그 상황을 피크닉의 일종으로 생각해버릴 줄 아는 고등학생이다. 섬에서 만난 이모는 마치 그 섬에서 나갈 줄 모르는 사람처럼, 어떤 무기력함에 짓눌려 겨우 ‘잔존해’ 있는 것 같다. 사촌이자 이모의 아들인 ‘동수’가 이모와 통화하기 위해 애타게 전화를 걸어오지만, 이모는 그때마다 수화기를 들었다가 놓는 것으로 자신의 잔존을 알릴 뿐이다. 이모의 자발적인 고립에 슬몃 공감하는 ‘나’의 마음속엔 ‘왜’라는 질문이 남는다.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겼나 생각합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습니까. 왜, 무엇 때문에?” 그 의문을 감싸듯, 반월이 걸린 밤바다엔 화려하고 눈부신 불꽃이 수놓인다.
고기_ ‘그녀’는 마트에서 사온 고기에서 상한 냄새를 맡는다. 그녀는 소비자로서 온당한 권리를 행사하고자 마트 본사에 항의 글을 올리고, 해고 위기에 처한 마트 직원이 그녀를 찾아오기 시작한다. 그러나 얼굴에서 어떤 표정들을 지우려 애쓰면서 비굴하게 사과하는 마트 직원을 그녀는 끝까지 무시한다. 집은 점점 가난해지고, 남편은 생활비를 벌어오기 위해 뭔가 위험한 일을 하는 것 같은데, 남편이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하는 말들은 왠지 미덥지 않다. 어느 날 남편이 천만원과 함께 집에 가지고 들어온 자루에서 핏물이 배어나오는 것을 보고, 그녀는 자루를 풀어 진실을 마주하기로 결심한다. 그 순간 왠지 홀가분한 표정의 마트 직원이 주머니에 한쪽 손을 넣은 수상한 모습으로 그녀에게 다가온다.
개를 기다리는 일_ 유학을 나가 있던 중, ‘그녀’는 엄마로부터 아끼던 개를 잃어버렸다는 연락을 받는다. 너무 소중해서 차마 다른 이름을 붙이지 못하고 그저 ‘개’라고 부를 수밖에 없었던 그 개를. 모녀는 개를 잃어버린 공원 입구에 미니 쿠퍼를 세워두고 개를 기다린다. 그녀가 귀국했다는 것을 알면 아빠는 또 폭력을 휘두를 것이다. 한줄기 바람이 현수교의 고유 진동수와 일치하면서 다리를 무너뜨렸다는 지겨운 설교를 하면서, 작은 균열로부터 파생되는 불운을 들먹일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개는 나타나지 않고, 목격자들의 증언을 얻을수록 엄마의 회상과 어긋나는 기분이 든다. 집에 들어가니 아빠를 찾는 전화가 걸려오고, 집안 분위기는 왠지 살풍경하다. 개는 죽었을까. 아빠는 살아 있을까. 그녀가 없는 동안 엄마는 대체 무슨 일을 저지른 것일까.
우리가 어느 별에서_ ‘그녀’가 자란 화천의 고아원에서는 종종 돈을 부쳐달라는 편지가 온다. 편지를 열어볼 때마다 그녀는 가난한 고아원에 부채감을 느끼며 돈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실행에 옮기자니 머뭇거려진다. 고아원의 수녀님에게 ‘냉정하지만 공평한 훈육’을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수녀님의 행동은 그저 폭력에 지나지 않았던 게 아닌지 되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그녀가 상경해서 자리잡은 동네는 옥수동. 이곳은 고아원 옆으로 넓게 펼쳐져 있던, 키가 크고 울창해서 공포와 동경심을 동시에 심어주었던 옥수수밭을 생각나게 한다. 고아원을 나왔지만 아직 그곳을 벗어나지 못한 그녀는 일하는 병원에서 수녀님과 꼭 닮은 환자를 만난다. 잃어버린 구두를 찾아달라는 부탁을 남기고 사라져버린 환자를 찾아 병원 옥상에까지 올라온 그녀는, 자신이 어떤 환영에 이끌렸음을 깨닫고 왠지 후련한 마음으로 서울의 야경을 내려다본다. 마치 별처럼 반짝이는 그 빛들을.
보통의 시절_ 어느 성탄절 저녁, ‘나’는 사 년 만에 형제들과 만난다. 알고 보니, 어려서부터 집안의 가장 역할을 해온 큰오빠가 다음주에 위암 수술을 받는다는 비보를 전하는 자리다. 생에 미련을 남기고 싶지 않은 큰오빠는 다 함께 ‘김대춘’을 찾아가 그가 우리 가족을 얼마나 큰 불행에 빠뜨렸는지 성토하자고 한다. 김대춘은 부모님이 운영하던 목욕탕에 불을 질러, 그들을 하루아침에 가난한 고아 신세로 전락시킨 자다. 그리하여 ‘나’는 형제들과, 아끼는 과외 학생 ‘상준이’를 대동하고 일산 김대춘의 아파트로 쳐들어간다. 그러나 그곳에서 부모님을 죽인 것은 자신이 아니라는 김대춘의 때늦은 고백을 들은 형제들. 지금까지 그들의 삶을 추동해온 복수심은 돌연 갈 곳을 잃고, 가족들은 이 한바탕 소동극을 “그냥 그런 보통의 일”로 넘기려고 호들갑을 떤다. 하지만 모든 것을 보고 들은 상준이의 “잊기는 어떻게 잊어요?”라는 한마디는 이 한밤의 크리스마스를 보통때보다 조금 오래 붙잡아둘 것 같다.
고양이는 어떻게 단련되는가_ 가구회사의 베테랑 직원 ‘모과장’은 대기업과의 합병을 앞둔 회사로부터 ‘직능계발부’로 발령받는다. 책상도 없는 회사 강당에서 합판을 사포로 가는 의미 없는 작업을 하면서도, 모과장은 다른 직원들의 연대 투쟁 요청을 거절한다. 그의 처세술은 고양이처럼 “네발을 모두 몸체 밑에 말아넣고 그냥 있음으로써” 살아남는 것이다. 독립적이고 세련된 고양이처럼, 모과장은 회사에서 원하는 자질을 갖춰놓은 뒤 사장과 독대하여 자신의 처우에 대해 논의하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제야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해고자들이 회사 굴뚝에 설치하다 포기한 현수막. 굴뚝으로 올라가는 그의 마지막 모습에는 연대의 장에 발을 들이는 이의 꿋꿋하고 따스한 분위기가 감돈다.
■본문 중에서
십육 년 전, 연애는 아니더라도 연애 비슷한 무언가가 있었던 사람과 재회해서 서로가 서로를 인식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건가. 앞으로 어쩌냐는 말이지, 아내에게는 큰 불만이 없는데 아들은 소중한데. 그러니까 안 되었다. 필용이 양희를 볼 수는 있어도 양희가 필용을 봐서는 안 되었다. 시선은 일방이어야 하지 교환되면 안 되었다. 교환되면 무언가가 남으니까 남은 자리에는 뭔가가 생기니까, 자라니까, 있는 것은 있는 것대로 무게감을 지니고 실제가 되니까.
_「너무 한낮의 연애」, 28쪽
“미안하다. 심한 말 해서.”
필용이 사과했다.
“선배, 사과 같은 거 하지 말고 그냥 이런 나무 같은 거나 봐요.”
양희가 돌아서서 동네 어귀의 나무를 가리켰다. 거대한 느티나무였다. 수피가 벗겨지고 벗겨져 저렇게 한없이 벗겨져도 더 벗겨질 수피가 있다는 게 새삼스러운 느티나무였다.
“언제 봐도 나무 앞에서는 부끄럽질 않으니까, 비웃질 않으니까 나무나 보라고요.”
_「너무 한낮의 연애」, 37쪽
가여운 세실리아, 그 마음 내가 전문이지. 밤은 오고 잠은 가고 곁에는 침묵뿐이고 머릿속은 시끄럽고 그러면서도 뭐 또렷하게 어떤 생각은 또 할 수 없어서 그냥 나 자신이 깡통처럼 텅 빈 채 살랑바람에도 요란하게 굴러다니는 듯한 느낌. _「세실리아」, 89~90쪽
몽상은 노래처럼 리듬이 있는 것 같았다. 멈추고 연속되고 하면서 주기를 만든다. 큰오빠는 우리 원수이지만 우리 가장이고 우리 가장은 인간 말종이지만 지금은 죽음과 신 앞에 선 가엾은 단독자이며 원수를 갚으려는 전직 샐러리맨이다. 그렇게 몽상하다 멈추고 몽상하고 몽상하다보면 그런 일들이 다 맨숭맨숭해지면서 그냥 그런 보통의 일이 된다. 샐러리맨도 보통이고 마귀도 보통이다. 인간 말종도 원수도 가엾은 단독자도 다 보통의 것, 그냥 심상한 것, 아무렇지 않은 것, 잊으면 그만인 것, 거기서 거기인 것들이다. _「보통의 시절」, 221~222쪽
어떻게 보면 살아난 것은 아니었다. 죽을 수 있는 주체에서 간섭받는 객체로 물러선 것에 가까웠다. 하지만 고양이는 이 괴괴한 단독주택에서 움직이고 먹고 눕고 싸고 울고 할퀴는 유일한 생명체였으므로 고양이에 집중하는 것은 삶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바로 그 사실이 그를 죽음에서 건져냈다. _「고양이는 어떻게 단련되는가」, 254쪽
나는 일상을 가만히 견디다가도 어느 순간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상태가 되면서 주변의 누군가에게—낯선 당신에게라도—가서 막무가내로 묻고 싶을 때가 잦은데, 그건 그러니까 왜 이렇게 됐습니까, 하는 질문이다. 괜찮습니까, 하는 질문. 왜 이렇게 됐습니까, 괜찮습니까.
그렇게 물을 때 나는 사람들 곁에,
차가운 창의 흐릿한 입김처럼 서 있겠다, 누군가의 구만육천원처럼 서 있겠다, 문산의 느티나무처럼 서 있고, 잃어버린 다정한 개처럼 서 있겠다. _‘작가의 말’에서
■차례
너무 한낮의 연애 _007
조중균의 세계 _043
세실리아 _073
반월 _103
고기 _129
개를 기다리는 일 _153
우리가 어느 별에서 _179
보통의 시절 _205
고양이는 어떻게 단련되는가 _231
해설 | 강지희(문학평론가)
잔존의 파토스_261
작가의 말 _285
■김금희 1979년 부산에서 태어나 인천에서 성장했다. 인하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200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너의 도큐먼트」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조중균의 세계」로 2015년 젊은작가상, 「너무 한낮의 연애」로 2016년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했으며, 첫 소설집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로 제33회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