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도 잘 쓰는 가수”가 아니라 “노래도 부르는 시인”
_‘시는 무엇이고 문학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본래적 대답을 되찾는 계기
노벨문학상 역사 115년 만에 처음으로 대중음악가에게 상을 수여한 일은 분명 이례적이고 놀라운 사건이다. 1996년 시인 앨런 긴즈버그의 제안으로 버지니아 군사대학교 교수 고든 볼이 밥 딜런을 노벨문학상 후보에 추천한 이래 해마다 유력 후보 중 한 명으로 이름이 거론되긴 했지만, 2016년 실제로 수상 소식이 전해지자 문학계와 대중음악계는 물론 전 세계에서 그 ‘의외성’에 논란이 촉발되었다. 과연 그의 노랫말을 ‘문학’ 혹은 ‘시’로 볼 수 있느냐 하는 논쟁이었다.
하지만 ‘노벨문학상’ 영역에서의 이러한 논의와 관계없이, 그의 가사가 문학의 반열에 오른 건 이미 오래된 일이다. 1970년대부터 영문학계에서는 그의 노랫말을 텍스트로 하는 학위 논문이 제출되기 시작했고, 문학계 일부에서도 시로 인정하는 움직임이 일었다. 현재는 대학 강의에서 밥 딜런의 노랫말이 문학 텍스트로 활용됨은 물론, 다른 문학가들과 동등하게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노벨문학상 선정위원회가 내세운 이유 역시 “미국 음악의 전통 안에서 새로운 시적 표현을 창조해냈다”로, 시인으로서 밥 딜런의 공로를 인정했다.
또한 영문학 분야 가장 권위 있는 문학 선집으로 알려진 『노튼 앤솔러지』에도 딜런의 가사가 실려 있다. <스페인산 가죽 부츠(Boots of Spanish Leather)>가 『노튼 시선집(The Norton Anthology of Poetry)』(2005)에, <미스터 탬버린 맨(Mr. Tambourine Man)>이 『노튼 문학 입문집(Norton Introduction to Literature)』(2010)에 수록됐다.
더불어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딜런의 가사가 내포한 ‘건축적 완결성’과 ‘스토리텔링 능력’을 높이 평가했고, 시인 성기완은 딜런을 ‘랭보의 후예이자 20세기 최고의 음유시인’이라 일컬었다. 소설가 천명관은 그의 문학성과 영향력에 대해 ‘노벨문학상을 받지 않아도 그는 위대하며, 나아가 노벨보다 위대하다’는 말로 수상 여부에 관계없이 굳건할 그의 위치를 환기시켰으며, 이 책의 공역자인 시인 서대경과 황유원은 ‘옮긴이의 말’을 통해 딜런의 가사에 담긴 시적 탁월함과 문학적 우수성을 논했다.
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전하는 해외 언론들은 선정위원회의 선택을 옹호했고, 살만 루슈디, 조이스 캐롤 오츠, 스티븐 킹, 나오미 클라인 등 영미권 작가들 역시 축하의 메시지를 보내며 그의 가사를 시와 문학으로 보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대중음악계에서 그가 보여준 행보와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끊임없이 경계를 넘는’ 음악가라는 평가가 더욱 힘을 얻는 한편, 문학계에서는 시인으로서의 밥 딜런을 좀더 확실하고 정밀하게 조명함과 동시에 그야말로 시의 본래적 의미를 되묻고 되찾는 계기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가수로 활동하는 내내 자신의 정체성을 묻는 질문에 끊임없이 시달려온 딜런 역시 스스로를 ‘시인-뮤지션’이라고 했다가 때로는 ‘그냥 노래하고 춤추는 사람’이라고 잘라 말하기도 했지만 이번 수상을 계기로 이 오래된 질문에 어느 정도 대답을 얻은 듯 보인다.
“뛰어난 문학성으로 대중음악을 ‘예술이자 산업’의 본궤도에 올린 최초의 인물”
_‘노랫말 창작’을 뛰어넘어 대중음악계에 원시적 영향을 끼친 밥 딜런의 문학성
밥 딜런이 지닌 문학성은 ‘시적인 노랫말’을 창작해내는 행위에서 그치지 않고 더 멀리 뻗어나가 대중음악이라는 산업 전반에 결정적이고도 원시적인 영향을 끼쳤다. ‘아티스트’와 ‘작품’의 개념이 등장했던 1960년대에 데뷔한 밥 딜런은 그 독보적인 문학성과 예술성으로 비평가와 대중 양쪽을 사로잡으며 대중음악을 예술이자 산업의 본격적인 경지에 오르게 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따라서 그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대중음악사의 관점에서도 충분히 의미 있고 타당한 사건이라 할 만하다. 음악평론가 박준흠은 밥 딜런에 대해 ‘뛰어난 창작물’을 생산해 대중매체와 비평가의 강력한 조명을 받음과 동시에 엔터테인먼트 영역이 요구하는 ‘스타성’까지 갖춘 1960년대의 뮤지션이었다고 평했다.
음악평론가 강헌 역시 딜런이 대중음악사에 남긴 결정적 공헌이 다름 아닌 ‘언어’임을 강조한다. 그 언어의 힘이 담긴 노랫말 안에서 대중은 각성과 함께 진정한 예술의 힘을 경험했다는 것이다. 또한 강 평론가는 그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둘러싼 왈가왈부에 대해 “여전히 대중음악은 예술적 검토의 대상이 아니라는 역사적 시효가 말소당한 엘리트주의의 공허한 망령”이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밥 딜런은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40여 장에 달하는 정규 앨범을 발표하며 1억 장의 판매고를 올렸다. 젊은 시절부터 쌓아온 문학적 자양분 위에서 음악의 경계를 폭넓게 넘나들며 미국의 흑인과 백인 사회 양쪽을 모두 아울렀던 몇 안 되는 대중가수이자, 전 세계적으로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 독보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그리고 대중음악의 형식과 내용을 완성시켰던 그 문학적 예술적 힘은 다름 아닌 그가 평생을 써내려온 노랫말들 속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거침없이 자유로우면서도 놀라울 만큼 정밀한 밥 딜런의 언어”
_그 자체를 시로 읽어 마땅한, 진정한 문학의 힘이 생동하는 노랫말들
밥 딜런은 평면적 해석을 거부하고 끊임없는 언어실험을 통해 독특한 자기 문법을 창조해냈다. 그의 노랫말이 이룩한 미적 자율성은 미국 현대시의 빼어난 성취라 평가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리드미컬한 감각과 절묘한 각운, 난해한 비유, 생동하는 입말의 매력, 뛰어난 내러티브 직조 능력이 그 증거라 할 수 있다.
딜런은 타협 없이 예리한 언어로 ‘사회 부조리’와 ‘기득권자’를 비판하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한편으로는 절묘한 묘사와 서사로 ‘생에 내재된 필연적 비극’을 노래하며 이 세상을 살아가는 힘없고 소외된 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해줬다. 재앙의 바람이 그칠 줄 모르는 이 21세기에도 그의 노랫말은 문학으로서 음악으로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기타와 하모니카를 든 저항의 상징에서 반세기 대중음악사를 아우르는 거장이 되기까지”
_ 밥 딜런의 주요 앨범들
『밥 딜런: 시가 된 노래들 1961-2012』에는 밥 딜런의 37개 정규 앨범 중 커버곡만으로 이뤄졌거나 그의 자작곡이 포함되지 않은 것을 제외하고 총 31개 앨범의 노랫말이 실려 있다. 밥 딜런은 그의 음악의 뿌리라 불리는 포크송에서 시작해 로큰롤, 블루스, 컨트리송, 가스펠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거센 조롱과 비판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영감을 무한대로 확장한 그는 이제 평단과 대중의 호오가 무색할 만큼 유일무이한 자신의 우주를 구축한 예술가다. 음악평론가 임진모는 딱딱 끊어질 수 없는 경계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예술이라는 세계에서 밥 딜런이야말로 그 모호함의 미학을 진정으로 즐기는 사람이라고 평했다. 밥 딜런 앨범의 역사를 훑는 일은 반세기 넘는 대중음악사를 그대로 흡수하는 일에 다름없다.
밥 딜런과 이 책에 쏟아진 찬사들
한 사람의 대중음악인이 이토록 강렬하게 사회적으로 또 문화적으로 영향을 행사할 수 있을까? 그는 시집을 낸 적은 한 번도 없지만 그의 장구한 모든 앨범에 실린 노랫말은 어떤 시보다 시적이다. 밥 딜런이 세상에 내보낸 노래들의 진정한 가치는 음반가게의 진열대가 아니라 시대와 의식의 진열대에 배포되었다. 그리하여 밥 딜런이 대중음악사에 남긴 결정적 공헌은 다름 아닌 ‘언어’다. 그는 무엇보다도 노랫말의 혁명가다. _강헌(음악평론가, 『강헌의 한국대중문화사』 저자)
영원한 반전의 상징, 날개 달린 혀의 시인 밥 딜런은 바람과 길의 정치학을 독설 섞인 민중의 언어로 풀어낸 사람이다. 시의 영혼은 하나의 매체에 머무르지 않는다. 시는 여기저기 떠돈다. 밥 딜런은 ‘영속되는 순간적 이미지’라는 표현을 쓴 바 있다. 시의 혀가 풀리는 순간, 노래의 날개가 푸득거리는 순간, 우리의 무의식 깊이 들어 있는 신화 이전의 보편성이 떠오르고, 그 보편성은 숨김없는 열망을 담아 미래의 시간에 대한 진보적 전망이 된다. 밥 딜런은 바로 그 순간을 붙들어 거칠고 해학적인 민중의 언어로 우리 앞에 펼쳐 보인 20세기 최고의 음유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_성기완(시인, 계원예술대학교 교수)
밥 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 판단 유보로 일관했던 것은 ‘시인 밥 딜런’의 전모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 책 덕분에 지금은 안다. 그가 ‘가사도 잘 쓰는 가수’인 것이 아니라 ‘노래도 부르는 시인’이라는 것을. 자전적 술회의 허허로운 울림이나 진보적 발언의 지적 밀도 등은 얼마간 예상했던 미덕이지만, 그가 작품의 건축적 완결성에 얼마나 섬세한지, 시를 한 편의 소설처럼 읽게 만드는 스토리텔링에 얼마나 능한지를 알게 된 것은 뜻밖의 수확이다. 1995년에는 히니를, 1996년에는 쉼보르스카를, 2011년에는 트란스트뢰메르를 읽었듯이, 나는 지금 밥 딜런을 읽는다. _신형철(문학평론가)
음악이나 대중문화와의 접점을 넓히고 육성으로서의 리듬을 중시하는 딜런의 노랫말은 소수의 지식인들, 특히 시작법을 구체적으로 훈련받은 이들에게만 허가되던 협소한 방법론으로의 시의 벽을 무너뜨리고 문학의 장을 확장한다. 자신들의 정서를 지배하고 통제하던 당대의 정치적 문화적 위기 상황에 굴복하지 않고 대면했던 타협 없는 감수성의 언어가 딜런의 노랫말이라면, 이 노랫말을 시라고 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전쟁과 경제 위기, 난민 등 전 세계적 재앙의 국면이 다시금 불어닥친 21세기에 ‘문학의 자리’를 되묻는 질문이며, 시가 눈으로만 읽는 활자가 아니라 소리를 가진 거리의 노래라는 점을 재확인시키는 사건이다. _정은귀(한국외국어대학교 영미문학·문화학과 교수)
밥 딜런은 어마어마한 양의 곡을 써내려갔는데, 이 책이 바로 그 증거다. 너무나도 많은 별들이 요절해버린 이 로큰롤 왕국에서 그는 가장 오랫동안 생존해온 록의 레전드다. 그의 예술을 이해하려면 기존의 고리타분한 틀에서 벗어나 그 짓궂은 유머 감각에 몸을 맡겨야 한다. 마음을 열고 이 책을 넘기다보면 그대는 그의 위대함을 이해하게 되리. 로큰롤이여, 영원하라! 그리고 한때 로버트 지머먼이라 불리던 사나이, 시인 밥 딜런이여 영원하라. _한대수(가수)
그의 노랫말들은 내게 처음부터 끝까지 ‘시’였고, 시여야 했다. 그의 노랫말들을 철저히 문학 텍스트로서 읽고 옮겨야 한다는 내 결심이 옳았다는 걸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그의 텍스트를 이처럼 면밀히 읽어볼 귀한 기회를 얻지 못했더라면 평생 마주치지 못했을 희귀한 시의 발견이라 할 만했다. _서대경(시인)
그는 단순한 코드 몇 개와 동일한 멜로디를 반복하면서 그 좁은 형식 안에 끝없이 긴긴 영혼을 불어넣곤 한다. 그의 영혼이 직조한 내러티브에 빠져 이미 너무 늦어버린 밤에도 번역을 멈출 수 없던 적이 종종 있었다. _황유원(시인)
“밥 딜런의 가사는 내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었다. 그의 앨범을 처음 들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평생 동안.” _살만 루슈디
“밥 딜런의 가사를 문학으로 보는 데 의문의 여지가 없다.” _조이스 캐롤 오츠
“6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밥 딜런은 음악에 신화적 힘을 남겼고, 그의 걸걸한 목소리와 시적인 가사는 삶에 내재된 거대한 비극에 아름다움을 가져왔다.” _가디언
“노벨문학상은 밥 딜런이 송라이터 그 이상의 존재임을 확인시켜줬다.” _월스트리트저널
“밥 딜런은 이제 신전에 올랐다. 음악에서 수많은 경계를 밀어냈듯이 ‘문학’의 정의라는 경계를 힘차게 밀어내면서.” _로스앤젤레스 타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