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오래 살아남아 인류에 전승되는 이야기의 힘, ‘어린이와 고전’ 출간
어린이 고전의 영역을 확장하다!
21세기를 살아갈 미래의 주역들에게는 무엇보다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하다. 고여 있는 지식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지식은 상상력과 결합하여 놀라운 시너지 효과를 이뤄 낼 것이다. ‘어린이와 고전’은 지나간 시대를 답답하게 되짚는 고리타분한 발굴 작업이 아니다. 그것은 ‘오래된 미래’로서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때 그리스 로마 신화만 읽은 어린이와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놀랍도록 풍부한 이야기들을 함께 읽고 자란 어린이는 성장 과정에서 분명한 차이를 드러낼 것이다. _김남일(기획위원)
인류 최초의 위대한 문학 『길가메시』, 동양 최고의 대서사시 『라마야나』, 이집트를 대표하는 신화 『오시리스와 이시스』로 포문을 열었던 문학동네 ‘어린이와 고전’ 시리즈 제4권은 중세 유럽 기사문학의 걸작인 『니벨룽겐의 노래』이다.
‘어린이와 고전’ 시리즈는 각 지역에 오래 살아남아 전승되어 온 고전을 접하며, 다문화시대의 가치와 감각, 세계시민으로서의 공존과 공감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고자 기획되었다. 『일리아스』 『오디세이아』와 같이 널리 알려진 작품들은 물론, 북유럽 신화의 원전 『에다이야기』, 그리스 로마 신화의 최고 전범으로 평가되는 『변신이야기』, 그리고 우리에게는 생소한 고대 인도의 지혜와 상상력의 집성체인 『마하바라타』, 페르시아 문학의 정수 『샤나메』 같은 숨은 걸작들까지 발굴하여 기존 어린이 고전의 영역을 넓힐 것이다.
고전의 맛과 향기를 즐길 수 있는 국내 작가들의 유려한 문체와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혀 주는 구성, 그리고 당대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생생한 그림이 만나 오늘의 독자와 작품 사이의 수천 년 시간의 격차를 성큼 좁혀 줄 것이다.
유럽 기사문학의 걸작이자 유럽을 대표하는 영웅서사시 『니벨룽겐의 노래』
『니벨룽겐의 노래』는 게르만족의 대이동 시기인 400년대, 훈국에 의해 부르군트 왕국이 멸망한 사건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궁정 인물들의 사랑과 복수, 신의와 배신을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은 음유시인들에 의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다 1200년경에 문자로 기록돼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전체 39장 2379연에 달하는 방대한 서사시에는 5, 6세기의 역사적 인물과 사건, 오래된 신화와 설화가 융합되어 있다. 부르군트족이 보름스를 정복하여 왕국을 건설한 것, 훈족이 부르군트족을 굴복시킨 것, 부르군트 왕국을 다스린 세 왕과 권력싸움의 과정에서 죽은 지기베르트(지크프리트) 등은 역사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인물과 사건을 단순히 모아놓은 것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꽉 짜 놓아, 당시의 여러 신화나 영웅서사시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구조를 보인다는 점에서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는다. 괴테는 시적 우수성이 매우 탁월하며 어느 정도의 교양을 갖추기 위해 읽어야 할 작품으로 평했다. 신의와 명예, 용맹을 중요시한 이 작품은 게르만족의 자긍심을 높이고 정체성을 형성했으며 북유럽, 더 나아가 유럽인의 의식 밑바닥에 영향을 미치며 재생산되고 있다.
역사적 사실이자 환상적 요소가 녹아 있는 작품
원작 『니벨룽겐의 노래』는 2부로 구성되어 있지만 어린이 독자를 위해 4부로 나누었다. 1부는 크림힐트와 지크프리트가 만나 결혼하기까지, 2부는 하겐과 군터가 지크프리트를 죽음으로 몰아넣기까지, 3부는 고향을 떠나 훈국으로 간 크림힐트가 복수를 하기 위해 부르군트 왕국의 사람들을 초대하기까지, 4부는 훈국과 부르군트 왕국 간 영웅들의 전투와 복수의 화신이 된 크림힐트의 마지막을 다루고 있다. 연인들의 사랑과 복수, 군신관계인 왕과 제후, 용사들의 신의와 배신, 용과 인어, 마법의 투명 망토와 전설의 검 발뭉, 난쟁이족과 거인족 등 흥미를 돋우는 요소들이 포진해 있다. 특히 난쟁이족의 것이었다가 지크프리트의 것이 된 ‘니벨룽겐의 보물’이 크림힐트에게, 그것을 다시 군터와 하겐이 빼앗아 라인 강에 가라앉히기까지, 보물을 둘러싼 갈등과 행방이 흡입력 있고 그 의미를 곰곰 생각해 봄 직하다.
우리 민족의 의식 속에 단군신화와 주몽의 영웅담이 스며 있듯이 게르만 민족의 내면에도 그들의 정체성을 형성해 온 이야기가 있다. <니벨룽겐의 노래>가 바로 그 대표적인 영웅서사시이다. 비극적인 이야기 속에서 인물들은 절대적인 충성심을 보이고 신뢰를 목숨보다 더 소중히 여긴다. 이 작품은 독일뿐 아니라 유럽인 대부분의 의식에 영향을 미치고 그들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근대 이후 오늘날까지 유럽인들의 사고는 세계사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니벨룽겐의 노래』와 같은 작품을 통해 그들의 환상과 상상을 함께 공유한다면 우리 미래 세대의 잠재력과 소통 가능성은 더욱 커질 것이다._안덕훈
19세기 독일 화가들의 손에서 탄생한 니벨룽겐의 노래
‘어린이와 고전’은 작품이 탄생한 지역의 대표 그림 혹은 당대의 자료를 바탕으로 시대적·문화적 특색을 충실히 살려 그린 그림을 실어 이야기의 현장감과 생동감을 더했다. <니벨룽겐의 노래>를 표현한 그림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율리우스 슈노어 폰 카롤스펠트의 작품이다. 그는 레지덴츠 궁전의 벽면을 <니벨룽겐의 노래>의 장면들로 장식하기도 했다. 여기 실린 작품은 카롤스펠트와 뛰어난 장식성이 특징인 오이겐 노이로이터의 손길이 들어간 작품이다. 독일 중세 시대의 상황과 장엄하고 비극적이며 환상적인 서사의 분위기를 유감없이 전해 줄 것이다.
미래를 내다본 꿈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죽음을 맞자 크림힐트 공주는 누구하고도 사랑에 빠지지 않기로 결심한다. 그 결심은 운명의 상대인 지크프리트 왕자를 만나 깨어진다. 지크프리트 왕자는 용과 싸워 이긴 뒤 불사신이 된 영웅으로, 그 역시 크림힐트 공주를 보자마자 사랑을 느낀다. 지크프리트는 크림힐트의 오빠인 군터 왕의 소원을 들어주고 크림힐트와의 결혼을 약속받는다. 그땐 아무도 몰랐다. 그 소원이, 그 소원을 이루기 위해 한 행위가 후에 어떤 비극을 불러올지를. 군터 왕은 이웃나라를 다스리는 브륀힐트와 결혼하고 싶어 했고 그러기 위해선 그녀와 무시무시한 시합을 치러 이겨야만 한다. 군터 왕은 지크프리트가 지닌 투명 망토의 도움과 속임수로 소원을 이루지만 비밀은 오래갈 수 없다.
크림힐트는 누가 더 높은 신분인지를 두고 브륀힐트와 반목하게 되고, 브륀힐트의 결혼에 얽힌 비밀을 폭로하고 만다. 분노하는 브륀힐트. 이를 지켜보던 군터 왕의 신하인 하겐은 음모를 꾸며 지크프리트의 하나뿐인 약점을 크림힐트를 통해 알아낸다. 죽음을 맞는 지크프리트. 장례식장에서 지크프리트의 시신이 자신을 죽인 자를 알아보고 피를 흘리자 크림힐트는 하겐과 신의를 저버린 군터 왕을 향해 복수를 다짐한다. 그러나 하겐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지크프리트의 유산인 ‘니벨룽겐의 보물’을 라인 강 깊은 물속에 가라앉힌다.
세월은 흘러 막강한 나라인 훈국의 왕과 결혼한 크림힐트.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듯하지만 한 순간도 지크프리트에 대한 그리움을 놓은 적이 없다. 마침내 크림힐트는 복수를 실행에 옮기고 부르군트 왕국과 훈국 간에 처절한 전쟁이 벌어진다. 수많은 영웅이 죽고 그들의 우정과 맹세는 영원히 수장된 니벨룽겐의 보물처럼 비극으로 끝난다. 사랑했던 남편과 아들을 잃은 크림힐트마저 목숨을 잃으면서 니벨룽겐의 노래는 막을 내린다. 이 책의 제목인 ‘니벨룽겐의 노래’는 이야기 전체의 마지막 구절 ‘이것이 니벨룽겐의 슬픈 노래다’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