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명의 어둠이 되살아나는 날, 용마의 아이들이 있어
일곱 번째 화살로 어둠의 심장을 쏘리라!
이현 장편동화 『일곱 개의 화살』
십여 년 넘게 읽히는 동화 『짜장면 불어요』와 『장수 만세』, 본격 SF 창작동화 『로봇의 별』에서부터 최근작 『푸른 사자 와니니』, 『플레이 볼』까지 다양한 창작의 스펙트럼을 펼치는 작가 이현의 신작 장편동화가 출간되었다. 힘 있는 캐릭터와 촘촘한 얼개, 인간에 대한 부지런한 탐구를 토대로 한 생생한 묘사를 통해 실체 있는 감동을 건네는 작가의 특기는 이번 작품 『일곱 개의 화살』에서 그 절정을 보여준다. 신화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구축한 장대한 스케일의 세계, 그 안을 종횡무진 누비며 이어지는 긴장감 있는 서사는 어린이 독자들에게 흔치 않은 책 읽기의 쾌감을 선사한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이제 막 활을 가져도 좋을 나이가 된 세 아이, 마라와 동돌, 이도다. 어쩌면 아직 어리고 어쩌면 어떤 일이라도 해 낼 수 있는 열두 살, 그해의 오월제에서 최고의 궁수가 되기만을 꿈꾸던 아이들의 평화 앞에 갑작스레 드리운 검은 회오리. 『일곱 개의 화살』은 짙은 어둠이 집어삼킨 세상이어도 어딘가에는 반드시 존재하는, ‘빛’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는 올해로 활을 가져도 좋을 나이가 된, 난모리마을의 마라.
허공을 내리닫는 곤줄박이는 몰라도 언덕을 내리닫는 토끼 정도는
거뜬히 맞힐 자신 있어!
예로부터 궁수로 이름난 여자들이 많았던 가온국의 작은 마을 난모리, 올해로 열두 살이 된 마라는 오월제만을 기다리고 있다. 본래 마라에게는 ‘불이’라는 어엿한 이름이 있지만 하도 ‘마라’ 소리를 듣다 보니 그게 그만 이름이 되어 버렸다. 뛰지 마라, 던지지 마라, 싸우지 마라, 하지 마라 할 때 ‘마라’다. 마라네 식구는 어머니 아버지와 장성한 세 아들 잉걸, 괄, 불매에다 쌍둥이 남매 마라와 동돌까지 모두 일곱이다. 마라와 같은 날 태어난 과하마 우레와 암탉 꼬랑이, 오직 동돌만 따라다니는 고양이 콕도 함께다.
가뭄이 심해 어른들이 유난히 바빴던 그해 봄, 마라가 그토록 기다리던 첫활은 동돌이 먼저 차지하게 되었다. “바빠서 하나밖에 못 만들었다. 마라야, 조금만 기다리거라.” 어른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그 ‘조금’을 마라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우레와 함께 달려 도착한 강가 파수막에 큰대자로 퍼져 누워 “그냥 여기서 살까?” 생각하다 잠이 든 마라의 귀에 케에엥! 날카로운 여우 울음소리에 소스라치며 깨어난다. 무섭도록 조용한 사위, 황급히 파수막에서 내려가니 우레는 하늘 저편에 정신이 팔려 있다. 저 멀리 감은산 너머에서 뱀처럼 커다란 기다란 연기 덩어리가 빙글빙글 소용돌이치며 난모리마을로 다가오고 있었다. 회오리는 이내 닥쳐 올 마을의 시련을 예고하듯 검고 짙었다.
같은 시간, 감은산 깊은 숲에 흑쇠로 만든 검에 당한 구미호 치가 죽은 듯 쓰러져 있다. 구미호 강은, 감은산에서 가장 오래 묵은 구미호 치가 한낱 인간에게 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 치가 사라지면 치의 호림도 함께 사라질 것이다. 그럴 순 없다. 그렇게 되도록 놔둘 순 없다. 구미호의 숲 호림은 산의 령, 구미호는 호림의 아이, 산의 령을 지키는 자다. 치를 구하기 위해 인간의 도움이 필요해진 강은 마을로 향하고, 구렁빛 과하마를 타고 달려오는 인간의 아이, 마라와 만나게 된다.
너희는 용마의 아이들이야. 일곱 번째 화살로 어둠의 심장을 쏘는 아이들.
너희는 한날한시에 태어나 한마음으로 울었지. 이제 한마음으로
어둠의 심장을 겨누게 될 거야.
마라와 구미호 강의 기묘한 약속, 가온국의 천관 허수가 들이닥쳐 까발린 마라 부모님의 정체, 검은 수레에 잡혀 간 마을 사람들을 찾아 왕성을 향하는 험한 여정과 또 다른 용마의 아이 이도 왕자와의 만남, 가온국의 오래된 전설과 전쟁에 중독된 왕의 치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참담한 현실을 그린 『일곱 개의 화살 1』, 그리고 왕이 부리는 검은 회오리의 실체와 이승의 끝 쇠둘레에서 벌어지는 일들, 세 아이의 탄생에 얽힌 놀라운 비밀이 드러나는 『일곱 개의 화살 2』까지 흥미진진하게 이어지는 사건들은 쉴 틈을 주지 않고 독자의 눈과 손을 붙잡는다.
세상의 시작부터 존재해 왔으며 작디작은 검벌레의 모습으로 끈질기게 되살아나는 어둠과, 깊은 상처와 슬픔을 겪고 삶과 죽음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타넘으면서도 결코 꺼지지 않는 아이들 마음속 빛과의 장엄한 대결. 그 마지막 장에 이르면 우리는 마라, 동돌, 이도와 함께 우레의 등에 타고 먼 길을 질주한 듯 쾌감과 감동을 함께 느끼게 된다. 『일곱 개의 화살』의 진짜 힘은, 책장을 덮었을 때 마치 오늘을 위한 이야기인 양 더욱 선명하게 다가오는 메시지에 있다.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존재하는 소중한 그 무엇, 그리고 그것을 지켜내기 위한 작고 약한 존재들의 사투를 오늘의 사회 위에 겹쳐 보게 되는 것이다.
그림을 그린 화가 이지혜는 2015년 창작그림책 『사랑을 찾아서』를 통해서 그림책이라는 장르의 주제와 스타일, 독자층을 크게 확장시킨 바 있다. 애니메이션을 전공한 경력을 바탕으로 전통적인 그림책의 문법에서 벗어난 새로운 스타일을 보여주었고, 탐미적인 눈으로 포착해 낸 장면 장면을 쌓아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동화로는 첫 작품인 『일곱 개의 화살』 역시 새로운 시각으로 풀어내 주었다. 생동감 있는 인물 스케치와 신선한 화각으로 전개되는 그림은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재미마저 선사한다.
“나는 마라의 세상을 함께 달렸다. 동물과 사람 사이에 말이 통하고, 구미호가 호림을 지키는 세상. 손님네가 마을마다 병을 퍼뜨리고, 도사들이 신비한 도술을 부리기도 한다. 검벌레가 사람의 마음을 파고들어 사술로 세상을 위협하지만, 어림없다. 마라는 난모리마을에서 으뜸가는 궁수, 용마의 아이다.
그러다 우리 세상으로 돌아오니 곳곳에서 이런 노래가 울리고 있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가만, 이건 우레가 마라에게 했던 얘긴데! 용마 우레는 어딘가 다른 세상으로 떠난다고 했는데!
오늘도 어제와 다름없는 날이다. 하지만 이건 눈에 보이는 모습일 뿐, 하늘 저편에서 용마가 달려오는 날인지도 모르겠다.”
_‘작가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