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얘기 맛깔나게 잘 쓰던 천하의 이야기꾼
생존생계형 떠돌이 무사 김종광이 돌아왔다!
“재미있고 따뜻하고 감동적이면 좋겠지만
그렇지는 않더라도 갖가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읽을거리가 되기를 바란다.”
소설가 20년차 김종광의 첫 산문집
이 책은 1998년 계간 〈문학동네〉로 등단하여 『경찰서여, 안녕』 『모내기 블루스』 『처음의 아해들』 등의 소설을 통해 특유의 입담과 해학으로 주목받아온 김종광 작가의 첫 산문집이다. 짧은 글 속에 우리네 이야기를 능청스럽고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읽고 나면 마음이 짠해지게 만드는 저자의 주특기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이 책은 총 3부 50편의 글로 구성돼 있다. 1부와 2부에 실린 글은 옴니버스 소설의 형식을 띤 이웃 열전(列傳)으로, 일상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서민들의 삶을 포착하여 따뜻한 재미와 웃음을 선사한다. 1부와 2부가 타인의 삶을 담은 초상화라면, 3부 7편의 글은 자신과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일종의 자화상 같은 것으로, 저자가 가족의 일원으로 살아오며 글을 쓰고 가르쳐온 이야기를 덤덤하게 풀어내고 있다. 그런 만큼 그의 창작관을 엿볼 수도 있다.
짧지만 깊은 김종광식 야담(野談)
이 책에 실린 글들은 김종광만이 쓸 수 있는 서사로 무장하고 있다. 화려하지 않다. 특별한 상상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짧고 쉽고 깊을 뿐이다. 웃기고 재밌지만 끝내 자신을 비춰보게 한다. 주변을 돌아보게도 한다. 결혼식 전야에 술을 마시다 한없이 낮아지는 자존감에 아내 될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결혼을 취소했다가 온갖 해프닝 속에서 엇갈린 채 서로를 찾아헤매다 다시 사랑을 확인하는 얘기, 막내가 사준 휴대폰을 잃어버렸다가 남편의 산소에서 찾는 얘기, 2군만 전전하다 마침내 선발출장 기회를 얻었는데 막상 자기 방향으로 공이 오지 않는 유격수 얘기, 인정 많고 순해빠진 검찰청 9급 공무원의 좌충우돌 벌금징수기, 많이 읽고 많이 써도 발전이 없는 어느 작법 순례자의 이야기 등 이번 산문집은 정녕 얼굴만 봐도 좋은, 날것 그대로의 사람 냄새 나는 김종광식 글맛을 제대로 맛보게 해준다.
월간 〈샘터〉에 4년간 연재한 옴니버스 소설
1부와 2부는 월간 〈샘터〉에 최인호 작가가 20년간 연재했던 ‘가족’이라는 코너를 이어받아, ‘이웃’이라는 주제로 2010년 4월부터 2015년 1월까지 연재한 글 57편 중 43편을 가려뽑아서 수정·보완한 것이다.
♣책 속으로
“저 때문에 많이 늙으셨네요.” 아버지와 아들이 15개월 만에 주고받은 첫 말은 그토록 시시했다. 아버지는 피식 웃었다. 아들은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아버지가 친구에게 말하듯 했다. “어이없는 놈! 소주 한잔 할래?” 아들이 형에게 말하듯 대답했다. “좋아요!” _「소주 한잔 할래?」에서
저격수가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듯한, 에세이와 칼럼과 여행기와 동영상이 짬뽕된, ‘이것이 개 같은 인생이다!’라는 제목의 게시물 밑에 매달린 이 한 마디. ‘정신병원이네.’ ‘정신병원이네’가 붙은 지 3분 만에 붙은 저격수의 답글은 우리말 욕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그런 욕을 실제로 듣는다면 그 자리에서 속이 터져버릴지도 모른다. _「저격수와 노동꾼」에서
“청년도 알았겠지만, 아무나 몸뚱이로 벌어먹는 게 아뇨. 더 늦기 전에 공부허라고요. 내가 벽돌 찍어서 애들 가르치고 집 사고 그랬지만 사람이 헐 짓이 아니거든요. 몸뚱이로 밥 벌어먹는다는 것은 제 살을 깎아 먹고산다는 말이거든요.” _「벽돌 한 장의 무게」에서
힘든 일을 잘 겪어내면 행운이 오더라. 행운이 벅차면 여지없이 불행이 오더라. 인생은 새옹지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엔 ‘쨍하고 해 뜰 날’ 그거 한번 해볼게. 자, 박수!” _「전철의 기타맨」에서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하세요. 훔쳐갈 게 아무것도 없는 집에 가보면 집을 다 때려 부숴놨어요. 똥까지 싸질러놓고 별 지랄을 다 해놓는다고요. 패물하고 저금통이 집 살린 거지요.” _「차돌리기」에서
10여 년간 글을 많이 읽고 많이 썼지만, 스스로 글 쓰는 방법을 터득하기는커녕, 고통스럽고 막막함의 정도만 더해가니, ‘절로 잘 쓸 수밖에 없게 된다’가 아니라 ‘써도 써도 발전이 없다’였다. _「작법을 찾아서」에서
20년 가까이 가족을 팔아먹은 자는, 어쩐지 부끄러워, 반성도 해보고 변명도 해보고 핑계도 대보고 억지도 부려보고 별짓을 다 했건만, 창피함은 사그라지지 않는다. 더욱 서글픈 것은 앞으로도 쭉 가족을 팔아먹는 자로 살 것이라는 틀림없는 사실이겠다. 아버지 어머니! 고맙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내야, 아이야! 고맙고 미안하다. _「가족을 팔아먹는 자」에서
♣ 추천사
무협의 세계로 치자면 김종광은 소림과 무당파 같은 정파 협객이 아니다. 그렇다고 녹림 사파는 더더욱 아니다. 그는 생존생계형 떠돌이 무사다. 그가 싸움을 치르는 상대들은 예측하기 어렵다. 과부, 백수, 찌질이, 막노동꾼 등은 최소 태극 1장의 기초도 없이 김종광과 흙투성이 개싸움을 벌인다. 그렇게 수많은 혈전을 치르다보니 그는 오른손 왼손 구분 없이 잘 쓰게 되었고, 박치기, 고춧가루 뿌리기, 이로 물어뜯기, 어르고 달래기 신공도 자유자재로 펼친다. 그리고 어언지간에 이 떠돌이 무사는 처절하고 의뭉스럽고 배 째고 울컥하게 만드는 자신만의 독보적인 가전절학을 지니게 되었다.
자, 겁먹은 척 머리를 긁적이다 전광석화처럼 당신의 두 눈을 찔러오는 김종광의 출수를 조심하시라!
_정형수(드라마 〈다모〉 〈주몽〉 작가)
소설가가 소설만 써야 한다면 읽는 사람으로서 우리 참 서운했겠다 싶은 것이 예컨대 이런 ‘산문(散文)’을 마주했을 때이렷다. 그 단어가 흩은 산이 아니라 생생한 날것의 산으로 수렴될 만큼 신선한 숨쉬기로 호흡되는 글줄들일 때 그 귀함을 만나면 신이 나서 실실 웃게도 되니 이를테면 소설가 김종광의 산문을 흡입했을 때이렷다. 이십대 초반부터 보아온 그의 캐릭터는 언제나 쓰는 사람이었다. 만나면 반갑다며 썼냐? 하고 묻고 헤어질 땐 또 보자 하며 써라! 하던 사람. 언제나 주구장창 뭘 그렇게 써댈까 싶은데 그게 유난스럽다기보다 안 썼다, 못 썼어, 하는 날에는 되려 뭔 일 있는 건 아닐까 걱정을 하게 만들던 사람. 그래 그 ‘사람’ 얘기를 특히나 맛깔나게 잘 쓰던 소설가 김종광의 첫 산문을 단숨에 읽어나가면서 나는 내가 팔아먹을 내 ‘사람’이 누가 있더라,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가식을 모르고 거짓에 서툴고 솔직함은 알고 털털함에 익숙한 김종광의 산문이 나를 이렇게 관통할 줄이야. 사람을 공부하고 너를 생각한다, 라니 첫 산문에 다할 제목임도 분명한 듯하다. 재미있고 따뜻하고 감동적인 글을 찾아다닌다는 작가라지만 정작 그도 제 발밑은 어두웠던 모양이다. 보시라, 여기 다 있다!
_김민정(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