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식품 혹은 식재료의 원산지를 한 번이라도 유심히 본 적 있는가? 그렇다면 세계 도처의 나라와 도시 이름을 확인했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 밥상에 수입된 먹거리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한동안 열풍이 불었던 노르웨이의 연어와 이집트콩, 망고, 아티초크 샐러드, 전 세계 닭 공급의 매우 큰 부분을 차지하는 브라질의 닭 사육 현장 등 먹거리의 본고장을 찾아 경향신문 특별취재팀이 10개국으로 떠났다. 전작인 2015년 『지구의 밥상』을 통해서는 정치·경제·사회 모든 분야의 글로벌화가 우리 먹거리에 농축돼 있음을 보여줬다면, 이번 후속편 『밥상 위의 세계』에서는 세계화의 톱니바퀴 속에 물려 들어간 먹거리의 생산과 유통 과정의 단면을 관찰했다. 우리가 먹는 것들이 어디서 왔는지 혹은 지금 국내에서 생산되는 낯선 이름의 먹거리들의 원산지는 어디인지, 그것들을 생산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들여다보기 위해 애썼다. 먹거리 원산지의 자연환경, 사회현실, 구성원 등이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어떻게 바뀌어왔는지를 중심 뼈대로 놓고 현재 생산자, 유통·소매인 등을 심층 인터뷰해서 현황을 자세히 알려준다. 이 책은 먹거리를 역사와 문화가 집약된 산물로 조명할 뿐만 아니라 이를 키워내는 현장, 그리고 사람들의 생생한 삶을 입체적으로 그린 결과물이다.
- 예방주사를 맞고 컨베이어벨트 위에서 가공되는 노르웨이 연어
- 전 세계 어디서도 금하지 않는 진짜 ‘평화의 새’ 닭
- 고대 이집트 파라오도 먹던 콩, 산업 자원이자 미래 식량이 되다
- 빈라덴이 자금을 댄 참깨밭, 참깨 한 알에 담긴 수단 사람들의 ‘깨알 같은’ 이야기
- 필리핀 밭떼기 농장과 저임금 공장을 거쳐 제사상에 올라오는 망고
- 현대판 ‘노아의 방주’, 전 세계 씨앗을 보관하는 스발바르 국제 종자저장소
알에서부터 진열대 위 상품이 되기까지
먹거리의 여정: 노르웨이, 브라질에서
“팔팔하던 연어가 저렇게 불쌍하게 죽어서 포장되고 있어요. 알에서 막 깨어난 갓난 연어부터 새끼 연어, 어른 연어, 사망한 연어 다 봤네요.” 다이어트식이자 건강식이며 세계 10대 슈퍼푸드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연어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강물을 거스르는 이미지와 더해져 생선의 이미지는 싱싱하고 힘차기만 하다. 하지만 이 연어가 다른 수산물과 잡곡 등으로 구성된 사료, 각종 항생제로 ‘길러지며’ 양식장에서 거둬져 컨베이어벨트 위에 오르는 뒷이야기는 잘 알지 못한다. 연어의 트레이드마크인 주홍빛 역시 유전학·생물학적으로 ‘만들어진’ 산물이다.
전 세계인이 사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닭고기 역시 비슷한 신세다. 최장 16년까지 사는 닭은 육질과 시설비 감축을 위해 수명이 점점 더 짧아졌다. 생후 90일이면 2킬로그램이 넘고, 가슴살만 비대해져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한다. “멸종이 아니라 급증으로 비운을 맞이한” 비운의 동물이라고 말할 정도다. 달걀이 부화돼 닭고기로 다듬어져 마트에 진열되기까지의 과정이 얼마나 처참한지는 이미 많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공장식 축산의 현실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 외에도, 브라질에서 발견할 수 있는 또 다른 역사적인 맥락이 있다. 브라질을 세계의 ‘닭 공장’으로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이민자의 물결이었다. 사람들의 흐름이 문화와 산업을 바꾸고, 우리 식탁을 바꾼다는 것을 치킨을 통해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책은 식품화하기 위한 대형화된 생물 사육의 모든 과정을 보다 현지적인 관점에서 관찰하고, 또한 글로벌적인 관점으로 이동시켜 반추해보고 생각해볼 거리를 던져준다.
글로벌 기업 몬샌토 vs 소작 농민들
글로벌 먹거리 산업, 위기의 글로벌화: 인도, 수단에서
한때 ‘녹색혁명’의 모범 국가였던 인도는 1970년대 개량 종자와 화학 농법을 도입했다. 인도의 곡물 생산량은 몇 배로 뛰었고, 녹색혁명이 가져온 풍요는 마치 축복처럼 보였다. 하지만 글로벌 생명공학 회사의 종자와 농약 없이는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되자 농민의 빚이 홍수처럼 불어나기 시작했다. 그 탓에 농민들의 연쇄 자살이라는 참극이 일어났고, 지금도 매년 수천 명이 목숨을 끊는다. 그 결과는 인도가 자국에서는 2억 명이 굶주리지만 전 세계에 쌀과 밀을 수출하는 최대의 식량 공급기지 국가라는 아이러니로 나타났다.
망고 중에서도 가장 달콤하다는 칼라바우는 정작 현지에서는 찾아보기가 어렵다. 수확철이면 전량 수출되기 때문이다. 망고 역시 다국적 기업인 바이엘, 몬샌토에서 만든 농약으로 생산되고, 농약 스프레이 업자가 수확철에 소농을 고용해 망고를 따는 구조다. 그렇게 수확된 망고는 공장으로 실려가 저임금 노동자의 손에 의해 살균 과정을 거치고 크기별로 분류되어 한국 땅에 들어온다.
농업이 산업화되면서 다국적 기업이 종자와 농약의 생산·유통을 도맡았다. 수익성이 있는 작물만 재배되고, 종 다양성은 위협받는다. 작물의 생산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유전자 변형도 흔하게 이뤄진다. 곡물은 인간만을 위한 식품이 아니라 가축용 사료이기도 하기에 전 세계인의 육식을 감당하기 위해 아마존 밀림을 벌목해 그 자리에 밭을 경작하기도 한다. ‘중국인들이 소고기를 많이 먹으면서 아마존에 콩밭이 늘어나는’ 상황이다. 한편 각 나라별로 곡물 자급률은 떨어지고 있고, 국제 농산물 가격의 흐름에 따라 국내 정치 상황도 급변한다. 기후 변화는 또 다른 변수다. 가뭄이 잦아지고 적산온도(생육 일수의 일평균기온을 적산한 것)가 부족하거나 넘칠수록 환경에 민감한 농업은 위협받으며 이는 오롯이 농민의 걱정거리가 된다. 한낮의 수은주가 40도씨 가까이 오르는 땡볕에서 참깨 농사를 짓고 해마다 수확량에 울고 웃는 이들이 있다. 참깨 한 알, 콩 한 쪽에도 농민의 삶이 담겨 있는 것이다.
결국 돌아갈 곳은 땅이다
먹거리 세계화·산업화에 저항하다: 시칠리아, 북극에서
전통에 대한 강한 자부심으로 채소를 직접 키우고 먹는 사람들이 있다. 음식 이야기로 대화가 끊이지 않는 이탈리아 사람들이다. 이탈리아에서도 맛의 본산이자 고향으로 불리는 시칠리아 섬에서는 자신의 이름을 브랜드 삼아 채소를 기르고 시장에 내다 판다. 시칠리아 곳곳에서는 늘 크고 작은 농산물 축제가 열리며 이곳에서 사람들은 먹거리를 지키기 위해 고민을 나누고 해결책을 모색한다. 맥도널드가 들어오는 것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전 세계적으로 흔한 스타벅스도 아직 진출하지 못했을 정도로 식문화에 관한 한 보수적이다. 입맛의 세계화 대신 ‘신토불이’ 정신을 선택한 시칠리아 사람들은 농가에서 저마다의 입맛과 방식으로 농작물을 재배하며 먹거리 다양성과 고유성을 지키고 있다.
인류는 재앙에 대비해 먹거리의 근원인 씨앗을 보관해두었다. 북극권 스발바르 섬에 위치한 국제 종자저장소가 먹거리의 방주인 셈이다. 이곳 종자저장소는 핵무기 공격과 소행성 충돌까지 염두에 두고 설계됐고, 현재 88만여 종의 유전자원을 보관하고 있다. 미래를 대비해서라기보다는 생산성과 수익성에 밀려 토종 종자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개량종자가 차지하고 있어 토종 유전자원이 멸종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에서 출발했다. 씨앗은 한번 잃어버리면 복원할 수 없다. 저항력과 적응력이 우수한 토종과 달리 개량종은 병충해나 전염병에 취약하다. 종 다양성이 무너지고 특정 개량 품종이 절대다수를 차지한다면, 한순간에 멸종될 위험도 커진다. 그때 원형이 남아 있지 않다면 먹거리의 종말이 올지도 모르기에 전 세계가 한 뜻으로 ‘최후의 보루’인 국제 종자저장소에 씨앗을 보관한다. 책에서는 이곳을 직접 방문해 역사적으로 세계 곳곳의 종자저장소가 어떤 경로를 거쳐서 짓고 허물기를 반복해 지금의 단계에 이르렀는지를 자세히 살펴보고 있다.
좋은 먹거리는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좀더 불편하고 느린 밥상으로의 전환
얼마 전 살충제 달걀 파동이 일면서 먹거리 안전에 관한 관심도 한층 높아졌다. 이따금씩 유행하는 조류 독감이나 사람-동물 간 바이러스 전염 등의 문제로 인해 공장식 축산과 비위생적·비윤리적 도살 과정은 이미 문제화된 지 오래다. 이에 대해 제동을 거는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농산물과 축산물을 생산하는 농장과 공장은 대규모화되고 있으며 판로 역시 세계 시장으로 확대되었다. 우리는 더욱 간단하고 편리하게 다른 나라로부터 수입한 먹거리를 살 수 있다. 이 거대한 흐름 자체를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좀더 건강하고 안전한 먹거리를 위해서 작지만 의미 있는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유럽연합에서는 식탁 위에 올라오는 돼지고기의 생산과 유통을 알게 된 소비자들이 나서서 좁디좁은 분만틀을 축산 농장에서 퇴출시켰다. 동물복지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지며 지속 가능한 농업과 어업을 위해 인증 제도도 마련되고 있다.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가장 먼저 할 일은 밥상 위의 생선과 고기, 채소와 과일이 어떻게 나의 몸속으로 오는지 아는 것부터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