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작가상, 문지문학상, 김준성문학상 수상 작가
김솔 신작 장편소설
201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내기의 목적」이 당선되어 등단한 김솔의 신작 장편소설 『마카로니 프로젝트』가 출간되었다. 김솔은 등단작부터 “발상도 좋고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힘도 좋다”(심사평)라는 평을 들으며, 특유의 상상력과 입담으로 새로운 이야기꾼의 탄생을 예감케 했다. 그리고 등단 후 6년 동안 기발하고 밀도 높은 두 권의 소설집과 두 권의 장편소설을 쉬지 않고 펴내며, 한국문학의 ‘상상 아카이브’임을 스스로 증명해내고 있다. 그의 세번째 장편소설 『마카로니 프로젝트』는 자본주의의 세계에서 회사란 무엇인지, 이 세계에서 온전하고 현명하게 살아가는 길이 무엇인지를 윤리가 아닌 생존의 영역에서 날카롭게 묻는 소설이다. 숨가쁘게 달려온 김솔 소설 ‘시즌 1’의 하이라이트가 될 작품이다.
회사의 선고에 맞서 함께 파멸할 것인가
끝내 이곳에 남아 생존을 모색할 것인가
회사를 움직이는 것은 누구인가
미국에 본사를 둔 다국적 무기회사가 영업 실적 부진을 이유로 이탈리아 피렌체 공장의 폐쇄 결정을 내린다. 이에 유럽 지역 영업본부장과 피렌체 공장장은 각 부서의 팀장들을 비밀리에 모아 직원들의 동요나 저항 없이 순조롭게 공장을 폐쇄하기 위한 계획인 ‘마카로니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팀장들은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게 될 동료들에 대한 안쓰러움과 그들을 배신한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하다가도 은밀한 프로젝트에 동참함으로써 회사에 남을 가능성이 커졌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그러나 공식적인 공장 폐쇄 발표를 접한 직원들의 반발은 예상보다 훨씬 거세다. 공장의 기계를 파괴하거나 집기를 약탈하는 등 무력시위를 벌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팀장을 찾아가 동정심에 호소하기도 한다. 다가올 운명에 자포자기하며 최대한의 보상을 얻어 퇴사하려는 쪽과 어떻게든 공장 폐쇄를 막아야 한다는 쪽 사이의 팽팽한 다툼도 생긴다. 또한 공장 폐쇄 결정은 공장 인근의 식당이나 집 주인들에게도 영향을 끼쳐 도미노처럼 연쇄적인 불행을 불러일으키는데…… 각자의 생존을 모색한 이들의 노력은 결국 어떻게 될까?
김솔은 ‘이것이냐 저것이냐’ 양자택일할 수 없는 상황 속으로 인물들을 몰아넣음으로써 질문 자체의 모순을 드러낸다. 즉 저마다의 방식으로 ‘최선의 삶’을 도모할 때 어느 쪽이 절대선이거나 윤리적으로 우선한다고 쉽게 판단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또한 김솔의 앞선 소설이 그렇듯 이 작품에도 피렌체라는 이국적인 공간과 프랑스, 네덜란드, 그리스 등 다국적의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소설의 배경을 낯설게 하고 이야기 자체에 빠져들게 함으로써 인물들 사이의 갈등과 거기서 생겨나는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좀더 선명하게 드러내 보인다.
구조조정을 위한 은밀한 프로젝트에 속절없이 포박된 사람들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좇는 비밀스러운 시선과
그들에게 주어진 피할 수 없는 질문
『마카로니 프로젝트』는 회사의 일방적인 공장 폐쇄 선고와 그에 맞선, 혹은 그것을 충실히 이행해냄으로써 자신의 자리를 지켜내려는 사람들의 고군분투를 치밀하고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작가 스스로가 20년 가까이 회사생활을 해온 만큼 상사와 부하 직원 사이의 영원히 메울 수 없는 간극이나, 각 부서 사이의 보이지 않는 알력 싸움, 무엇보다 자신의 생계를 움켜쥔 회사라는 거대한 힘 앞에 각자의 미래를 결정할 수 없는 불합리성을 파헤치는 솜씨가 탁월하다. 특히 갑작스러운 선고를 접한 직원들의 심리가 사태의 전개에 따라 변화하는 과정을 세세하게 묘사하면서 뛰어난 심리소설로서의 면모도 보인다. 최근 전해진 한국지엠 군산공장의 폐쇄 소식과 소설의 이야기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는 사실도 공교롭다. 회사의 기습적인 공장 폐쇄 발표로 수천 명의 직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되고, 협력업체 직원들과 공장을 중심으로 상권을 이루어 살아가던 사람들까지 생계를 박탈당할 위기에 처했다. 어디서부터 이러한 ‘재앙’이 시작되었는지 명확한 원인을 찾아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사실도 소설과 동일하다(소설의 후반부에 마카로니 프로젝트의 핵심 인물인 유럽 지역 영업본부장조차 공장 폐쇄를 막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음이 밝혀진다). 김솔은 오랜 직장생활과 소설가로서의 삶을 균등하게 병행하면서 회사라는, 그리고 자본주의라는,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외면할 수 없는 세계의 본질에 대해 누구보다 생생하고 절실하게 묻고 있다. 이 소설을 단순한 허구로 읽고 지나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솔 소설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지적이고 시니컬한 농담과 기발한 메타소설적 형식 실험 등도 여전하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마카로니 프로젝트』가 기이하지만 난해하다는 김솔에 대한 편견을 깨고 명민하고 날렵한 김솔의 소설세계로 이끄는 가장 확실한 패스트 트랙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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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이 폐쇄되고 대부분의 직원들은 해고되었다.
해고는 곧 학살이라는 주장은 무시되었다.
현행 법률에 의거한 퇴직금이 지불되었을 때 수령을 거부한 직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_‘작가의 말’ 중에서
■ 책 속에서
인간 스스로 지옥을 만든 이상 신은 그런 인간을 보호할 리 없다는 사실과, 악수만으로 이해하거나 해결할 수 있는 고통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적어도 그는 잘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16쪽)
빼앗은 자들과 빼앗긴 자들 사이의 긴장과 갈등, 그리고 변증법적 합의와 주기적 갱신, 그런 과정으로 자본주의가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은 초등학생에게도 상식이지.(23쪽)
직업은 신성하고 그 신성은 어느 누구도 부정하거나 폄훼할 수 없으므로 굳이 누가 누구에게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었다. 모든 사람의 책임은 어떤 사람의 책임도 아니므로.(32쪽)
절망이나 희망 중 하나만을 선택하기에 그는 너무 오랫동안 이 회사에서 일했다. 그는 자신이 통과해온 시공간과 자식들이 통과해야 할 그것을 한꺼번에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현재의 상황은 그런 모호한 태도를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게 뻔했다. 그러니 주변 환경에 맞춰 부지런히 피부색을 바꾸고 묵묵히 따르는 척할 수밖에.(59쪽)
아무리 저항하더라도 결국 공장은 폐쇄되고 직원들은 모두 해고되겠지만, 마지막 남은 자가 모든 직원들을 대신하여 금붕어처럼 하찮은 존재에게까지도 관심을 쏟는다면, 직원으로서는 실패했을지언정 인간으로서는 결코 그러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70쪽)
공동의 희망을 좇아 함께 아름다운 파산을 선택하는 게 인간적인 것일까, 아니면 파산 전에 제 몫을 챙겨 떠나는 게 더 인간적일까.(77∼78쪽)
모든 새벽은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는 것보다 누군가의 말을 들어주는 일이 더 어울리는 시간일는지도 몰랐다.(104쪽)
우주는 비어 있는 게 아니라 어두운 물질로 가득 채워져 있는 것이다. 인생에 있어 그 암흑 물질이라고 하면 시행착오가 아니겠는가. 인간은 결코 똑바로 걸을 수 없다. 설령 똑바로 걷는 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똑바로 진행되지 않는 시간 위에 올라타고 있는 이상 목적지에 곧바로 이를 순 없다. 하지만 어느 인생이든 반드시 시작한 곳에서 끝이 날 것이고 이 우주에서 아무것도 가지고 나갈 수는 없으리라.(111쪽)
대비한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건 애당초 폭풍이나 비극도 아닐 것이다. 그리고 폭풍이나 비극에 휘둘리지 않는 건 운명도 아니다.(134쪽)
■ 차례
1장 이방인 _7
2장 협조 _42
3장 시행착오 _82
4장 저항 _119
5장 파멸-최종본 _153
5장 파멸-초고본 _157
6장 재회 _183
0장 결정 _219
작가의 말 _260
★ 김솔 │ 1973년 광주에서 태어났다. 201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내기의 목적」이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암스테르담 가라지 세일 두번째』 『망상,어』, 장편소설 『너도밤나무 바이러스』 『보편적 정신』이 있다. 제3회 문지문학상, 제22회 김준성문학상, 제7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