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들의 신』의 작가 아룬다티 로이의 아름답고 통렬한 르포르타주
아룬다티 로이의 『자본주의: 유령 이야기』가 문학동네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1997년 첫 장편소설 『작은 것들의 신』으로 부커상을 수상하며 일약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한 그는, 오랜 시간 동안 사회운동에 참여하며 조국 인도와 세계의 다양한 이슈에 대해 발언해왔다. 아룬다티 로이는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이 잘못된 방향을 향해 가고 있으며 이를 민중운동을 통해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직접 여러 현장을 발 벗고 찾아다니며 활발하게 조사와 취재를 한 끝에 결실을 맺은 이 책은 그가 가장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부조리를 명확하게 드러내는 빼어난 르포르타주로, 아룬다티 로이식 저널리즘의 장점이 잘 드러나 있다. 서늘하고 날카로운 문체 속에 스며 있는 치명적인 아름다움은 이 글이 건조한 성격을 띠기 쉬운 논픽션이라는 사실을 순간순간 잊게 만든다.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 국가” 인도에서 일어나는 전 지구적 자본주의의 횡포
자본주의의 무덤을 파는 자들은 어쩌면 자본가 자신들인지도 모른다
이야기는 세계적인 거부 무케시 암바니의 대저택 ‘안틸라’ 앞에서 시작된다. 총 27층에 헬리콥터 이착륙장 세 곳, 엘리베이터 아홉 대, 여러 개의 공중정원, 무도회장, 웨더룸, 헬스클럽과 여섯 층에 이르는 주차장, 600여 명에 이르는 일꾼을 거느린 이 거대한 현대식 궁전 앞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압도당하고 만다. 암바니 일가는 휘황찬란한 그곳을 대부분 비운 상태라고 한다. 그 주변에서 배회하는 것은 가난한 서민과 고향 땅에서 쫓겨나 도심을 배회하는 빈민들뿐이다. 뭄바이에 밤이 내려앉으면, 풀 먹인 리넨 셔츠를 입고 손에는 지직거리는 워키토키를 든 경비병들이 그 금지된 문간 앞에 나타난다. 유령들을 겁주어 쫓아내기 위함인지 환한 불빛이 밝혀진다. 동네 사람들은 안틸라의 밝은 빛 때문에 밤을 도둑맞았다고 투덜댄다.
인구 12억의 국가 인도에서 상위권 부자 100명의 손에 국내총생산의 4분의 1에 맞먹는 자산이 집중되어 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는 없다는 사실이 증명되고 있지만, ‘분수효과(Fountain effect)’는 확실했다. 부유한 사람들은 쉽게 더욱 부유해지고, 가난한 사람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여전히 가난하다. 이러한 광경은 비단 인도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여러 국가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룬다티 로이가 직접 밝힌 바에 따르면, 이 책의 주제는 현대 자본주의의 작동방식이다. 그는 자본주의의 영향이 단순히 한 국가, 또는 여러 국가의 기업화와 민영화에 그치지 않고 우리를 길들여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누군가로 바꾸어놓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냉혹한 인도의 상황을 세세히 그려내며 우리를 설득한다. 오염된 강과 헐벗은 산, 벌거벗은 숲들. 빚에 쪼들려 스스로 목숨을 끊은 25만 농민들과, 중산층에게 자리를 내주기 위해 가진 것들을 빼앗기고 가난으로 내몰린 8억 명의 ‘유령’들. 하루 20루피(원화로 300~400원)도 안 되는 돈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들.
아룬다티 로이는 누가 이들을 살아 있지만 희미해져버린, 유령과 같은 존재로 만들었는지에 대해 조목조목 따지고 비판한다. 단순히 인도와 세계 각국의 정부들, 그리고 대기업들뿐만이 아니다. 엘리트들이 운영하고 협력하는 유엔과 IMF, 월드뱅크, 탄생부터 대자본의 수족임이 분명한 포드, 록펠러 등 국제적 ‘비영리’ 재단들과 그들이 펼치는 눈부신 문화 프로젝트들…… 그의 가차없는 비판의 시선에선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넬슨 만델라와 그라민 은행도 벗어날 수 없으며, 심지어 “기업형 출판사에서 인세를 받아 먹고사는” 저자 자신도 자유롭지 않다. 우리는 모두 포위상태다.
“좋은 소식은 사람들이 당할 만큼 당했고 이제 더는 참을 생각이 없다는 것입니다.”
책의 말미에 실린, 로이가 피플스유니버시티에서 진행한 강연은 자본주의의 강한 볕에 시들어버린 민주주의를 되살리기 위해 우리 모두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그는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를 예로 들면서, 전 세계가 염원하는 “미국적 삶의 방식”의 심장부인 경제수도 뉴욕에서 어떻게 새로운 상상력과 정치적 언어가 자리잡을 수 있었는지 이야기한다. 이 시위를 계기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일어서서 가장 부유한 기업들의 앞길을 막아서는 수많은 저항운동이 널리 퍼져나가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아룬다티 로이는 자본주의를 송두리째 갈아엎자고, 다소 무모해 보일 정도로 용감하게 선포했다. 혁명가의 재목들을 월급쟁이 활동가로, 펀드 유치 전문가로, 책상 앞을 떠나지 않는 지식인으로, 영화 제작자로 만들어 정면대결을 피하게 만드는 시대에 그의 급진적인 주장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아니, 누가 그의 주장을 급진적으로 ‘보이도록’ 만들었을까? 기업의 교차소유를 금지하고, 천연자원과 물, 전력 등 인간의 삶에 필수적인 요소들을 민영화하지 않고, 모든 사람이 주거와 보건과 교육의 권리를 누리도록 만들고, 부자의 자녀들이 부모의 부를 물려받지 못하게 하는 것이 그렇게 위험한 일일까? 이제 아룬다티 로이와 함께, 다시금 새로운 세상을 상상해봐도 좋을 때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