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이 허락하는 한 맛있는 음식을 먹어라
힘이 닿는 한 미각의 욕구를 충족시켜라
“요리料理란 글자 그대로 음식食의 이치理를 헤아린다料는 뜻이다!”
이 책은 요리라는 광대무변의 세계를 거침없이 거니는 ‘20세기 일본 최고의 미식가’ 로산진의 음식 에세이다. 요리를 하는 이의 첫째 덕목은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것인데, 이 책은 바로 재료를 음미하는 마음가짐으로 가닿는 궁극의 음식 탐험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먹는 자의 미덕은 무엇일까? 한 끼 한 끼 때우는 법 없이 미식을 추구한다! 그것은 사치라기보다 삶 자체다. 맛없는 음식을 먹고도 아무렇지 않은가? 그러면 자신을 돌아보라고 하고 싶다. 삶의 수준은 요리와 밀접하기 마련인데 지금 당신의 운명은 괜찮은 건가?
제대로 된 요리가 나오려면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 질 좋은 걸 선호하는 사람, 사치스러운 걸 추구하는 사람 등 저마다 다양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만약 당신이 먹고 있는 음식이 온갖 기교만 부린 거라면 그 요리사는 요리에 자신이 없는 사람이구나, 라고 판단해도 된다. 본질보다는 외양을 그럴듯하게 치장한 사람은 먹는 자로 하여금 맛있는 음식을 먹을 기회를 박탈한 것이므로 쉽게 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
당신은 미식가인가? ‘가성비’를 따지는가 아니면 ‘가심비’를 따지는가. 음식의 그윽한 세계를 원한다면 이 책을 통해 반열에 오를 만한 지침들을 얻을 것이다. 막 미식에 입문한 이들은 저자의 경험적 이야기로부터 식재료의 기본부터 차근차근 알아가는 재미에 빠질 것이다. 혹은 음식을 맛있게 먹고자 하는 공복 상태만으로도 책을 읽을 준비가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음식은 배만 채우는 것일 뿐 어떤 것이든 무관하다는 사람만은 이 책을 멀리하길 바란다.
닭은 중닭, 도미는 1.5~2킬로그램
맛있는 음식이라 하면 노력을 많이 들였으리라 생각하지만,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요리의 맛은 재료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어떤 물, 어떤 채소, 어떤 생선, 어떤 육류가 맛있고 좋은 것인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요리를 논할 수 없다.
기초공사가 가장 중요하듯이 요리도 기본 바탕 몇 자락을 깔고 가야 한다. 닭고기는 다 자란 닭보다는 계란을 낳기 전인 중닭이 육질이나 맛이 더 뛰어나다. 도미는 1.5~2킬로그램이 가장 적당하고 4킬로그램이 넘으면 감칠맛이 없다. 커다란 도미는 외양이 훌륭해 보일지언정 혀를 만족시키지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작은 도미의 맛은 무조건 뛰어난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모든 일은 간단치 않은 것이다. 또한 초보자는 어시장에서 펄떡거리는 도미를 보면 싱싱하니까 맛있을 거라고 넘겨짚지만 늘 그런 것도 아니다. 비록 죽은 것이라도 바다에서 잡자마자 피를 빼서 잘 보존한 상품上品 도미가 활어 도미보다 더 맛있을 때가 있다.
본래 음식의 맛은 재료에 달려 있으므로 재료가 나쁘면 아무리 솜씨 좋은 요리사라도 별 도리가 없다. 토란 하나만 해도 돌처럼 딱딱한 토란은 요리사가 아무리 정성을 들여도 맛있게 삶기 어렵다. 생선 또한 기름기가 없는 것은 그야말로 굽든 버터를 바르든 성게알젓을 바르든 맛을 살리기 어렵다. 재료를 엄선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진정한 맛을 알려면 계속 먹어보는 수밖에 없다
늘 맛있는 것을 먹고 싶은 바람은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난다. 누군가가 주는 대로 먹기만 하는 건 생을 연장하는 데만 급급해하는 태도 아닐까. 세상살이에 찌든 많은 이는 요즘 세상에 값싸고 영양가만 있으면 됐지 하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영양 부족의 인간으로 만들고 있다.
칼로리나 비타민에 일일이 신경을 쓴 요리는 사실 요리라기보다는 영양제에 가깝다. 그러니 당연히 맛있을 리가 없다. 로산진은 ‘영양학적 요리’란 어린아이나 환자처럼 음식을 가려먹어야 하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며, 그 외의 사람들은 각자 먹고 싶은 대로 자기 입맛에 맞는 식사를 한다면 칼로리나 비타민 따위를 걱정하지 않아도 저절로 건강해진다고 본다. 당연히 음식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필요하며, 이는 계속 먹어보지 않는 한 발견할 수 없다.
날이 추워지면 수많은 종류의 미식이 찾아온다. 중간 크기의 복어를 먹는 기쁨, 교토의 죽순을 맛보는 행복. 게다가 지방이 풍부한 노토 산 방어회는 생각만 해도 입안에 군침이 돈다. 모치도 간모치寒餠라고 하는 것이 가장 맛있다. 행여 참다랑어 같은 존재는 화제에 올려선 안 된다. 비교급이 안 되기 때문이다.
로산진은 10월부터 초봄인 2월까지를 미식 다산기多産期로 정하고 맛을 즐기려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이 계절을 헛되이 보낸 적 없이 미식가로서, 인간 본연의 욕구와 미의식을 추구했던 것이다.
말린 청어알은 소리로 먹는 것
본래 음식의 맛이란 미각에만 좌우되는 게 아니다. 바삭바삭해야 맛있는 것, 쫀득쫀득해야 좋은 것, 졸깃졸깃해야 맛있는 것, 끈끈해야 좋은 것, 아삭아삭해야 좋은 것, 흐물흐물해야 맛있는 것, 폭신폭신하고 바슬바슬해야 하는 것, 파삭파삭해야 맛있는 것, 오독오독한 것, 탄력이 있어야 맛있는 것, 탄력이 없어서 맛있는 것, 부드러워서 좋은 것 및 딱딱해도 되는 것과 안 되는 것……
청어알은 오도독오도독 깨물어 먹는 소리에 맛의 핵심이 있다. 소리가 맛을 돋우는 데 한몫하는 것은 생선알 외에도 해파리, 목이버섯, 전병, 단무지 등이 있다. 말린 청어알은 입속에서 생선알이 탄환처럼 터지면서 울려 퍼지는 교향곡으로 그 진미를 발휘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가 좋지 않은 사람은 청어알이라는 거대한 세계(?)를 잃어버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특히 청어알의 어미, 즉 청어 자체는 말려서 먹는 쪽이 더 맛있다. 조림이나 구이는 맛이 별로인 반면, 배를 갈라 손질해서 말린 후 이것을 다시 물에 담가 부드럽게 불려서 요리하면 훌륭한 음식으로 재탄생한다. 이처럼 날것보다 말린 것을 물에 불려 먹는 쪽이 더 맛있는 식재료로는 해삼이나 상어 지느러미, 버섯류가 있지만, 그렇게 흔한 것은 아니다.
기본인 밥과 국물은 어떻게?
참치나 도미가 어디서 잡힌 게 맛있고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속속들이 알고 있으면서도 밥의 맛을 모른다면 제대로 된 미식가가 아니다. ‘국물용 다시마는 어떤 게 좋은가’, 말하자면 이런 게 요리사의 기본 실력이다. 도쿄에서는 다시마 우려낸 국물을 요릿집에서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다시마 맛국물은 굉장히 훌륭한 재료로 생선 요리에 가장 잘 어울리는 반면, 가쓰오부시 국물은 생선 요리에 넣으면 안 좋다. 가쓰오부시가 생선이기 때문에 중복되는 재료인 데다 담백한 맛을 잃어버린다. 교토에서는 오래전부터 다시마 맛국물을 요리에 이용해왔는데, 이는 홋카이도에서 채취한 다시마가 교토까지 흘러들어 발달한 것이다. 다시마 국물을 우려낼 때는 다시마를 물에 3~5분 담가두었다가 다시마가 부드러워지면 수돗물을 약하게 틀어놓고 표면에 붙은 모래나 먼지를 살살 문질러 씻어낸다. 그리고 끓는 물에 넣었다가 바로 건져낸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물에 담갔다가 금방 건져내는 것만으로 국물이 우러날까 의심되겠지만 걱정할 것 없다.
그렇다면 가쓰오부시는 어떤 게 좋고, 깎을 때는 어떤 방법이 좋을까? 가쓰오부시는 서로 맞대어 두드렸을 때 마치 나무 딱따기처럼 경쾌한 ‘딱’ 소리가 나는 것을 골라야 한다. 벌레 먹은 나무처럼 맥없이 ‘톡톡’ 하는 소리가 나거나 축축한 냄새가 나는 것은 좋지 않다.
식당 요리를 얼마나 먹어야 할까
일반적으로 누구나 음식점에서 파는 요리는 맛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물론 음식점에서는 숙련된 전문가가 요리를 한다. 그러나 이 전문가의 머릿속엔 여러 셈법이 장착되어 있다. 가장 먼저 가격을 생각하며 요리할 것이다. 옳은 방식이 아닌 줄 알지만 수익이 우선이고 그다음이 요리다. 이런 점 때문에 오늘날 요리가 쇠퇴하게 되었지만 어쩔 수 없다. 돈을 내고 사먹는 요리는 전문가가 만든 것이므로 맛있을 거라는 것, 그런 어긋난 기대가 가정 요리를 쇠퇴의 길로 이끌었다.
가정 요리, 그 속에는 숨겨진 의도가 없다. 있는 그대로의 요리, 비록 초보자의 요리라 하더라도 한 가족의 화목과 단란함을 바라는 진심과 정성이 깃들어 있을 때는 된장국이며 채소 절임이며 그 모든 것이 맛있었다. 그러니 간편주의와 업성이 결국 요리의 질적 하락으로 이어져 가정 요리 역시 몰락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고독한 미식가
“나는 지금도 스스로 밥을 짓는다. 하루 세끼 맛있게 먹지 않으면 만족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죽을 때까지 미식을 추구할 것이다. 흥미를 불러일으킬 만큼 새로운 음식에 관한 이야기가 별로 없다는 사실이 나의 만년을 쓸쓸하게 한다. 이 점에서 나는 고독하다.”
요리料理란 글자 그대로 음식食의 이치理를 헤아린다料는 뜻으로,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러므로 요리는 합리적이어야 하며 도리에 맞게 합법적으로 처리해야 한다. 진짜 맛있는 요리는 갑작스레 임시방편으로 만들 수 없다. 옆집 주부가 만들 수 있는 요리라 해서 쉽게 따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진정 요리를 좋아하고 맛을 아는 혀를 지니지 못하면 좋은 요리를 만들 수 없다. 즉 요리는 자기 자신이 좋아서 만들어야 하고 그것이 취미여야 한다. 그저 요리법을 익히고 맛을 내는 지식을 얻는 것뿐만 아니라 따뜻한 애정으로 즐기려는 마음이 중요하다. 그러면서 그릇에 관심을 갖고 미적 감각을 키우면 누구든 높은 경지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