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터에서의 구별 짓기로부터 개인의 존재 증명까지
문장은 전쟁터에서 적군과 아군을 구별하기 위해 사용한 표식에서 시작되었다. 화살과 창으로부터 보호하고자 얼굴 전체를 가리는 갑옷을 입게 되면서 식별이 어려워지자 아군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일이 왕왕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중세 기사들은 특정 문양을 수놓은 코트를 갑옷 위에 걸쳤고, 병사들은 특정 무늬를 방패에 그렸다. 이후 십자군 원정을 치르면서 문양을 그려넣은 코트와 방패가 유럽 전역에 확산되었고, 봉건 엘리트들이 자신의 통치 범위를 표시하는 수단으로 변모했다. 그러면서 점차 가문과 직업을 나타내는 것으로 발전했다.
문장은 흔히 귀족이나 왕가의 소유물로 여겨지지만, 영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유럽 지역에서는 계층과 성별을 초월해 누구나 문장을 착용할 수 있었다. 상인과 장인들 또한 문장을 사용하는 대표적인 계층이었다. 식육업자들은 큰 식도를, 재단사 길드는 가위를 문장에 넣어 직업을 표시했다. 문맹률이 높았던 당시에 문장은 간판처럼 활용되기도 했고, 오늘날 기업 로고처럼 브랜드로서 자신의 길드를 고급화하고 알리는 데 썼다. 왕과 귀족들은 권력을 정당화하고 유지하기 위해 가문의 역사와 전통을 문장을 통해 드러내고자 했다. 이에 따라 문장은 식별 기능보다 상징적 기능이 강화되기 시작했다. 멀리서도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단순한 기하학적 무늬를 사용하던 것에서 전설적인 동물 혹은 인물 등을 넣거나, 두 개의 문장을 합성하면서 패턴이 복잡해졌다. 상징성이 강해지면서 사회적 영향력도 더 커져갔다.
그러나 여타 상징과 구별되는 문장의 가장 큰 특징은 ‘계승’된다는 점이다. 상징을 사용하는 것은 인간의 특성이기도 한바, 중세 이전에도 상징은 널리 쓰였다. 하지만 문장처럼 계승되지는 않았다. 문장은 장자를 통해 계승되는 것이 원칙이었고, 이는 곧 부계 중심의 성씨 체계가 확립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러한 문장의 상속은 사유재산 제도에도 영향을 주었는데, 소유물과 식솔들에게 자신의 문장을 붙이거나 하사하는 관습이 봉건제와 더불어 사유재산제가 정착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문장을 단순한 장식이나 귀족의 허영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장은 중세 1000년 동안 일어난 사회 변화를 고스란히 반영하는 동시에 그 변화를 주도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또한 문장은 구별 짓기와 소속감이라는 인간의 본질적인 욕망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문장이 현재까지 우리 곁에 살아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청색은 야만의 색, 녹색은 악의 색……
모든 상징이 그렇듯 문장에도 특정한 문법이 존재하며, 그 상징을 만든 이들의 무의식이 반영되어 있다. 선호되는 색이나 동물의 종류, 각종 요소의 배치 순서 등을 통해 중세 유럽인들이 어떤 것을 중요하게 여겼고, 어떤 것을 혐오했는지를 유추해볼 수 있다. 문장은 곧 중세 유럽 문화의 가치체계를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는 주요 단서인 셈이다.
문장에 사용되는 색은 아주 제한적이었고, 그 배치 또한 철저한 규칙을 따라야 했다. 그러나 규칙 외에도 색 선택에 있어 사람들의 기호가 크게 작용했다. 가령 청색은 오랫동안 야만의 색으로 간주되어 기피했지만 귀족의 색으로 부상하면서는 널리 사용되었다. 중세의 감수성에 따라 배제된 색도 있는데, 녹색이 대표적이다. 인간이 통제할 수 없고 변덕스러운 자연을 상징하는 녹색은 영원성을 중시하는 중세 사람들에게는 곧 악의 색이었다. 오늘날 녹색이 친환경적인 의미를 띠며 사랑받는 것과는 크게 다르다. 그러나 중세 말기부터 차츰 긍정적인 의미를 지니다가, 자연에 대한 인간의 동경이 시작되는 18세기에 들어서면서 녹색은 새로운 의미를 획득한다. 민중의 영웅인 로빈후드가 녹색 옷을 입고 등장한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 녹색은 체제 변혁과 저항 등을 상징하게 되었다. 이처럼 색에 대한 사람들의 기호는 시대의 가치관을 따라 변화했다. 문장은 이러한 변화 과정을 잘 읽어낼 수 있는 사료이며, 이를 통해 ‘왜 독일 국기에는 다른 국가에서는 선호되지 않는 검은색이 등장하는가?’와 같은 질문에 답해볼 수 있다.
문장에 사용되는 동물 중 가장 인기 있는 것은 단연 사자와 독수리였다. 그러나 이 둘은 결코 함께 등장하지 않았는데, 사자는 왕을, 독수리를 황제를 신봉한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르고뉴의 왕 오토 4세는 황제와의 연대를 완전히 끊어버리기 위해 자신의 가문을 상징하던 독수리를 버리고 사자를 택하기도 했다. 황제의 권위 강한 나라, 약한 나라에 따라 선호되는 동물도 달랐다.
이외에 지역별 차이를 크게 보이는 것 중 하나가 방계 표시다. 문장은 장자 상속이 원칙이므로 장자 이하의 자녀들은 이러한 서열을 문장에 표시해야 했는데, 이를 방계 표시라 한다. 갈리아-브리티시 스타일로 불리는 프랑스와 영국의 문장은 방계 표시를 철저히 지키는 데 반해, 이탈리아와 폴란드에서는 이러한 방계 표시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이는 집단 못지않게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프랑스와 영국의 풍토를 반영한다. 반면 헝가리, 폴란드, 러시아와 같은 동유럽 국가들은 개인 문장보다 도시와 국가와 같은 집단 문장이 더 발달했다. 가문보다 영토와 민족을 중시하는 민족성이 반영된 것이다.
14세기에 이르면 이전까지 세속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며 문장을 기피했던 교회조차 문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한다. 교회 건물의 벽과 창, 사제의 의복과 예물 등에 문장이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특히 고딕 양식의 영향으로 첨탑이 높아지면서 스테인드글라스에 문장이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 중세 유럽을 이해하는 데 빠질 수 없는 교회 문화 속에도 문장은 적지 않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문장에 대한 연구가 더 깊게 진행되어야 할 이유다.
수탉이 프랑스의 상징이 된 이유, 혁명은 문장을 어떻게 바꿨나
현재까지도 문장을 관리하는 기관을 따로 두며 문장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영국과 달리, 프랑스에서는 대혁명을 거치면서 문장의 힘이 약해졌다. ‘자유, 평등, 박애’라는 혁명의 정신에 따라 귀족을 상징하는 것은 모두 파기되었는데 문장도 그중 하나였다. 이에 따라 왕실의 상징이었던 백합 대신 ‘수탉’이 국가 상징으로 부상했다. 이러한 정신을 바탕으로 한 수탉이기에 19세기 초 나폴레옹이 닭 대신 독수리를 내세웠음에도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수탉과 함께 새롭게 상징을 만든 것이 현재 프랑스의 국기인 삼색기다.
시민사회가 성장하고 근대 국가가 형성되면서 국가를 대표할 상징이 필요해졌다. 하지만 근대 국가의 상징인 국기는 일반 시민, 국민의 상징이기에 배타적이고 권위적이었던 귀족의 문장처럼 만들어서는 안 됐다. 따라서 문장처럼 보이지 않도록 제작됐지만 문장의 문법을 지침으로 삼았다. 오늘날 대부분의 유럽 국가의 국기가 문장을 만들 때 사용된 삼분할, 사선분할, 십자모양 등의 분할법과 색 배열 규칙 등을 참고해 만들어졌다. 유럽 국가의 식민지였다가 새롭게 독립한 국가들도 색 배열 등에 고유성을 담긴 했지만 이러한 문법을 참고하곤 했다. 중세 유럽의 문장이 변용되어 오늘날의 상징에까지 이른 것이다.
16세기에 접어들면서는 문장이 상품이나 예술작품에 디자인적 요소로 등장한다. 가문의 문장을 활용한 최초의 상업적 로고는 독일 마이센 도자기의 로고다. 1720년 독일 작센주의 군주가 자신의 이름 첫 글자를 따서 만든 로고로, 유럽 최초로 백자 도자기 제조에 성공하자 신기술 유출과 모방품 방지를 위해 만들었다. 생산자의 전문성와 정통성을 강조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오늘날 와인의 라벨이나 코르크에 새겨지는 문장도 이런 맥락이다. 전통을 내세우면서 품질을 보증하는 목적으로 넣는다. 이는 문장이 탄생한 첫 목적이었던 구별 짓기와도 다시 이어진다.
문장은 중세 유럽의 역사를 담은 사료이자, 유럽의 문화적 코드와 가치체계, 정서를 담고 있는 일종의 데이터베이스이다. 문장을 안다면 유럽의 건축과 시각예술을 다각도로 읽어낼 수 있다. 이제껏 문장을 다룬 책이 드물었던 만큼 문장의 역사부터 문장의 문법과 언어, 현대 의미까지 두루 다루고 있는 『문장과 함께하는 유럽사 산책』은 문장에 관심이 있는 독자에게나 처음 문장을 만나는 독자들에게 친절한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