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농담이 아니다”
10대 사이먼에서 70대 토니까지,
아홉 명의 남자, 아홉 개의 시간, 아홉 개의 여정
4월부터 12월까지, 베를린, 프라하, 키프로스… 로 이어지는
크고 작은 분투와 시행착오, 연속되는 후회와 실패의 그림자,
그 속에 스민 ‘지금 여기 살아 있다’는 것의 의미,
있는 그대로의 행복 혹은 불행에 대한
아홉 조각 모자이크 같은 이야기
십 년 주기로 선정하는 영국 문예 주간지 <그랜타>의 ‘최고의 젊은 작가’와 <텔레그래프>가 선정하는 ‘40세 이하 최고의 젊은 작가’에 꼽힌, 동시대 영국 문단에서 가장 주목받는 젊은 작가 데이비드 솔로이의 장편소설 『올 댓 맨 이즈』(황유원 옮김)가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데이비드 솔로이의 작품으로는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올 댓 맨 이즈』는 2016년 맨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르고, 고든 번 상을 수상했으며, <가디언> <텔레그래프> <뉴욕 타임스> <파리 리뷰> <하퍼스 바자> <BBC Culture>에 의해 ‘2016 올해의 책’에 선정되었다.
● 단편이면서 장편인, ‘영국 최고의 젊은 작가’이면서 그 이상인
데이비드 솔로이가 그의 네번째 장편소설 『올 댓 맨 이즈』로 2016년 맨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을 때 <가디언> 등 일부 매체와 몇몇 평론가들은 이 작품의 ‘형식’ 혹은 ‘장르’에 대한 분석으로 작품에 대한 평가를 시작했다. 출판사에서 주장하는 대로 과연 이 작품을 ‘장편소설(novel)’이라 부를 수 있는가 하는 문제 제기가 그 분석의 핵심이었다.
그도 그걸 것이 『올 댓 맨 이즈』는 전형적인 단편소설 성격을 띠고 있는 아홉 편의 이야기가 모여 하나의 책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친구 퍼디낸드와 함께 폴란드를 거쳐 베를린과 프라하 등지를 여행중인, 시 읽기와 헨리 제임스를 좋아하는 십대 사이먼 / 엄마의 부탁으로 외삼촌이 마지못해 마련해준 일터에서 고민도 눈치도 없이 장기 휴가를 요구했다가 해고를 당하고, 정작 그 휴가 여행을 함께 계획했던 친구와는 계획이 틀어져 졸지에 혼자 키프로스 휴양지로 떠나게 된 이십대 베르나르 / 전직 경호원이었다가 헬스클럽에서 알게 된 친구인지 친구 아닌지 모를 사내 가보르의 제안으로 수상한 경호 업무에 휘말리게 된 삼십대 벌라주 / 논문에서도 연애에서도 뜻밖의 미진함과 뜻밖의 전개로, 자신의 바람과 현실 사이의 괴리가 점점 더 크게 벌어지기만 하는 사십대 카렐 / 회사 말고는 가고 싶은 곳이라는 데가 없다는 고백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나와버리는 타블로이드 일간지의 부편집장 크리스티안 / 부동산 개발업자로 고객들을 이끌고 현장을 누비면서도 종종 인생의 끝에 대한 우울한 예감에 빠지는 제임스 / 노후를 생각해 고향을 떠나 멀리 크로아티아에 터전을 잡았으나 종국에는 돈도 잃고 주변 친구들로부터도 결코 환영받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오십대 머리 / 모든 것을 가진 듯했지만 결국엔 ‘아무것도 없다’는 공허한 상념에 이르게 된 육십대의 자산가 알렉산드르 / ‘우리로 하여금 덧없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을 사랑하게 하라’에 대하여 끊임없이 생각하게 되는 칠십대의 토니.
이 아홉 편의 이야기들은 등장인물도 서로 다르고, 벌어지는 사건도 다른 별개의 이야기, 혹은 ‘부분segment’들이다. 청년기에서 노년기까지 각자 자신의 연령대를 통과중인 아홉 명의 주인공들의 삶의 양상은 저마다 다양하다. 하지만 각 작품들은 일정한 시간의 흐름과 느슨하지만 일관된 규칙에 따라 하나의 궤적을 이루게끔 배치되어 있다. 4월에 시작한 십대 사이먼의 이야기는 5월에 키프로스로 여행을 떠나는 이십대 베르나르의 이야기로 이어지고, 친구인지 친구 아닌지 모를 가보르의 말을 듣고 알 수 없는 여행길에 오른 삼십대 벌라주 이야기의 배경은 여름이 막 시작되려고 하는 6월이다. 이야기는 이런 식으로 4월에서 12월까지 이어지고, 다음 이야기의 주인공은 앞선 이야기의 주인공과 열 살 남짓의 차이가 나는 시간을 살아온 인물로 설정되는 식이다. 그리고 서로 동떨어진 단편들 간에 겹치는 공간과 소재들이 등장해 독자들은 여러 이야기들을 꿰뚫는 기묘한 기시감을 체험하게 된다. 이러한 중첩 공간이라는 형식적 특징은 아홉 명의 서로 다른 인물들이 결국 언젠가 한번쯤 우연히 스쳤을지도 모를 타인이라는 아슬아슬함을 환기시키기도 하는데, 9부에 이르러 1부에 등장했던 토니가 사이먼의 손자라는 사실이 확인되는 순간, 이러한 아슬아슬함은 더 한층 힘을 얻는다. 그런 의미에서 『올 댓 맨 이즈』는 “전체를 조망해볼 때 비로소 그 정체가 드러나는 작품”인 셈이다.
이런 점에서 모든 단편들이 3인칭 현재형으로 서술되어 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3인칭이라는 시점은, 이것을 그 나이대의 (유럽) 사람(남자 혹은 여자)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을 법한 보편적인 이야기로 만들어주고, 현재형이라는 시제는, 실은 늘 현재일 수밖에 없는 ‘시간의 흐름 자체’를 실감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마지막 단편에 등장하는 노인의 손자가 첫번째 단편의 주인공으로 (다시!) 등장하는 까닭에, 이 흐름은 단순히 선형적이지 않고 순환적으로 느껴진다. 12월의 이야기까지 다 읽은 후, 공백으로 남아 있는 1월부터 3월까지의 추위와 빛 속에 한동안 홀로 고요히 머물다가, 다시 책장을 펼쳐 4월의 이야기 속으로 돌아와 있으면, 『올 댓 맨 이즈』의 주인공은 실은 끊임없이 흐르는 바로 이 ‘시간’이 아닐까 싶어질 정도다. 각 단편은 어디까지나 전통적인 내러티브의 미덕을 충실히 따르지만, 전체 구조는 결국 시간과 보편성이라는 관념적인 주제를 탐구하고 형상화할 수 있도록 치밀하게 설계되어 있다는 점에서, 『올 댓 맨 이즈』는 (그 장르를 무엇으로 보건 간에) 전체를 조망해볼 때 비로소 그 정체가 드러나는 작품이다. _‘옮긴이의 말’ 중에서
<퍼블리셔스 위클리>는 작품의 이러한 미결정적이고 양가적인 현대소설로서의 형식적 특징에 대해 “각각은 개별적으로도 완결되었으며 동시에 다른 이야기들을 보완한다. 솔로이는 매혹적인 문체와 능숙하게 구상한 구조를 통해 개인을 조명하는 동시에 사회의 불안정한 복잡성을 탐구한다”고 정확하게 평한 바 있다. “착상이 기발하고도 시의성 있으며 치명적이다. 모든 장면에 유쾌함과 섬뜩한 추악함이 동시에 드러난다”는 <런던 리뷰 오브 북스>의 평에서도 작품이 지닌 형식적/주제적 층위 모두에서의 양가적 특징이 잘 조명되고 있다. 아울러 <퍼블리셔스 위클리>는 솔로이와 작품 모두에 대해서는 “2013년 <그랜타>가 선정한 ‘영국 최고의 젊은 작가’에 들었다. 그 원대한 예상마저 뛰어넘는 게 이 작품이”라고도 평했는데, 캐나다에서 태어나 베이루트와 런던, 벨기에 브뤼셀과 헝가리 페치를 거쳐 현재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장기 체류중인 작가의 이력으로 볼 때나, 혹은 늘 어딘가로 떠나가고 늘 여행중이거나 길 위에 있는 그의 주인공들로 볼 때나 그는 이미 ‘영국 작가’로만 특정되거나 머물러 있을 생각이 없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 낭비 없는 미니멀리즘으로 구축한 솔로이식 리얼리즘
“대체로 솔로이는 약한 이들을 착취하는 남성의 심리를 멋지게 그리는 일을 피하려 하며, 탐욕스럽고 못난 남성의 면모를 부인하지 않는 미묘한 접근 방식을 택한다. 또한 인간의 오류와 욕망에 공감 가득한 이해를 보여준다. 솔로이의 소설에 나오는 남자들은 종종 오만하고 잘난 척하는 이들이지만, 그들의 태도는 깊은 실존적 공포와 영속적이고도 피할 수 없는 슬픔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한 <더 글로브 앤드 메일>의 평가는 솔로이식 리얼리즘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다.
‘시종일관 현재 시제를 사용하는 인정사정없을 정도로 평범하고 일상적인 대화’, ‘촘촘하게 짜인 정확한 관찰’ 등은 솔로이의 ‘스타일’을 말할 때 늘 거론되는 특징들이며, 한국어판 출간을 위한 번역 작업 중 작가로부터 전해진 ‘정오표’와 ‘questioningly’라는 부사를 삭제하는 부분에 대한 ‘옮긴이’의 감상을 듣다보면, 낭비 없는 문장 설계에 대한 작가의 감각 혹은 강박이 어느 정도일지 경이롭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올 댓 맨 이즈』를 다 읽은 독자라면 분명 느꼈겠지만, 솔로이는 인간의 비참함을 무표정한 얼굴로 가감 없이 드러내는가 싶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은근한 동정심을 보이기를 잊지 않는다. 지질한 인간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까발리면서도, 오직 그것을 성실히 보여주기만 하지 결코 조롱하지는 않는 느낌이랄까. 여기서 ‘미심쩍은 듯이’라는 부사를 지운 것에서 데이비드 솔로이라는 작가를 읽을 수 있었다.
부사 하나로 세계가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소설에서도 인생에서도. 따라서 한 작가가, 심지어 책이 출간된 후에도 고민을 이어나가다가, 결국 ‘미심쩍은 듯이’라는 부사를 빼버렸을 때, 그것은 작가가 인생의 겨울과 황혼을 맞이한 인간에게, 이제는 퇴물이 되어버린 한 남자에게, 씌워줄까 말까 한참을 고민하던 따뜻한 털모자 하나를 뒤늦게 씌워주는 일이나 마찬가지다.
_‘옮긴이의 말’ 중에서
● 올 댓 맨 이즈, 올 댓 라이프 이즈
“저마다 억눌린 것이 하나씩은 있는 이 남자들의 개인적인 경험과 21세기 유럽의 결”을 따라가다보면, 제목처럼 ‘올 댓 맨 이즈’, 즉 남자들의 모든 것이란 이런 것인가, 싶어지기도 하지만, 아홉 편의 이야기마다 (어떤 의미에서는 지질한 남자 주인공들보다 더욱 강렬하게 그려지는) 여성 인물들이 등장하고, 게다가 몇몇 여성 인물들은 매우 비중 있게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제목을 벗어나 ‘올 댓 라이프 이즈’로까지 확장되기에 이른다.
● 해외 리뷰
100메가와트의 힘을 지닌 작품. 지적이고 섬세하게, 그리하여 매우 탁월하게 직조된 그 형식이 소설 내용에 완벽하게 들어맞는다. 마지막 책장에 이른 순간, 다시 시작하기 위해 곧바로 처음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 선데이 타임스
현대 유럽 남성의 상태에 대한 빈틈없고도 재미있는 보고서. 실존적 불안이 흥미롭고도 통찰력 있고, 너무나 분명하게 그려진다. | 파이낸셜 타임스
이 놀라운 책에서, 솔로이는 글로벌화되고 있는 이 시대에 중요한 근본적인 진실을 탐구한다. 즉 세계가 바뀌더라도 자신은 남는다. 그가 누구든, 나이가 얼마나 들었든, 스스로의 인생을 마주하고 살아가야 한다. |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데이비드 솔로이는 문체를 가졌다기보다 목소리를 가졌다. 『올 댓 맨 이즈』 속으로 진입하는 과정은 마치 절제된 디자인의 고급 승용차를 탐색하는 느낌이다. 엄청난 힘을 비축한, 거대한 망치 같은 엔진이 장착되어 있는데, 큰 소리가 거의 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솔로이는 자신이 원하는 방향이라면 어느 쪽으로도 움직일 수 있는 대단히 유능한 작가다. 그의 글은 요란스럽지 않게 정확하며, 그의 인식의 흐름은 감수성과 정직성의 측면에서 흔들림이 없다. 이 책은 보기 드문 힘을 보여준다. | 뉴욕 타임스
대체로 솔로이는 약한 이들을 착취하는 남성의 심리를 멋지게 그리는 일을 피하려 하며, 탐욕스럽고 못난 남성의 면모를 부인하지 않는 미묘한 접근 방식을 택한다. 또한 인간의 오류와 욕망에 공감 가득한 이해를 보여준다. 솔로이의 소설에 나오는 남자들은 종종 오만하고 잘난 척하는 이들이지만, 그들의 태도는 깊은 실존적 공포와 영속적이고도 피할 수 없는 슬픔에 뿌리를 두고 있다. | 더 글로브 앤드 메일
착상이 기발하고도 시의성 있으며 치명적이다. 모든 장면에 유쾌함과 섬뜩한 추악함이 동시에 드러난다. 시종일관 현재 시제를 사용하는 인정사정없을 정도로 평범하고 일상적인 대화, 날카로운 파편들,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경구와 인용구, 이 모든 것이 일말의 낭비도 없이 직조되어 있다. | 런던 리뷰 오브 북스
많은 평자들이 언급했듯이 솔로이의 재능은 자신의 캐릭터들을 해부하면서도 그들에 대한 존중을 결코 잃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 인물들이 눈이 멀었든, 죄가 있든, 미숙하든, 잔인하든, 그들을 창조해낸 그는 그들의 존엄성을 찾아낸다. | 커먼윌 매거진
미묘하고, 매력적이고, 통렬하며 유머러스한 이 이야기들은 예외 없이 소외와 자신에 대한 회의, 현대사회의 파편화를 증언하고 있다. 각각은 개별적으로도 완결되었으며 동시에 다른 이야기들을 보완한다. 솔로이는 매혹적인 문체와 능숙하게 구상한 구조를 통해 개인을 조명하는 동시에 사회의 불안정한 복잡성을 탐구한다. 솔로이는 2013년 <그랜타>가 선정한 ‘영국 최고의 젊은 작가’에 들었다. 그 원대한 예상마저 뛰어넘는 게 이 작품이다. | 퍼블리셔스 위클리
현대 유럽의 애수를 솔로이만큼 포착해내는 작가는 없다. 저마다 각기 다른 곤경에 처한 남자들의 이야기가 모여 그들의 취약함 혹은 연약함에 대한 풍부한 탐구를 보여준다. 『올 댓 맨 이즈』를 통해 솔로이는 다른 누구도 낼 수 없는 목소리의 작가로 부상했다. | 스펙테이터
어느 상황에서든지 다정함을 이끌어낼 수 있는 소설가. 독자들은 책장을 넘기며 굉장히 즐거워할 것이다. 솔로이는 시종일관 생기 넘치게 살아 있는 언어로, 고요하지만 다층적인 장면을 어떻게 쓰는지에 대한 모범 같은 솜씨를 보여주는, 우리가 가진 최고의 40대 작가 중 한 명이다. | 가디언
저마다 억눌린 것이 하나씩은 있는 이 남자들의 개인적인 경험과 21세기 유럽의 결을 눈이 빠질 만큼 면밀하게 관찰하여 미니멀하게 그려낸 솔로이의 스타일이 합쳐진 이 소설은 헤밍웨이가 구십 년 후에 쓴 『우리 시대에』처럼 읽힌다. | 로스앤젤레스 리뷰 오브 북스
솔로이의 글은 종종 영리하고, 그 우아함과 경제성이 특히 돋보인다. 그는 풍경이든 인간관계든 아주 빠르게 스케치해내는 미니멀리스트의 재능을 지닌 작가다. 그는 이따금 놀랍도록 사랑스러운 이미지로 페이지들을 장식하기도 한다. | 뉴욕 타임스 북리뷰
남자의 욕망, 그리고 실패에 대해 결코 감상적이지 않게, 상쾌하게 그려내고 있다. 극도의 단순함이 빛을 발하는 수백여 페이지를 넘기고 나면, 마침내 이것이 바로 ‘올 댓 맨 이즈’, 남자의 모든 것에 대한 심도 깊은 그림과 마주하게 된다. | 뉴요커
솔로이의 글쓰기는 정확하고 사실적이며 언제나 묘하게 지적이다. 『올 댓 맨 이즈』는 상쾌하고 신나면서도 서늘한 데가 있다. | 테사 해들리(소설가)
촘촘하게 짜인 정확한 관찰이 돋보이는 이야기가 모인 소설. 소설적 장치들은 상상력이 풍부하며, 구조는 인상적이다. 솔로이는 결함 있고 실수를 저지르는 인물들을 섬세함과 페이소스를 가지고 묘사한다. 재능 있는 작가가 창조해낸, 음울하고도 눈을 뗄 수 없는 합성사진 같은 작품. | 커커스 리뷰
아홉 개의 이야기가 각각 멱살을 잡듯 강렬하게 독자를 사로잡는다. 주인공들이 겪는 변화에 깊이 공감하다보면 마침내 인간이 처한 상황에 대한 끔찍한 진실에 마주하게 된다. 즉 모든 것은 유한하다는 것. 우리도, 우리의 자식들도, 인류도, 지구도, 별도. 이 사실을 이렇게나 훌륭하고 으스스하게 그려낸 책이 없었다. | 데일리 메일
● 본문 발췌
인생은 모든 곳에 있어. 그걸 찾겠답시고 유럽 여기저기를 어슬렁거릴 필요는 없다고…… (20쪽/1부)
어딘가에서 사이먼의 머릿속으로 이미지 하나가 들어온다, 물위로 솟아오르는 물거품과도 같은 인생의 이미지가. 세차고 자욱하게 솟아오르는 물거품은, 깊은 물속으로부터 빛을 향해 올라오는 와중에, 서로 건드리고 섞이면서도 개별성을 유지하는가 싶더니, 수면에 이르자 개별적인 독립체로 남기를 포기한다. 물속에서 그것들은 물질적으로, 개별적으로 존재했다—공기 중에서 그것들은 공기의 일부, 다른 모든 것들과 불가분의 관계인, 영원한 전체의 일부다. 그래, 그는 생각한다, 엷은 안개로 부드러워진 햇살 속에 눈을 찡그리며, 눈에 눈물을 글썽이며, 바로 그런 것이라고. 삶과 죽음이란. (33쪽/1부)
그럼 사랑은?
(…)
글쎄, 사랑은, 그는 생각한다. 아마 이런 것이 아닐까—뒤섞인 액체 한가운데 떨어진 작은 깜박거림, 거기 섞여든 후에도 액체 전체는 단일하고 투명하게 보일 뿐인 무엇
(…)
전체 혼합물이 부드럽고 한결같은 빛을 내뿜을 때까지, 그 시점에 이르기까지 지속되는 그런 깜박거림. (57쪽/1부)
월요일 새벽 네시, 샤를루아공항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그는 슬픔을, 루저가 된 기분을, 깊은 외로움을 느낀다. 텅 빈 고속도로에 동이 터온다. 그의 얼굴을 강타하는 태양. 모든 곳의 그림자. 그는 따끔거리는 눈으로 지나가는 풍경을 응시한다—풍경의 지루함을, 풍경의 반짝임을. 신나는 자유의 속삭임이 들려오는가 싶더니, 하늘에 낮게 뜬 비행기를 바라볼 무렵 사라져버리고, 그는 혼자 휴가를 떠나야 한다는 자존심의 상처와 다시금 대면한다. (87쪽/2부)
이미 벌어지고 있는 일은, 말 그대로 이미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우리가 알지 못할 뿐이다. 음운변화나 구어口語가 그런 것처럼. (222쪽/4부)
“사람에게 사생활이 없다는 건 가진 게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야. 빈털터리라는 말이라고. 그런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 거나 마찬가질세. 그건 사람도 뭣도 아니고, 그저……” (300쪽/5부)
결국 모든 문제는 정말 단순하다고, 그는 생각한다. 모든 문제가 지닌 단순함의 진면목을 보는 것, 중요한 건 바로 그것이었다. (310쪽/5부)
“너는 이해 못해, 친구. 내가 있고 싶은 곳은 여기 말고 아무데도 없어. 여기가 바로 내가 있고 싶은 곳이야.”
잠시 시간이 흐른다.
다비드는 이해하려 애를 쓰며 그를 쳐다보고 있다.
“이게 내가 사는 이유야.” 크리스티안이 말한다. “이게. 지금 여기서 벌어지고 있는 이 일이.” (337~8쪽/5부)
그는 말한다. “어느 날 아침에 잠에서 깼는데, 이제 뭔가 바꾸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부터요. 그러니까, 인생의 커다란 부분들 말이에요.”
“저는 바꾸기에 너무 늦어버린 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해요.” 그녀가 말한다. (367쪽/6부)
“행복하세요?” 그녀가 묻는다.
“나는 불행하지는 않아요.” 그는 이렇게 말하고는, 그게 과연 사실일지 생각해본다.
“행복한 것과 불행하지 않은 것, 그건 서로 같은 말이 아니죠.” (367~8쪽/6부)
그것이 바로 그녀가 듣고 싶어하는 말이다.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오직 시간만이 말해줄 것이다. (615쪽/9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