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연인 아니 에르노와 필립 빌랭의 실화소설 『단순한 열정』 『포옹』 출간
프랑스의 중견 여성작가 아니 에르노와 주목받는 신예작가 필립 빌랭의 소설, 『단순한 열정Passion Simple』과 『포옹L treinte』이 문학동네에서 함께 출간되었다.
두 작품은 두 작가 사이의 특별한 관계 때문에 출간과 함께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은 절제된 문장으로 사랑의 열정과 육체적 욕망을 완벽하게 표현, 글쓰기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보인 문제작으로 1991년 프랑스 최고의 베스트셀러.
필립 빌랭의 『포옹』은 아니 에르노와의 실제 연인관계를 사실 그대로 소설화함으로써 격렬한 논란의 대상이 된 작품. 문제의 핵심에는, 유명 여성작가 아니 에르노와 5년간 이어간 불륜의 사랑이라는 테마와, 아니 에르노의 화제작 『단순한 열정』을 치밀하게 의도적으로 모방한 작품이라는, 즉 『단순한 열정』이 『포옹』의 모체이며 모티프라는 뜻밖의 글쓰기 유형이 자리잡고 있다.
이것은 하나의 사랑을 놓고 두 주인공이 쓴 소설이 아니다. 『단순한 열정』에는 A라는 남자를 향한 여성화자(아니 에르노)의 기억이, 『포옹』에는 A를 기억하는 A.E.(아니 에르노)를 바라보는 남성화자(필립 빌랭)의 기억이 담겨 있다. 이별 후 두 남녀가 기록하는 사랑의 관능과 열정, 조바심으로 가득한 기다림을 비교해가며 읽는다면 독서의 또다른 즐거움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내가 기다리는 사람말고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오직 한 남자밖에 보이지 않는 눈먼 사랑, 오직 그것뿐인 단순한 열정. 이 소설을 채우는 것은 바로 그 열정이다. 두근거리는 가슴, 열정의 흔적, 사랑의 광기를 표현할 수 있는 단어들이 존재하는가? 가슴 떨림의 음영, 연인의 피부결에 대한 기억, 감탄 어린 눈동자를 간직할 수 있는 문학의 공간이란 게 존재하는가? 아니 에르노는 그 문학적 공간을 간결하고 꾸밈없는 어조로 탁월하게 조형해낸다.
여성화자는 파리 주재 외교관인 외국인 A를 우연히 만난다. 그가 유부남이며 외국인이라는 것말고 그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이란 없다. 그녀에 대해서는 그보다 좀더 알 수 있을 뿐이다. 다 큰 아들들과 손봐야 할 원고, 친구들에 대한 스쳐 지나가는 이야기 몇 가지뿐. 그녀는 그를 기다린다. 강박적으로 매분 매초를 헤아리며. 그녀 자신의 자유는 외면한 채 오직 그만을 기다린다. 기다림의 마비 상태에서 밤낮을 흘려보내고 한순간에 지워져버린 자신의 삶 모두를 잊는다. 친구들, 일, 일상의 관심사, 판단력까지도. 대신 실비 바르탕이나 에디트 피아프 같은 가수가 부르는 노래에서 뜻밖의 깊이를 발견하며 대중가요에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다. 오직 연인 생각에 사로잡혀 자기가 보는 모든 것, 듣는 모든 것을 그 남자를 통해서만 해독하고,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서 숨겨진 의미를 찾아낸다. 꽃잎을 하나하나 따면서 나를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를 점치듯이.
사랑에 갇힌 한 여자의 열정을 이토록 완벽하게 표현한 작품은 없다. 기억 속에서조차 탕진시켜야 하는 사랑의 열정. 작가는 그 지독한 사치에 대한 놀랍도록 단순한 고백을 통해 사랑의 미혹을 극적으로 증언하고 있다.
▶ 아니 에르노Annie Ernaux(1936∼)
1936년 프랑스 이브토 출생. 루앙 대학 현대문학과에 진학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녀작 『빈 장롱』(1974)은 독특한 주제와 문체로 주목을 받았고, 1984년에는 『아버지의 자리』로 르노도 문학상을 수상했다. "내가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쓴 적은 한 번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자신의 작품 세계를 스스로 정의하며 자신의 작품을 소설이 아닌 진실한 이야기라고 부르는 그녀는 소설과 자전의 경계를 허물며 상실감, 존재적 결핍을 부재의 꼼꼼한 환기 속에서 감싸안는다. 『단순한 열정』(1991) 역시 이제는 그녀의 곁을 떠나버린 남자의 부재를 받아들이게 되기까지, 떨치지 못하는 집착과 미망을 기록해놓은 진실한 이야기이지만, 연하의 외국인 유부남과 나눈 불륜의 사실성과 선정성 때문에 출간과 함께 독서계를 경악시켰다. 그해 최고의 베스트셀러 화제작으로 떠오른 이 작품은 6년 뒤, 그녀의 또다른 연하 애인 필립 빌랭에 의해 그 내용과 형식을 고스란히 뒤따른 『포옹』이 씌어짐으로써 다시 한번 뜨거운 조명을 받았다.
▶ 옮긴이 최정수
1970년 전북 군산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장 자크 상페의 『꼬마 니콜라의 쉬는 시간』을 비롯해서, 그림책 『내 나무 아래에서』 『키리쿠와 마녀』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그 사람이 전화를 걸어주거나 내 집에 와주기를 바라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오직 한 남자밖에 보이지 않는 눈먼 사랑, 오직 그것뿐인 단순한 열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