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한 편으로 이렇게까지 만족을 주는 작가가 또 있을까? 단숨에 읽어야 하지만, 슬픔과 감동을 다독이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정리해고를 당한 카메라맨, 퇴락한 온천가의 스트리퍼, 가난한 집안의 야무진 소녀, 영악한 부잣집 도련님, 황혼의 로맨스 그레이, 삶을 빼앗긴 직장인 등 독자들은 다양한 인물들과 동행하며 인생의 아름다운 실루엣과 만난다. 애절한 페이소스와 짙은 향수에 감싸인 편편의 이야기들은 최고의 이야기꾼 아사다 지로가 고단한 인생에 선사하는 멋진 선물이다.
단편소설의 달인 아사다 지로의 여섯 편의 감동
「수국꽃 정사」 정리해고를 당한 카메라맨과 퇴락한 온천가의 스트리퍼, 그들의 만남은 돌발과 우연의 연속이었다. 여자는 말한다. "부탁이에요. 나하고 같이 죽어줘요." 처음 만난 그날 밤 정사(情死)를 결심한 두 사람. 그러나 그들에게는 너무나도 얄미운 또 다른 돌발과 우연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사다 지로표 페이소스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수작.
「나락」 입사 초기부터 군계일학의 존재로 촉망받았던 대기업의 샐러리맨. 어느 날 그는 38층 엘리베이터에서 떨어져 추락사한다. 사고라 하기에도, 계획적이라 하기에도 미심쩍기 짝이 없는 이 사건을 둘러싸고 주변 인물들은 알 수 없는 불안에 감싸이기 시작한다.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어도, 떠밀고 있어도 자신은 모를 뿐이다.
「죽음 비용」 "죽는 순간의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면 당신은 얼마를 지불하겠는가?" 어떻게 사느냐 만큼 어떻게 죽느냐도 우리의 관심을 벗어나지는 않는다. 남부럽지 않은 권력, 돈과 여자가 있어도 죽음 앞에서 의연할 수는 없다. 격동의 시대를 산 노기업인의 성공과 회한을 반추하며 독자는 색다른 임사체험(臨死體驗)을 한다.
「히나마츠리」 용띠 소녀는 용띠 이웃집 아저씨와 용띠 엄마가 결혼하길 바란다. 여자 어린이의 행복한 결혼을 기원하는 날(히나마츠리) 이 맹랑한 소녀는 엄마의 결혼을 기원한다. 비누 냄새가 섞여 풍겨오는 목욕탕 수증기 냄새와 비온 뒤의 어둑신한 안개 냄새를 떠올리며 노스텔지어에 흠뻑 빠질 수 있는 우리 마음속의 순금 같은 시절.
「장미도둑」 세계일주 유람선의 선장인 대디에게 편지를 보내는 소년 요이치. 이 영리한 부잣집 도련님은 너무 솔직하고 성실한 게 탈이다. 자신의 여자친구 얘기와 도둑맞은 장미 이야기를 써보내는데 소년은 끝내 도둑을 잡지 못한 게 아쉽기만 하다. 하지만 편지 속에서 밝혀지는 놀라운 사실! 장미를 도둑맞은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가인」 도시와 농촌의 처녀 총각 중매하는 일에 사명감을 가지고 사는 노부인. 어느 날 부인에게는 스스로도 예측하지 못한 뜻밖의 일이 벌어진다. "설마, 설마" 하며 끝까지 읽게 되는 작품. 다 읽고 난 후 터지는 통쾌한 웃음!
사랑과 배덕과 눈물의 장미화원
「철도원」을 통해 아사다 지로는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독자들을 갖게 되었다. 「러브 레터」의 착하고 아름다운 중국 여인 파이란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런 독자들을 결코 실망시키지 않을 여섯 편의 단편을 한 권에 모았다. 이 단편들에는 가슴이 뭉클해지는 감동과 눈물, 엽기적인 소재를 느긋하게 풀어나가는 뛰어난 이야기 솜씨, 읽어나가다 보면 정경이 눈앞에 환히 펼쳐지는 듯한 문장력, 탄탄한 구성과 번득이는 기교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 역자후기에서
일본 독자들의 서평
주인공은 소년이었다가 중년 남성이었다가 하는데, 전혀 다른 인물들에 깊이 공감해 울고 웃게 된다. [수국꽃 정사]에서 무희의 묘사는 정말 뛰어나다. 가슴이 찡하게 울렸다. 작가의 문장은 빛을 발산하는 것 같다.
단편소설이 이렇게까지 만족스러운 작가도 드문 것 같다. 그의 작품에서처럼 독특한 여운이 감도는 일이 과연 실제로 일어날까. 『장미도둑』은 완벽하다.
아사다 지로는 단편소설의 달인이다. 어떻게 이렇게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는 걸까.
마음속에 든 진흙 같은 걸 토해내고 싶은 밤이 있다. 그런 심정을 어머니 품처럼 받아주는 것이 아사다 지로의 이야기다. 결말은 언제나 애닳다. 하지만 슬프기 때문에 우는 것은 아니다.
아사다 지로(淺田次郞)
1951년 도쿄 출생.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명문 사립중학교에 진학하는 등 순탄한 성장기를 보냈으나, 집안이 몰락하는 충격을 겪으면서 뒷골목 불량소년이 된다. 고교 졸업 후 이십대를 야쿠자 생활로 보내는데, 이때의 체험이 그의 소설 곳곳에 배어 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글에서 "몰락한 명문가의 아이가 소설가가 되는 경우가 많다"는 문장을 읽고, 소설가의 꿈을 품었다. 1991년, 야쿠자 시절의 체험이 담긴 피카레스크 소설 『당하고만 있을쏘냐』와 『찬란한 황금빛』을 펴내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95년에 장편소설 『지하철』로 요시가와 에이지 문학상 신인상을 수상했고, 1997년에는 첫 소설집 『철도원』으로 나오키 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은빛 비』『낯선 아내에게』, 장편소설 {번쩍번쩍 의리통신} 『천국까지 100마일』『미부 의사전』등이 있다.
옮긴이 양윤옥
일본문학 전문 번역가
『슬픈 李箱』『그리운 여성 모습』『글로 만나는 아이 세상』등의 책을 썼으며, 『철도원』『일식』 『달』『게이샤의 노래』『플라나리아』『가면의 고백』 『내일을 노래하리-미우라 아야코 유작 자서전』『차나 한잔 들고 가시게』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지구를 부수지 않고 사는 법』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ISBN : 89-8281-496-5 03860
변형신국판 / 280쪽 / 값 8,500원
출간일 : 2002년 4월 8일
책임편집 : 김철식, 변은숙(02-927-6790, 내선 204,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