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이상문학상 수상작가 권지예의 두번째 소설집
2002년 「뱀장어 스튜」로 제26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일약 평단의 주목을 받는 기대작가로 부상한 작가 권지예가 두번째 소설집을 펴냈다. 독자를 소설 속으로 빨아들이는 뛰어난 서사적 구성력과 세심한 관찰에서 이끌어낸 상상력 풍부한 이미지, 생동감 넘치는 경쾌한 문장력 등 권지예 소설의 매력이 고스란히 살아 있는 작품들은 이 작가에게 쏟아지는 기대에 충분히 값하고 있다.
전작들에서 작가 자신의 자전적 체험에 담긴 가족사와 죽음의 문제를 끌어내어 이야기의 재료로 삼았던 작가는, 이번 소설집에 실린 작품들을 통해 타인들의 생활에 관심을 가지면서 좀더 폭넓은 경험이 담긴, 보다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방향으로 무게중심을 옮겨가고 있다. 문학평론가 김미현은 이를 "죽은 혼령이 아닌 살아 있는 인간을 자신의 소설에 초대"하는 것으로, 곧 "초혼(招魂)에서 초인(招人)으로" 관심의 영역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극과 극을 연결시켜 하나로 이어주는 뫼비우스의 띠, 그 극단을 잇는 소설
권지예 소설에서 살아 숨쉬는 인물들이 보여주는 삶의 모습은, 속악한 욕망과 생에 대한 긍정을 얽고 꼬아 만든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아이러니를 드러낸다. 자폐아인 어린 아들 때문에 가정이 해체될 위기를 맞게 된 아버지가 아이와 함께 동반자살을 결심하고 바다로 향하는 표제작 「폭소」에서, 말없이 아이를 보살피던 아내는 언젠가부터 성교중에 교성을 지르는 대신 폭소를 터뜨린다. 교성이 들어갈 자리를 대신하는 폭소는, 곧 삶의 무자비함에 대한 통곡인 동시에 온전한 삶에 대한 신랄한 조롱에 다름아니다. 스스로 타락하고자, 첫 경험을 위해 계획적으로 떠난 여행의 하룻밤이 어처구니없이 실패해버리는 순간(「풋고추」), 스토커에게 쫓기다 못한 주인공이 오히려 스토커 같은 짓을 하게 되는 순간(「스토커」), 삶의 격정적인 순간을 희구하는 간절한 욕망에 대해 말하던 작가가 찾아낸 것은 욕망과 뒤얽힌 삶의 아이러니컬한 국면들,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삶의 순간들이다. 거의 모든 작품에서 등장하고 있는, 불구성을 지닌 인물들이 의미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누군가 베어먹은 사과 한 알」의 정신이 온전치 않은 용복이 각시, 「스토커」의 보험설계사의 귀머거리 남편, 「내 가슴에 찍힌 새의 발자국」에서 어릴 적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가 불편한 소연은 어찌 보면 순진하고, 또 어찌 보면 위악적인 인물들이다. 이런 인물들은, 그들이 살아내고 있는 세상의 아이러니컬한 면을 그대로 체현하고 있다.
이러한 권지예 소설의 특징은 중편 「행복한 재앙」에서 보다 정교하고 축약된 모습으로 드러난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교통사고를 당해 개인병원에 입원한 주인공의 눈에 비친 환자와 병원, 그리고 보험회사간의 이전투구를 특유의 경쾌하고 생동감 넘치는 필력으로 펼쳐 보인다. 그 속에서 드러나는 환자들의 뒤얽힌 욕망과, 또 인물들의 숨겨진 인간적인 면모는 병원을 아이러니와 반전이 가득한 권지예적인 삶의 축도로 만들어놓고 있다. 역설과 모순이 가득 찬 이러한 세계에서 그러나 작가는 쉽게 절망하거나 긍정하지 않고 "행복한 재앙"을 발견해낸다. 재앙이지만 그것이 또한 행복이라는 역설적인 긍정의 태도를 두고, 문학평론가 김미현은 "건강한 환자의 윤리학"이라 이름 붙이고 있다. 그것은 작가가 문학에 대해 가지고 있는 희망인 동시에 우리가 작가 권지예에게 기대할 수 있는 전망이기도 할 것이다.
풋풋한 감성, 경쾌하게 질주하는 문장, 당차고 시원한 소설
독자를 상쾌하게 하는 풋풋한 감응능력, 눈썰미 있는 세심한 관찰, 가쁜 호흡의 속도감 있는 문장이 권지예 단편의 매력적인 특장이다. 의표를 찌르는 반전과 놀라움을 안겨주는 구성의 묘는 소홀치 않은 작가의 수련을 증거하고 있다. 이번 소설집에선 소재의 반복성을 넘어서고 삶 경험의 무게를 곁들이고 있는 것이 돋보인다. 물 오른 젊은 작가의 당차고 시원한 지주에 박수를 보낸다. --유종호(문학평론가, 연세대 국문과 교수)
권지예의 소설은 90년대 문학이 지나온 터널 끝에서 만나게 되는 눈부신 햇빛 같다. 그래서 더 밝게 보이고, 더 건강해 보인다. 90년대 문학의 키워드를 권태나 무기력, 실험과 엽기 등으로 파악했을 때 이를 다시 소설의 본령이나 기본으로 되구부리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체의 죽음 이후 주체를 다시 살리려는 움직임이 실감 나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그래서 권지예 소설의 밝음은 터널을 통과하기 이전의 밝음과는 전혀 다른 밝음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권지예의 소설은 모든 소설들이 시작하는 곳에서 시작하고, 모든 소설들이 끝나는 곳에서 끝난다. 그 사이에 멈추는 정거장은 다르다고 할지라도 정직하다 못해 순진하기까지 한 이 작가의 소설들은 그 자체로 양날의 칼이 되어 자신의 소설들을 헤집고 있다. --김미현(문학평론가)
수록작품 | 「누군가 베어먹은 사과 한 알」 「스토커」 「폭소」 「설탕」 「풋고추」 「행복한 재앙」 「내 가슴에 찍힌 새의 발자국」
* ISBN 89-8281-666-6 03810
* 신국판 | 296쪽 | 값 8,500원
* 초판 발행일 | 2003년 5월 19일
* 담당편집 | 조연주, 이상술(927-6790, 내선 213, 203)
풋풋한 감성, 경쾌하게 질주하는 문장, 당차고 시원한 소설
독자를 상쾌하게 하는 풋풋한 감응능력, 눈썰미 있는 세심한 관찰, 가쁜 호흡의 속도감 있는 문장이 권지예 단편의 매력적인 특장이다. 소재의 반복성을 넘어서고 삶 경험의 무게를 곁들이고 있는 것이 돋보인다. -- 유종호(문학평론가, 연세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