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빛 그림으로 담은 자연의 순환과 아름다운 생명의 힘
‘철퍼덕 철퍽-’ 저만치서 소 한 마리가 똥을 싸고 있습니다. 서리해 온 참외를 맛있게 먹고 있던 철이와 친구들은 폭포 같은 소의 오줌과 수북이 쌓이는 소의 똥을 보고 깔깔대고 웃으며 한목소리로 외칩니다. ‘와, 엄청 많이 싼다!’ 그런데 그 모습을 바라보던 철이도 갑자기 똥이 마렵습니다. 아빠가 거름을 만든다고 똥은 꼭 집에 와서 싸야 한다고 단단히 말씀하셨건만, 나올 듯 말 듯하니 앞뒤 가릴 처지가 아니지요. 똥구멍을 꽉 틀어막고 풀숲으로 뛰어가서 바지를 내리자마자 ‘뿌지직 뿌직 뽕 뿌우우웅?’ 그런데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옵니다. 밑을 닦고 있는 철이의 뒤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철이의 똥을 누렁이가 쩝쩝거리며 맛있게 먹고 있지 뭐예요? 철이는 냉큼 누렁이를 쫓아낸 다음, 흙으로 똥을 덮어버립니다. 자기랑 뽀뽀도 하는 누렁이가 똥을 먹게 놔둘 수는 없었던 것이지요. 누렁이는 못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다가, 저만치 떨어져서 자기도 똥을 눕니다.
무더위를 식혀 주는 비가 내리고, 흙에 덮인 철이의 똥과 누렁이의 똥은 빗물에 씻겨 땅 속으로 스며듭니다. 철이의 똥 속에 숨어 있던 작은 참외 씨도 풀숲 옆에 자리를 잡지요. 그리고 아무도 모르는 사이, 아무도 돌보는 이 없이, 저 혼자서 씩씩하게 싹을 내고 무럭무럭 자라납니다. 참외 철이 한참 지나, 참외밭도 아닌 풀숲 끄트머리에서 말이죠.
한 편의 목가(牧歌)를 그대로 옮긴 듯한 풀빛 그림 속에, 순환하는 자연의 모습과 아름다운 생명의 힘을 고스란히 담았습니다. 싹을 내고, 열매를 맺고, 인간에게 모든 것을 내어 준 후에 생명의 씨앗으로 대지에 내려앉는 순환의 모습을 보노라면, 자연의 경이로움에 사뭇 숙연해지기까지 합니다.
우리 모습을 비춰 주는 거울, 그림책
개똥참외는 길가나 들에서 가꾸는 이 없이 저절로 자란 참외입니다. 보통 철이 지나 열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다른 참외보다 크기도 작고 맛도 없기 마련이지요. 그런데 철이는 우연히 발견한 개똥참외를 무척 소중하게 생각하며 자신만의 비밀로 고이고이 간직하고 지켜 봅니다. 한겨울에도 잘 익은 노란 참외를 먹을 수 있는 요즘의 아이들에게는 쉽게 공감하기 어려운 모습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철이의 모습에서 우리는 작은 것 하나도 허투루 버리지 않던 지난 시절을 떠올리게 되지요. 철이가 살던 시절에는 사람들이 자연을 의지하고, 자연에서 먹을거리를 얻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똥은 인간을 통해 드러난 자연의 또 다른 모습이었고, 단순히 버려야 할 오물이 아니라 자연에게 되돌려 주어야 할 것이었습니다. 비단 배설물뿐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 곳곳에서 그러한 순환은 계속 되었지요.
이미 전작들을 통해 우리의 먹을거리, 우리의 땅과 자연의 소중함을 구수하고 풋풋한 그림으로 표현했던 작가가 첫 창작 그림책을 통해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일까요? 우리의 마음에 깃들어 있는 추억 한 움큼을 슬그머니 끄집어내는 이 이야기는, 맑은 거울과도 같이 우리의 모습을 비춰 주고 있습니다. 거울은 우리의 곱고 아름다운 모습뿐 아니라 흉하고 일그러진 모습도 비춰 주기 마련입니다. 서로 아끼고 도우며 자연과 어울려 살았던 옛 모습이 우리의 고운 모습 이라면, 자연과의 호흡, 자연과의 순환이 끊어진 채 삭막하고 건조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현재의 모습이 우리의 일그러진 모습입니다.
깜깜한 밤 하늘에서 누런 똥 덩어리들이 참외로 변해서 떨어지는 것은 한낱 꿈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자연과 순환의 고리를 다시 이어갈 때, 자연은 그 넉넉한 품을 다시 열어 줄 것입니다. 우리가 자연에게 돌려 주는 모든 것들을 자연은 우리에게 또 다른 쓰임으로 베풀어 주겠지요. 아마 그 날이 온다면, 그릇에 가득가득 참외를 담으며 행복해하는 철이처럼 우리 모두가 환한 웃음을 지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지은이 | 김시영
1965년 경기도 연천에서 태어나 전남 함평에서 농사일을 거들며 자랐습니다. 홍익대학교에서 서양화를 공부하고, 세 차례의 개인전과 오십여 차례의 단체전에 참가했으며, 『벼가 자란다』 『뿌웅? 보리 방귀』 『똥똥 귀한 똥』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와, 개똥참외다!』는 선생님의 첫 창작 그림책으로, 사람과 자연의 아름다운 순환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