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의 투명한 수정 기둥
해설을 쓴 이숭원 교수는 시집의 많은 부분에 나타나 있는 소리의 이미지에 주목하면서 시인의 시세계를 "청각으로 쌓아올린 투명한 수정 기둥"이라 부르고 있다. 정갈하고 고요한 심성의 시인은 자신의 소리를 없애고 조용히, 생이 만들어내는 "비밀스런 떨림"(「은방울나무」)을 예민하게 감지한다. 그럴 때 "고요의 빛 사이로 터져나오는 소리"(「밤 빗소리, 잔디에 젖다」)는 어떤 파동으로, 떨림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소리는 감촉이기도 하고, 빛이기도 하고, 생의 들림이기도 하여, 결국 시인 자신을 대체할 수도 있다(「소리가 소리에게 ― K의 일상생활」). 그래서 시인은 안개에서도, 강에서도, 거울 속의 바다에서도 소리를 듣는다. 이윽고 소리는 그 자체로 천 길 어둠에까지 가 닿는 혼이 된다.
어느 달빛 사이사물과 소리의 울림을 예민하게 감지하는 시인의 감각은 일상의 사물들을 살아 있는 존재로 바꾸어놓는다. 그는 빵과, 젖은 안경과, 겨울나무와, 능금과, 물에 잠긴 칼과, 젖은 비누를 탐지한다. 시인은 그것들을 만지고, 바라보면서 그들 속으로 들어가고, 그들과 대화를 나눈다. 조남현 교수의 말대로, 그의 언어는 "하찮은 것 모자란 것 가벼운 것을, 소중한 것 넘치는 것 무거운 것으로 바꾸어놓는 물활론(物活論)의 에네르기를 계속 뿜어내"고 있다. 그리하여 시인은 병상에 떨어진 귀지에서마저도 "싱그러운 생명의 힘"을 느낀다. 멀지 않은 죽음 앞에서도, 시인에게 세상은 "이명처럼 아득한" "여린 호흡"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귀지를 흘리며 ― 병상일지」).
흰 가슴을 내보이는 어둠에
귀 기울여보라
소리의 혼이 종종 일어나고 있다
마치
흠집 난 빗방울만 등빛에 영롱하듯
내 귀의 달팽이관을 긁으며
소리가 총총총
발자욱을 끌고 간다
소리의,
소리혼의 끝은 천 길 어둠이다
― 「소리혼」 중에서
시인에게는 시인의 글씨가 있는 종이면 "이거, 너 글 쓴 거 아녀어 왜 버리냐아" 하고 모두 곱게 다림질해 주름을 펴주셨던 어머니가 있었다(「다림질을 하며 ― 대학 시절」). 그리고 그 사랑은 고스란히 시인의 가족들에 대한 사랑이 되어 전해졌다. 아이들이 분 비눗방울은 "뭉게구름 양털구름의 하늘로 / 두둥실 날아오르"고(「비눗방울 가족」), 여름감기에 걸려 콧물을 흘리는 부인에게 곱게 접어준 휴지는 하얀 나비가 되어 날아오른다(「코닦개 종이」). 주변의 사물들에게 새로운 의미와 생명을 부여하는 시인의 손길은 그 파닥이는 나비의 날갯짓 소리가 되어 지금도 이명(耳鳴)처럼 빈 공간을 울리고 있다.
정갈한 새벽 이슬과 샘물에 담긴 삶의 소중한 신비
한마디로 그의 시는 정갈하다. 그의 시를 읽고 있으면 마치 깊은 산골 맑은 샘물을 들여다보는 것 같고 새벽 이슬에 막 얼굴을 내민 꽃잎을 만지는 것 같다. 그 생각의 정갈함, 느낌의 정갈함, 삶 자체의 정갈함을 통하여 그는 삶의 신비를 만지고 삶의 기쁨을 느끼고 삶의 쓸쓸함을 노래한다. 하지만 그의 시는 여기서 머물지 않는다. 이것을 통해서 다시 세상이 무엇으로 해서 이만큼 버티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말하자면 그는 이 정갈함을 통해서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 가장 아름다운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의 시는 더없이 아름답다, 그리고 무한히 깊다. 신경림(시인)
김강태의 시는 「달팽이」 같은 존재시, 「바다가 있는 거울」과 같은 자연시에서 시작하여 「소리가 소리에게」 같은 인상시, 「다림질을 하며」 같은 사모시(思母詩), 「것두 모르고, 차암!」 같은 사랑시로 동심원을 그려내고 있다. 그의 시적 상상력은 현미경적 관찰에서 우주론적 공상을 쉬임없이 순환하고 있다. 순수하고 올곧은 시인정신으로 가득 찬 그의 가슴과 손을 거치면 모든 존재는 생명과 오의(奧義)를 지니게 된다. 김강태의 언어는 하찮은 것 모자란 것 가벼운 것을, 소중한 것 넘치는 것 무거운 것으로 바꾸어놓는 물활론(物活論)의 에네르기를 계속 뿜어내게 될 것이다. 조남현(문학평론가, 서울대 교수)
* 2003년 11월 20일 초판 발행
* ISBN 89-8281-765-4 02810
* 사륙판 변형 / 128쪽 / 값 5,000원
* 담당편집 : 조연주, 이상술(927-6790, 내선 213, 202)
한마디로 그의 시는 정갈하다. 그의 시를 읽고 있으면 마치 깊은 산골 맑은 샘물을 들여다보는 것 같고 새벽 이슬에 막 얼굴을 내민 꽃잎을 만지는 것 같다. 그 생각의 정갈함, 느낌의 정갈함, 삶 자체의 정갈함을 통하여 그는 삶의 신비를 만지고 삶의 기쁨을 느끼고 삶의 쓸쓸함을 노래한다. 신경림(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