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릭 모디아노 최초로 여성 화자의 목소리를 빌린 소설
모디아노가 『신원 미상 여자』에서 최초로 여성을 화자로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여성에 관한 중요한 소설을 쓰지 않고는 결코 위대한 작가가 될 수 없다”는 에마뉘엘 베를의 말을 인용한다. 그리고 자신의 소설 속의 ‘나’와 거리를 두고 새로운 관점을 취하고 싶은 욕구를 느꼈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동안 이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어졌다는 그의 고백처럼 이 소설에서 그의 내레이션은, 마치 이 ‘신원 미상 여자’들에게 전이되기라도 한 듯, 남성 작가의 작품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섬세함과 예민함으로 우리를 홀린다.
모디아노 특유의 절제된 어조, 투명한 어휘, 깊이 스며드는 여운이 ‘신원 미상 여자’들의 세계를 몽환적인 베일로 감싼다. 그러다가 그들은 갑자기 베일을 찢는 잔혹한 현실에 직면한다. 체포, 살인, 도살… 꿈을 꾸는 사람에게도 현실은 불가피한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그들에겐 이 현실마저 과거일 뿐이며, 그것 역시 추억이라는 안개로 덮이고 만다. 지금 이야기를 하고 있는 그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그들은 아직도 ‘신원 미상’으로 남아 있는 것일까?
놀랍고 훌륭한 소설 『신원 미상 여자』에서 모디아노는 성(姓)도 이름도 없는 젊은 세 여자에게 말과 추억을 부여했다. 그것은 적막하고 가슴을 에는 쓸쓸한 독백이다. ―르 누벨 옵세르바퇴르
파트릭 모디아노는 이 책에서 여성의 섬세함과 저항을 풍부하게 표현하여 소설적인 시각을 더욱 깊게 하는 데 성공했다. ―르 주르날 뒤 디망슈
모디아노의 언어는 마치 날아가는 새와 같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를 혼미하고 안개 낀 비탈로 인도한다. 독자들은 그의 최면에 걸려 그곳에 머무르게 될 것이다. ―르 피가로
사라짐, 결핍, 불안정에 대한 새로운 사색. 파트릭 모디아노의 소설 속에는 침묵과 어둠의 특성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우리를 그에게로 끌어들인다. ―라 크루아
파트릭 모디아노는 자신의 이름을 딴 형용사를 가지고 있는 흔치 않은 작가이다. ―부아시
파트릭 모디아노
바스러지는 과거, 잃어버린 삶의 흔적으로 대표되는 생의 근원적 모호함을 신비로운 언어로 탐색해온 현대 프랑스문학의 거장 파트릭 모디아노는 1945년 불로뉴 비양쿠르에서 태어나 열여덟 살 때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1968년 첫 소설 『에투알 광장』으로 로제 니미에 상, 페네옹 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했으며, 이후 발표하는 작품마다 평단과 언론, 독자들의 격찬을 받고 있다. 『외곽도로』(1972)로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을, 『슬픈 빌라』(1975)로 리브레리 상을,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1978)로 공쿠르 상을 수상했으며, 이 외에도 『잃어버린 거리』(1984), 『8월의 일요일』(1986), 『폐허의 꽃들』(1991), 『도라 브루더』(1997),『작은 보석』(2001),『한밤의 사고』(2003) 등의 작품이 있다. 『신원 미상 여자』는 그가 처음으로 여성 화자의 목소리를 빌려 쓴 작품으로, 길을 잃고 표지 없이 헤매는, 갑옷처럼 침묵을 두른 이름 없는 세 여자의 이야기를 절망적일 정도로 담담하고 나지막하게 속삭이고 있다.
옮긴이 조용희
성균관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클레르몽 대학에서 앙드레 지드 서간문 연구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성균관대, 동덕여대, 외교안보연구원에 출강했으며 미셸 투르니에의 『야생의 고독』,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의 『그림 속으로 들어간 남자』,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 등의 작품을 번역했다.
* 2003년 12월 9일 발행
* 사륙판/176쪽/8,500원
* ISBN 89-8281-767-0 03860
* 책임편집 :김지연(031-955-8860)
나는 아주 멀리서 들리는 음악일 뿐이었다.
그것은 끊어질 듯하다가도 점점 더 느리게 다시 시작되는 음악이었다.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들을 수 있도록 침묵만을 기다리는 듯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