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인권의 ‘들국화’와 청춘을 함께했던 존재들의 광시곡
‘들국화 세대’라는 게 있지 않을까. 지금으로부터 한 이십 년 전 약속 없던 이 땅 위에 피어나서 아직 시들었다 할 수 없는 노래의 꽃 들국화. 그 긴 머리의 아름다운 사내들을, 이름처럼 거칠고도 여린 그들의 소리와 몸짓을, 대책 없이 사랑했고 여전히 사랑한다 아니할 수 없는 사람들. 그들을 하나의 세대로 묶을 수 있는 연대의 밧줄 같은 게 있지 않을까. 그 세대는, 나이와 학번과 출생연도 따위 팍팍한 숫자들과 상관없는, 그러나 그 숫자들의 조합으로 일컬어지는 어떤 세대와 아주 상관없다 할 수는 없는…… 겁이 많아 물러서기 잘하고, 정도 많아 취하면 울기도 잘하는데, 돈은 많지 않아 추위를 잘 타기도 하는. 어쩐지 흔히 볼 수 없을 것만 같은 그 세대가 어디 숨어서라도 존재하기만 한다면…… 나는 거기 꼭 끼고 싶다. 그 속으로 들어가 함께 ‘우리’가 되고 싶다.
우리는…… 혼자 있기 좋아하지만 혼자서 오래 가지는 못하는 사람들. 외로움을 견디기에는 궁금한 게 너무도 많다. 전화를 걸까 말까 망설일 때 걸려오는 전화만큼 반가운 게 또 있을까. 반가움은 언제나 두려움이다. 떨리는 손, 뛰는 가슴, 그렇게 뛰다가는 멎어버리고야 말 것만 같은. 어떤 종류의 통신이란 그토록 치명적이다. 그리고 만남, 만남들. 둘이 만나서는 말이 없다가도 여럿이 모여들면 웃고 떠들고 노래하고…… 어떤 날은 저마다의 십팔번이 지겨워서 시름시름 넋두리나 중얼대다가, 썰물처럼 하나 둘 떠나가서 다시 돌아오지 않기도 했던. 우리는 같이 있어야 안심이 되는 마음의 병이랄까, 해묵은 짐 같은 거 내려놓지 못하면서, 같이 있으면 또 짐이 되는 병든 마음 품고 살았다. 누구는 그것을 역사라 했고, 누구는 그것을 허무라 말했지만, 이제 와서 그것은 차라리 사랑이 아니었을까. 그 사랑의 때늦은 약속이 이제야 우리 앞에 다가온 것은 아닌지…… 광장에 피어나는 촛불처럼.--‘작가의 말’에서
‘들국화’는 삼사십대만의 추억이 아니다. 김광석이 그렇고 유재하가 그렇듯, 들국화는 이십대의 추억이며 우리들의 추억이다. 1989년 해체 후 1998년 들국화가 재결성되었을 때의 반가움은 십 년, 이십 년 그들을 보아오고 또 기다려온 오래된 팬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형들, 누나들의 시디를 훔쳐듣던 이십대, 십대의 모든 우리들이 반가워했다.
『머리에 꽃을』은 바로 그런 우리들의 추억에 관한 이야기이다. 삼사십대가 그리워하는 추억의 이야기, 곧 우리 모두의 추억이 될, 이미 우리의 추억인 그런 이야기.
‘카투사’로 복무했던 나, 상현에겐 그 시절 만난 인디언 친구 ‘꼬뎨’가 있다. 빈센트 코디어. 그와의 질긴 인연은 군대 시절에만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나를 따라다닌다. 내가 제대를 얼마 앞두지 않고 있을 때 입대한 직속 부하인 심약한 청년 임기와 코디어의 자살 기도 사건, 임기의 죽음, 임기를 돌봐주던 기완과 결혼한 후에 임기를 괴롭히던 선임 오경택을 좋아하게 된 임기의 여동생 연기. 코디어와 운명 같은 만남으로 엮인 ‘미아’와 나의 만남, 그리고 코디어의 죽음…… 그리고, 이 모든 사건들과 함께한 ‘들국화’. 한때 상처였던 인연이 사랑으로 이어지고, 또 한때의 사랑과 추억은 다시 상처가 된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우리들의 추억 이야기로 작가 이해경은 한 발짝 더 독자들에게 다가선다.
행복했다. 소설을 읽는 내내 전인권의 ‘들국화’에 사로잡혀 있어서. 또한 고통스러웠다. 소설을 잠시 잠깐 놓아야 하는 순간조차도 전인권의 ‘들국화’로부터 벗어날 수 없어서. 1980년대라는, 또한 카투사라는 특수한 시대 장치 속에 어쩔 수 없이 젊음을 방기했던 영혼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 소설은 전인권의 ‘들국화’ 없이는 청춘을 불러올 수 없는 저주받은 존재들의 광시곡(狂詩曲)이자 아득히 세월이 지난 후에도 전인권의 ‘들국화’만 들으면 영혼이 뒤흔들리는 가녀린 인생들에게 바치는 애틋한 송가(頌歌)이다. 감히 소설을 화두로 소설을 써냈던 작가의 승부처가 이번에는 노래, 전인권의 ‘들국화’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우리도 이제 도어즈의 짐 모리슨이나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이 아닌 들국화의 전인권을 신화로 한 독특한 소설을 갖게 되었다. 청춘의 음지를 노래로 찾고 노래로 풀어버리는, 참으로 반갑고 희귀한 풍경이 아닐 수 없다. --함정임(소설가)
* 초판발행 | 2004년 6월 30일
* 신국판 | 264쪽 | 값 8,500원
* ISBN 89-8281-841-3 03810
2002년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가 이해경,
이번엔 들국화다!
전인권의 "들국화"와 청춘을 함께했던 존재들의 광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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