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디터S 노트 -“이런 책은 없었다!”
에픽하이의 리더 타블로의 소설『당신의 조각들』이 서점가에 일대 파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난 10월 15일 예판 행사를 시작하자마자 인터넷 교보문고에서는 5시간 만에 일일 인터넷 판매 종합 10위에 진입하더니, 지난 10월 18일에는 예판만으로 당당히 일일 인터넷 판매 종합 순위 1위를 차지했다. 이러한 폭발적인 반응은 다른 온라인 서점에서도 이어져 예판만으로도 총 8000부 이상이 판매됐다. 일반적으로 베스트셀러들의 예판 판매량이 1700~1800부 선에서 이루어지는 것에 비춰보면 폭발적인 반응이다.
이에 대해 인터넷 교보문고 문학담당 김수진 MD는 “책이 나온 것도 아닌데 예판행사만으로 이렇게 큰 반응을 불러일으킨 경우는 처음이다”며 타블로의 소설에 대한 독자들의 기대감과 뜨거운 열기에 놀라움을 표했다. 최근 발매한 에픽하이의 소품집 ‘러브스크림’의 반응이 뜨거워 타블로의 소설도 큰 이슈를 불러 모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서점가의 통상적인 시장반응을 비교해볼 때 매우 예외적이다.
이는 몇 가지 이유로 분석가능하다. 듣는 이를 감탄하게 하는 번뜩이며 정제된 가사와 미국 스탠포드 대학의 영문학 석사 출신이라는 점이 타블로의 소설을 기대하는 첫번째 이유다. 두번째, 작년 MBC 프로그램 <경제야 놀자>에서 잠깐 공개되며 호평을 받은「안단테」가 수록된 작품이라 1년 동안 품어 온 팬들의 호기심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게다가 타블로의 친필사인과 응원 메시지가 담긴 1쇄 한정판에 대한 관심. 그리고 ‘뉴욕의 조각들’을 포착한 사진을 넣은, 기존 소설에서는 거의 시도한 적이 없는 ‘사진이 있는 소설책’이라는 과감한 콘셉트도 독자들의 궁금증과 기대를 자아내고 있다.
20대를 정리하는 타블로의 응원 메시지…
타블로는 최근 발매된 앨범 <러브스크림> 중에서 ‘쉿’이란 곡을 가장 아낀다고 말했다. “대학 진학해서부터 지금까지의 시간과 그 시간이 새겨진 글을 쓰면서 느꼈던 감정들을 담아서”라는 것이 그 이유다. 그가 가장 아끼는 곡을 탄생시킨 이야기들은 어떤 것들일까? 타블로의 첫 소설집『당신의 조각들』에는 그가 보물처럼 품어온 젊은 날의 비밀과 흥분을 쓴 소설 10편이 담겨 있다.
「스트로베리 필즈 포에버」「휴식」「우리들 세상의 벽」등 그가 써내려간 이야기들은 모두 1998년부터 2001년 사이에 뉴욕, 샌프란시스코, 시카고 등지에서 썼던 글이다. 다양한 인물들과의 대화나 특별한 인터뷰를 통해 그린 그의 소설 속에는 대도시에서 살아가는 스무 살의 자화상과 풍경이 담겨 있다. 뉴욕이라기보다는 뉴욕이라는 이름을 빌린 탈국적화된 대도시 안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소동극. 그 중심에는 스무 살, 여린 감수성을 지닌 젊은 날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어린 주인공의 뭉개어져버린 가족사를 배경으로 한「안단테」와「최후의 일격」. 어른이 되었지만 지난시절 아로새겨진 자상(自傷)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주인공이 등장하는「성냥갑」과「승리의 유리잔」등은 J.D 샐린저의『호밀밭의 파수꾼』의 감동이 연상된다. 특히「쉿」에서는 과거에 대한 결핍, 성장이 수반하는 고통과 잃어가는 것들에 대한 애증과 연민이 극명하게 두드러진다. 타블로는 소설 속에서 모든 것이 막혀버린 도시와 현대사회에서 어렵지만 거쳐야만 하는 ‘성장통’을 건조하게 때로는 조심스럽게 긁어낸다.
영화감독의 꿈을 품었으나 캐스팅디렉터에 안주하면서 배우지망생들과의 하룻밤을 어떻게 보낼지나 고민하는 주인공이 등장하는「쥐」, 여자 친구로부터 이별통보를 받기 직전에 증오와 박탈감으로 괴로워하는 남자가 등장하는「증오 범죄」도 모두 나약한 주인공들의 이야기다. 하지만, 이 나약한 존재들은 결코 그냥 좌절하거나 쓰러지는 법이 없다. 그렇다고 희망을 소리 높여 외치거나 아픔을 극복하자는 식의 ‘드라마’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타블로는 짧은 이야기들 속에 친절하고 장황한 설명은 없애고 ‘이미지’들을 병치시켰다. 그 이미지는 가족, 소통, 성장, 사랑 등 타블로의 소설세계에 등장하는 모든 것을 관통하는 따스한 공기를 품고 있다. 각박한 도시에서 메마른 삶을 살아가는 영혼을 위한, 그 터널을 지나오면서 어쩌면 타블로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 위안을 건네준 희미한 희망을 담은 것이다. 소설은 시종일관 건조한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어느 순간 불현듯 가슴을 툭 치며 괜찮다고 위로한다.
건조한 가운데 한순간 가슴을 훅 건드리는 타블로의 화법. 명문 스탠포드 대학을 최고학점으로 졸업한 타블로의 자작 영문소설은 그의 교수이자 미국의 대작가 토비아스 울프가 극찬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난해 MBC <일밤-경제야 놀자> 코너에 출연해 관심을 불러일으킨 타블로의 소설을 드디어 우리 눈으로 만나게 되었다.
● 뮤지션 이적, 시인 이병률이 전해준 따뜻한 추천사!
툭 잘라놓은 시간의 마디, 고요하다.
하지만 휘몰아치는 감정의 소용돌이.
잘린 면은 예리하고, 온도는 뜨겁다.
숨을 죽이고 읽다 보면 명치 끝이 아파온다.
타블로, 멋지다. 애독자가 될 테다.
이적 (뮤지션,『지문사냥꾼』저자)
타블로 소설의 원고를 읽고 든 첫 느낌은 그가 참 외로운 시간을 살아냈구나 하는 것이다. 스무 살 언저리에 두고 온, 아무리 잡으려도 잡히지 않던 진공상태의 그의 모습이 떠올랐고, 이 소설들을 통해 비로소 그의 내밀한 안쪽을 알아버린 기분마저 들었다. 그의 소설은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삶을 사는 이, 자신의 색깔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살아가는 이들의 어깨에 가만히 손을 얹어준다. 문장과 문장 사이, 단어와 단어 사이, 그 고독의 고리… 그것은 진하고 또 찡하다.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 그 한 사람을 알게 되었고, 동시에 내가 모르는 세상 안쪽의 너무 많은 것을 배웠다.
이병률 (시인,『끌림』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