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으로 그림 읽기, 그 두 번째 이야기
세 권으로 기획된 ‘그림으로 읽는 세상’의 두 번째 책 『중세의 가을에서 거닐다』가 출간되었다. 첫 번째 책 『근대 그림 속을 거닐다』(2007 문화관광부 선정 ‘우수교양도서’)는 인문학자만이 할 수 있는 독특한 그림 읽기로 많은 독자들의 호응을 얻은 바 있다. 그림을 읽음으로써 한 시대의 세계상을 입체적으로 구성해 보여주는 이 시리즈에서, 첫 번째 책 『근대 그림 속을 거닐다』가 인상파와 라파엘전파를 중심으로 파리와 런던에서 각각 서로 다르면서 같은 근대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미학과 역사를 버무려 보여주었다면, 두 번째 권인 『중세의 가을에서 거닐다』는 중세인의 죽음과 성애에 대한 태도 변화를 중심으로 중세의 모습과 그것이 근대로 이행하는 과정을 좇는다. 도상학적으로 그림을 읽어내는 저자의 안내를 따라 가면 그저 상상 속에만 머문 낭만적 중세가 아닌 실제 사람들이 생활했던 중세가 생생하게 펼쳐진다.
우리는 정말 중세에서 벗어났을까?
근대가 지워버린 중세의 흔적을 찾아
중세의 가을 속으로 떠나는 그림 여행
†21세기에 중세를 알아야 하는 까닭
은빛 투구를 쓰고 말 위에 올라탄 기사, 아름답고 정숙한 귀부인, 마상경기장을 수놓은 깃발들과 고풍스러운 성채…… 보통 ‘중세’ 하면 떠오르는 것들이다. 저자에게도 중세 시대는 낭만적인 이미지로 한 겹 입혀진 동경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그림을 바라보았을 때 그 속에서 발견한 중세는, 그 세계가 그저 허상의 이미지로 이뤄진 것이 아닌, 삶이 요동치는 사회였음을 깨닫게 했다. 저자의 그림 읽기를 통해 독자들은 중세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방법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 휘황찬란한 21세기에 갑자기 웬 중세란 말인가? 이제 와서, 우리가 중세를 알아야 할 까닭이라도 있다는 것인가? 저자는 이렇게 단언한다.
“우리가 유럽의 중세를 알아야 하는 까닭은 그것이 우리에게 남겨놓은 유산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근대가 중세의 속박으로부터 인간이 해방된 사건이라는 주장이 있긴 하지만, 오늘날 이런 주장은 그렇게 설득력을 갖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중세는 속박이었다기보다, 근대와 ‘다른’ 세계였고, 이런 까닭에 근대가 만들어놓은 다양한 문제점들을 돌아보게 만드는 거울이라는 견해가 차츰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이다. 중세에 대한 나의 관심은 이렇게 현실적인 이유를 갖고 있다. 향수나 복고 취향 때문에 중세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를 좀더 잘 이해하기 위해 중세를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
_「책을 내며」에서
즉, 오늘 우리에게 중세는 “우리가 평소 몸담고 살고 있는 이 세계에 대한 하나의 반성을 제공”할 수 있는,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것들에 대한 반성과 통찰을 제공하는 거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편안한 죽음에서 두려운 죽음으로
지은이의 중세 탐색은 브뤼헐의 「죽음의 승리」에서 시작된다. 그림으로 중세를 본다면서 북구 르네상스의 화가인 브뤼헐의 작품으로 글을 연다는 것을 의아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중세가 저물어가고, 근대가 발아하던 시기에 활동한 화가들의 그림에서 중세의 에센스를 뽑아낼 수 있다고 본다. 아직 중세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되 새 시대와 충돌을 느낀 예민한 화가들의 붓끝에서 당시의 갈등이 가장 치열하게 드러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중세 세계를 다루면서도 중세가 저물어가던 시기를 대상으로 삼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브뤼헐의 「죽음의 승리」는 오랜 전쟁으로 황폐해진 풍경, 그리고 그 속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세밀하게 담고 있다. 인간은 여러 가지 이유로 전쟁을 벌이지만, 결국 승리하는 것은 죽음밖에 없다는 것을, 이 그림은 잔인하게 느껴질 만큼 치밀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죽음은 상대가 귀족인지 가난뱅이인지, 성직자인지 농부인지를 가리지 않는다(한스 홀바인의 목판화 「죽음의 무도」 연작은 바로 이런 무차별적인 죽음의 모습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죽음은 가차 없으며 모두에게 평등한 징벌이라는 것, 바로 그 깨달음에서 중세의 종말이 시작된다고 저자는 쓴다. 예수의 대속으로 죄를 씻은 인간들에게 죽음이 ‘친구처럼 찾아와서 우리를 안식으로 데려가는 무엇’이었다면, 끝없는 전쟁과 질병 속에서 그런 믿음이 흔들리게 되자 죽음은 그야말로 파국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므로 죽음은 신에 대한 공동체적 믿음이 붕괴되는 지점이며 ‘나’에게 닥쳐올 죽음을 인식하게 되면서 개인이 부각되기 시작하는 모멘트이기도 하다.
†보스의 그림에 나타난 중세
중세의 세계상을 가장 잘 보여준 화가는 단연 히에로니무스 보스다. 기괴하기 짝이 없는 형상들로 가득 찬 그의 그림은 오늘 우리의 눈으로 보면 ‘엽기적’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그가 엽기적인 사람이었기에 이런 그림들이 그려진 걸까? 혹시, 중세 시대가 ‘엽기적’이었던 건 아니고? 또는, 오늘 우리 눈으로 엽기적인 것도 중세에는 당연한 것이었다면? 물론 보스는 당시에도 유일무이할 정도로 독창적인 그림들을 남겼다. 그는 중세 시대를 철저하게 살아냈고, 몰락해가는 중세의 현실을 예술가의 날카로운 눈으로 간파해냈던 것이다. 보스의 그림은 상상에서 일어난 일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였던 중세인의 마음 풍경을 담고 있다. 그리고 “그로테스크한 보스의 그림이 드러내고자 하는 건, 중세적 조화와 균형이 사라져버린 지옥도”이다.
그렇다면 ‘중세적 조화와 균형’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신에 대한 믿음이다. 그리고 그 중심을 잡아주었던 존재가 바로 예수였다. 무지한 인간들이 예수를 비웃고 조롱하는 장면을 담은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49쪽)나 「예수에 대한 조롱」(57쪽) 같은 그림은, 그러므로 당시 세상에 대한 보스의 비판이 은근히 드러난 그림이라고 볼 수 있다.
†성애, 중세와 근대를 구분 짓는 두 번째 틀
죽음과 함께, 저자가 중세를 들여다보는 틀로서 천착하는 것은 바로 성에 대한 중세인들의 태도이다. 중세 하면 떠오르는 ‘금욕주의’ 아래에는 들끓는 욕망의 용광로가 있었다. 중세와 오늘날의 성에 대한 태도에서 가장 큰 차이는 중세의 사랑은 관능의 사랑을 숭고한 사랑과 구별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우리가 중세 하면 흔히 떠올리는 귀네비어 왕비와 랜슬로트의 사랑 같은 귀부인과 기사의 숭고한 사랑은 바로 이런 중세적 사랑의 대표적 모습이다.
중세의 성애에 대한 태도를 잘 보여주는 그림은 뭐니 뭐니 해도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세속적 쾌락의 정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략 1470년대에 그려졌다는 것만 알려져 있을 뿐, 종교적 목적으로 그려진 제단화인지 아니면 그저 귀족의 거실을 장식하기 위한 그림이었는지도 알려져 있지 않은 이 그림은 기기묘묘한 성애 표현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이 성적 행위를 통해 태어난 기묘한 생물들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러니까 보스의 그림은 성애를 통한 세상의 창조, 즉 연금술적 창조 행위로서 성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또한 중세에 종교적 체험은 에로티시즘과도 상통했다. 천사가 마리아에게 예수를 잉태했음을 알리는 내용을 담은 푸생의 「수태고지」나 베르니니의 「성녀 테레사의 황홀경」 같은 조각은 중세가 천상의 사랑과 지상의 사랑이 구별되지 않고 하나로 인식되던 세계였음을 보여준다.
†중세의 몰락과 근대의 발아
그러나 근대로 들어서면서 죽음과 성애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는 ‘단절’이라 할 만큼 중세 와 확연히 달라진다. 신에게 맡겼던 죽음의 문제를 이성과 과학의 힘으로 풀고자 했고, 종교적 사랑과 세속의 사랑은 엄격히 구분된다.
중세의 몰락을 웅변하는 그림으로 바로 한스 홀바인의 「무덤에 누워 있는 죽은 예수」가 있다. 이 그림은 제목이 붙어 있지 않다면 예수를 그린 것이라고는 도무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그냥 보기에는 관에 누워 있는 썩어가는 시신으로 보이는 이 그림을 보면서 마음속에서는 동정심이 일기까지 한다.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죽음’이지 그 후의 부활이 아니다. 신성이 사라진 인간으로서 예수가 부각돼 있는 것이다. 인간으로서 예수를 인식하는 바로 그 지점에서 근대가 발아한다. 이후 고갱의 그림 「황색 예수」에 오면 예수는 신성은 고사하고 인간으로서의 위치까지 위협당한 채 그저 그림의 소재로만 남게 된다. 고갱은 이 그림에서 화면의 색조와 맞추기 위해 예수를 노랗게 칠해놓고는 제목마저 ‘황색 예수’로 붙였던 것이다.
이렇게 이 책은 신 중심의 사회에서 인간 중심의 사회로 변화하는 격동의 시대상을 치밀한 그림 읽기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중세의 마지막을 장식한 건 중세사회 특유의 신비주의가 아니라 ‘신비를 악마의 흉계로 간주했던 합리주의’였고, 바로 그것이 중세에 종언을 고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은 것은 브뤼헐의 그림이 암울하게 예언했듯이, 피 비린내 나는 학살과 전쟁의 근대였다. 물론 흑사병의 존재도 빼놓을 수 없다. 무차별적으로 도처에 만연한 죽음을 목격하면서 사람들은 더 이상 신의 은총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중세가 오늘에 던지는 교훈
그런데 우리는 중세를 정말 벗어난 걸까? 매우 중세적인 어떤 사건들, 예컨대 ‘마녀사냥’ 같은 것이 정말 몇 백 년 전의, 아직 인간이 이성적이지 않았던 때, 미개한 인간들이 자행한 일일 뿐일까? 재미있는 건, 중세에도 마녀사냥을 벌인 이들은 소위 ‘식자층’이자 엘리트들이었다는 점이다. 중세에 정보를 독점하고 있던 것은 성직자 같은 지식계층이었고, 이들이 ‘합리적 이성’을 무기로 내세우며 ‘마녀’에 대한 관념을 사람들에게 퍼뜨렸던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마녀를 처단하려고 하면서 내민 논리는 어딘지 익숙하다. 일단 마녀의 존재를 확신한 엘리트 집단은 마녀를 몰아내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보았다. 마녀를 조종하는 ‘어두운 세력’의 힘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는 것이었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쓴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이처럼 중세 시대를 다루면서도 오늘과의 끈을 놓지 않는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가 중세를 알아야 하는 까닭은 그것이 우리의 오늘과 관계가 있으며, 중세를 거울삼아 오늘의 우리를 반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