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가 여행을 떠났다.
사진을 찍고, 소설을 썼다.
한 도시에 관한 이야기이다.
삶과 죽음을 생각하기에 좋은 도시,
모두가 떠날 날만을 기다리는 여행자들의 도시,
하이델베르크에서 쓴 김영하의 특별한 여행이야기!
김영하의 『여행자』 또는 여행자 김영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로 ‘제1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을 수상한 김영하는 2004년 한 해 동안 ‘동인문학상’, ‘이산문학상’, ‘황순원문학상’을 한꺼번에 거머쥐며 우리 시대 가장 주목받는 젊은 작가의 한 명이 되었다. 그런 그가 얼마 전 한 도시를 여행하고 책을 썼다. 첫 번째 여행지는 독일 하이델베르크, 앞으로 일곱 개 도시를 더 여행하고 일곱 권의 책을 더 쓸 계획이다. 총 여덟 권의 책은 『여행자』라는 제목으로 묶인다.
김영하는 그동안 재기발랄한 산문집들을 통해 순수문학의 무게와 진중함을 덜어낸 솔직담백하고 편안한 글을 선보여왔다. ‘여행’을 바탕으로 쓰게 될 이번 시리즈 역시 이들과 같은 연장선상에서 바라볼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여행자’ 시리즈는 동일한 지역을 배경으로 한 소설과 사진을 결합시키고, 글 전반에 흐르는 분위기가 사진까지 그대로 이어지게 했다는 점에서 일반 산문집이나 소설집에서 한발 더 나아가 있다. 소설집, 산문집, 여행서, 어느 한 장르에 귀속시키기 어려울 만큼 매우 특이한 형식을 취하고 있는 셈이다.
소설+사진+에세이
이 시리즈의 가장 큰 특징은 역시 문학작품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어디에도 발표된 적이 없는 신작 소설이다. 작업실을 벗어나 여행지에서, 여행을 하며 얻은 영감으로 쓴 이야기이다. 낯선 타지에서 다정한 사람들을 그리워하며 쓰는 엽서처럼, 김영하의 작품을 손꼽아 기다리는 한국의 독자들과 여행을 꿈꾸는 많은 사람에게 보내는 ‘여행자’ 김영하의 편지이다. 그것도, “역시 김영하다!”라는 탄성이 절로 새나오는 수작이다.
소설과 함께 지은이가 직접 찍은 현장 사진(「Eyes Wide Shots in Heidelberg: 김영하가 만난 하이델베르크」), 카메라에 얽힌 추억담ㆍ여행 일화 등을 담은 에세이(「Essay: 콘탁스G1과 하이델베르크)를 실었다. 김영하가 ‘직접 찍은’ 여행지 사진이 종이책을 통해 공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자뿐 아니라 이미지를 통해 김영하의 작품 분위기를 시각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최고의 식탁을 만들기 위해선 훌륭한 식재료, 조리법, 요리 자체가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그것을 어떤 모양으로, 어떤 그릇에, 얼마나 뜨겁고 차게 담아내느냐에 따라 맛에 대한 평가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이 책 『여행자-하이델베르크』에서도 지은이가 하이델베르크를 여행하고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면서 상상했을 맛과 향과 모양이 제대로 살아날 수 있도록, 소설과 사진을 한 그릇에 담아내는 일에 심혈을 기울였다. 소설의 호흡을 해치지 않기 위해 이야기가 이어지는 동안에는 내용의 흐름에 적절히 섞여들 수 있는 흑백 사진들을 배치했고, 이야기가 끝난 뒤에는 소설을 읽으며 느낀 묵직한 감동을 독자 스스로 정돈하고 살을 붙이고 좀더 깊이 느낄 수 있도록 각 이미지들 사이의 리듬과 질서를 주시하며 흑백과 컬러 사진을 섞어 구성했다.
독자들은 이렇게 소설을 읽고, 사진을 감상하며 그 여운을 충분히 즐긴 후, 에세이를 통해 ‘여행’이란 것에 대해 고찰하게 된다. 호흡이 길고, 여백이 넉넉하며, 그래서 독자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고 메워갈 수 있는 공간이 많다. 『여행자』가 ‘여행’을 바탕으로 쓰였다고 해서 단순히 여행서로 볼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이다.
이런 특성에는 김영하만의 여행 방법, 또는 여행에 관한 그만의 철학이 녹아 있다. 그가 하이델베르크를 여행한 것은 이번이 세 번째이다. 첫 번째엔 당일로 떠나야 했고 두 번째엔 주택가의 작은 호텔에 묵었고, 이번에는 옛 다리와 네카어 강이 내려다보이는 호텔에서 나흘을 묵었다. 첫 번째엔 캐논 자동카메라를 들고 왔고 두 번째엔 니콘FM2를, 세 번째엔 콘탁스G1과 라이카R8, 삼성노트북과 삼각대를 들고 왔다. 더이상 차가운 벤치에 앉아 딱딱해진 바게트를 뜯어먹지 않고 제법 괜찮은 식당에서 웨이터가 가져다주는 음식에 맥주를 곁들여 마실 수가 있게 되었다. 여행을 마치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자신이 변했다는 것을 알려면 이래서 여행을 떠나야 하고, 그것도 예전에 가봤던 곳으로 가야 한다”라고.
가본 곳을 또 가고, 새로운 볼거리를 찾아 헤매기보다 자기 안의 새로움을 발견하는 것. 김영하에게 여행은 자신을 발견하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