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기업들은 침팬지 월드!
: 비즈니스의 진화 법칙 - 자연선택설
동물원의 침팬지들은 창의적인 사고 없이 사람이 시키는 행동을 단순하게 따라한다. 또한 야생의 침팬지들은 철저한 상하관계를 유지한다. 신분이 낮은 침팬지는 우두머리에게 먹을 것을 갖다 바치거나 절을 하는 등의 행동을 보이며 우두머리 침팬지는 몸을 쭉 펴서 자신의 덩치를 과시하기도 하고 머리털을 곤두세우는 식으로 부하들의 인사에 답한다.
1970~80년대 고속 성장 시기의 한국 기업들은 침팬지 무리와 같았다. 말단 사원 위로 주임, 계장, 대리가 즐비하고 과장, 차장, 부장이 조직을 관장하는 층층 서열이었고 어떤 기안도 열 개 이상의 도장이 찍혀야 승인되는 비효율적 품의제도가 경영의 기본원리였다. 공장에서 공구를 하나 구입할 때도 도장을 20개씩 찍어야 했고, 결재 받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길게는 2개월까지 걸렸다. 업무공간의 자리 배치도 철저히 서열 위주였다. 과장이 제일 뒷줄에 앉으면 그 앞으로 줄줄이 서열 순으로 앉아야 했다. 물론 가장 앞줄에는 신입사원이나 여사원이 앉아 부서 내의 온갖 잡일을 거들게 된다.
결재가 진행될 때면 회전의자에 앉아 있는 상사 앞에 부하직원이 부동자세로 서 있어야 했다. 그 과정에서 호통이나 폭언, 심지어 재떨이나 결재서류가 날아다니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이러한 관료주의적인 조직에서 살아남으려면 무조건 상명하복하고 무엇보다 눈치가 빨라야 했다. 부하직원들은 번갈아 상사 앞에 가서 허리를 굽히고 충성을 맹세해야 했다. 조직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새벽같이 출근하여 매일 야근을 하고도 주말을 반납해야 했다.
이러한 기업문화 속에서 ‘실적 저조’는 곧 도태를 의미했다. 한국의 비즈니스맨들은 무조건 남의 것을 베껴 조금이라도 싸게 팔고, 그래도 안 팔리면 가격을 더 깎아 기어코 판매 목표를 달성하곤 했다. 지금껏 한국의 기업들은 이렇듯 침팬지 흉내를 내며 국가 경제를 일으켰으며 현재의 모습도 이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진화의 법칙은 자연의 세계보다 경제의 세계에서 좀더 급속하고 선명하게 나타난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한국에는 진화의 끝 단계에 와 있는 기업과 아직 태고의 단계에 머무르고 있는 기업이 공존한다. 1인당 GNP가 5백 달러에서 2만 달러까지 성장하는 데 불과 50년이 채 걸리지 않은 한국의 경제계에는 세계 초일류의 기업들이 있는가 하면 전근대적 형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기업들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자연생태계에서는 자연이 생명체를 선택하지만,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시장이 기업을 선택한다. 이러한 모델을 ‘시장선택설(Market Selection)’이라고 표현해보자. ‘시장선택 → 적자생존 → 진화’라는 냉정한 사이클이 비즈니스 생태계 안에서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의 기본 착상이다.
모방으로 흥한 자, 모방으로 망하리라!
: 경영전략의 진화 법칙 - 포식자와 피포식자의 공진화
“한국 기업들은 더이상 덩치 키우기와 경쟁사 모방 전략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한국 기업에는 창조적 전략이 없다. 이제부터라도 창조적 전략을 수립해서 경쟁 국가나 경쟁사와는 다르게 차별화된 가치를 창조해야 한다.”
2006년 말 서울에서 개최된 세계지식포럼에서 하버드 대학의 마이클 포터 교수가 한국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위와 같이 말했다. 현대 경영학의 입안자로 평가받는 세계적인 석학의 경종에도 불구하고 한국 기업들이 아직도 과거의 모방 전략을 완전히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 건 왜일까? 외환위기 시절에는 달러의 고갈과 그로 인한 위험이 당장 눈에 보였기 때문에 다른 어떤 일보다도 재무 건전화와 조직 혁신 등의 변화를 꾀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창의력의 부재나 고갈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정말 치명적인 위협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다.
또한 한국의 산업구조, 산업기술, 경영 방식은 일본과 너무 흡사하다. 한국의 기업인들이 마음에 드는 일본 제품을 발견하면 곧바로 그 부품을 사다가 조립해서 국내시장에 팔았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내수시장 보호를 위해 오랫동안 완제품 수입을 막았고, 일본에서는 부품이라도 팔아볼 요량으로 간단한 기술 제공을 해왔다. 특히 한국의 전자, 기계류 제품들은 대부분 일본의 회로를 기반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 부품이 일제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방식으로 한국 기업들은 손쉽게 자사 브랜드의 제품을 만들어 안정된 내수시장을 발판으로 한동안 고속 성장을 구가할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오히려 일부 경공업 제품들은 일본 제품보다 더 싸고 빠르게 만들 수 있었다. 값싸고 근면한 노동력과 원천기술 없는 단순 조립 기술만으로 만들어낸 한국 제품들은 세계시장에서도 가격 경쟁력을 갖게 되어 ‘수출입국’의 원대한 꿈을 현실로 이뤄냈다.
그러나 카피어는 또다른 카피어의 도전을 막을 수 없다. 한국의 ‘제2의 일본’전략은 이제 중국이라는 신흥공업국의 등장으로 막을 내리고 있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은 자본주의 시스템을 받아들이면서 과거에 한국이 써왔던 전략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오늘날 중국 기업들은 한국 기업들이 진출해 있는 거의 모든 산업 분야에서 똑같은 제품을 초저가에 양산해내고 있다. 한국이 일본의 카피어(copier)이었던 것처럼, 오늘날의 중국은 한국의 카피어로 한국 경제의 위상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산업 분야에서 한국 제품들은 아직도 원천기술이 취약하다. 그런 한국 제품들을 중국이 모방했을 경우 기술 수준은 별반 차이가 없다. 중국은 ‘지구의 생산 공장’이 되어 이미 전 세계 TV 생산량의 40, 에어컨의 50, 휴대폰의 40, 오토바이의 50 이상을 생산해내고 있다. 게다가 중국의 초저임금 수준에 비해 오늘날 한국의 노동력은 세계적으로 비싼 축에 속한다. 또한 중국은 카피 제품의 대부분을 내수시장이 아니라 해외시장으로 내보내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세계시장에서 한국 제품을 대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한국시장에까지 침투하여 가뜩이나 고유가, 고물가, 고환율이라는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는 한국의 중소기업들을 줄줄이 도산시키고 있다.
2007년 1월, 삼성의 이건희 전 회장은 그룹 관계자들과 모인 자리에서 이른바 ‘샌드위치 위기론’을 들며 중국은 쫓아오고 일본은 앞서가는 상황이기 때문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해볼 수도 있다. 프랑스의 경제학자 기 소르망은 “이 시대에 한국에서 태어난다는 건 일종의 특권이다”라고 말한다. 지금은 한국의 역사상 처음으로 맞는,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식으로 달리 말해볼 수도 있겠다. “이 시대에 한국에서 비즈니스를 한다는 것은 일종의 특권이다.” 한국에서 최고의 기업이 되면 곧 세계 최고의 기업이 되는 날도 그리 멀지 않았다. 한국의 리더들이여, 진화의 방향을 정확히 읽고 끊임없이 진화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라.
잭 웰치의 경영지침서를 찢어버려라!
: 리더십의 진화 법칙 - 동종경쟁론
“역사적 성공의 반은 죽을지도 모르는 위기의식에서 비롯되었고 역사적 실패의 반은 찬란했던 시절에 대한 기억에서 비롯되었다.”
- 토인비
잭 웰치의 개혁 프로그램 덕분에 GE가 다시 세계 1~2위권의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경제지 「포천」은 제왕적 리더십이 영원히 유효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2006년 7월 17일자 「포천」지에 실린 기사의 제목은 이랬다. “잭 웰치의 경영 지침서를 찢어버려라.” 이 기사는 잭 웰치의 경영 전략이 한때 주식회사 미국의 경영 바이블로 통했으나 이제는 낡은 경영 이론이 되어 경영 현장에서 퇴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잭 웰치의 후임으로 취임한 제프리 이멜트도 ‘웰치 스타일’을 벗고 다시 새로운 GE를 만들어가고 있다.
비즈니스는 진화한다. 경영전략도 진화한다. 더불어 상품과 비즈니스맨, 리더십까지도 진화한다. 그러나 이러한 환경 속에서 외환위기 시절 못지않게 많은 한국 기업들이 부도를 내고 있다. 대부분 과거의 제품이나 경영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기업들이다. 내수시장이라는 구멍 난 온실 속에서 경기 회복이라는 햇볕만 기다리다 추위에 얼어 죽는 것이다. 유가 200달러 시대를 맞이한 우리는 이제 새로운 아이디어로 새로운 가치를 개발해야 한다. 이 시대의 비즈니스가 어떤 방향으로 진화해야 할 것인가를 정확히 깨우치고 새로운 시장과 고객을 찾아 전 세계로 뛰어나가야 할 때다. 그 진화론의 중심에서, <굿바이 침팬지>가 명쾌한 해답을 제시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