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갈피마다 낙엽처럼 낀 사진 한 장
그 사진마다 압축파일처럼 저장된 영화 한 편
영화 속에서 발견한 흥미진진한 사진이야기
오늘날 사진은 소수 전문가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카메라 기능이 장착된 핸드폰이 일반화될 정도이니, 사진촬영은 일상이 되었다. 영상매체시대의 도래와 영화산업의 활황으로 영화 관람 또한 대중적인 문화생활에서 우위를 선점한지 오래다. 온갖 예술장르를 흡수하며 자신의 표현영역을 확장하는 영화는 사실 거대한 예술창고이다. 음악, 미술, 문학. 건축 등은 영화적 육신의 건강을 위해 헌신하는 오브제이자 그 일부가 되었다. 그래서 영화는 어떤 관점으로 접근하느냐에 따라 색다른 모습을 띠기도 한다. 영화 속의 ‘미술’로 본 영화, ‘음식’으로 본 영화, ‘건축’으로 본 영화, ‘의상’으로 본 영화 등 어떤 키워드로 영화의 문을 따느냐에 따라 다양한 체형을 드러낸다. 영화 속의 사진도 그렇다. 영화의 소재로서, 스토리 전개의 주요 오브제로서, 또 감초로서 사진은 활력과 재미를 더해준다.
장르와 장르간의 행복한 연애를 지향하는 ‘마이아트러브’ 시리즈의 세 번째 권인 『영화가 사랑한 사진』은 영화 속에서 발견한 흥미진진한 사진 이야기를, 영화와 함께 다루고 있다. 그것도 사진가로서, 사진과 영화를 가르치고 연구하는 전문가의 눈에 포착된 것이란 점에서 내용이 돋보인다.
첫때, 사진매체를 중심으로 한 ‘사진기’, 둘째, 대상을 보는 시선과 대상을 편집하는 프레임으로 본 ‘시선과 프레임’, 셋째, 영화에 나타난 일상 속의 사진세계를 조명한 ‘일상’, 넷째, 사진작품과 연관된 영화를 다룬 ‘사진작품과 영화’ 등 네 개 주제로 국내외 영화 23편을 다뤘다. 국내 영화로는 「올드보이」, 「8월의 크리스마스」, 「결혼은 미친 짓이다」, 「나쁜 남자」, 「소름」, 「사마리아」 등, 해외영화로는 「러브레터」, 「메멜토」, 「아멜리에」,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시민 케인」, 「프라하의 봄」 등이 사진이라는 키워드로 집중 조명된다. 이런 영화들은 때때로 그림과 함께 어우러져 의미의 구덩이를 더욱 깊고 둥글고 판다. 르누아르, 앤디워홀, 다빈치, 베르메르, 루벤스 등의 명화가 그것이다.
독자들은 자세한 설명을 통해서, 이미 봤던 영화일망정 새로운 영화 읽기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다. 사진에 대한 폭넓은 정보도 얻을 수 있음은 물론이다. 이 책에서도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여전히 빛난다.
왜 영화에 사진기가 등장할까?
태국의 공포영화 「셔터」의 주인공은 사진 전공자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주로 등장하는 사진기는 전문가용의 큰 사진기일 듯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영화 포스터에서부터 엔딩 자막이 올라갈 때까지 줄기차게 등장하는 사진기는 바로 폴라로이드 카메라이다. 이 영화에서 폴라로이드 카메라는 단순한 소품이 아니다. 즉석에서 인화 이미지를 확인할 수 있는 폴라로이드 카메라는 ‘지금’이라는 현재성이 강한 탓에, 영화에 등장하는 귀신의 존재를 과거가 아닌 지금 나와 함께 있음을 증거해주기 때문이다.
단기기억손실증이라는 병에 걸려 기억을 10분밖에 지속시키지 못하는 주인공을 역정을 다룬 「메멘토」 역시 폴라로이드 카메라가 등장한다. 아내를 죽인 자를 찾아 복수를 감행하는 주인공은 자신의 기억을 남기기 위해 카메라로 현장 사진을 찍고 몸에 글자를 문신한다. 여기서 사진은 주인공을 보조한 기능을 한다. 원하는 만큼 사진을 인화할 수 있는 일반적인 사진의 특성과 달리 단 한 장의 사진밖에 생산하지 못하는 폴라로이드 카메라의 특성과, 즉석에서 인화되어 기억이 존속하는 짧은 시간 안에 사진을 확인하고 메모 또한 곁들일 수 있는 성질은 주인공에게 아주 적절히 사용된다.
이밖에도 「러브레터」와「아멜리에」에 등장하는 폴라로이드 카메라, 「아멜리에」의 자동증명사진, 「사마리아」의 핸드폰 사진,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의 카메라 옵스큐라 등도 흥미롭다.
흔히 일상적인 소품쯤으로 생각하고 지나칠 수도 있는 장면에서도 지은이는 사진과 사진기가 가지는 의미와 역할에 주목한다. 그러니까 지은이는 사진이라는 프리즘으로 통해서 영화를 재독(再讀)할 뿐 아니라 영화 속에 등장하는 사진으로 사진 일반에 대한 폭넓은 이해의 계기를 마련해주는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보는가?
사실 사진은 인화되는 순간 실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마치 ‘사실’ 처럼 인식되는 그릇된 관념 때문에 오히려 사람들을 미궁에 빠뜨리기도 한다. 영화 「시몬」에서 사이버 배우의 존재 증명을 위해 합성사진이 사용되는데, 이 합성사진은 사이버 배우를 실존 인물로 속이는 데 크게 기여한다. 지은이는 여기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사진이 도대체 얼마만큼의 진실을 담지할 수 있는지 반문한다.
또한 한 사람의 실제 삶을 텔레비전으로 생방송하는 「트루먼 쇼」를 통해서는 사진과 영화가 지닌 관음증적 특성을 이야기한다. 관음증에 대한 욕구는 누구나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사적인 것이어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데 비해, 방송이라는 매체 때문에 훔쳐보기가 공적으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사진은 한정된 프레임만으로 대상에 접근하기에, 진실을 결코 담아낼 수 없음에도 현실을 가장 사실적으로 옮긴다는 시각적 특성 때문에 오류를 범하기 쉽다. 지은이는 「트루먼 쇼」의 진실과 허구에 대한 주제 자체를 사실적이지만 사실과 가장 거리가 멀 수 있는 사진의 속성으로 설명한다.
책에는 실재성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실제 보도 사진가 위지의 삶을 영화화한 「조 페시의 특종」에서는 기술적인 측면의 촬영기법 등이 구체적으로 서술된다. 한 장의 사진에 사건의 정황이 담기게 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구도와 기법이 필수적인지 위지의 사진을 통해 구체적으로 들려준다.
영화 속 사진, 그 속의 일상과 사진작품
영화는 관람은 편해도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장르는 아니다. 하지만 사진은 누구나 촬영할 수 있는 매체다. 그만큼 사진이 일상적이라는 점이다. 영화 속에, 일상의 단편으로 사진이 자주 등장한다. 「8월의 크리스마스」가 대표적이다. 지은이는 사진관을 배경으로 지극히 일상적인 풍경이 그려지는 이 영화에 기대어, 일상적인 각종 사진의 특성을 설명하고 사진사와 사진가가 어떻게 다른지, 그 역사적 배경을 설명한다.
이런 주제는 사진가가 꿈이었으나 사진사로 일상을 견디는 현실적인 사진가의 모습을 보여주는 「우작」에서도, 그리고 「스모크」에서는 등장하는 4천 장의 스냅사진으로 똑같을 것 같지만 단 한 순간도 같지 않은 일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부부가 아닌데도 한 부부의 일상처럼 사진을 찍고 앨범을 만든 「결혼은 미친 짓이다」, 가족사진의 의미를 되새기는 「소름」 등에서도 일상적인 사진의 의미 찾기는 이어진다.
이 책은 영화의 선별이나 글쓰기 방식에서 주제에 걸맞는 작품 선택과 전문적인 내용을 쉽게 풀어서 이해의 해상도를 높인다. 또한 대강의 영화 줄거리와 감상을 그의 전면에 배치하여 사전 정보를 통해 글 속에 다소 생경한 주제가 등장해도 자연스럽게 몰입할 수 있게 했다. 그것은 새로운 영화읽기로 한편의 영화를 더 깊이 사랑하는 길이자 영화의 모태인 사진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일거양득의 기회 제공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지은이는 이렇게 말한다.
“이 글이 대중에게 사진은 전문가만이 다룰 수 있거나 영화도 흥행 여부와 관계 지어서만 바라보거나 하는 편견에 하나의 출구가 되었으면 한다. 사진이든 영화든 얼마든지 다른 시각에서 해석할 수 있다는 나의 의도가 잘 전달되었으면 좋겠다. 이것이 영화 속의 사진 이야기를 소재 삼아 사진에 대해 접근한 사람으로서 가장 큰 바람이다.”(「지은이의 말」에서)
추천의 글
이 책의 구조는 마치 미궁을 찾아가는 아리아드네의 실 뭉치 같다. 그 실 뭉치를 따라가다 보면 사진의 핵심에 이르는데, 김석원의 사진 이야기는 그 길을 친절하게 안내한다. ―윤세영(『사진예술』편집장)
사진과 영화를 균형 있게 얘기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한데 지은이는 두 가지 매체의 연관성을 아주 흥미롭게 들려준다. 대화체 문장으로 독자를 편안하게 안내한다. 3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써온 이 축적물에서 사진에 대한 지은이의 애정과 열정이 엿보인다. ―차승재(싸이더스 대표)
이 책은 지은이가 실제 촬영현장에서 사진 작업을 오랫동안 한 실전 경험을 바탕으로 씌어졌다. 단지 이론적인 나열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론과 실제 촬영에서 느낀 경험을 혼합하여 쓴 결과물인 것이다. 간결한 문장으로 영화와 사진을 분석해서 독자들이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한 점도 이 책의 큰 강점이다. ―유하(영화감독, 시인)
영화의 일반적인 관람방법으로, 영화의 네러티브를 중점적으로 보거나 배우의 연기에 몰두해서 보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나는 영화 속 배우의 입장에서 감정 선과 연기에 치중해서 보게 된다. 영화 속 배우의 감정 상태와 상황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한 이 책 그래서 더욱 호소력 있게 다가왔다. 지은이의 지적들은 독자에게 또다른 영화보기의 즐거움을 선사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박용우(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