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하고 웅숭깊은 문장, 뛰어난 직관과 안목으로 포착한 삶의 편린들을 빛나는 결정체로 빚어내는 작가라는 평을 듣고 있는 작가 이현수의 두번째 장편소설 『신 기생뎐』이 출간되었다. 2003년 여름 『동서문학』에 「신기생뎐―부엌어멈 편」을 발표하며 시작된 이 늙은 기생들의 이야기는 꼬박 이 년이 흐른 2005년 여름에야 그 끝을 맺었다.
세월이 만든 마룻바닥의 오래된 자국처럼 진하고도 까슬까슬한 이야기
이 소설은 소재가 작가를 선택했다. 어느 날 기생들은 불현듯 작가를 불렀고, 작가는 그들이 불러주는 말을 받아적었다. 아주 느리게.
“급할 것이 없었다. 나, 생의 한복판을 살고 있으므로, 쓴 날보다는 써야 할 날이 많으므로 급할 것도 서두를 일도 없었다. 그럼에도, 어머니를 선영에 묻고 온 날에도 나는 썼다. 쓰는 걸 멈출 수가 없는 날이 많았다.”
소설을 쓰는 내내, 작가의 꿈속에는 기생들이 출몰했다고 한다. 그들은 하나같이 맨발이었고, 밤새 들판을 헤매고 다녔다. 작가는 이 작품으로 그들의 빈손을, 그들의 맨발을 가만히 어루만진다.
『신 기생뎐』은 기생들의 이야기이고, 전통을 잇는 군산의 기방 ‘부용각’의 이야기다. 기생들이 주인공이고 ‘부용각’이 또한 주인공인 소설이다. 소설을 이루는 일곱 개의 장은, 이 주인공들의 이야기이다.
부엌어멈
“육갑허네. 지지 않는 것은 꽃도 아니여. 질 줄 알아야 꽃인 게지.”
부용각의 부엌어멈인 타박네는 실질적인 부용각의 주인이다. 어린 나이에 기방으로 팔려와 부엌일을 시작한 그네는, 기방의 법도를 가르치는 부용각의 제일 어른이다. 못생긴 얼굴 때문에 평생을 부엌에서만 살아왔지만 음식솜씨는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그네 삶의 숨겨진 이야기는 과연 무엇일까?
오마담
“성이 아무리 그래싸도난 천생 기생은 기생인 모양이오.
성한테는 미안한 말이지만 내는 밥 없이는 살아도 사랑 없인 못 사요.”
타박네와 함께 부용각의 주인격으로, 부용각에서 제일 높은 소리기생. 정이 많아 이 남자 저 남자에게 휘둘리지만 오랜 세월을 격조 높은 기생으로 현재 부용각의 기생어미. 그녀의 소리의 품과 치마폭은 한없이 넓기만 하다.
춤기생
“어쩌면 네가 이 시대 마지막 기생이 될지도 모르겠고나.”
몸을 외로 틀 때, 허리를 숙일 때, 한 발을 살짝 들고 돌 때, 얇고 부드러운 홑겹의 생비단 치마는 미스 민의 알몸에 서슴없이 흐르고 감겨들며 나부낀다.
부용각의 장차를 책임질 춤기생 미스 민의 이야기. 어려운 집안에서 태어나 국악원까지 들어가 춤을 배웠으나 결국 부용각에 들어와 옛 꿈을 이루려는 미스 민이 진짜 기생으로 입문하기 위해 기방의 오랜 법도인 화초머리를 올리는 장면이 압권이다.
기둥서방
“제비가 사랑 때문에 사고를 치는 것은 여자가 길 가다가 애를 낳는 것보다도 부끄러운 일이라고 입이 닳도록 가르치셨건만. ……나는 부용각을 한 입에 먹는 그날까지 더욱더 분발할 것이다. 두고 봐라. 이번 생의 마지막 건수인데 내가 순순히 포기할 것 같냐.”
오마담의 기둥서방 김사장 이야기. 한때 잘나가는(?) 사업가이기도 했으나 지금은 부용각에 얹혀살며 오마담에게 붙어사는 인물로, 부용각을 삼켜버릴 기회를 노리고 있는 인물. 제비에 사기꾼인 그의 능청스럽고도 솔직한 입담이 그만이다.
집사의 사랑
“뒤채의 오마담에게로 가는 그 길이 내게는 그렇게도 멀었다네. 아마 일평생 걸어도 그녀에게 다가갈 수 없을지도 몰라.”
부용각에서 집사 격인 박기사 이야기. 어느 볕 좋은 날, 능소화에 끌려 부용각에 들어왔다가 무명천 사이로 보이는 오마담을 보고는 그대로 부용각에 눌러살게 된 인물. 손님과 밤을 보낸 오마담의 방문 앞, 매일같이 같은 자리에 꿀물을 타놓아, 그 대접이 놓인 자리엔 오마담을 향한 그의 마음과 또 세월의 자국이 새겨져 있다.
서랍이 많은 사람
“미스 민은 더도 덜도 말고 모시 한 굿 분량만큼만 쪼개지고 자아지고 싶다. 쪼개진데다가 물레에 자아지다보면 세상을 돌 것이다. 돌고 돌다 제자리를 찾을 수만 있다면. 어느 결에 욕망은 무화되고 송송 맺힌 땀방울은 쪼개진 모시올이 된다. 챙챙챙, 끝오 없이 부딪쳐오는 저 고난의 술잔들.”
‘서랍이 많은 사람’은 부용각 기생들에겐 하나의 기호, 또는 꿈으로 인식되는 말이다. 기생마다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포기해서도 안 되는 저마다의 서랍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미스 민이 화초머리를 올린 다음날. 진짜 기생이 된 미스 민의 속마음이 애틋하다.
부용각
“수많은 세월이 흘러도 부용각만은제 형태를 보존한 채 어디에서든 존재해야 했다. 찾아올 사람이 있어서, 그를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부용각의 진짜 주인은 누가 뭐래도 부용각 그 자체이다. 목포의 유명한 기방 부용각을 그대로 이은 군산의 부용각은 타박네와 오마담이 평생을 일궈온 전통 기방. 타박네가 부용각에 그토록 애정을 쏟는 이유가 드러나고, 오마담은 박기사의 마음에 마음으로 답한다. “박기사, 당신에겐 뭐라 할말이 없소. 당신의 마음이 하는 말을 내 마음이 몰랐다 생각지는 마오. 그러니 너무 헛헛해 말아요. 천지간의 사내란 사내는 모두 품을 수 있으나 당신에게만은 그리 하지 못하는 걸 나는 어떡하오. 그런 삶도 있으려니, 그런 사랑도 있으려니 하면 그뿐.”
“왜 하필이면 이 세상에 기생으로 나왔나, 내가 내게 묻지 않듯이
난 한시도 기생이 아닌 적이 없었소. 이런 날 박기사 당신만은 이해해주리라 믿소.”
『신기생뎐』은, 그렇다, 기생의 이야기다. 그런데 지금 왜, 기생의 이야기인가. 작품의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고명철은 이렇게 짐작한다.
최첨단의 문명감각으로 살아갈 우리 삶의 관심 밖으로 이미 멀찌감치 밀려난 기생의 삶에 관심을 갖는 작가의 의도는 어디에 있을까. 기생의 삶에 눅진하게 배어 있는 그들의 삶의 애환을 기생 특유의 ‘재귀적 욕망’을 통해 어루만지려는 것은 아닐까. 하여 우리가 미처 관심 갖지 않았던 기생의 사랑의 형식과, 그 비원이 배어 있는 가무를 통해 기생의 숙명적 삶을 넘어서고자 하는, 그들의 삶의 진정성에 작가가 주목하는 것은 아닐까. 혹 언젠가 기생이 이 땅에서 소멸해갈 운명이라면, 작가는 그 운명의 과정을 회피하지 않는 마지막 기생의 삶의 존재 가치와 그 엄숙함을 지켜보고 싶은 것은 아닐까. 혹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되, 그 욕망에 구속되지 않는 기생의 삶을 통해 우리가 미처 놓치고 있는 삶의 소중한 그 무엇을 성찰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작가 이현수의 『신기생뎐』은 우리에게 자칫 소홀히 여기기 십상인 삶의 문제들을 곰곰이 되묻게 한다. 고명철(문학평론가)
『신 기생뎐』을 읽으면서 왜 기생의 이야기인가, 는 어쩌면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기생의 이야기이면서 또 부용각에 모여든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이다. 평생을 주방에서 일하며 부용각을 되살려낸 못생긴 노파의 인생역정이고, 사랑 없인 못 사는 천생 기생의 이야기이고, 소박한 꿈을 접고 다른 식으로라도 그 꿈을 이어가고 싶었던 어린 소녀의 이야기이고, 또 홀리듯 이곳으로 흘러들어와 일상의 모든 것을 버리고 남은 생을 보내는 한 사내의 이야기이고, 또 기생어미에 들러붙어 ‘한탕’ 해보려는 제비의 이야기이고, 이 모든 사연을 품고 있는 기방 부용각의 이야기이다.
이 흔하다면 흔한 인생 이야기들을 생동감 있게 되살려낸 것은 무엇보다 문장의 힘일 것이다. 너무 달지도 싱겁지도 않은 꿀물처럼 혀에 감기는 문장, 기생의 노랫가락처럼 흥을 타는 작가의 문장은 각 장의 특성에 따라 그 문체도 달리하여, 특별할 것 없는 기생 이야기의 전체적인 리듬을 조율한다.
어느 날 불현듯 작가를 잠깨운 기생의 이야기는 어쩌면 독자들의 잠도 설치게 할지도 모르겠다.
지난 4월, 기생 부용의 산소를 찾았다. 봉분의 잔디가 하도 푸르러 눈이 아팠다. 나는 묏등에 가만히 손을 갖다대었다. 그대가 잃어버린 신발을 찾아주겠노라고, 그대들이 하고 싶은 말을 놓치지 않고 쓰겠노라고, 상상이 아닌 짐작으로. 나, 적지 않은 날들을 살아왔으니 이제 짐작하지 못할 일은 없다고.
이 땅에서 이름 없이 살다 간 많은 기생들에게, 그들의 빈 손에, 그들의 맨발 위에 이 소설을 바친다. ‘작가의 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