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몸의 언어, 천운영 첫 장편소설
2000년대 한국문학을 이끌어갈 대표적인 여성작가 천운영의 첫 장편소설 『잘 가라, 서커스』가 출간되었다. 낯선 소재와 개성 있는 문체, 새로운 형식과 문체로 완성도 높은 단편들로 매번 화제를 모았던 작가의 이번 소설은 작가 천운영의 또다른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해 더욱 반갑다. 2004년 여름부터 2005년 여름까지 계간 『문학동네』에 연재되었던 소설 『잘 가라, 서커스』는, 작가가 수차례 중국을 오가던 뱃길이 담고 있던 긴 여정과 바람, 그곳의 냄새를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또다른 소설문법으로 전하고 있다.
“이 소설은 한 조선족 여인과의 인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나는 여인의 고향이 궁금했다. 그녀가 어린 시절을 보냈을 땅, 바람, 강, 나무. 결국 나는 연길 행 비행기를 탔고, 그 여자의 고향이랄 만한 연변 조선족 자치구 구석구석을 다녔다. 그러다가 발해 공주의 무덤을 보게 되었다. 이제 내 궁금증은 공주의 무덤 속이었다. 나는 길림과 장춘, 연길을 오가며 그 속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찾아다녔지만 허탕의 연속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 훈춘에서 자루비노를 거쳐 속초로 오는 항로를 선택했다. 그 배 위에는 고려인이라 불리는 또다른 조선족이 있었다.”
하나의 궁금증은 또다른 궁금증을 이끌고, 인연은 또다른 인연을 만든다. 작가는 자신이 무엇을 찾는지도 모른 채 무작정 떠나고 찾아다니며 겨울을 났다고 한다. 무덤가를 배회하면서, 동춘항운 삼등실과 A데크를 오가면서, 유물이 전시되어 있을 만한 박물관을 찾아다니면서…… 그러는 내내 작가에겐 누군가가 계속 말을 걸고 있었다.
작가에게 말을 걸고 있는 사람은 온화하고 부드러운 음색을 가진 여자였다. 그 여자는 작가가 힘들 때마다 어깨를 다독이며 말을 걸었다. 여자와 말을 하고 있으면 혼자 가는 길이 힘들지 않았다. 목소리로 다가왔던 여자는 조금씩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나는 여자가 시키는 대로 옷을 입히고 살을 찌우고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 여자의 이름은 해화다. 림해화.
소설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어느 날 문득, 작가를 찾아온 한 여인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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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하나 어린 시절 나를 위해 서커스를 해 보이다 목을 다친 형을 결혼시키기 위해 나는 형을 데리고 연길까지 왔다. 맞선여행에서 만난 여자는 작고 가녀리고, 그러면서도 단단해 보인다.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 형이 아닌 나를 보고 얘기하는 다른 여자들과 달리, 여자의 시선은 줄곧 형을 향해 있다. 여자의 이름은 해화라고 했다. 림해화.
형과 나는, 여자의 고향에서 간소한 결혼식을 올리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여자는 어머니를 몹시 따랐고, 어머니 역시 그런 여자를 예뻐했다. ……그런데 어느 사이 여자가, 형수가 내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이야기 둘 내 이름은 해화다. 림해화. 나는 한국으로 간다. 그의 목소리가 되고, 그의 시중을 들고, 그의 아이를 낳을 것이다. 나는 내 나그네의 충실한 아내가 되리라. 그리고 나는 행복해질 것이다. 다짐은 희망이 되고 희망은 그대로 내 몸을 관통해 사라졌다. 희망이 사라진 자리에는 고통만이 남았다. 바람이 내 몸을 뚫고 지나갔다. 마음은 바싹 마른 이파리들처럼 바스락거리며 부서지고 있었다.
어머니나 나그네에 비해 시동생은 차갑고 냉정했다. 간혹 마주치기라도 하면 내게 보내는 냉랭한 눈빛. 그것은 해로운 곤충을 마주하거나 도둑으로 의심되는 사람을 감시할 때 보이는 눈빛과 같았다. ……속초는, 그가 있는 속초는 여기에서 얼마나 먼 걸까.
그리고 하나 나는 내 모든 것이 여자에게 전달되기를 바랐다. 세차게 뛰는 심장과 요동치는 피와 떨리는 살과 뜨거운 숨결이 손끝으로 집중되어 하나하나 전달되기를 바랐다. 그리하여 내가 중국으로 떠나지 않아도 되기를, 그저 그렇게 여자 옆에 머물 수 있기를 바랐고 바랐다. 하지만 그것은 헛된 욕망일 뿐이었다.
나는 이제 중국으로 간다. 항구 뒤로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았다. 바다 멀리 햇솜 같은 흰 구름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나는 그 구름 위로 한 송이 꽃이 하얗게 피어오르는 것을 보았다. 그 꽃은 어쩐지 누군가의 얼굴을 닮은 것도 같았다.
그리고 둘 나는 방문 앞에 서서 어둠 속을 응시했다. 어둠이 눈에 익으면서 방 한가운데서 자고 있는 나그네의 모습이 보였다. 나그네를 향해 조용히 말했다. “내 이름은 해화예요, 림해화.” 마지막으로 나그네의 얼굴을 한번 더 보고 방문을 열었다. 문턱을 넘어 첫발을 내딛자마자 모든 두려움이 사라졌다. 문을 열면 새로운 어둠이 몰려왔지만 두려울 것이 없었다.
다시 하나 형에게 걸어가다 문득, 형이 나를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나만 남겨두고 홀연히 떠나버릴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버려질 것에 대한 불안감. 그것은 너무 낯선 느낌이었다. 나는 언제나 떠날 준비만 해왔었다. 한 번도 누군가 나를 두고 떠날 것이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형은 나를 지나쳐 선실로 들어갔다. 텅, 문 닫히는 소리가 심장 깊숙이 파고들었다. 나는 버려졌다, 형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나를 버리면 안 돼, 형은.
(……) “그러지 마!” 형은 몸을 똑바로 세우고 서서 두 팔을 벌렸다. 잠깐, 형이 내 쪽을 쳐다보았다. 아주 잠깐이었다. 그리고 몸을 날렸다. 안개 속으로. 한 마리 새처럼.
다시 둘 나는 지금 속초에 와 있어. 당신이 그토록 보여주고 싶어했던 속초 바다. 자꾸 졸음이 몰려와. 졸음을 견딜 수가 없어서 약을 또 먹었어. 그런데 당신 지금 어디 있는 거지? 나는 여기에 와 있는데. 당신이 왜 이곳으로 와야 했는지 아직도 모르겠어. 내가 왜 여기 왔는지도. 당신 때문이었을까?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아. 당신 얼굴이 가물가물해. 아무리 기억해내려 해도 기억나지가 않아. 버리기로 했어. 모두. 그리고 이젠 돌아갈 테야. 거기, 따뜻한 무덤 속으로. 내가 살았던 곳으로. 이제 몸을 좀 뉘어야겠어.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고 있는 것 같아. 당신이 온 걸까? 아, 참 따뜻한 봄볕이야.
그리고… 맥박치듯 철썩이며 일어나는 포말 속에 형의 얼굴이 보였다. 형은 하얀 이를 드러내고 하염없이 웃고 있었다. 그처럼 환하게 웃고 있는 형의 얼굴을 나는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저 멀리 뗏목을 탄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아주 먼 바다로 항해를 떠나고 있는 중이리라. 나는 모두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잘 가라, 어디든지. 잘 가라.
한국에서의 해화의 여정은, 짐작처럼 쉽지가 않다. 중국에서 한국으로, 시어머니와 남편이 있는 집에서 다시 길 위로, 해화의 여정은 그 끝이 보이지 않는 공중에서부터 내려온 한 줄 천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서커스 단원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어쩌면 인생은, 한판 서커스가 아닐까. 외줄 하나에 걸려 있는 인생이라는 슬픈 곡예.
한 땀 한 땀 문신을 새기듯, 살점과 살점 사이 뼈를 발라내듯
몸이 짜내려가는 뜨거운 언어
“어쩌면 내가 쓰는 소설이 아주 작은 살구씨를 품는 행위인지도 모른다. 고통만 있을 뿐 아무것도 얻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겪는 산고가 아무 소용이 없는 짓이 되더라도, 나는 계속해서 양분을 흡수하고 가슴을 부풀릴 것이다. 그러다 보면 꾸물꾸물 움직이는 동물이 아니어도,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넓히는 나무 한 그루를 내 속에 키울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면, 그리하여 단 한 사람에게라도 새콤한 살구 맛을 보여줄 수 있다면 그걸로도 되지 않을까? 나는 단단한 껍데기가 열리고 싹을 틔우는, 내 몸에 자리잡은, 하나의 살구씨를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을 바깥으로 내보이기 위해 거쳐야 할 고통을 기쁘게 맞을 것이다.”
천운영은 이제 또 한번의 혹독한 산고를 치렀다. 오랫동안 품고 있던 그 씨앗은 여물 대로 여물어 전혀 새로운 싹의 틔웠고 다른 열매를 맺었다. 문학평론가 류보선은 이 소설을 두고 “대단히 밀도가 높을 뿐만 아니라 이전의 천운영 소설이 행했던 역할과는 또다른 방식으로 한국소설사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고 평가했다. ‘동물적 관능의 미학 혹은 야생의 미학’(이광호)을 보여주었던, ‘모든 제도와 구속을 거부하고 자연의 생명력과 친화하며 진정한 자신의 발견에 나서는 야성녀의 초상’(남진우)이었던 ‘도정의 작가’(우찬제) 천운영은 이제 새로운 길에 접어든 것이다. 날것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던 그녀의 인물들은 이제 몸을 숙이고 자신을, 그리고 주변을 감싸안는다. 자신뿐 아니라 다른 이의 상처를 보듬는다. 스스로 타오르던 뜨거운 언어는 이제 그 안에, 작가의 내부에, 소설의 내부에 자리잡아 독자를 뜨겁게 만든다. 혹여라도 그의 소설에 데일까 조심조심 다가갔던 독자들은 이제 넓은 품으로 감싸안는 그의 소설로 인해 위안을 얻고, 새롭게 타오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한때 사랑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있었다. 그것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함부로 날뀌는, 아무래도 다스려지지 않는 지독한 열병이었다. 숨이 막히고 열꽃이 피는 한 시기가 지나고, 몸에는 온통 상처만 남았다. 열병을 앓고 난 후 사랑은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고 생각했다. 사랑은 없다고 단언했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보니 꼭 상처만 남은 것은 아니었다. 잠시 들었던 따뜻한 품속, 잠시라도 받았던 위안, 그것이 사랑이었다. 그러고 보니 상처도 사랑인 게다.”
_‘작가의 말’에서
천운영의 소설을 내리 읽노라면 문장에 오미(五味)가 있다. 쓴맛이 입 안에 고이다가 이내 맑게 가시고 그 자리에 단맛이 괸다. 아귀찬 언어의 숲인 그의 소설은 서늘하면서도 홧홧한 사람의 체온을 느끼게 해준다. 울고 웃고 소리하고 춤추는 사람을 처연하게 보여준다. 그의 소설을 읽다가 창 바깥을 보면 우레가 지나가고, 창 안쪽으로 몸을 돌리면 내 곁에 부종을 앓고 누운 사람이 있다. 그래서 나는 그의 문장을 ‘사람의 늑골을 드러낸’ 문장이라고 부르고 싶다. 천운영의 소설은 “연변의 사과배”처럼 “목마른 갈증이 뚝 떨어지게” 한다. 우리는 그의 소설을 읽어가며 문장에도 과육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가 이번 소설에서 “어째 이제 옴까?”라고 물을 때 그는 천생 사람을 사랑하는 작가이다. _문태준(시인)
* 초판발행 | 2005년 9월 30일
* ISBN 89-546-0052-2 03810
* 신국판 | 280쪽 | 값 9,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