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며 뮤지션의 꿈을 키우고 있는 준페이. 어느 날 밤 그가 일하고 있는 편의점에 강도가 들어 동료 중국인 유학생이 칼에 찔려 중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하고, 그는 참고인으로서 경찰의 조사를 받던 중 젊은 여형사 후키를 만나 서로 묘한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한편 도쿄 다마 강 주변에서는 젊은 독신여성들이 납치되어 비참하게 살해당하는 사건들이 연속해 발생한다.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은 근처 편의점에서 유인수사를 시작한 후키를 목표물로 삼게 되는데……
거짓된 얼굴로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
세계적으로도 인구밀도가 높은 대도시로 꼽히는 도쿄. 도시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의 생활에서도 빠질 수 없는 존재인 24시간 편의점. 낮과는 달리 밤 시간의 도시는 하루 동안 감춰왔던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이면을 인공적인 불빛 아래 드러낸다. 왠지 모르게 솔직해지고 누군가에게 폐부를 드러내고 싶고, 오랫동안 묻어왔던 기억이나 상처가 되살아나거나 혹은 제어할 수 없는 본능이 일어나는 때, 그런 도시의 밤이 이 소설의 무대이다.
휴대용 레코더를 갖고 다니며 머릿속에 떠오르는 노래의 이미지와 멜로디를 녹음하는 준페이. 유년시절 친구의 실종사건 때문에 최근 일어나고 있는 연쇄살인사건에 강한 집착을 보이며 비밀리에 독자적으로 수사를 계속하는 여형사 후키. 그리고 가족에 대한 굴절된 기억 때문에 자신의 가족을 완벽하게 만들어줄 여자를 찾아 범행을 계속하는 범인. 세 사람은 ‘고독’이란 공통점을 갖고 있으며 각기 다른 방식으로 그에 맞서거나, 받아들이거나, 또는 절망한다. 그들은 누구나 과거에 깊은 마음의 상처를 입었고 거기서 빠져나오려 애쓰지만, 결국은 아무 데도 갈 곳이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다. 타인에게 자신의 마음을 이해시키려는 노력을 하면 할수록 거꾸로 갈 곳 없는 딜레마와 자기 혐오에 다다르고 마는 것이다.
텐도 아라타는 이 ‘고독’이라는 감정을 바탕으로 엽기적인 범죄행각과 커뮤니케이션의 부재가 만연한 현대사회를 바라보고 있다. 인간의 부정적인 심리에서 비롯되는 범죄는 그가 다른 작품에서도 즐겨 다루고 있는 소재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만한 주제, 주위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는 주인공들을 등장시켜 작품에 현실감을 가져왔다 (특히 후키라는 여형사 캐릭터와 준페이와의 관계는 <춤추는 대수사선> 유의 경찰활극이 갖고 있는 경쾌함마저 살아 있다). 처음부터 범인이 드러나는 구성은 독자들이 나름대로 추리할 수 있는 재미를 반감시키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각자 다른 개성을 지닌 주인공 세 사람의 시점을 넘나드는 구성과 섬세한 심리묘사 덕에 긴박감은 결코 부족하지 않다. 범죄와 수사과정 묘사에서 무리하게 트릭을 사용하지 않아, 일단 책을 손에 들면 막히는 부분 없이 단숨에 읽을 수 있는 재미도 이 소설의 매력이다.
일본 미스터리 문학의 색다른 매력
일본의 서스펜스 내지 추리문학은 1920년대 에도가와 란포의 등장 이래 꾸준히 이어져내려온 탄탄한 역사를 자랑한다. 고전적인 트릭을 도입한 추리소설부터 사회비판의 메시지를 담은 하드보일드 형사물, 소년층 독자를 겨냥한 탐정물, 미스터리한 정경묘사와 인간심리를 파헤치는 데 중점을 두는 심리소설 등 그 장르도 다양하다. 텐도 아라타는 잔혹한 범죄행위, 혹은 인간관계의 단절과 해체에 의한 광기와 공포 등을 그리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지만, 그의 데뷔작이자 일본추리서스펜스대상 우수작인 이 작품에서는 인간의 심리 가장 밑바닥에 깔려 있는 ‘고독’이라는 솔직한 감정을 통해 불안하기 그지없는 현대인의 심리와 타인과의 유대를 갈망하는 본능, 사춘기적인 반항심과 미래에 대한 불안,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등을 매우 인간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때문에 이 소설은 단지 서스펜스나 호러가 아니라 음악에 대한 열정을 가진 주인공 준페이의 성장소설이기도 하고, 범죄자의 과대망상과 이상심리를 그린 심리소설로 읽히기도 한다. 신인다운 감성이 살아 있는 작가의 초기 모습과 함께 엔터테인먼트 성을 겸비한 일본추리문학의 일면을 발견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텐도 아라타(天童荒太)
1960년 에히메 현에서 태어나 메이지 대학 문학부 연극학과를 졸업했다. 영화 시나리오 등을 쓰다가 소설에 전념하여 추리소설 분야에서 특히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무라카미 류, 야마다 에이미 등 동시대 작가들에게도 격찬을 받고 있는 그는 1986년 『하얀 가족』으로 제13회 야성시대 신인문학상을 수상했으며, 1993년 『고독의 노랫소리』로 제6회 일본추리서스펜스대상 우수상, 1996년 『가족 사냥』으로 제9회 야마모토 슈고로 상을 수상했다. 1999년에는 밀리언셀러가 된 『영원의 아이』로 제53회 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했다. 인간의 정신병리를 극한까지 추구하는 심리 서스펜스와 상상하기도 힘든 처참한 묘사로 정평이 나 있다.
옮긴이 양억관
1956년 울산에서 태어났다. 경희대 국문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소크라테스 최후의 13일』 『달빛의 강』 『공생충』 『나의 인생은 영화관에서 시작되었다』 『포플러의 가을』 『항우와 유방』 『봄의 오르간』 『남자의 후반생』 『나는 공부를 못해』 『코인로커 베이비스』 『69』 『4teen』 등이 있다.
* 2005년 11월 7일 발행
* ISBN 89-546-0042-5 03830
* 145*210 | 360쪽 | 9,500원
* 담당편집 : 이상술, 양수현(031-955-88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