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붙은 영혼을 어루만져주는 일상 속의 작은 기적
오랫동안 길러온 고양이의 죽음에 괴로워하던 30대의 커리어우먼이 우연히 들른 애완동물 가게에서 만난 인간의 불행을 먹고 사는 전설의 동물 「시에」, 젊은 시절 연극에 대한 열정을 함께 나누었던 옛 연인이 몇십 년 만의 재회의 순간에 처음으로 전해주는 사랑의 표현 「올림포스의 성녀」, 외동딸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난 아내와의 추억이 깃든 경마장을 찾는 대학교수와 그로 인한 새로운 「인연」의 시작. 그가 그리는 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마음 어딘가에 상처를 입고, 잊을 수 없는 추억을 간직한 채 맞부딪히는 현실에 고민하면서 살아간다. 그들이 겪는 비현실 같은 현실, 거짓말 같은 진실은 지극히 인간적인 ‘사랑’이라는 감정과 함께 어느새 우리의 삶에 겹쳐진다.
표제작 「산다화」는 그러한 ‘일상 속의 기적’을 담담한 감동으로 전해주는 수작이다. 부동산 사업의 실패로 빚을 떠안아 보험금에 가족의 장래를 맡기고 자살을 결심한 한 남자가 우연히 신혼 시절 아내와 다니던 목욕탕을 들르게 된다. 이십 년 전과 변함없이 자신들 부부를 기억하고 있는 주인과 정원에 만발한 산다화가, 비록 가난할지언정 마음만은 풍족하고 행복했던 그 시절의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손짓한다. 쫓기고 쫓겨서 더이상 움직일 곳도 없을 때 비로소 마음속을 따뜻하게 비춰주는 작은 불빛. 미처 둘러보지 못했던 주위의 아군들. 그 때문에 힘든 현실 자체는 바뀌지 않더라도 사람은 ‘다시 한번’ 일어설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아이러니와 위트가 공존하는 아사다 지로의 세계
아사다 지로의 작품들 곳곳에는 또한 번뜩이는 재치와 날카로운 시각, 기묘한 반전과 아이러니 등이 특유의 담담한 문체와 절묘하게 어우러져 그만의 도시적이고도 인간적인 세계를 만들어낸다. 게이바의 우아한 마담을 동경하는 젊은 오카마들과 장례식에서 밝혀지는 그의 이중생활에 대한 비밀 「마담의 목울대」, 옛 연인의 아름답고 행복한 모습을 우연히 기차 안에서 발견한 며칠 후 이번에는 범죄자로 압송되어가는 그녀의 모습과 맞닥뜨리는 중년남자, 이른바 ‘나와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또다른 내가 있다’는 불가사의한 현상을 소재로 삼은 「재회」, 한밤중에 만취한 채로 집 앞에 쓰러져 있는 젊은 여자와 그녀를 데리러 온 남자가 놓고 간 정체 모를 거금에 얽힌 짤막한 해프닝 「영하의 재액(災厄)」, 정리해고 직전, 아슬아슬하게 자리잡은 마지막 보루에서마저 회사 최고의 문제 직원에게 시달리는 가련한 중년 샐러리맨의 이야기 「트러블 메이커」 등, 어디까지나 인간을 향하고 있는 그의 시각은 절대 짓궂거나 염세적이지 않게 현대사회의 여러 군상들을 그려낸다.
당신은 아름다운 거짓말을 해본 적이 있습니까?
제각기 상처와 외로움을 안고 살아가는 주인공들은 어느 순간 하늘에서 떨어진 듯한 우연으로 잊고 살았던 삶의 조각을 깨닫고 새로운 시작의 선을 긋는다. 그것은 수많은 문제와 고민에 둘러싸인 우리가 남몰래 기다리고 있는 기적들이다. 잠깐만이라도 그 행운의 환상에, 아사다 지로가 선사하는 거짓말에 속아보는 것은 예상 외의 치유력을 발휘해줄 것이다.
여기 실린 여덟 편의 단편들은 마치 타인을 통해 내 삶을 구경하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아파해야 할 부분에 같이 아파하고, 슬퍼해야 할 부분에 같이 슬퍼하다보면 ‘아, 나뿐만 아니라 타인도 그렇구나’ 하는 위로와 함께 희망이 생기면서 한 편의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마치 짧은 영화를 연작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아사다 지로(淺田次郞)
아사다 지로는 이 책에서도 어김없이 그의 글을 읽는 이들에게 살아볼 만한 세상이구나, 하는 희망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_역자 후기에서
너무도 그럴듯해서 거짓말 같고 믿기 힘든 얘기마저도 한 인간의 행복과 불행을 통해 생생하게 그려내주는 것이 아사다 지로의 능력이다. _마이니치 신문
마치 겨울날의 햇살과도 같은 따뜻한 온기로 마음이 얼어붙은 사람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주는 듯한 작품들이다. _베스트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