쉿, 나의 세컨드는
- 저자
- 김경미
- 출판사
- 문학동네
- 발행일
- 2001-11-23
- 사양
- 148쪽 | 121*186
- ISBN
- 89-546-0130-8 02810
- 분야
- 시
- 도서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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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 정가
- 7,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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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그러고 보니 눈물 잘 흘리던 전생에는 사랑이
참 많이 힘들고 미안했었습니다 부디 용서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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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경미
1959년 경기도 부천에서 태어나 한양대 사학과를 졸업했다. 198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비망록」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쓰다 만 편지인들 다시 못 쓰랴』『이기적인 슬픔들을 위하여』, 사진에세이 『바다, 내게로 오다』『막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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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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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리뷰
등단 이래 황폐화된 개인의 내면을 다각도로 굴절된 이미지와 감각적인 시어로 파고드는 시세계를 구축해온 김경미 시인의 세번째 시집 『쉬잇, 나의 세컨드는』의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2001년 초판이 발행된 지 근 오 년 만이다. 개정판을 준비하면서 시인은 몇몇 작품을 대폭적으로 손보았고 여전한 애독자들을 위해 시인의 등단작이자 대표작으로 일컬어지는 「비망록」(198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을 절판된 첫 시집(『쓰다 만 편지인들 다시 못 쓰랴』,실천문학사, 1989)에서 고스란히 옮겨 실었다. 『쉬잇, 나의 세컨드는』에서 시인은 타인과의 불화 혹은 부조화를 겪는 시적 화자들의 언설을 통해 자아의 내부를 농밀한 감성과 정직한 목소리로 표현해내고 있다.
환멸과 갈망, 쓸쓸한 생의 이중주
총 70편의 시를 4부로 나눠 묶은 이 시집의 화자들은 대부분 생에 대한 깊은 허무의식과 숙명론 그리고 아릿한 열패감에 사로잡혀 있다. 그들은 세계 혹은 타인과 교감하거나 화해하지 못하고 자기 혐오나 도피의 방어기제로 스스로의 삶에 높다랗고 견고한 울타리를 세워놓고 그 울타리 안에서 자신들의 외로움을 뼈저리게 자각한다. 그러나 그 외로움의 자각이 바로 모든 생의 유일한 흔적이라며 생의 총체를 끌어안으려는 노력을 의도적으로 포기한 채 갈망과 상처 따위들은 부질없다고 결론 내린다.
부질없다 부질없다 부질없다고 대웅전 앞마당을/서성이던 기억밖에 더는 무엇이 있을 건가/몸 이룬 흰 모래들 벚꽃잎처럼 화르르 털어내는 바람이 있을 뿐 손목의 꽃이며/마음 그늘도 다만 흩날림일 뿐 모든 생의/유일한 흔적은 오직/혼자일 뿐이라는 것 ―「타인, 타인들」중에서
시인은 화자의 고립된 내면과 그 실상을 반영하는 이러한 인식을 통해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쓸쓸함의 뿌리에 대한 성찰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은 처음부터 타인과 공유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어 있는 보편적 쓸쓸함이라기보다는 그 너머에 존재하는, 사람으로서는 끝내 어찌해볼 수 없는 것들이 품고 있는, 그리하여 끝내 “사람보다 더 깊고 오랜 무엇/햇빛이나 바위며 물안개의/세월, 인간을 넘는”(「쓸쓸함에 대하여」) 한 폭의 아득한 풍경으로 읽히기도 한다.
이때 그 풍경의 언저리에 서서 화자는 조용히 고백한다. “진심으로는 인간에 스미지 못했다/늘 붉은 옥도정기처럼 쓰라리게 도망해서야 모든/병 나으리라 했다/(……)/인간을 사랑하지 못했으니/온몸, 무덤처럼 퉁퉁 붓도록/인간의 돌을 맞아/쓰러진 김에 입관 같은 뿌리 다시 내려/치마 같은 활엽수 선선히 펄럭이는/아예 다른 근원에 가보고 싶다”(「돌」)고. 이 고백을 빌려 시인은 짐짓 부질없고 헛된 것으로 단정지었던 생을 향한 갈망을 드러내는데 여기에서 우리는 화자의 내면을 규정하는 두 가지 인식, 바로 환멸과 갈망을 발견하게 된다. 스밈과 사랑의 인간관계에 대한 화자의 환멸과 두려움은 회복 불능처럼 비치는 외로움과 쓸쓸함을 낳지만 그 뒤에는 “아주 다른 육체와 언어를 시작하리라 마음을 바꾸는 마음을 보리라 생을 바꾸는 생을”(「언덕 위의 베란다」) 같은 구절에서 드러나듯 “아예 다른 근원”에 대한 갈망이 동전의 양면처럼 맞붙어 있다. 결국 시인은 생에 대한 곰삭은 환멸과 끝끝내 버릴 수 없는 새롭고 다른 생에 대한 갈망이 부단하고 투쟁적으로 중첩되는 모습을 통해 자아의 불안하고 적막한 내면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밑그림 위로 이 시집 속의 시들은 처연한 아름다움을 숨기지 못한 채 여러 겹으로 채색되며 우리의 눈길과 시심(詩心)을 붙잡아 끈다. 그것은 아마도 자기 안에 갇혀 있느라 오랫동안 돌보지 못한 생에 대해 미안해하는 마음이 시집 곳곳에서 묻어나기 때문은 아닐는지……
미안하다 미안하다 몇백 번이라도 미안하다고
나를 만난 내 모든 생에 용서 구하면
떨어진 초록잎들 다시 나뭇가지 가 붙고
바닷물 아무리 덮쳐와도 물 속 물고기처럼
다시 또 아무 일 없는 아늑함으로
끝내는 이 저녁마저 산책게 해주리라고
―「회귀」중에서
차마 터뜨리지 못해 쓸쓸하고 선연한……
김경미의 시는 쓸쓸하다. 뇌관을 찾아 헤매던 그리움이 막상 뇌관을 발견하면 차마 터뜨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뇌관을 쓰다듬는 촉감이 살아 있다. 비탈리의 〈샤콘느〉나 헤비메탈에 동시에 끌리는 현대인의 촉감이다. 그 촉감 속에 김경미의 시는 쓸쓸하고 선연하다. 황동규(시인)
『쉿, 나의 세컨드는』에는 익명의 여성들이 있다. 인생의 밝은 것들하고는 무관했던 여성들이 얼마간 나이를 먹어 지금의 내가 혹시 생의 “혐오시설”은 아닐까? 괴로워하며 서 있다. 무상한 시간 속에 던져진 채 하루하루를 견디는 동안 이 여성들은 어느 날 철거될지도 모른다는 존재론적인 공포에 에워싸여 있다. 간절히 타자와의 소통을 원하나 타자들은 나를 스쳐 지나갈 뿐이다. 익명의 당신이 내지르는 비명을 또다른 타자인 내가 듣는 일이 이 시집을 읽는 일이기도 하다. 그 파문을 따라가는 일은 고독하고 스산하다. 그러나 그들은 폐허를 통과하여 나는 두번째라는 경지에 이른다. 첫번째는 당신이다. 나는 두번째다. 체념이 아니다. 생성일 수도 있고 죽음일 수도 있는 모든 타자의 생을 첫번째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상처의 자리, 그 두번째에 자신을 둠으로써 김경미의 여성들은 고스란히 자기 자신일 수 있게 되었다. 신경숙(소설가)
* 2006년 3월 31일 발행
* ISBN 89-546-0130-8 02810
* 121*186|148쪽|7,500원
* 담당편집: 조연주, 오경철(031-955-8865, 3572)
그러고 보니 눈물 잘 흘리던 전생에는 사랑이
참 많이 힘들고 미안했었습니다 부디 용서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