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지만 엉뚱한 이웃, 누구에게나 한 명쯤은 있다!
『좀머 씨 이야기』와 『노박 씨 이야기』의 뒤를 이을 별난 이웃 한 명이 탄생했다! 그의 이름은 야코비 씨. 좀머 씨와 비슷해 보이면서도 사뭇 다른 미스터 야코비의 일상이 독일 유명 작가 아네테 펜트의 글과 독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북 일러스트레이터 유타 바우어의 그림과 함께 어우러진 책 『작은 거인 야코비』가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타인과 함께 살아가기는 어렵지만 때로는 타인의 존재가 위안이 된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야코비 씨의 일상 스케치. 정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한 그림과 글은 주변을 되돌아볼 시간이 없는 바쁜 현대인의 삶 속에서 특별한 여운을 선사해줄 것이다.
Mr. 야코비의 너무나 평범한 프로필, 하지만…
이 책에 나오는 배경은 흔히 보던 사랑과 정감이 넘치는 고향 같은 동네도 아니고, 그렇다고 빌딩숲이 빽빽한 도시도 아니다. 적당히 차갑고 또 적당히 사람 사는 냄새가 풍기는 동네. 그 동네 어딘가에 독신남 야코비 씨가 살고 있다. 나이는 30대로 추정, 직업도 불분명하고 직장도 없는 듯하지만, 어쨌든 광물을 수집하는 일을 하는 것 같다. 매일 아침 7시 10분이 되면 친구가 선물한 자동 오븐도 마다한 채 직접 빵을 반죽해 구워 먹고, 가끔은 저녁에 자전거를 끌고 동네를 한 바퀴 산책하기도 한다. (절대로 자전거를 타는 게 아니다! 자전거를 끌고 걸어다니는 것이다!) 매주 화요일에는 스텔라라는 여자 친구가 야코비 씨네 집에 와서 일도 도와주고 청소도 해준다. 그녀와 그는 대체 어떤 관계일까? 미묘한 관계 속에 정확히 드러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안색이 나쁘게 변해도 아무도 말해주는 사람도 없고, 누가 뭐라고 나쁜 소릴 해도 한마디 대꾸도 제대로 못하는 소심한 사람, 야코비.
이상의 프로필로 보건대 이 이야기의 주인공 야코비 씨는 대체로 ‘조용하고 심심한 삶’을 살고 있다고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심심한 남자 야코비 씨의 “세상을 다르게 사는 법”
Mr. 야코비의 이보다 더 특이할 수 없는 일화 베스트
길에서 주운 핸드크림을 마법의 크림이라 속인 뒤 소년에게 주문을 외우게 하기.
길거리에서 낯선 부인과 쭈그려 앉아 돌멩이들을 진지하게 관찰하기.
그동안 모아놓은 책을 표지 색깔, 장정 종류, 크기에 따라 정리했다 꺼냈다 반복하기.
보트를 탈 때면 관리인 몰래 노를 물속에 던져버리고 조용히 떠다니기.
신발 신기를 싫어해서 맨발로 길바닥의 홈을 느끼며 걸어다니기.
Mr. 야코비의 이보다 더 훈훈할 수 없는 일화 베스트
짝사랑하던 스텔라가 휴가를 가자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면서 엽서를 써야겠다고 결심하기.
선물 받은 멋진 초록색 우산을 버스 정류장에 놓고 우산 없는 사람이 나타나길 기다리기.
공원에서 어린아이를 만나 서로가 가진 보물을 소중한 듯 보여주기.
Mr. 야코비의 이보다 더 억울할 수 없는 일화 베스트
사람들에게 억울하게 한소리 듣고 나서 횡단보도 신호등에게 분풀이하기.
기차역에서 친절하게 트렁크를 들어주겠다고 제안하지만 도둑으로 몰리기.
수영장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에 늦어 혼나고는 혼자 수영장 물벼락 맞고 서 있기.
건물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어느 회의장에 들어가 사람들에게 눈총 받기.
야코비 씨의 에피소드들을 읽다 보면 때로는 황당하고, 때로는 마음이 따뜻해진다. 요즘 세상에 난무하는 엽기적이고 황당한 이야기에 비하면 오히려 평범하다고 할 수도 있는 일화들이지만, 우리 일상에서 발견할 법한 이웃의 이야기 같은 야코비 씨의 이야기는 확실히 잔잔한 여운과 웃음, 때로는 슬픔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작지만 큰 거인’ 야코비 씨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은 아주 선하지도, 그렇다고 아주 악하지도 않다. 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치 우리들의 모습을 묘사한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이렇게 생각해 보자. 사무실에서 한참 회의를 하는데 갑자기 문을 열고 나타난 이상한 남자. 허둥지둥하다 나가버리는 그 남자를 두고 우리는 바보 같다며 한마디씩 하고는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길거리에서 쭈그리고 앉아 어느 아주머니와 돌들을 관찰하고 있는 남자. 우리는 그를 힐끔 보고 ‘지저분한 거리에서 뭐 하고 있는 거지?’ 라고 생각하며 지나갈 것이다. 선물해준 자동 오븐이나 멋진 자동 우산도 쓰지 않는 이 남자. 딱히 뭐라 할 말은 없지만 어쨌든 이상한 남자. 야코비 씨를 보는 다른 사람의 시선은 바로 우리들의 시선일 것이다.
이야기의 끝부분에 야코비 씨는 숲으로 가서 지내기로 결심한다. 눈에 드러나지 않은 이웃들의 무관심, 조금 특이한 행동에 대한 사람들의 눈총, 상대방을 향한 웃음과 따뜻한 말 한마디가 사라져버린 도시 - 혹은 그 말 한마디만 던지고 더 깊이 관심 두지 않는 도시 - 에서 야코비 씨는 함께 어울려 사는 삶의 의미와 의욕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 아닐까? 야코비 씨가 살아나갈 수 있는 힘은 다름 아닌 다른 사람들의 따뜻한 관심과 웃음 한 조각일 것이다.
야코비 씨는 특이한 사람이긴 하지만 남에게 피해를 주지도 않고 나쁜 짓을 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다른 평범한 사람들과는 조금 다르게 세상을 사는 사람인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 대해 조금만 관심과 관용을 보여준다면, 야코비 씨가 숲에 들어가 나오지 않는 일은 없지 않을까? 조용하지만 조금 특이한 사람, 이런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세상은 웃음 지을 수 있는 작은 에피소드도 많아질 것이다. 그런 바람에서 작가 아네테 펜트는 야코비 씨에 대해 ‘작은 거인’이라 감히 이름 붙였을 것이다. 이 세상에 작은 거인이 더욱 많아지기를!
해외 언론 리뷰
이 책에 담긴 25편의 짧은 에피소드들은 평범한 일상의 이야기들이면서 동시에 놀라운 감동과 깊이를 전달한다. 어떤 이야기는 한 번 소리 내어 웃고 싶을 만큼 우습기도 하고, 또 어떤 이야기는 잔잔한 지혜를 담고 있기도 하다. 때론 일상에서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며 아무 생각 없이 저지르는 행동을 남에게 들켜버린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어쩌면 이상하고 독특한 건 야코비 씨가 아니라 그를 둘러싼 세상이 아닐까? 야코비와 같은 인물을 독자 스스로 상상해낼 수도 있겠지만, 유명 일러스트레이터 유타 바우어는 글의 화법과 어울릴 법한 위트를 가미하며 간결한 방식으로 인물을 그려냈다.
_쥐트도이체 차이퉁
본문 발췌
시골에서 지내보는 것도 좋겠어요. 도시 바깥으로 나가 깨끗한 공기를 마셔보면 좋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몸이 무척 쇠약해질 거예요. 의사는 야코비 씨에게 말했습니다. 안색이 노랗군요. 당신에게 이런 말을 해준 사람이 아무도 없었나요? 네, 없었습니다. 야코비 씨는 양손에 볼을 댄 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지 도를 펼쳐 흙이 많은 곳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다 룬티겐이라는 시골 마을을 찾아냈고, 바로 다음 날 그곳 으로 떠나기로 마음먹었지요. (<야코비 씨는 시골로 갔습니다> p.45-46)
시간이 흘러 야코비 씨는 신발을 신고 다니는 것에 적응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책상에 앉아 있을 때나 극장 안에서, 그리고 전철 안에서는 늘 신발을 벗고 발가락 사이를 벌리고 있어야만 했어요. 야코비 씨는 무릎을 꿇은 자세로 앉아 좌석 아래 나란히 놓은 신발이 쉴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아이들이 맨 먼저 그 광경을 발견하고는 신발을 가리키며 코를 틀어막았어요. 그러자 전동차 내부로 키득키득 웃는 소리가 빠르게 번져갔지요. 여자들은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리며 입을 꾹 다물었어요. (<야코비 씨와 신발> p.8)
층계 위에는 시카네더 씨가 커다란 물주전자로 화분에 물을 주고 있었습니다. 주전자를 높이 들어 올렸기에 그의 팔은 부르르 떨리고 있었지요. 야코비 씨는 거의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그의 곁을 지나쳤지만, 시카네더 씨는 그의 발소리를 듣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야코비 씨 쪽으로 몸을 돌리려 했는데 순간 왼손에서 주전자가 미끄러져 주전자 속의 물이 창틀에 쏟아지고 말았습니다. 시카네더 씨는 누가 이걸 다 닦아내겠냐며 버럭 고함을 쳤습니다. 당신이 책임지쇼. 야코비 씨는 난간에 등을 기대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당신, 왜 거기 가만히 서서 웃고만 있는 거요? 시카네더 씨는 시비를 걸듯 말했습니다. 야코비 씨는 웃지 않았습니다. 대신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시카네더 씨에게 건넸지요. 하지만 시카네더 씨는 더 크게 소리를 질렀고, 그래서 하마터면 양쪽 눈알이 밖으로 튀어나올 뻔했습니다. (<야코비 씨의 말다툼> p.11-12)
어느 날 야코비 씨는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것에 싫증이 났습니다. 전철 안에선 사람들이 기침을 하다 야코비 씨의 목에 침을 튀겼고, 슈퍼마켓에 가면 빵은 다 팔리고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극장에 가서 앉은 자리엔 껌이 붙어 있었지요. 야코비 씨는 마지막 결단을 내리기로 했습니다. 지금까지 모았던 광물을 다 치우고 스텔라에게 쪽지를 써서 식탁에 놓았습니다. 쪽지에는 다시 돌아오지 않겠다는 말이 적혀 있었습니다. (<야코비 씨는 숲으로 갔습니다> p. 7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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