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은 거대한 화실이었고, 위대한 스승이었다!”
프랑스의 작은 마을 바르비종에서 만개한 자연과 예술의 사랑,
그리고 ‘19세기 미술의 징검다리’였던 바르비종 미술의 어제와 오늘
우리나라에서 인기몰이를 하는 화가 중의 한 명이 밀레다. 농민의 삶과 애환을 화폭에 담아낸 그의 그림은 일명 ‘이발소 그림’의 대명사로 통하면서 ‘잘살아보자’는 의지로 뭉쳤던 70년대 한국인의 정서를 위로해주었다. 그것이 밀레의 그림인 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자연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농민의 모습은 마냥 아름다워 보였던 것이다. 그 밀레가 삶의 터전으로 삼고 농민의 삶을 화폭에 담았던 곳이 파리에서 조금 떨어진 ‘바르비종’이라는 작은 마을이었다.
바르비종파. 밀레로 대표되는 이 미술유파는 약속이라도 한 듯 바르비종이라는 지역에 모여든 화가들을 일컫는다. 수많은 화가가 이곳으로 모인 이유는 도시화된 파리에서 사라져버린 자연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자연의 풍요로움이 살아 있는 퐁텐블로 숲으로 가려면 바르비종에 기거해야 했다.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가 된 화가들은 바르비종에 모여 예술을 이야기하고 자연을 찬양했다. 그리고 풍경화의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미술사에서 바르비종파는, 고전 풍경화에서 인상파로 나아가는 디딤돌이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인상파가 나타나기 전에는 인간 중심, 신 중심의 사고방식이 지배한 탓에 자연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지 않고 관념적으로 가공해서 그렸다. 그런 만큼 자연은 비현실적이었다. 하지만 바르비종파는 화실 속에 앉아서 머릿속으로만 그리던 자연을 밖으로 나가 있는 그대로 담아내고자 했다. 심지어 물 위에 배를 띄워놓고 그림을 그린 화가 도비니처럼 자연의 실제 풍경을 포착하려고 노력한 것이다. 이런 바르비종파의 작업이, 훗날 화실을 박차고 나갔던 인상파가 태동하는 데 디딤돌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이 책은 국내에서 단행본으로 접하기 힘든 바르비종파에 대해, ‘자연을 사랑한’ 바르비종의 화가들에 대해 세 명의 지은이가 힘을 합쳐 입체적으로 접근한 책으로서, 전체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바르비종 현장 답사기이다. 19세기 당시, 화가들이 바르비종을 찾아간 행보를 그대로 좇아 샤이-바르비종-퐁텐블로 숲을 답사하고 풍부한 현장 사진을 곁들였다. 재불 화가 류승희의 작가적인 시선과 2005년에 포착한 생생한 현장이 돋보인다.
둘째, 풍경화의 역사다. 바르비종파를 이해하려면 먼저 알아야 할 풍경화의 역사를 미술사가 노성두가 맡았다. 이 글은 바르비종의 풍경화가 출현하기까지 풍경화의 역사 조명을 통해 바르비종파의 위상과 그들의 역할에 대한 입체적인 이해를 도와준다.
셋째, 바르비종파의 화가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미술사가 김영숙이 농민의 생활을 담은 밀레, 퐁텐블로 숲의 모습을 왜곡하지 않고 그대로 담아낸 테오도르 루소, 은빛이 감도는 서정적인 풍경화 화풍을 구축한 코로, 동물화가로 불리는 자크 등, ‘바르비종의 일곱 별’이라 불리는 화가들을 중심으로 바르비종파에 대해 심층적으로 접근했다.
비단 바르비종파뿐만 아니라 풍경화에 대해 일반인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이 드문 우리의 현실에서, 이들 각각의 원고는 독립된 텍스트로서도 손색이 없다. 미술의 산실인 바르비종의 생생한 현실과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의 숨결을 화폭에 담아낸 화가들, 그리고 풍경화의 시원과 발전에 대한 궁금증까지, 이 책은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여주듯 바르비종파의 모든 것을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지금 우리나라 미술계에서도 번잡한 도심을 떠나, 대자연 속에서 주변 풍경과 일상을 포착하는 작가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런 추세에 바르비종파 거장들이 보여준 ‘자연으로의 귀의’는 먼 옛날
남의 나라 일만이 아닌,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하나의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