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가지 스토리로 즐기는 내 손 안의 클래식!
음악 전문 기자가 요리한 맛있는 클래식 음악 이야기
사실을 인정하자. 클래식 음악은 불친절하다. 곡 하나를 얘기하려고 해도, 정서적으로 와 닿지 않는 숫자와 알파벳의 나열에 멈칫하게 되고, 거기에 작곡가는 물론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연주자의 이름에 녹음연도와 음반사 이름까지, 외워야 할 것은 또 왜 그렇게 많은지. 지나치다 들은 아름다운 선율에 반해 음반을 한 장 구입하려고 해도, 수많은 것들 중에 무엇을 골라야 할지도 막막하기 십상이다. 연주회장에 한번 가보려고 해도, 비싼 티켓 가격에 기죽기 마련이다. 이런 특성 때문에 클래식 음악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되기 쉽다.
하지만 클래식 음악은 생각보다 꽤 우리 곁에 가까이 있다. 당신이 좋아하는 영화의 OST로, CF의 배경음악으로, 그리고 당신이 낄낄거리며 읽은 만화책 속에, 클래식은 있다. 짤막한 글 100편으로 이뤄진 이 책은 바로 이렇게 ‘우리 주변’의 ‘쉬운’ 클래식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를테면 클래식 음악과 와인을 비교하고(빈티지가 중요하고 ‘품종’이 다양하며 ‘시간의 예술’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고 눙친다) 클래식 감상을 시작하고자 한다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연주회장에 갔을 때 졸리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은지 등 지은이는 사소한 이야기로부터 시작해서 사람들이 느끼는 클래식의 높고 두터운 성벽을 조금씩 허물고자 한다. 클래식 음악만의 고유한 특성에 겁을 먹고 선뜻 발을 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가깝고 친숙한 언어로 클래식을 이야기해주는 것이다.
“닮은꼴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클래식 음악과 와인에는 공통점이 많습니다. …… ‘시간의 예술’이라는 점도 음악과 와인의 공통점입니다. 와인을 소주나 폭탄주처럼 단숨에 들이켜지 않듯, 음악 역시 ‘빨리 감기’로 듣지 않습니다.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혀에서 그 맛이 변하고, 귀에서 그 멋이 변해가는 모습은 어쩌면 우리 삶과도 꼭 닮아 있지요.” _「클래식과 와인, 이 점이 비슷하다」에서
클래식의 높고 두터운 성벽을 허물다
이 책은 음악 담당 기자로 일하고 있는 지은이가 기자다운 생생함과 재치를 살려 펴낸 클래식 음악 이야기다. 기자로서 대중을 상대로 하기에 전문적인 언어보다는 일상의 말을 구사하고, “구체적인 현장에 뛰어들고 개입하고 시시콜콜 간섭”하여 포착해낸 생생함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뼈대가 된 글은 『조선일보』에 2005년부터 연재해온 「클래식 ABC」로, 이를 ‘전신 성형수술’과 ‘전면 재건축’을 거쳐 새롭게 꾸몄다. 음악회장에서 ‘박수는 언제 쳐야 할까’ 같은, 클래식 입문자들이라면 누구나 궁금해할 만한 이야기에서부터 작곡가와 지휘자의 세계, 그리고 우리시대 연주자들의 이야기까지 다채로운 클래식 동네 이야기로 꽉꽉 채워져 있다. 모두 100편으로 이뤄진 글 각각은 짧지만 날카롭고, 경쾌하지만 가볍지만은 않다. ‘클래식 수첩’이라는 제목에 걸맞은 손에 딱 들어오는 크기와 호흡 짧은 글 덕분에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후루룩 넘기다가 눈에 띄는 제목의 글부터 읽어도 그만이다. 기자다운 재기발랄함과 명쾌함 덕분에 어렵고 고루하게만 느껴졌던 클래식이 친근하게 다가온다. 이 책은 클래식 초심자에게는 든든한 준비운동이, 애호가에게는 즐거운 읽을거리가 되어줄 것이다.
감상의 기초부터 튼튼한 체력 키우기까지
『클래식 수첩』은 모두 다섯 장으로 이뤄져 있다. 특히 1장은 클래식이 궁금한 입문자들에게 유용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접근하기 쉬운 감상법에서 음반 고르는 법, 연주회장의 매너 등의 내용으로 채웠다. 2장은 클래식 동네의 사람들 이야기들과 음악 상식 등 흥밋거리가 될 만한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역시 클래식 하면 거리가 멀고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심리적 장벽을 허물어줄 것이다. 1장과 2장으로 준비운동을 했으면 본격적으로 클래식 바다에 뛰어들 차례다. 3장에서는 작곡가들의 이야기를 담았고 4장은 명지휘자들을 소개한다. 5장에서는 현재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연주자와 성악가 들을 중심으로 꾸몄다. 마리아 칼라스, 루치아노 파바로티,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와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같은, 익숙하지만 이제는 우리 곁을 떠난 연주자들만이 아니라, 실제 연주회장에서 만날 수 있는 연주자들을 소개한다.
1장 〈클래식 감상의 ABC〉에서는 클래식 음악이라는 망망대해를 항해하기 위한 좌표를 마련해준다. 클래식 감상을 위한 자세와 자신만의 감상 노트를 만드는 방법에서부터 실제 연주회장에서 어떤 자리에 앉아야 하는지 등의 실제적인 조언까지, 초심자들이 눈여겨 볼만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모차르트 교향곡을 들어보려고 음반점에 들렀는데 너무 많은 종류에 질려 무엇부터 들어야 할지 모를 때라면 “명반에 대한 집착은 일단 잊”으라고 지은이는 충고한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곡의 음반을 여러 장 비교해가면서 들어보는 것은 어떤지 제안한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풍성한 클래식 세계의 맛을 알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교향곡 자체를 듣는 것이 어렵게 느껴지는 사람이라면 ‘이름 있는’ 교향곡부터 들어볼 것을 권한다. 소위 ‘표제곡’부터 챙겨 들으라는 것이다. 곡에 붙어 있는 제목이 음악을 이해하는 데 힌트가 되기 때문이다.
집에서 음반을 들어보다가 직접 음악회에 가보려는 사람들을 위한 유용한 팁도 있다. 굳이 로열석 티켓을 사지 않더라도 음악회 특성에 따라 구할 수 있는 좋은 자리가 어디인지를 소개하고, 박수는 언제 쳐야 하는지, 휴대폰을 끄지 않으면서도 분위기를 망치지 않을 수 있는 방법까지 세세히 전한다. 음악회에 갔는데 잡념과 졸음에 힘겨운 사람들을 위해서는 ‘음악회 도중 딴전부리는 법’을 전수한다. 물론 지은이가 직접 사용하는 방법이다. 오케스트라의 관현악 연주라면 악기 별로 단원 수를 세어보라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오케스트라의 ‘편성’에 눈뜨게 되는 부수적 효과까지 누릴 수 있다.
2장 〈화려한 막 뒤의 클래식 풍경〉에서는 무대 뒤편의 음악계 풍경을 슬쩍 들여다보고, 음악 용어와 악기 등에 관한 상식도 전한다. 사소하지만 궁금했던 것들,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기들, 무대 위로는 올라오지 않을 이야기들이 담겼다. 흔히 ‘넘순이.넘돌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페이지 터너가 피아니스트 콘서트에서는 실상 연주의 절반을 맡겨야 할 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을 아려주고, 연주자들이 악보를 보고 연주하는지 아니면 외워서 연주하는지 같은 짓궂은 궁금증을 해소시켜준다. 스스로는 소리를 내지 못하지만 오케스트라의 하모니를 이뤄내는 ‘가장 싼 악기’ 지휘봉 이야기, 오케스트라에서 음의 기준을 제시하는 악기 오보에 이야기 등이 흥미롭고, 오케스트라의 연주자로 활동하면서 독주 활동도 병행하는 ‘투잡족’ 연주자들에 대한 직장인으로서의 부러움을 드러낼 때는 공감하는 마음에 슬며시 웃음이 난다. 음악회에서 리허설의 의미 등 화려한 막 뒤의 세계를 조명하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오케스트라의 기준을 제시하는 악기 오보에 등 소소하지만 흥미로운 음악 이야기를 다룬다.
3장 〈그들의 음악이 사랑받는 이유〉에서는 작곡가들의 세계를 다룬다. 바로크 시대의 3대 작곡가는 ‘비발디, 바흐, 헨델’, 고전파 3대 작곡가는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이라는 식의 암기에서 벗어나, 이들의 작품에 깃들어 있는 실제 매력은 무엇이고 왜 여전히 사랑받고 있는지 그 이유를 찾아보자는 것이다. 작곡가들에 관한 각종 일화와 작품 탄생의 뒷이야기, 지은이 자신의 감상 등이 음악에 대한 흥미를 돋운다.
헨델은 클래식의 첫 ‘월드 스타’다. 독일에서 태어나 이탈리아에서 활동했고 영국으로 귀화했으니 그런 별칭이 어색하지 않다. 이렇게 전 유럽을 종횡무진한 덕에 헨델의 작품에는 “독일의 엄격한 작법과 유려한 이탈리아 성악 양식, 경건한 영국 교회음악의 요소가 모두 녹아 있”다. 불후의 종교음악을 남겼고 ‘음악의 아버지’라 추앙받는 바흐가 구치소에 수감된 이력이 있고 ‘악기 대여업’도 한 바 있다는 사실이 이 경건한 이미지의 작곡가에게 왠지 모를 친근감을 갖게 한다. ‘교향곡의 아버지’ 하이든의 음악에 깃들어 있는 위트를 깨닫는 순간 당장이라도 레코드점으로 달려가 하이든의 음반을 사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영화 「아마데우스」를 통해 널리 받아들여진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갈등관계의 실상을 전하고, 베토벤의 9번 교향곡 「합창」 연주의 역사를 통해 시대 상황이라는 프리즘을 통과하면 음악이 다양한 색을 띨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한다. 그 외에도 슈베르트, 차이콥스키, 바그너, 푸치니, 말러와 피아졸라, 브루크너 등의 이야기도 소개된다.
4장 〈지휘자의 손끝에서 흐르는 마법〉은 작곡가의 음악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 지휘자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스포츠 감독은 경기 중 작전 타임을 부르고 선수 교체를 하고, 하다못해 고함이라도 지를 수 있”지만 음악소리 외의 것은 ‘소음’으로 간주되는 연주회 환경에서 지휘자는 눈빛과 지휘봉만으로 단원들과 ‘작전’을 주고받는다. 사정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저 공중에서 팔을 휘젓는 것처럼 보이지만 작은 손짓, 눈빛만으로 조화롭고 아름다운 음악을 이끌어내는 지휘자들의 세계. 푸르트벵글러, 카라얀, 아바도에서 사이먼 래틀, 구스타보 두다멜까지, 지휘봉과 눈빛만으로 소리를 빚어내는 ‘지휘봉의 마술’을 만나볼 수 있다.
5장 〈우리시대의 연주자들〉은 마리아 칼라스, 굴드 등 신화적인 음악가들뿐 아니라 지금 우리 곁에서 숨 쉬고 활동하고 있는 연주자들을 소개한다. 연주자에 따라 집중하고 있는 작곡가/곡목도 함께 소개하고 있다. 이를테면 고전 스페셜리스트인 알프레드 브렌델의 경우 국내에 DVD로 출시된 바 있는 슈베르트와 함께 엮어 이야기하는 식이다.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실마리로 해 데뷔 음반으로 이 곡을 취입한 두 명의 젊은 연주자, 마르틴 슈타트펠트와 임동혁이 소개되는 등 브렌델이나 아르헤리치 같은 거장은 물론 신예 연주자들도 놓치지 않는다. 기자로서 연주자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한 경험이 녹아 있는 것도 생생한 느낌을 전한다. 클래식 초보자에게는 생소할지도 모르는 이름들이지만,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어느새 감상할 클래식 음악 리스트가 쌓여가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추천사**
한국에 올 때마다 유난히 자주 마주치는 얼굴들이 있다. 그 가운데 한 명이 김성현 기자다. 오케스트라 리허설 중간에 잠시 짬을 내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에도, 피아노 연습을 마치고 방에서 나갈 때에도, 그는 나와 눈만 마주치면 시도 때도 없이 질문을 퍼부어댄다. 그는 나를 괴롭히는 사람 중의 하나다. 좋건 아니건 김 기자는 자기 직업에 걸맞은, 아주 주요한 자질을 갖추고 있다. 그건 바로 ‘끈기’다.
-정명훈(지휘자, 서울시향 예술감독)
읽으면서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김성현 기자의 『클래식 수첩』은 조용하지만 분명하다. 『클래식 수첩』은 짧다. 간결하고 명확한 글 안에서 음악에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 확실한 좌표를 제시하고, 세계 음악계의 흐름을 일러주며, 잘못된 현상은 은근하면서도 정확하게 꼬집는다. 그러면서도 그 속에는 필자의 건강한 견해와 인간적인 매력까지 담겨 있다. 그의 글을 읽으면서 나는 음악이 잘 보여서 좋았고, 그의 미소 짓는 표정이 들여다보여 더욱 즐거웠다. 사람은 나이와 지위만으로 크는 것이 아니라, 글의 내용과 깊이로 성장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걸 그가 일러준다.
_박종호(정신과 의사.풍월당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