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모루와 유키는 ‘꽈리고추를 먹었을 때 첫번째에 매운 게 걸릴 확률’에 상응하는 경쟁률의 청약주택에 입주하는 것이 지상목표인 평범한 신혼부부. 이들 주위에는 그들과 비슷한 시기에 결혼한 유키의 절친한 친구 마이코와 그의 남편 요시다 군이 있다. 넷이 함께 모여 비디오 게임을 하고 강가에 놀러 가는 등 평화로운 일상을 영위하던 어느 날, 요시다 군이 ‘열흘 정도 집을 비웁니다. 꼭 돌아오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라는 쪽지만 달랑 남기고 느닷없이 사라진다. 상심한 마이코를 달래기 위해 유키는 요시다 군을 추적하는 특단의 여름휴가를 계획하고 온천 휴양지로 떠나는데, 밀린 일 때문에 두 사람보다 늦게 따로 합류하기로 한 마모루는 출발 전날 갑자기 집으로 돌아온 요시다 군의 연락을 받게 된다. 어이없게도 그의 가출 이유는 유일한 취미인 카메라 분해를 즐기기 위해서였다는 것. 여자들은 그런 요시다 군을 순순히 용서해주려 하지 않고, 졸지에 요시다 군의 보호자이자 변호인 입장이 되어버린 마모루는 일전에 그와 장난삼아 맺었던 ‘한쪽 커플이 이혼하면 다른 한쪽도 함께 이혼하자’라는 밀약의 내용을 떠올리며 둘의 이혼을 저지하기 위해 분투하는데……
순간과 영원이 교차하는 여름, 인생 초보자들이 펼치는 한여름날의 로드무비
『이력서』에 이은 나카무라 코우의 ‘새로운 시작 3부작’ 두번째 작품이자 제129회 아쿠타가와 상 후보작 『여름휴가』는, 제목에서 상상할 수 있듯 떠들썩하고 에너지 넘치는 휴가철과 그 뒤에 이어지는 나른한 늦여름의 정취가 가득한 작품이다. 강가에서 즐기는 작은 피크닉, 저녁식사에 곁들이는 맥주 한잔, 온천 마을에서 다 큰 어른 둘이 펼치는 한밤의 물놀이는 이윽고 여름의 끝자락에 걸린 아름다운 석양과 불꽃놀이의 이미지로 이어진다. 어엿한 사회인이자 가장이면서도 실은 인생의 초보나 다름없는 주인공이 그 속에서 겪는 각종 해프닝과 주위 인물들과의 대화들은, 순간과 영원이 교차하는 여름이라는 계절의 특색에 거부감 없이 녹아든다.
“빚쟁이들로부터 도망친 요시다 군.” 유키가 말했다.
“국가기밀을 알아버린 요시다 군.” 내가 말했다.
“사랑의 도피를 떠난 요시다 군.” 마이코 씨가 말했다.
“훔친 오토바이로 질주하는 요시다 군.”
“콘크리트 정글 한가운데서 무릎을 끌어안고 쪼그려앉아 있는 요시다 군.”
“일본 일주에 나선 요시다 군.”
“달로 돌아간 요시다 군.”
“미로에서 울부짖는 요시다 군.”
“수술을 두려워 하는 아이를 위해서 홈런을 약속한 요시다 군.”
“주사를 싫어하는 요시다 군.”
우리는 단지 ‘요시다 군’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뿐이었다.
_본문 중에서
종종 이사카 코타로와 비교되곤 하는 나카무라 코우 특유의 간결하고도 센스 넘치는 문체는 그의 작품을 읽는 가장 큰 즐거움이다. 노래가사를 읽는 듯한 경쾌한 리듬, 톡톡 튀는 위트가 곁들인 일상의 철학이 소다수처럼 상쾌한 여운을 남긴다. 특히 후반부에서 마이코 부부가 이혼하느냐 마느냐를 결정하기 위해 난투극을 벌이는 비디오 게임(닌텐도사의 <대난투 스매시 브라더스 DX>)을 진지하게 중계하는 장면은 케이블 채널의 온라인 게임 대결만큼이나 즐겁고 흥미진진하며, 앤티크 기계식 카메라의 매력을 설명하며 자신의 가출의 정당성을 소심하게 주장하는 요시다 군의 일장연설은 ‘신수 훤한 호청년’의 밉지 않은 오타쿠 기질을 멋들어지게 보여준다.
또한 서두부터 등장해 작품에서 꽤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맛있는 차를 끓이는 데 달인의 경지에 오른 마모루의 장모님에게도 주목할 것. 그 외 인자함이 흘러넘치는 렌트카 영업소 주인, 남자 단 둘이서 묵는 수상쩍은 손님을 무뚝뚝하게 바라보는 온천 여관 지배인 등, 주요 등장인물 말고도 곳곳에서 범상치 않은 개성을 발휘하는 조연들 역시 빼놓을 수 없다. 곳곳에 보물처럼 장치된 디테일들이 책을 덮은 후에도 오래도록 청량한 뒷맛을 남기게 해주는 것이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초반에서 마모루와 요시다 군이 의친구가 되어 맺은 밀약. 이것이 생각지도 않게 현실이 되어가기 시작하면서 점점 더해지는 긴장감이 일품이다. 평온한 일상과 갑작스런 가출 여행의 뒤편에서, 설마 설마 하면서도 은밀하게 퍼져나가는 불온한 공기가 이야기를 하나의 큰 덩어리로 만들어준다.
_사카이 유지(뮤지션, 보컬 그룹 ‘고스페라즈’ 멤버)
여름날 오후가 보여주는 일순간의 고요함,
저녁 바람의 청량함과도 같은 행복감이 서서히 마음속에 넘치는 산뜻한 소설.
책 한 권으로 이렇게 흡족한 기분이 든다는 것이 놀랍다!
_일본 아마존 평 중에서
나카무라 코우(中村 航)
1969년 기후 현 출생. 고등학교 시절부터 밴드 활동을 했으며 1993년 대학을 졸업하고 광학기계회사에 입사하였다. 1997년 밴드 활동 중지 후 소설을 쓰기로 결심하고 이 년 후 회사를 퇴사, 2002년 『이력서』로 제39회 문예상을 수상하며 데뷔했다. 이어서 2003년 『여름휴가』가 제129회 아쿠타가와 상 후보에 올랐으며, 2004년 『빙글빙글 도는 미끄럼틀』로 제26회 노마 문예 신인상을 수상했다. 그 외의 작품으로 『100번 울기』 『절대, 최강의 사랑 노래』 등이 있다.
http://www.nakamurakou.com
옮긴이 현정수
일본문학 전문 번역가. 상명대학교 소프트웨어학과 졸업. 옮긴 책으로 『이력서』 『NHK에 어서 오세요』 『목 조르는 로맨티스트』 『잘린 머리 사이클』 『네거티브 해피 체인 소 에지』 등이 있으며, 잡지 『파우스트』의 번역진으로도 활동중이다.
* 2007년 8월 20일 발행
* ISBN 978-89-546-0355-3 03830
* 124*184 | 248쪽 | 9,800원
* 담당편집 : 양수현(031-955-88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