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맑은연어와 은빛연어, 그후 15년…
그리고 새로운 이야기, ‘연어 이야기’는 이렇게 우리에게 왔다
그러므로 알을 벗어나는 일은 나를 찢는 일이었다.
그래야만 전혀 다른 나로 태어날 수 있었다.
그러니까, 벌써 15년 전이다. 눈맑은연어와 은빛연어가 초록강에, 세상에서 가장 장엄하고, 가장 슬픈 풍경 한 장을 남기고 사라진 것이. 그 한 장의 풍경은 ‘강물 냄새’를 머금은 채 이때껏 독자들의 마음에 깊이 각인되어왔고, 15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새로운 풍경 하나를 더 가지게 되었다.(1996년 3월 처음 출간된 이래 『연어』는 2010년 4월 현재 114쇄를 발행했다.) 이야기는 꽁꽁 얼어붙은 얼음장 아래 ‘나’가 알을 찢고 나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알을 찢고 밖으로 나가는 일을 궁리하느라 육십 일이라는 시간을 소비해버렸다. 내 머릿속은 두려움과 기쁨으로 뒤엉켜 터져버릴 것 같았다. 나는 두려움을 빨아먹으며 버티고 버텼다. 그것은 공포였다. 공포가 나를 키워준 셈이다. 알에서 빠져나가는 날, 누군가 나에게 알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작정이었다. 알이란, 두려움을 동그랗게 빚어 만든 말랑말랑한 구슬, 이라고.
두려움이라는 작은 구슬을 뚫고 나온 ‘나’의 앞엔, 다시 은빛연어와 눈맑은연어가 경험했던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 은빛연어가 누나연어를 여의고 눈맑은연어와 사랑에 빠지고 폭포를 거슬러오르며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면, ‘나’와 ‘너’는 사물과 사물, 사물과 나, 다시 나와 너를 잇고 있는 보이지 않는 끈에 대해, 마음이 마음을 만나는 길에 대해, 서로를 물들이는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세상을 사는 것들은 모두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어.
그렇지 않다면 이쪽 마음이 저쪽 마음으로 어떻게 옮겨갈 수 있겠니?
그렇지 않다면 누군가를 어떻게 사랑하고 또 미워할 수 있겠니?
“참으로 알쏭달쏭한 말이구나. 바다로 가서는 혼자가 되겠다는 뜻이니?”
“혼자는 무슨…… 나는 이미 너한테 물들어버린걸.”
“물들어버렸다고?”
“물든다는 것은 마음이 마음을 만나는 거야. 다시 말하면 마음이 마음을 만나 따뜻해지는 거지.”
그렇게 나는 너에게 가고 싶었다…
네가 내 옆에 없었기 때문에 나는 아팠다. 네가 보고 싶었다. 네가 보고 싶어서 바람이 불었다. 네가 보고 싶어서 물결이 쳤다. 네가 보고 싶어서 물속의 햇살은 차랑차랑하였다. 네가 보고 싶어서 나는 살아가고 있었고, 네가 보고 싶어서 나는 살아갈 것이었다.
누군가가 보고 싶어 아파본 적이 있는 이는 알 것이다. 보고 싶은 대상이 옆에 없을 때 비로소 낯선 세계 속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가고 싶은 호기심과 의지가 생긴다는 것을.
그렇게 나는 네게 가고 싶었다.
『연어 이야기』에는 죽음으로 자유를 얻고 벽을 뛰어넘으며 사랑의 바다에 스며든 한 은빛연어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그 연어는 알고 있었을까. 너에게 가려고 나는 강을 만들고 강은 다시 물소리를 들려주고 물소리는 다시 흰 새떼들을 날려보내는 이 어쩔 수 없는 사랑의 순환을. 이 끊이지 않는 사랑의 이어짐이야말로 우리가 원하는 사랑의 기술임을._신수정(문학평론가)
그래도, 아직은, 사랑이, 이제는 갖다버려야 할, 그러나,
버리지 못하고, 한번 더 가져보고 싶은, 희망이, 이 세상 곳곳에 있어…
15년 전, 안도현은 『연어』의 제일 앞장에 이렇게 써넣었다.
그래도, 아직은, 사랑이, // 낡은 외투처럼 너덜너덜해져서 // 이제는 갖다버려야 할, // 그러나, 버리지 못하고, // 한번 더 가져보고 싶은, // 희망이, 이 세상 곳곳에 있어, // 그리하여, 그게 살아갈 이유라고 // 믿는 이에게 바친다.
한 음절 한 음절, 천천히 끊어 읽어야 하는 저 쉼표의 의미가 새삼스러운 것은 왜일까. 15년, 짧지 않은 그 시간을 지나 『연어 이야기』를 접하고서야, 다시금, 사랑을, 그리고 희망을, 힘주어, 믿고 싶어진다.
『연어 이야기』가 소중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낡은 외투처럼 너덜너덜해져서, 갖다버려야 할 지경이어도, 그래도, 아직은, 사랑이, 희망이, 이 세상 곳곳에 있어, 그리하여, 그게 살아갈 이유라고… 그렇게 말하고 싶어지니까.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은.
▶ 글 안도현 | 경북 예천에서 태어나 원광대 국문과와 단국대 대학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적 성취에 대한 높은 문학적 평가와 독자들의 사랑을 함께 받고 있는 시인의 시집은 출간될 때마다 수만 명의 독자가 찾을 정도다. 보편적인 정서를 지닌 쉬운 언어로 세상과 사물을 따뜻하게 포착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그는, 근래에는 생태학적 상상력과 동양적 사유를 바탕으로 세밀한 언어 감각이 돋보이는 시를 발표하고 있다. 『서울로 가는 전봉준』 『모닥불』 『그대에게 가고 싶다』 『외롭고 높고 쓸쓸한』 『그리운 여우』 『바닷가 우체국』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 『간절하게 참 철없이』 등 9권의 시집이 있으며, 동화와 동시 창작에도 열정을 보이고 있는 그의 동화 『연어』는 1996년에 출간된 이후 100쇄를 발행하는 기록을 남겼으며 프랑스, 독일, 중국, 일본, 태국, 대만 등에 번역 출간되기도 했다. 시와시학 젊은 시인상, 소월시문학상, 노작문학상, 이수문학상, 윤동주상, 백석문학상 등을 받았다. 현재 우석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 그림 유기훈 | 홍익대학교 판화과를 졸업했다.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일러스트레이션에 매력을 느껴 어린이책에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그린 책으로 『내 친구 타라』 『미안해 미안해』 『플루토 비밀결사대 1, 2』 『펄루, 세상을 바꾸다』 『비밀의 동굴』 『사라진 고래들의 비밀』 『새틴 강가에서』 『송이의 노란 우산』 『푸른 빛으로 사라진 아이』등이 있다.
* 초판발행 | 2010년 5월 10일
* 153*214 | 160쪽 | 값 7,500원
* ISBN 978-89-546-1121-3 03810
* 책임편집 | 조연주 이경록 (031-955-8865, 35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