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 미국 전역을 떠돌며 밑바닥 삶을 몸으로 체험한
미국 현대문학에서 가장 독창적인 작가 찰스 부코우스키의 대표작!
미국 현대문학에서 ‘가장 독특한 작가이자 후배 작가들에 의해 가장 많이 모방된 작가’로 평가받는 찰스 부코우스키의 장편소설『팩토텀』이 출간되었다. 장년 시절의 대부분을 우편배달부로 일하다가 마흔아홉 살이 되어서야 전업 작가의 길에 들어선 찰스 부코우스키는 평생 동안 여섯 권의 장편소설과 수천 편의 시, 수백 편의 단편소설을 발표하며 왕성한 창작활동을 펼친 작가로 유명하다.
미국 문단에서 부코우스키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면서도 극단적이다. 그것은 상당 부분 그 자신의 삶과 문학에 기인한다. 부코우스키의 일생을 지배했던 것은 술과 섹스에의 집착, 그리고 주류 사회의 가진 자들에 대한 조롱, 미국이라는 거대 자본주의에 대한 냉소였다. 이를 테면 그는 노골적인 성적 표현을 통해 이른바 ‘교양 있는 사람들’의 검열 기제를 파괴하고 기성의 권위를 무시한다. 또한 체 게바라나 카스트로처럼 체제의 붕괴를 위해 노력했던 자들에게는 존경을 표하지만, 조지 워싱턴이나 CIA 요원들처럼 체제의 완성이나 유지를 위해 노력하는 이들에게는 경멸 어린 시선을 보낸다.
빈민가 뒷골목과 술집에서 들을 수 있는 생생한 비어와 속어로 이루어진 대사들, 아이러니가 풍부한 인물들에 대한 묘사, 그리고 규격에 짜인 삶을 강요하는 주류 체제에 대한 노골적인 반골 정신으로 무장한 부코우스키의 작품 세계는 문화와 국경을 넘어 주류에 저항하는 아웃사이더들의 공통된 코드로 일찌감치 자리를 잡았다. U2, 본 조비, 톰 웨이츠를 비롯해 전 세계의 수많은 음악가들과 밴드들이 그와 그가 만든 작품 속 인물들에 대해 노래를 만들었고 많은 대중문화의 대가들이 부코우스키로부터 영향을 받고 그를 경배한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고 있다.
특히 부코우스키의 많은 작품 속에 등장하는 ‘헨리 치나스키’란 캐릭터는 작가의 분신과도 같은 인물로 ‘미국 대중문화 최고의 안티히어로’로 불린다. 부코우스키가 직접 각본을 쓴 영화 <술고래>에서 미키 루크가 연기한 염세적인 술꾼 헨리 치나스키가 이번에 소개되는『팩토텀』이전에 아마도 우리가 유일하게 접할 수 있었던 헨리 치나스키의 이미지였을 것이다.
『팩토텀』 역시 헨리 치나스키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면서, 그의 장편소설들 중 가장 중요한 소설들로 평가받는 ‘부코우스키 삼부작(『우체국』『팩토텀』『여자들』)’ 중 한 편으로 작가의 가장 젊은 시절 모습이 강하게 투영된 자전적 소설이다. 이 소설은 2005년 할리우드에서 맷 딜런 주연으로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최근 다시 한번 미국 독서계의 주목을 받았다.
아이러니와 압축으로 빚어낸 주변부 인생의 ‘활기 넘치는 음울함’
『팩토텀』은 원고지 1천 매가 채 안 되는 분량에, 총 87개의 장으로 나뉘어 있다. 각 장의 내용은 대학 중퇴자인 젊은 백수 치나스키가 ‘전쟁이 발발했는데 군대도 안 가고’ 미국 전역을 떠돌며 20여 곳의 새로운 직장을 구하고 그 직장을 그만둘 때까지의 에피소드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거기에 잔이라는 여자와의 지속적인 관계(마지막에 가서는 헤어지게 된다)와 로라라는 여자와의 짧은 꿈같은 모험, 1차대전 참전 용사인 아버지와의 지옥 같은 가정 불화극, 대도시의 빈민가 하숙집과 술집 주변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해진다. 비교적 길지 않은 분량의 소설임에도 대하소설의 등장인물 규모를 방불케 하는 수많은 인물들은 작가의 아이러니 넘치는 묘사들과 적절한 압축에 힘입어 활기 넘치는 생명력을 얻는다.
각 장의 에피소드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단선적인 스토리의 연결 기능보다는 마치 한 권의 시집에 들어 있는 시들처럼 전체적으로는 하나의 주제를 향하면서 병렬적으로 나열되어 있다. 스토리가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 같지만 하나하나의 에피소드들이 지니고 있는 아이러니와 압축은 산문으로 쓰인 운문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날카롭고 재치가 있다. 그리고 그런 아이러니들이 누적되면서 자아내는 미국 현대 도시 주변부의 음울하고 애조 띤 분위기는 대상을 정확하게 묘사할 뿐만 아니라 예술적인 분위기를 더해준다. 수천 편의 시를 쓰며 단련된 부코우스키의 압축과 아이러니의 재능이 아니었다면 이 같은 성취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나는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젊은 백수 치나스키는 번듯한 직장 없이 술로 세월을 보내면서 생계가 위협을 받을 때가 되어서야 직장을 구하러 다닌다. 자기 파괴적이고 무계획적인 그의 삶은 얼핏 보아도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 환경과는 도저히 양립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치나스키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최소한도로 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술을 마시고 여자와 함께 뒹구는 삶을 가장 이상적인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행복의 조건으로 결코 직장에서의 승진이나 사회적인 성공을 내세우지 않는다.
내게 별다른 야망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야망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자리도 있어야 한다. 내 말은 일반적으로 그런 사람들을 위해 남겨지곤 하는 자리보다는 더 좋은 자리가 주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도대체 어떤 빌어먹을 인간이 자명종 소리에 새벽 여섯시 반에 깨어나, 침대에서 뛰쳐나오고, 옷을 입고, 억지로 밥을 먹고, 똥을 싸고, 오줌을 누고, 이를 닦고, 머리를 빗고, 본질적으로 누군가에게 더 많은 돈을 벌게 해주는 장소로 가기 위해 교통지옥과 싸우고,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에 감사해야 하는 그런 삶을 기꺼이 받아들인단 말인가? _본문 190쪽
이 같은 일갈은 『팩토텀』의 주인공이자 부코우스키의 분신인 헨리 치나스키를 집약해서 드러내는 대목이다. 사회는 구성원들의 경쟁을 부추기지만 그 경쟁을 통해 대부분은 패배자로 내몰리는 현실은 애써 외면한다. 치나스키는 끝없는 경쟁에 나서기보다는 현실에서의 만족을 추구하지만 사회는 그런 생각의 소유자에게 평균치의 삶을 마련해주기는커녕 오히려 철두철미하게 배척한다.
온갖 직업을 전전하던 치나스키는 결국 오랫동안 동거하던 잔과도 헤어지고 새벽 인력시장에 나가는 날품팔이 인생으로 전락하지만, 거기에서마저도 그는 낙오되어 선발된 인부들을 태운 트럭이 떠나는 걸 멍하니 바라보며 현재의 삶에 만족하자는 자신의 신념이 사회와의 대결에서 완전히 패배했음을 인식하게 된다. 그러한 인식은 역설적으로 사회가 구성원들한테 강요하는 경쟁이 얼마나 큰 압력인가를 깨닫게 하면서 무한경쟁만을 강요하고 야망이 없는 자와 패배자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을 독자들에게 일깨운다.
내 영혼은 체 게바라보다 위협적이다!
획일적이고 꽉 짜인 주류 체제에 맞서는 술주정뱅이 백인 노동자의 멈추지 않는 잡노마드
치나스키란 인물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근사한 영웅들과는 대척점에 위치해 있다. 그는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경력을 위조하여 이력서를 작성하고 취직을 위해 면접 자리에서 ‘직장을 가정처럼 생각하겠다’는 전혀 속에 없는 말을 태연하게 지껄인다. (그러고 나서 그 직장을 며칠 만에 그만둔다.) ‘절대금연’ 구역에서 태연히 담배를 피우고 회사 물건을 횡령할 기회만 생겼다 하면 별 망설임 없이 물건을 집으로 들고 온다. 윗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처박혀 근무시간에 낮잠을 자고, 남자 동료들과 싸움질을 하고, 여직원들한테는 성추행을 하고, 지나가는 근사한 차에 자신의 ‘똥차’를 들이대고 자해공갈단으로 나서는가 하면, 심지어는 약간의 권력이 주어지자 파렴치하게도 그 권력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기도 한다. 평소에 그가 ‘윗사람’들의 무신경함이나 무자비함을 일관되게 비판했다는 걸 생각하면 그의 행동은 자가당착 그 자체이다. 이렇게 치졸하고 야비하게 그려진 치나스키 자신의 모습은 다른 등장인물들의 야비하고 비겁한 모습에 대한 가감 없는 묘사와 질적으로 차이가 없다.
치나스키의 또다른 면모는 그가 생래적으로 반사회적인 인간이라는 것이다.
나는 고독 속에서 자란 인간이다. 내게 고독이 없다면, 그건 다른 사람에게 음식이나 물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고독이 없는 하루하루는 나를 약하게 만들었다. 나는 나의 고독을 전혀 떠벌리지 않았다. 다만 그것에 의존할 뿐이다. _본문 55쪽
미국의 보수주의를 대변한다는 할리우드의 가족주의가 여전히 위세를 떨치고 사회 구성원들 간의 소통을 강조하는 담론들이 넘치는 상황에서 고독을 삶에 불가결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그 존재 자체가 ‘화목한 사회’를 지향하는 구성원들에게 껄끄러울 수밖에 없다. 고독은 사회의 눈으로 보았을 때는 치유되어야 할 사회적 질병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소설 속에서 치나스키에게는 사회의 보이지 않는 ‘주홍글씨’가 서서히 낙인찍히고 그는 점점 완전한 패배자로 몰락한다.
사회가 치나스키 같은 인간을 수용할 수 없는 것은 치나스키 같은 사람들은 맹목적인 확대 재생산에 기반한 자본주의 사회의 근거 자체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프로이트 식으로 말하면 구성원들의 성적인 불만이 깔려 있는 문명사회의 기본 룰과 치나스키 같은 인간은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주류 체제에 있어 치나스키의 반사회적이고 위악적인 모습들은 체 게바라보다도 더 위협적이다. 체제는 체 게바라의 혁명이라는 정치적 구호조차 포섭해서 티셔츠로 팔아먹을 수 있지만 치나스키의 반사회적인 생각과 행동은 생활 태도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치나스키는 더 급진적이고 더 근원적이고 더 철저한 아웃사이더이다. 그리고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치나스키는 전 세계 저항문화와 아웃사이더들의 친구이자 대변자로 자리매김 되고 있는 것이다.
조지 오웰 이래, 이처럼 실감나게 존재의 궁핍을 기록한 예가 없다. 뉴욕타임스
이 소설은 대담하고 정제되지 않았으며, 거칠다. 주인공 치나스키는 궁지에 몰려 일거리들을 잇달아 잃고, 그의 인생에 좀처럼 찾아오지 않는 몇 안 되는 기회들마저 버리고 마는, 영웅(주인공)이라고는 하기 힘든 사람이다. 그는 고독하고, 반사회적이다. 그는 우리 사회의 방랑자, 소외자, 이방인의 삶을 대변한다. 아마존 독자
찰스 부코우스키(Charles Bukowski)
1920년 독일 안데르나흐에서 미군이었던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세 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 로스앤젤레스에서 줄곧 살았다. 1944년에 첫 단편을, 2년 후에 두번째 단편을 발표했지만 출판계의 현실에 환멸을 느끼고 10년 가까이 글쓰기를 중단했다. 대학을 중퇴하고 이십대의 반 이상을 싸구려 일자리와 허름한 하숙집을 전전하며 미국 전역을 유랑했다. 삼십대 초반 궤양출혈로 죽음의 고비를 넘긴 뒤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우편배달부로 일하면서 여러 권의 시집을 발표하고 신문에 칼럼을 발표하다가 ‘죽을 때까지 매달 백 달러의 월급’을 보장하겠다는 출판사의 제안을 받고 마흔아홉의 나이에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이후,『우체국』(1971),『팩토텀』(1975),『여자들』(1978)을 발표했다. 이 세 작품은 ‘부코우스키 삼부작’으로 불리는데,『팩토텀』은 그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꼽힌다. 세 작품 모두 작가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는 ‘헨리 치나스키’가 등장하는 일종의 자전적 소설이다. 헨리 치나스키는 미국 대중문화에서 안티히어로의 정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부코우스키가 직접 각본을 쓴 영화 <술고래>에서는 미키 루크가, 2005년에 영화로 만들어진 <팩토텀>에서는 맷 딜런이 염세적인 술꾼 헨리 치나스키를 연기했다.
장편소설, 시집, 단편집, 평론집 등 모두 마흔다섯 권 이상의 책을 펴낸 그는 미국 현대문학에서 ‘가장 독창적인 작가’, ‘후배 작가들에 의해 가장 많이 모방된 작가’로 언급되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열혈 추종자들을 거느리고 있기도 하다. 1994년 유작 『펄프』를 탈고하고 얼마 안 있어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은 불교 승려가 진행했으며 그의 묘비에는 ‘하려 하지 마라(Dont Try)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옮긴이 석기용
서강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강대 등 여러 대학에서 주로 논리학 관련 과목들을 강의하고 있으며, 그간 철학과 여타 인문학 책들을 우리말로 옮겨왔다. 옮긴 책들로『빈, 비트겐슈타인 그 세기말의 풍경』『전쟁과 과학, 그 야합의 역사』『서양철학사』(공역)『20세기 첩보전의 역사』『안락사 논쟁』『프리에이전트의 시대가 오고 있다』『꽃의 유혹』 등이 있다.
▣ 2007년 9월 10일 발행
▣ ISBN 978-89-546-0351-5 03840
▣ 128 * 188 | 320쪽 | 12,000원
▣ 책임편집: 강건모(031-955-2634, redlily@munha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