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이 소설은 고백이고 독백이며
웃음이고 울음이다!
암담하고 슬픈 청춘의 서사,
당신과 나의 십대는 이렇게 사랑스러웠다!
세상의 질서에 눈뜨다
학교에서는 도둑질을 수시로 하다 담임에게 늘 매질을 당하는 18살 주인공 ‘나’. ‘나’에게 도둑질은 삶을 견디는 하나의 자극에 불과하다. ‘나’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쓰레기를 줍는다. 폐휴지를 주어 고물상에 파는 게 ‘나’의 삶이다. 아버지는 강간미수범으로 감옥에 들어갔고, 엄마는 집을 떠나 어디에 있지는 모른다. ‘나’에게 지금의 삶은 그야말로 ‘사태’이건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겨울 새벽 찬바람에 눈썹 휘날리게 달리는 건 의외로 나쁜 기분이 아니다. 쇼핑 카트의 떨떨거리는 소리에 박자를 맞춰, 나는 속으로 하나둘셋을 세어가며 한 발이 지면에 닿기도 전에 다른 발을 떼어놓는다. 발이 닿지 않는 아이. 그것이 언젠가 내가 생각했던 나 자신의 유일한 정체성이다. 집에서도, 시설에서도, 학교에서도, 거리에서도, 어디에서도, 누구에게도 나는 늘 발이 닿지 않아 둥실거리며 이리저리 떠돈다. 이러다간 언젠가 저기 먼 깜장 하늘 우주 구석까지 둥실거리며 헤매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아, 우주는 무지하게 춥다던데, 젠장.”
가족 없이 견디는 고등학생의 삶이란 위태롭고 우울하기만 하다. 하지만 ‘나’의 모습은 모든 삶이란 다 그렇다는 듯 툭 허탈해 하다가도 이미 세상의 이치를 깨닫지 않으면 안 되는 성장의 과제를 무겁게 받아들이기도 한다. ‘나’는 학교 친구들과는 다르게 일을 해야만 하고 먹고사는 문제를 뼈저리게 느껴야만 한다. 또한 친구인 ‘군중1’과 ‘군중2’와의 도움을 고마워하면서도 무서워하는 이중적인 내면 묘사는 우리들의 십대 시절뿐만 아니라 어른들 관계의 혼란을 설득력 있게 표현하고 있다.
절망과 고통 속에서
‘나’보다 더 힘든 삶을 살고 있는 폐휴지 줍는 할머니. 할머니에게는 네 살짜리 손자가 딸려 있다. ‘나’는 폐휴지 줍기의 경쟁자인 할머니가 싫다가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이상한 기운을 느낀다. 자신의 삶과 같다는 동질감에서 느껴지는 이상야릇한 동정심. ‘나’는 자신이 일을 하고 있는 마트에서 생필품 물건을 모조리 훔쳐내 할머니의 집 앞에 놓고 나온다. ‘나’는 아버지처럼 진짜 범죄자가 된 것이다.
“요령 없고 느려터져서 좀체 열심히 살지 못하는 나지만, 그래도 살다보면 나도 뭔가 하게 되는 게 있다. 가끔은 하지 말아야 할 일도 한다. 뭔가 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살아가는 게 힘든 건지 모른다”
무턱대고 저질러버린 범죄 행위 앞에 멍해 있을 무렵, 감옥에 있던 아버지가 탈옥을 한다. 담당형사가 ‘나’에게 찾아와 아버지의 행방을 물어보면서 아버지가 어머니가 일하고 있는 B시로 향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나’는 그 사실을 때문에 내면의 혼란을 느끼게 된다. ‘나’는 B시로 서둘러 떠나지만 그곳에서 아버지도 어머니도 찾지 못한다. 그저 어느 도시에나 있을법한 여노숙자의 삶과 그들의 궁핍하고 안타까운 모습만을 목격하게 된다.
“고통과 레몬즙이라. 이 노래 가사를 만든 사람은 정말 고통이 먼지 알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 사람도 나처럼, 교도소에 가 있는 아버지와 떠나버린 엄마가 있고 자신은 절대 발이 닿지 않아 둥실거리면서 외로이 떠도는 그런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두 발이 땅에 완전히 닿는 것처럼 보여도 실은 어딘가 외롭고 아픈 사람이었을까.”
대책 없이 희망을 노래한다
소설은 희망적으로 결말을 맞이한다. 아버지를 찾아 떠난 여행이 아버지의 존재보다 삶의 중요한 요소를 발견하게 되는 여행으로 바뀌게 되고, 집에 돌아온 뒤 할머니의 손자와 함께 하는 삶으로 마무리하는 모습은 어쩌면 누구나 알고 있으나 서둘러 무지해버린 사랑, 인간애를 그 가난하고 암담한 어느 청소년의 삶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청소년의 눈으로 바라본 어른들의 슬픈 세계, 즉 ‘나’와 다르지 않은 고독한 세계를 말하고 있기도 하다.
신예 작가답지 않은 서사완급 조절과 최대한 감정을 절제한 채 권하은은 18살 소년의 눈으로 한국 현실의 가장 낮은 부분을 청소년소설의 외양을 뒤집어 쓴 채 묘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