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권의 패설집에 전하는 234편의 성 이야기를 모은 이 책은 옛사람들의 가장 뜨거운 기록이다.『고금소총』을 비롯해『이야기책』『소낭』『각수록』『파적록』『거면록』등 아직까지 소개된 적 없는 패설집에 수록된 이야기 중 성 이야기를 일부, 혹은 전부를 번역해 수록했다. 기방에서, 허름한 초가에서, 혹은 벌건 대낮 풀밭에서 뒹구는 남녀의 에로티시즘에는 성역이 없다. 그들의 낯 뜨거운 한때를 읽노라면, 조선시대 남녀노소의 가장 꾸밈 없는 성정을 살필 수 있다. 더불어, 그들의 웃음 속에 당대 권력과 체제를 풍자한 시선이 있었음 또한 느끼게 될 것이다. 사회 질서에 억눌렸던 지식인들은 음담패설을 통해 기존의 가치와 질서를 위반하며 너무나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냈던 것이다. 눈이 빠지고 배꼽이 튀어나올 만큼 우스운 이야기 뒤에 감춰진 찬자의 슬픔과 애환까지 함께 느낄 수 있는 책이다.
◆ 참으로 “무색하구나 무색해!”
당혹스럽다. 우리가 알던 조선이 아니다. 장님인 남편을 태연히 문밖에 세워놓고 그의 아내와 질탕한 한때를 보내는 양반, 그리고 장인어른 앞에서 자신의 양물을 꺼내보이자 “무색하다”고 외치는 장인에게 “자주색이온데 어찌 색깔이 없다 하십니까”라고 반문하는 사위까지. 이것이 무슨 일인가. 『조선 후기 성 소화 선집』은 옛사람들의 인간적인 모습을 날것 그대로 생생하게 드러내는 텍스트이다. 여기에는 남녀도, 상하도 없다. 이 책은 우리가 관념적으로만 알고 있던 조선시대의 또다른 면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 성 이야기에 담긴 웃음과 눈물
이야기는 배꼽이 빠질 만큼 재미있다. 그러나 이들 성 이야기 속에는 시대의 눈물이 담겨 있다. 본래 성이란, 궁지에 몰려 더이상 출구를 찾지 못한 인간이 마지막 출구로 삼는 감성의 분출구다. 에로티시즘은 죽음과 맞닿아 있다. 그것이 성 이야기의 또다른 본질이다. 성 이야기 속에서, 사람들은 시대를 고발하고 불합리를 증언하기도 한다.
『교수잡사』에 실린「취악폐궁臭惡廢弓」에서도 실제로 그런 시선을 볼 수 있다. 「취악폐궁」은 활쏘기를 업으로 삼는 한 사내가 낮잠 자는 여인의 음호에 손가락을 넣었다가, 이후 손가락에서 심한 악취가 나 활시위도 당길 수 없는 정도가 되자 결국 활쏘기를 그만두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쾌락만을 좇은 행위 때문에 결국 자신의 생업까지 포기해야 하는 벌을 받았음을 말해주는 이야기다. 이 작품 외의 다른 설화에서도 쾌락만을 좇은 행위에 대해 도덕이라는 잣대로 이를 징벌하는 양상이 여러 군데서 보인다. _해설 중에서
타고난 인간의 본성을 긍정하는 성 이야기, 암울한 시대에 감성의 마지막 통로로서의 성 이야기, 그리고 부도덕을 응징하고 비틀어 꼬집는 성 이야기…… 눈을 크게 뜨고 보면 껄껄 웃는 데 그쳤던 소화 속에서도 많은 것들이 보인다.
합리적인 방법으로 사회 질서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때에는 결국 감성에 따라 사회 질서에 접근하는 경향이 강해진다. 지나친 감성의 노출은 곧 이성의 한계를 넘어선 분노와 좌절에 다름 아니다. 실제로『각수록』의 찬자가 그려낸 25편의 반인륜적 이야기들은 웃음을 넘어선 찬자의 울음이었던 셈이다. 성이란 죽음을 내포하는 것이면서, 또한 죽음 속에서도 생을 찬양하는 것이다. 따라서 성담론은 자신에 대한 부정이면서도 희망일 수밖에 없다. 일그러진 성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은 이 세상과 격리되어 있지 않다고 역설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성 이야기가 실제로는 일회적이며 말초적인, 그 자체의 흥미를 위해 쓴 것일 수도 있다. 그저 한번 껄껄 웃고 나면 그만인 작품들. 그렇지만 굳이 그와 다른 측면에서 이야기한 것은 독자들이 성 이야기를 그저 한번 웃고 버리는 것으로만 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너무 아픈 세월을, 너무 아픈 사회를 살았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그저 일회성에 그치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마음, 그들의 목소리에 한번쯤은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성 이야기를 읽다보면 이야기 속에서나마 굳건하게 지탱되는 기존의 가치와 질서를 위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잠시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그렇지만 그것은 지속적인 즐거움을 주지는 못한다. 다시금 자신을 옥죄는 현실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현실로 되돌아온 사람, 그 느낌은 어떠한가? 그에 대한 해답은 독자들이 찾을 일이다. _해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