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국제회의장에서 작가 코엘료를 만나 대화를 나눌 기회를 가졌다. 『연금술사』를 읽은 직후였다. 현실을 꿈의 여정으로 바꾸어 제시하는 포근함을 담은 그 책처럼 그는 실제로도 포근하고 수더분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사람이었고, 지금 이곳을 넘어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며 미지의 무언가를 그림자로 깔고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포르토벨로의 마녀』는 『연금술사』처럼 영성의 궁극에 이르는 과정을 펼쳐 보인다. 사람은 꿈을 꾼다는 점에서 지구상의 유일한 존재다. 삶 속에 보이지 않는 것을 더듬어가며 이것이 꿈인가 하다가 자기집착의 독선에 빠지고, 저것이 꿈인가 하다가 험난한 현실 속에서 좌절한다. 그러면서도 그 상처와 아픔 속에 길을 간다. 그것이 포기할 수 없는 존재의 소명이기 때문이다. 그 길 끝까지 가서 그 깊은 곳에 이르고자 하는 열정이 그대로 문학으로 승화한 것, 코엘료라는 작가와 그의 작품은 바로 그 과정의 드러냄이다.
-강금실(변호사)
코엘료, 신(神)의 숨겨진 얼굴을 말하다
파울로 코엘료가 돌아왔다. 지금까지 쓴 모든 작품 중 가장 뜨겁고, 가장 담대한 작품을 들고서.
그의 신작 『포르토벨로의 마녀』는 에로스와 아가페, 관능과 욕망, 모성과 인류애 등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형태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코엘료는 주인공인 아테나가 사랑했고 또 그녀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시선과 행적을 좇으며, 인류가 지닌 가장 큰 힘의 근원인 사랑을 말한다. 지금까지 그가 써온 모든 소설 중에서 가장 대담하게, 가장 멀리 나아간 이 작품은, ‘마녀’라는 모티프에 그 모든 것을 축약하며 소설가로서 코엘료의 장인적 힘을 가장 극명하고, 뜨겁게 드러내고 있다.
때로 나는 마녀의 존재를 믿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한결같이 ‘그렇다’고 대답한다. 나에게 마녀란, 직관을 통해 자신의 행동을 통제하는 여성, 자신을 둘러싼 것들과 대화를 나누는 여성,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여성이다.
_파울로 코엘료
마녀란 어떤 존재인가? 예로부터 그들은 병을 낫게 하는 치유자인 동시에 저주로 목숨을 빼앗는 주술사였으며, 『맥베스』에서처럼 인간의 운명을 좌우하는 예언자였다. 그들은 사랑과 두려움을 한몸에 동시에 받았고, 각기 다른 모습으로 어느 시대에나 존재해왔다.
그렇다면 어떤 이들을 마녀라고 부르는가? 타인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이, 치유와 기적을 행하는 이, 강한 직관을 지닌 이, 저항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닌 이, 자연과 소통하는 모든 이들을 우리는 마녀라 부른다. 이는 사실 모든 여성 안에 내재된 성정을 극대화한 양상이다. 우리는 그들을 사랑하는 동시에 두려워한다. 결국 마녀란, 모든 여성 안에 깃든 신(神)의 얼굴이다.
파울로 코엘료의 신작 『포르토벨로의 마녀』는 ‘아테나’라는 이름의 한 비범한 여자에 관한 이야기다. 영적인 존재들과 소통하고,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보며, 매혹적인 구도의 춤을 추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아테나, 혹은 셰린 칼릴. 그녀는 런던 중심가인 포르토벨로에 ‘마녀’ 붐을 일으킨다.
코엘료는 이 책을 통해 사랑을 행하는 우리 시대의 모든 여성들에게 찬사를 바친다. 불꽃같은 여자 아테나의 행적을 통해 우리는 그동안 여성을 성녀와 마녀, 혹은 온순한 여자와 길들일 수 없는 여자로 나누었던 우리 안의 이분법을 넘어서서, 숨겨진 ‘신으로서의 여성’을 탐구하게 된다.
영혼의 빛을 찾아 머나먼 길을 떠난 한 여자
파울로 코엘료의 대부분 작품들은 이미 일찍부터 이러한 주제를 담고 있었다. 『연금술사』와 『순례자』를 제외한 작품들은 모두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거나, 화자를 통해 여주인공의 행적을 좇는다. 『오 자히르』가 그랬고 『11분』이 그랬다. 영성과 사랑, 진정한 자아의 추구라는 주제를 지속적으로 탐구해온 코엘료가 이와 가장 가까이 닿아 있는 주제인 여성성에 이끌린 것은 당연한 일일 터이다.
『포르토벨로의 마녀』는 작가가 이처럼 가장 친숙하고 애정을 담아온 주제를 가장 혁신적인 형식을 통해 써내려간 작품이다. 그는 주인공 아테나의 행적을 다른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증언하고, 엮어나간다. 그뿐만이 아니다.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는 이 증언들을 한데모은 소설 속의 엮은이 역시 사건의 키를 쥔 등장인물 중 하나임을 알게 된다.
주인공 아테나는 트란실바니아 집시의 딸로 태어난 지 일주일 만에 버려진다. 레바논의 부유한 사업가 부부에게 입양되어 안정적인 환경에서 성장하지만, 사춘기에 접어들 무렵 레바논 내전으로 인해 가족이 영국으로 망명한다. 대학 1학년 때 만난 남자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고 아들도 낳지만, 생활고에 지친 젊은 부부는 곧 이혼하고 만다. 그리고 오랫동안 다니던 천주교 성당에서 성체배령을 거부당한다. 그녀는 버림과 떠남을 반복하며 끊임없이 자신의 기원을 찾아 헤매는, 휴식 없는 삶을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녀는 그 여정에서 스승을 만나고, 제자를 거두고, 사랑을 찾는다.
신의 여성적 모습인 ‘위대한 어머니’를 숭배하는 여성 의사이자 치유자인 디어드러 오닐, ‘정점의 춤’을 가르치는 폴란드 망명자 파벨, 사막의 현자 나빌 알라이히는 그녀의 스승이며, 자아가 강하고 오만한 아름다운 여배우 앤드리아 매케인은 아테나의 사명을 세상에 전하는 제자가 된다. 그리고 이 모든 사건을 지켜보며 아테나를 사모하는 두 남자, 저널리스트 헤런 라이언과 아테나의 숨은 연인이 있다.
아테나를 질투하는 이들의 부정적 시각에서부터 그녀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친어머니와 양모의 애정 어린 시선, 그녀의 모든 가능성을 열어준 스승들의 엄격하고도 자애로운 관찰, 그리고 그녀의 여성적 매력에 매료된 남자의 갈팡질팡하는 마음에 이르기까지, 독자들은 이들의 증언과 입체적인 서술을 통해 인물과 사건의 다각적 면모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하여 여주인공 아테나는 코엘료의 모든 소설 중 가장 입체적이고 생생하며 인간적인 인물로 독자의 마음속에 자리한다. 『포르토벨로의 마녀』가 작가의 모든 작품 중 가장 실험적이고 대담하면서도 가장 문학적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생이여, 불길처럼 타올라라!
먼 옛날 우리 곁을 떠났던 맨발의 마녀가
지금 당신의 마음속으로 걸어들어온다!
또한 아테나는 코엘료의 모든 여성주인공 중 가장 거침없고 용감한 동시에 가장 아름다운 여성이다. 그녀는 끊임없이 방황하고 갈구하고 행동하고 실수하고, 그리고 사랑한다. 그녀는 끊임없이 삶의 새로운 양태를 찾아 헤매며 도전한다. 고아였다가 입양되고, 가난한 미혼모였다가 부유한 사업가가 되고, 대중의 사랑과 지탄을 한몸에 받는 영적 지도자로 거듭났다가 그 모든 것을 버리고 홀연 떠난다.
코엘료는 한국 독자에게 보내는 글에서 이같이 밝힌다. “자유롭고 용기 있는 여자 아테나는, 내가 통념에 맞서는 방법이자, 우리 사회가 채운 통념의 족쇄를 세상에 드러내 보이는 방법이기도 하다. 플로베르는 ‘마담 보바리는 바로 나다’라고 말했다. 아테나는 내 안의 여성성, 그리고 자비로움의 또다른 이름이다.”
집시처럼, 마녀처럼 현재를 살아라!
또한 이 작품에는 여러 가지 사회적 이슈와 문화에 관한 작가의 보편적 관심이 투영되어 있다. 작가는 ‘노동과 사생활의 조화로운 공존’이라는 사회적 고민, 새로이 영성을 추구하는 이들과 기존 종교세력 간의 충돌, 레바논과 루마니아에 일어난 비극과 체르노빌 참사, 신비로운 루마니아 집시 문화, 생트 마리 드 라 메르의 집시성녀 축제, 두바이를 중심으로 일고 있는 중동 특수 등 그의 관심사였던 여러 주제들과 모티프들을 조화롭게 인물과 사건 속에 엮어간다. 브라질 <노보> 지에 사회 칼럼을 기고하고, 가난한 어린이와 노인들을 위해 자선활동을 하며, 올해 9월에 유엔 친선대사로 임명된 바 있는 그의 폭넓은 스펙트럼과 지향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1947년생. 이제 우리 나이로 환갑을 맞은 작가는 끊임없이 자신을 갱신하는 삶을 살아왔다. 정신병원에서 보낸 불우한 청소년기를 지나 자유로운 히피로 청년기를 살았고, 반정부 만화잡지를 발행하다 투옥되고, 인기 작사가로 부유한 삶을 보내다가 홀연 모든 것을 버리고 ‘산티아고의 길’을 걸으며 진정한 자신을 만나 작가가 된 코엘료.
집시처럼, 마녀처럼 현재를 살아가는 소설 속 인물 아테나는 작가의 또다른 얼굴이기도 하다. 이제 그가 『포르토벨로의 마녀』를 통해, 우리 안에 숨겨진 마녀를 일깨운다!
인터뷰
파울로 코엘료, 『포르토벨로의 마녀』에 대해 말하다
당신의 여주인공 아테나는 어떤 여정을 떠나게 됩니까?
아테나는 어린 시절에 받은 심리적 상처에도 불구하고 큰 사랑을 받으며 자랐고,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가 분명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기원과 존재이유에 차근차근 접근해갑니다. 그녀는 어머니가 되어 아이를 기르지만, 그런 상황이 그녀의 행보를 막을 수는 없지요. 간혹 나는 주변에서 아이나 남편이 인생에 장애가 된다고 말하는 이들을 만날 때마다 이렇게 대답해줍니다. 당신 남편이나 아버지, 아들처럼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당신이 내린 결정들을 지지할 것이며, 종국에는 당신이 느끼게 되는 행복감을 상대 역시 느끼게 될 거라고요.
이번에 당신은 전통적인 이야기 구조 대신, 여러 인물이 주인공 아테나의 이야기를 증언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작품을 썼습니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우리 모두에게는 각자 저마다의 꿈을 좇는 고유한 방식이 있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아테나가 선택한 길은 꿈을 좇으며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지요. 그녀는 일반적인 소설구조로도 쉽게 묘사할 수 있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나는 줄타기와도 같은 삶을 이어가는 그녀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각자 입장에서 그녀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을 택하기로 했습니다. 이 소설에는 그녀와 사랑에 빠진 남자, 그녀의 어머니, 제자 그리고 그녀가 자신의 길을 걸으면서 만나게 되는 여러 스승들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이 모든 이야기는 아테나와 그녀의 세계를 반영해주는 동시에 그 사람들 스스로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바로 그 때문이지요.
아테나가 찾아나선 것은 무엇입니까?
결국 그녀가 추구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찾는 것과 같습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아주 분명해보이지요.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으로 인해 불행한지 알아요. 그러나 무엇이 진정으로 우리를 행복의 길로 이끄는지는 모릅니다. 그렇다면, 우선적으로 당신을 행복하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모두 내려놓으세요. 그리고 자신의 길을 다시 시작하는 겁니다. 아테나처럼 진정한 기쁨을 주는 것들을 따라 한 발 한 발 나아가면서 나타나는 표지를 따르다보면 그 길은 자연히 눈앞에 열리게 됩니다.
아테나는 자신이 원하는 길을 선택했고, 그 때문에 아주 비싼 대가를 치릅니다.
그렇습니다. 그녀뿐 아니라 오늘날의 많은 사람이 그와 같은 새로운 이해의 지평, 새로운 행동양식의 최전선에 서 있습니다. 그런 삶을 살아가려면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하고요. 우리는 스스로를 위로하려 할지도 모릅니다. 꿈을 외면한 대신, 완벽하지는 않지만 비교적 편하고 안전한 삶을 선택했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결국 운명처럼 예정된 삶을 피하기 위해 무척이나 많은 것을 포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대가는 당장은 눈에 드러나지 않지만, 마침내 생의 마지막에 다다랐을 때, 자신의 꿈을 좇기 위해 대가를 치르기를 거부한 이들은 회한을 느끼게 될 겁니다.
꿈을 좇는 이들은 끊임없이 전투를 치러야 합니다. 그 여정은 승리와 즐거움의 순간은 물론, 패배와 아픔, 슬픔의 순간들을 품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패배와 기쁨들은 하나의 거대한 계획의 일부일 뿐이지요. 전사(戰士)는 이것을 깨닫고 나면 더이상 자신이 피해자라고, 고통받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힘든 순간들을 맞닥뜨리지만 결코 멈추지 않습니다. 꿈을 좇든 그 꿈들을 포기하든, 각각의 대가는 비쌉니다. 지금 지불하든, 나중에 지불하든, 이런 방식이든 저런 방식이든 간에 결국 치르게 되어 있고요.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꿈의 대가를 치르면, 그만큼 삶이 더욱 흥미진진해질 거라는 이야기입니다.
아테나는 하나의 꿈을 위해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이런 게 가치 있다고 보십니까?
나 자신이 바로 그랬습니다. 브라질 작가가 문학으로 먹고살고, 그 작품이 전 세계로 번역되어 읽힌다는 사실 자체가 얼마나 상상하기 힘든 일입니까. 나는 오랜 시간 동안 나 자신조차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두 가지를 동시에 해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삶의 진정한 기쁨보다는 경제적인 것들을 우선시하게 되었습니다. 이십 년 전 ‘산티아고의 길’을 걸은 후 나는 잠시 멈춰 서기로 했습니다. 모든 위험을 무릅써보기로 마음먹은 것입니다. 모험을 무릅쓰지 않으면 절대로 목표한 곳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삶이란 어둠 속에서 벌이는 도박과도 같은 것입니다. 생의 하루하루가 즐겁고 의미가 있을 때 우리는 승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회적인 지위와 부를 양손에 쥐었다 해도 지금 하는 일에서 아무런 의미를 찾을 수 없다면 삶의 이유와 가치를 잃은 거나 다름없습니다.
『포르토벨로의 마녀』의 많은 부분에서 ‘위대한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애초에 신성함에는 성별이란 게 없었습니다. 신성은 아버지이자 어머니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이었죠. 남성적인 측면은 부족의 교육을 담당했고, 여성적인 측면은 넓게 열려 있는 관용을 관장했습니다. 그 시대에는 시간이라는 관념이 없었죠. 단지 계절을 통해 시간을 감지했고, 인간은 스스로의 필요에 따라 자신의 길을 갔습니다. 인간은 어느 한 장소에 신을 묶어두지 않았습니다. 신은 도처에 깃들어 있었습니다. 농경생활을 하게 되는 순간부터 인간은 유목생활을 접고 정착하게 됐고, 신과 여신들의 자리를 마련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점차 부족의 규율은 명상의 필요성과 부딪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신은 떠돌 필요가 없어진 대신 스스로 조직화해야 했죠. 그럼으로써 남성 신의 전통, 즉 종교와 관련된 규율을 갖춘 강력한 신의 전통이 수립되게 된 겁니다.
‘위대한 어머니’라는 개념이 아무런 저항감 없이 받아들여질까요?
시간이 흘러갈수록 받아들여질 거라고 봅니다. 혁명적인 일들은 이성만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열정의 측면, 육감, 순수한 사랑, 무언가를 가슴으로 깨닫게 하는 사랑을 일깨우는 데서 발원한다고 봅니다. 현대의 우리에게는 두 경향이 있습니다. 첫번째는 뼛속 깊은 근본주의적 성향으로, 여기에 속한 사람들은 영적 추구를 하면서도 그 어떤 개인적 책임도 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런 까닭으로 전통적인 종교들은 더한 엄격함으로 무장하는 것이죠.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그런 엄격함의 필요성은 받아들이더라도 열정에 더 큰 가치를 두는 집단도 있습니다.
18세기 말엽에 한 프로테스탄트 목사인 신비주의자가 말한 적이 있지요. 우리가 죽어 신 앞에 설 때, 신은 우리의 부족함이라든가 잘못을 탓하지 않을 거라고요. 신은 선뿐 아니라 악도 구분하지 않을 것입니다. 신, 여신 혹은 신성한 존재가 우리에게 던질 가장 핵심적인 질문은 바로 다음과 같을 것입니다. 당신은 사랑을 위한 삶을 살았는가? 이것은 우리가 스스로에게 답해야 할 질문이기도 합니다.
최근에 오스트리아의 멜크(Melk)에 있는 수도원에 간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 머무르는 동안 베네딕트 파 수사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요. 나는 가톨릭교회가 타 종교가 신의 여성성을 숭배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성모마리아를 숭배하며, ‘어머니 하느님’이라는 개념에 꽤 반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요한 바오로 1세가 하느님은 어머니라고 얘기한 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나는 그 수도원에서 내가 스승으로 여기는 수도원장을 모시고 말씀을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나는 그분께 물었어요. 우리 종교가 여성성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냐고요. 그분은 그건 그저 내려져온 전통일 뿐이며 언젠가 우리가 신의 여성성을 받아들이는 날이 올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나는 수도원장이라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그런 발언을 했다는 사실과, 베네딕트 파에서 정오에 드리는 기도문 중에 ‘어머니 하느님’을 가리키는 구절이 있다는 대답에 무척이나 놀랐습니다. 모든 전통이 그렇듯, 가톨릭교회 역시, 시간이 다소 걸릴지라도 그것을 받아들일 것으로 봅니다.
『포르토벨로의 마녀』가 베스트셀러가 되리라는 기대를 걸고 있나요?
한 작품을 탈고할 때마다 나는 오직 한 가지 기대만을 가집니다. 내가 과연 좋은 작품을 썼는가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실제로 좋은 작품을 쓰려고 애씁니다. 그런 기대치는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죠. 그리고 이제는 독자들의 판단에 맡겨야 할 때예요. 하지만 그렇다고 내 의무가 여기서 끝나는 건 아닙니다. 무엇보다 나는 내 작품에 애정을 갖고 모든 사랑을 쏟아부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작업과정에서 행복을 느낍니다.
당신이 쓴 책이 벌써 전 세계에 9천만 권이나 팔려나갔습니다. 이번 새 작품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이 어떨지 두렵지는 않나요?
첫째로, 나 개인에게 글 쓰는 일은 하나의 도전입니다. 꿈을 가지기 전, 나는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내 꿈은 하나의 꿈을 이루는 게 아니라, 계속 꿈을 가지는 거라고. 내 꿈이 작가가 되는 것에 그쳤다면, 나는 책을 써야 한다는 직업적 의무감에 시달리게 될 터이고, 과거의 성공을 지켜나가기 위한 삶을 살아가겠죠. 나는 그것을 넘어서는 도전을 하고 싶습니다.
둘째로, 나는 나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글을 씁니다. 나는 내 영혼을 이해하기 위한 길을 걷고 있습니다. 컴퓨터 앞에 앉는 순간, 내가 품었던 질문들이 모니터에 한꺼번에 떠오르는 것만 같습니다. 내가 나 자신에게 아직 신비로운 존재라는 사실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난 아직 나 자신에게 만족한 적이 없고, 내가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어떤 두려움도 느끼지 않습니다. 나는 내 가슴이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을 보여줄 길을 찾고 있습니다. 나 자신이 그것을 보게 되고, 그것에 내가 기쁨을 느끼게 된다면 그걸로 족합니다. 나는 독자들이 내 책을 정답 없는 질문을 유도하는 촉매제로 여기게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나는 독자들이 내 책에서 어떤 정답을 찾는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 답이라는 것은 아주 찾기 쉽기 때문이지요. 그 대신, 내 책에서 그들이 발견하는 것은 질문들입니다. 내가 책상에 앉아 글을 쓸 때 떠올린 질문들과 같은 것 말입니다.
『포르토벨로의 마녀』가 출간되기 전, 책의 상당량을 블로그를 통해 미리 공개했는데요, 혹시 그 때문에 독자를 잃을 걱정은 하지 않았나요?
그와 정반대입니다. 나는 독자들이 자신이 구매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인터넷이라는 매체가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고 있고요. 자기가 구입할 소설의 한 부분을 미리 읽어보고 결정을 내릴 수 있게 해주는 거죠. 더 구체적인 예를 들어볼까요. 한때 러시아에서 내 책이 무단 복제되어 불법 유통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책의 배본이 힘들었죠. 그래서 나는 아예 러시아 독자들을 위해 『연금술사』를 무료로 읽을 수 있도록 인터넷에 올려버렸습니다. 그러자 많은 러시아 독자들이 내 글을 읽기 시작하면서 내 작품들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그 결과 내 책을 구입하기 시작하더군요. 인터넷은 국경이 없는 공간이고, 모든 사람이 기본적인 권리를 가지는 곳이죠. 그리고 그 안에 즐거움도 포함되는 거고요. 책을 살 만한 독자는 책을 살 겁니다. 아직까지는 컴퓨터 모니터보다는 종이책이 책을 읽기가 더 편하거든요.
책을 살 수 없는 사람에게조차 그 책의 내용이 어떤 것인지 접해볼 수 있는 권리를 주어야 합니다. 나는 독자들에게 그런 통로를 마련해주어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을 지니고 있어요.
문학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문학이 아니라 그것을 읽는 독자들이 변화시키겠지요.
한국독자들에게 보내는 파울로 코엘료의 메시지
제 첫 책 『순례자』가 출간된 지도 벌써 이십 년이 흘렀습니다. 독자 여러분 덕분에 저는 작가로서의 꿈을 이룰 수 있었고, 제 삶을 소설에 온전히 바칠 수 있었습니다. 매번 새 책이 나올 때마다 여러분이 보여주시는 관심은 제게 큰 영광입니다. 또한 새로운 독자들이 예전에 나온 제 책들과 만나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제게는 큰 즐거움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관심과 애정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신작 『포르토벨로의 마녀』를 한국 독자 여러분께 선보이게 되어 기쁩니다. 제가 당신을 위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은 바로 글을 쓰는 것입니다. 이십 년 간 소설을 쓰면서 제가 느꼈던 기쁨이 당신의 마음에 전해지기를 소망합니다.
2007년 9월
사랑을 담아,
파울로 코엘료
본문에서
음악이 연주되기 시작하자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 순간 내 눈에 비친 그녀는 영광에 찬 자태를 드러낸 여신, 혹은 천사와 악마를 소환하는 여사제의 모습이었다.
그녀의 두 눈은 감겨 있었고, 그녀는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 무얼 찾고 있는지 더이상 의식하지 않았다. 공중에 붕 떠 있는 듯 보이는 그녀는 마치 과거를 불러내는 동시에 현재를 밝히며, 미래를 예언하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관능과 순결이, 포르노그래피와 계시가, 그리고 신과 자연에 대한 찬미가 뒤섞인 모습이었다. (…)
그리고, 갑자기 그녀가 멈췄다. 북을 치던 연주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도 동작을 멈췄다. 그녀의 눈은 여전히 감겨 있었고, 눈물이 그녀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녀는 두 팔을 허공으로 올리며 외쳤다.
“내가 죽거든, 나를 선 채로 묻어주소서. 나 평생 동안 무릎 꿇고 살아왔으니!”
_본문에서
“언젠가 우리가 두 눈을 뜨고 사랑의 다른 모습들을 보게 되는 날, 대지에 새겨진 우리의 고통도 사라질 거예요. 그날이 멀지 않았어요.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헛된 것들을 쫓아 헤매던 여행에서 돌아오기 시작했어요. 이제야 그것이 허상임을 깨닫게 된 거죠. 하지만 그 귀로에는 고통이 수반될 수밖에 없어요. 너무나 긴 시간을 떠나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땅에서조차 이방인처럼 느끼게 되었거든요. 또한 우리의 뿌리와 보물이 묻힌 곳을 찾고, 귀환한 다른 친구들을 찾으려면 시간이 좀 걸릴 거예요.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질 날은 반드시 와요.”
_본문에서
이 책에 쏟아진 찬사
코엘료가 돌아왔다. 철학과 기적, 우화가 혼합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작품을 들고서. 마술적이고도 시적인 여주인공 아테나는 문학계의 매혹적인 퍼스트레이디가 될 것이다. _퍼블리셔스 위클리
사랑, 두려움, 그리고 모든 것의 의미를 찾는 탐구에 관한 코엘료의 불길 같은 문장. 영성과 경이를 찾아헤매는 이들을 위한 책이다. _워싱턴 포스트,
신비 어린 스토리텔링으로 인간의 영혼에 주술을 거는 이야기꾼 코엘료의 트레이드 마크 같은 작품. _북리스트
코엘료는 독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말을 거는 특별한 재능이 있다. 그는 상처를 어루만지는 작가다. _뉴요커
다른 장소, 다른 화자가 뒤섞인 다중적인 목소리를 들려주는 실로 매혹적인 소설이다. _엘 문도, 스페인
지금까지 코엘료의 다른 모든 작품보다 훨씬 더 멀리 나아간 첨단의 작품이다. 그는 이야기를 다루는 장인이다. _룩스 주르날, 브라질
파울로 코엘료
1947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태어났다. 17세부터 세 차례나 정신병원에 입원했던 불행한 청소년기와, 록밴드를 결성하고 극단 활동에 참여하는 등 히피문화에 심취한 청년기를 보낸다. 1973년 함께 음악 활동을 하던 친구 라울 세이시아스와 『크링 하Kring-ha』라는 만화잡지를 창간했으나 잡지의 성향이 급진적이라는 이유로 당시 브라질 군사정권에 의해 두 차례 수감되고 고문당했다. 그후 세계적인 음반회사의 중역으로 일하며 안정된 생활을 영위하던 그는 1986년, 돌연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순례를 떠난다. 이때의 경험은 코엘료의 삶에 커다란 전환점이 된다. 그는 이 순례에 감화되어 첫 작품 『순례자』를 썼고, 이듬해 자아의 연금술을 신비롭게 그려낸 『연금술사』로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오른다. 이후로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 『악마와 미스 프랭』 『11분』『오 자히르』 등 발표하는 작품마다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프랑스로부터 ‘레종도뇌르’ 훈장을 받았으며, 브라질에 ‘코엘료 인스티튜트’라는 비영리단체를 설립, 빈민층 어린이와 노인들을 위한 자선사업을 펼치고 있다.
옮긴이
임두빈
부산외국어대학교 포르투갈어과와 한국외국어대학교 포르투갈어과 대학원을 졸업한 후, 브라질 상파울로주립대학교(Unesp)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오푸스데이의 비밀』 『전갈의 달콤한 독』 『나를 변화시키는 힘』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현재 부산외국어대학교 포르투갈어과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며, 국제지역문화연구센터 전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 초판발행 | 2007년 10월 11일
* 128*188 | 400쪽 | 값 11,000원
* ISBN 978-89-546-0390-4 03890
* 책임편집 | 박여영 김지연(031-955-8868, 88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