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시기를 살아가는 인간의 내면을 치밀하게 묘사하며
근대 일본인의 정신적 공백을 정확하게 포착한 작가 나쓰메 소세키
소세키를 제외하고는 일본의 근대문학을 논할 수 없을 정도로 일본 문학사에서 그가 차지하는 위치는 아주 높다. 작중인물에 대한 자세하고 치밀한 심리 묘사와 윤리적 문제의식 및 그것을 감싸는 본격적인 허구는 일본 근대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으며, 일본을 넘어 우리나라와 중국의 근대문학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그의 초상화는 1984년부터 2004년까지 이십 년간이나 일본지폐 천 엔권에 그려져 있었으며, 2000년 아사히신문에서 실시한 조사에서 ‘지난 천 년간 일본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 1위를 차지하는 등 그는 명성만이 아닌 일본인들의 실질적인 정신적 스승으로 존재하고 있다.
소세키가 살았던 메이지 시대는 메이지 유신으로 인해 서양문화가 급작스럽게 밀려온 시기였다. 일본사회를 지탱해왔던 전통적인 가치관은 새롭게 유입된 서구의 가치관에 의해 흔들리며 일본인들은 가치관의 카오스 상태에 빠졌다. 소세키는 동서의 가치관의 혼란으로 인한 정체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펜을 들었다. 그는 급격한 변화의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심리를 치밀하게 묘사하며 자신의 작품 전반에 걸쳐 ‘인간의 본질’에 대해 탐구했다.
자전적인 이야기에 나타난 삶에 대한 성찰과 인간 존재에 대한 물음
『한눈팔기』는 나쓰메 소세키의 유년기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쓸 당시의 생활을 알 수 있는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작가의 생애와 문학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근간이 되는 작품이다. 두 살 때 다른 집에 양자로 갔다가 양부모가 이혼하면서 다시 생가로 돌아온 우울한 경험을 비롯해 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지식인의 무력한 모습, 근대와 전근대가 혼재한 당시의 시대 상황, 가부장적인 남편과 아내 사이에서 생기는 부부 간의 갈등 등이 담겨 있다.
주인공 겐조는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온, 소위 ‘엘리트’ 지식인이다. 그러나 고국에 돌아오니 아내와 아이들은 가난에 허덕이고 있으며, 그동안 믿고 있던 재력가 장인은 재산을 몽땅 잃고 오히려 보증을 서달라고 겐조를 찾아오는 처지다. 연락을 끊고 살았던 양부가 갑자기 나타나 돈을 요구하는가 하면 불쾌한 기억만 있는 양모까지 겐조를 찾아온다. 형제와의 관계도 친밀하지 못하다. 이렇게 『한눈팔기』에는 주인공이 일상에서 겪는 여러 가지 갈등이 드러나 있다. 고독한 지식인인 겐조의 추상적인 지적 논리는 현실 속에서 철저히 무력할 뿐이다. 나쓰메 소세키 소설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히는 치밀한 상황 설정과 섬세한 심리 묘사는 『한눈팔기』에서도 빛을 발한다. 소세키는 평범한 일상생활을 소재로 하여 그 안에서 맺어지는 관계들로 인해 괴로워하는 고독한 인간의 모습을 세밀하게 묘사함으로써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작가는 소설의 말미에서 주인공의 입을 빌려 “이 세상에 진짜로 끝나는 일이란 거의 없다고. 일단 한 번 일어난 일은 언제까지고 계속되지. 다만 다양한 형태로 계속 변하니까 남도 나도 느끼지 못할 뿐이야”라고 말한다. 얽히고설킨 갈등 속에 몸부림치는 무력한 지식인의 모습을 통해 삶을 성찰하고, 그 안에서 인간의 존재란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묻는 것이다. 사실 인간의 생(生)에는 어떠한 해답도 내릴 수 없다. 소세키는 삶을 살아가며 우리가 겪는 문제들이 그저 형태만 조금씩 바뀔 뿐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꿰뚫어보고 있다.
줄거리
주인공인 겐조는 어린 시절 양가에 맡겨졌다가, 양가의 부모의 사이가 나빠지자 다시 생가로 돌아온 비참한 경험이 있다. 어린 시절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주변인으로 자랐지만 가족 중 가장 공부를 많이 하고 유학까지 다녀온 겐조 앞에 갑자기 양부가 찾아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겐조는 천식을 앓고 있는 누이에게 매달 용돈을 주고 있으며, 회사 생활을 하지만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형에게도 도움을 주고 있다. 이런 상황에 양부까지 찾아와 겐조에게 돈을 청한다. 장인도 보증을 서달라고 한다. 겐조의 주변에는 금전적으로 그를 필요로 하는 사람밖에 없는 듯하다.
고지식한 겐조는 평소 다른 사람들의 눈에 편협하고 이해할 수 없는 사람으로 비춰진다. 겐조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고 받기도 싫다는 생각이 있지만 막상 타인으로부터 부탁을 받았을 때는 딱 잘라 거절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애를 끓인다. 아내가 그에 대해 질책 어린 시선을 던지면 ‘당신은 내가 아니기 때문에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라며 도리어 아내를 무시한다. 한마디로 모순으로 가득 찬 인간인 그는 자신만의 시간을 방해받기 싫어하면서도 자신에게 다가오지 않는 아내와 아이들을 보며 고독을 느낀다……
추천사
모리 오가이와 시마자키 도손을 더해도 소세키에는 비교할 수 없다. _ 세누마 시게키(문학평론가)
여러 가지 문제들로 시간을 낭비해도 그것은 전부 인생에서 의미를 지닌다. 소세키가 그린 것처럼 인간은 본래 ‘한눈팔기’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이다. _ 강상중(재일 정치학자)
소세키는 메이지 시대 서양 문명의 급격한 유입으로 생겨난 일본인들의 정신적 공백을 지식인의 눈으로 정확하게 포착해냈다. _ 나카무라 미쓰오(문학평론가)
이 작품은 소세키의 작품 가운데서도 작가의 생애와 문학세계를 이해하는 데 가장 기본적인, 말하자면 소세키 연구의 입문서이다. 또한 메이지 시대 일본인의 정서는 물론 현대 일본인의 정서와 일본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디딤돌이다. _ 조영석(옮긴이)
본문 발췌
‘너는 결국 무엇을 하러 이 세상에 태어났는가?’
그의 머릿속 어딘가에서 누군가 이런 질문을 던졌다. 겐조는 질문에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가능한 한 대답을 회피하려고 했다. 그러자 목소리는 더욱 겐조를 추궁했다. 몇 번이고 똑같은 질문을 되풀이했다. 겐조는 끝내 울부짖었다.
“모르겠어.”
목소리가 갑자기 코웃음을 쳤다.
‘모르는 게 아니지. 알아도 그곳에 도달할 수 없는 거겠지. 도중에 멈춰 있는 거겠지.’(p. 261~262)
“이 세상에 진짜로 끝나는 일이란 거의 없다고. 일단 한 번 일어난 일은 언제까지고 계속되지. 다만 다양한 형태로 계속 변하니까 남도 나도 느끼지 못할 뿐이야.”(p. 2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