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엄마 학원』의 작가, 정신과 의사 김녹두
이 세상 모든 아빠와 열세 살 아들딸을 응원하다!
‘관계의 상상력’을 통해 개성 있는 작품을 선보여 온 작가 김녹두의 동화집 『아빠, 울지 마』가 출간되었다. 그의 첫 책 『좋은 엄마 학원』 역시 아이와 어른의 관계 문제를 섬세하게 묘사한 동화집으로 평가받으며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김녹두는 동화작가이기에 앞서 두 아이의 엄마이자 사람들의 아픈 마음을 살피고 보듬어 주는 정신과 의사다. 그는 진료실에서 만난 여러 환자와 환자 가족들을 통해 지금 이 사회에 병든 현실을 바라보고, 그것을 신랄하면서도 따듯하게 묘사하고 있다.
『아빠, 울지 마』에는 ‘아빠’와 ‘나’의 이야기 다섯 편을 담았다. 우리 동화에서나 어린이들의 삶에서나 아빠는 부재중이다. 하지만 김녹두는 어린이들의 삶 속에 숨은 아빠를 찾아낸다. 그 아빠들은 모두 강하거나 존경받아 마땅한 아빠가 아니다. 사회문제와 맞물려 가정 안에서도 힘겨워하는, 가족이 함께 보듬고 응원해 줘야 할 아빠의 모습인 것이다. 한편 이 책 속에서는 다양한 아빠의 모습뿐 아니라 가정에서든 학교에서든 통과의례를 겪는 열세 살 아이들의 모습도 만나 볼 수 있다. 아파서 외면하고 싶은 현실이라 해도 더는 피하지 않고 마주할 때, 비로소 단단한 마음의 힘을 얻게 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한다.
“나는 아빠가 좀 더 어른스러우면 좋겠어…….”
「아빠, 나는……」 나는 말하는 것도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귀찮고 싫다. 언제부턴가는 눈물도 나지 않는다. 이런 나를 보며 엄마 아빠는 걱정과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아빠는 한때 밤무대 가수였고, 지금은 엄마와 함께 세탁소 일을 한다. 아빠는 자전거가 창피하다며 ‘할리데이비슨’ 같은 남들 보기에 그럴듯한 오토바이를 사고 싶어 한다. 엄마가 은행 대출금도 갚아야 하고 내 영어 학원도 보내야 하기 때문에 여유가 없다고 하자, 아빠는 “나도 내 인생 살고 싶어.”라고 말한다. 정말 어이가 없다. 나는 아빠가 좀 더 어른스러우면 좋겠다. 도대체 아빠란 존재는 왜 필요한 걸까? 걱정만 끼치는 아빠라면 차라리 없는 게 마음 편하지 않을까? 아빠는 어른이고, 나는 아빠에게 기대고 싶은데 우리 집에서는 불가능한 일 같다. 나는 내가 왜 사는지 잘 모르겠다. 어른이 되기 전에 죽을 것만 같다. 만약 내가 죽는다면 아빠는 슬퍼할까? 내가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무섭다. 이런 생각이 안 떠오르게 누군가 나를 도와주면 좋겠다.
「통과의례」 아빠는 내 일에 사사건건 참견이다. 내가 친구 집에서 조금만 늦게 와도 난리다. 아빠가 다른 아빠들처럼 회사에도 가고 회식도 하고 친구도 만나면 좋겠다. 하루 종일 집에만 있는 아빠를 보면 답답하기만 하다. 엄마 혼자 고생한다고 외할머니는 아빠를 미워한다. 정신병이 유전되는 거 아니냐며 나까지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본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가 아마존 부족의 ‘마르윈’ 모습을 하고 나를 어딘가로 이끄는 것이다. 아빠는 나 혼자 바위 위에서 밤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아빠 역시 혼자 해야 할 일이 있다고. 그렇게 나는 어두운 밤에 홀로 남겨지고, 밤은 점점 더 깊어 간다. 이제 더는 피할 길이 없다. 나는 내 마음속 두려운 존재들과의 긴 싸움을 시작해야 한다.
“열세 살 내 인생, 이대로 살아도 괜찮을까?”
「청려장」 나는 이제 겨우 열세 살인데, 엄마 아빠는 나를 어른 취급한다. 아침상을 치우라고 하질 않나 이제는 밥까지 해 놓으란다. 방학이라고 빈둥거리기만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나는 아직 어린이고 엄마 아빠의 보살핌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런데 왕허풍쟁이 우리 할아버지 때문에 나는 어리광 부릴 틈도 없다. 여전히 파릇파릇 젊은이인 줄 아는 할아버지. 극심한 운동과 무리한 활동으로 병원을 하루가 멀다 하고 간다. 이제 나는 할아버지의 보호자 역할까지 하고 있다. 나는 열세 살인데, 벌써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까?
「빠빠」 아빠는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며칠 전 돌아가셨다. 그 뒤 나는 엄마와 떨어져 살다가 엄마가 새아빠와 재혼을 하면서 함께 살고 있다. 엄마는 새아빠의 눈치를 살피며 늘 조심스러워한다. 내가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가만히 살면 좋겠다고 한다. 새로 태어난 동생 세희와도 맘껏 놀지 못한다. 엄마와 새아빠 집에서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어디에도 없는 것 같다. 아니 내가 있다는 것을 아무도 모르는 것 같다. 엄마가 나를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에 자꾸 큰 소리를 내게 된다. 나는 오늘도 책상 밑으로 들어가 몸을 웅크린 채 숨죽인다. 예전엔 이렇게 있을 때마다 아빠가 찾아와 주곤 했는데…….
「절대 안정」 내 마음속에는 슬기뿐이다. 그런데 열세 살 나이에 맞지 않은 내 키가 문제다. 땅꼬마라고 불리는 나와 달리 슬기는 우리 반 여자아이들 가운데 가장 크다. 그래서 그런지 슬기는 나를 귀여운 동생쯤으로 생각한다. 아무리 잘 보이려고 애써도 슬기 마음을 얻기가 쉽지 않다. 할머니 말대로 정말 사랑은 눈물의 씨앗인 것일까?
마음을 자라게 하는 다섯 빛깔의 통과의례
김녹두의 동화 속 인물들은 마냥 예쁘거나 착하거나 행복하지만은 않다. 오히려 시련과 아픔을 이겨 내며 삭막한 현실을 꿋꿋이 살아간다. 동화라는 틀 속에 가둔 이야기가 아닌, 현재를 살아가는 아이들의 문제, 가족 관계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보다 현실감 있게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아빠, 울지 마』에서도 주눅 든 채 말하는 것을 잃어버린 아이, 있는 듯 없는 듯 소리 죽여 살아야 하는 아이를 비롯해 생활고에 찌들어 꿈을 잃은 아빠, 환청에 시달려 온전한 생활이 힘든 아빠, 철부지 아빠 등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내면을 꿰뚫어 보게 한다. 그리하여 곪은 문제들이 겉으로 불거져 치유의 과정을 겪을 수 있도록 용기를 불러일으킨다.
아이는 부모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으며 성장한다. 『아빠, 울지 마』에 나오는 다섯 명의 열세 살 아이들 또한 청소년기로 넘어가는 통과의례 앞에 서 있다. 그런 아이들에게 건강한 엄마 아빠의 존재가 얼마나 큰 버팀목이고 용기의 원천인지 새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통과의례를 겪고 있는 아이들은 물론이고 지금을 살아가는 모든 부모가 이 책을 함께 읽어 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