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당신에게도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 수요일이 찾아온다면......
늘 먹던 음식을 먹고, 늘 가던 거리를 걷고, 늘 같은 사람을 만나고, 그 속에서 늘 같은 생각을 하고...... 똑같은 걸 똑같이 못하는 게 그녀(이 책의 필자)의 문제. 대학 졸업반으로서의 의무감과 책임감만 눈치도 없이 자꾸 옆구리 살처럼 불어나고 유난히도 정신이 콜록대던 지난겨울, 그녀는 파리행 티켓을 끊었다. 그렇게 <파리에서의 신경질>은 시작된다.
그 수요일을 기억해. 가슴이 터져버릴 것처럼 미치겠는데 울음도, 화도, 아무것도 배출할 수 없었던. 눈에 보이는 모든 게 참을 수 없었던. 나는 그때 느꼈어,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걸. 불만이란 곰팡이에 내 청춘이 얼룩지고 있다는 걸 그날에서야 받아들였지.
하기 싫은 일을 하면서 불만을 위로로 삼는 거, 그거 분명히 불쌍한 인생인데. 모두가 그러니까 모두가 그러려니, 원래 이러려니. 얼마나 무기력하고 위험한가. 내 인생을 왜, 어쩌자고, 그러려니 하며 살 생각을 했을까.
그래서 나, 간다. 그러려니 하고 살지 않기 위해.
_ 프롤로그 중에서
그러려니 하고 살지 않기 위해 떠나온 차가운 파리에서 그녀는 두 달여 참 많이도 헤맸다. 파리의 겨울이 주는 외로움과 쓸쓸함 그리고 낭만을 마주하며 다짐한 한 가지! 파리에서만큼은 ‘의무’보단 ‘의지’에 휘둘릴 것! 으레 ‘해야 하는 것’보다 ‘하고 싶은 것’을 하며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일 것을 스스로에게 당부했다. 그러다 보니 유명 관광지 탐방보다는 그녀가 좋아하는 파리의 뒷골목을 구석구석 다니며 조그만 카페에 앉아 노트에 끄적이는 게 일상. 덕분에 여행기에서 흔히 보는 관광지 소개나 맛 집 정보는 없다. 파리를 소개하는 책도 그렇다고 좌충우돌 여행기는 더더욱 아니기 때문이다. 대신 파리의 첫인상, 주말 재래시장의 풍경, 수많은 인연, 스쳐간 사랑의 감정부터 깊은 슬픔까지...... 짧은 기간이지만 걷고 만지고 느낀 파리에서의 시간이 가감 없이 담겨 있다.
그녀가 파리에서 보낸 두 달여의 시간은 대학에서의 마지막 학기를 앞둔 겨울방학이다. 취업을 위한 스펙을 쌓기에 부족한 시간이기도 한 그 시간, 인턴을 하는 친구와 취업을 위해 스터디하는 친구들을 뒤로한 채 훌쩍 떠나 왔지만, 그녀 역시 하루하루 밀려가는 일기를 걱정하는 초등학생처럼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고민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기에 『파리에서의 신경질』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인 동시에 대한민국 이십 대의 고민이 날것 그대로 담긴 청춘 비망록이다. 아니 지금, 넘어서의 시간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사는 ‘우리’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헤매는 만큼 그 길을 잘 알게 되고, 자신의 발자국이 누군가에게 이정표가 될 수도 있다는 건 이해하지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던 그녀였지만, 파리에서의 정처 없는 헤맴을 통해 그녀는 희미하지만 길 위에서 얻은 답으로 남은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위로를,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그 힘으로 오늘도 새로운 길을 만들기 위해 기꺼이 헤맴을 자청한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야 할지 아득하기만 한 길, 그 길 위에서 완벽하기보다 아름다운 여행자로 서길 꿈꾸며.
문득 돌아본 나의 지도는 제법 구불거렸으면 한다. 언덕이 조금 있다면 내리막길도. 대신 길가엔 처음 보는 아름다운 꽃들과, 꽃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들로 채워졌으면 한다. 늘 향기로웠으면, 그리하여 더욱 가고 싶은 길이었으면 한다.
_ 본문 78쪽, 길 중에서